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90)
EP.90 텃세
죄를 지으면 천신이 알고, 대지모신이 알며, 또한 자기 자신이 안다고 한다.
그 셋 중 누가 가장 먼저 아느냐고 묻는다면, 독실한 천신교의 신자들은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은 보통 제 잘못을 알고 있다. 수상쩍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풍경에 녹아들지 못한 채, 어수선하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몸에 한껏 힘을 주고 일을 저지른다.
그러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시간을 도려낸 듯 우뚝 멈춰서는 눈만 데굴데굴 굴린다. 그러다 냅다 도망가거나, 모르는 척 딴청을 피우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 죄를 인식한다는 증거이다. 죄의식의 발로라고나 할까.
애석하게도 죄의식을 갈가리 찢어 13번의 회귀 동안 흩뿌리고 온 회귀자에겐 그마저도 없었다.
“너도 찬성하지? 처리할게.”
취소. 죄의식이 음수에 가까웠다.
너도 찬성하지, 는 도대체 어떤 회로를 장착해야 나올 수 있는 대답이야? 왜 나도 당연히 찬성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회귀자의 13회차 외부장착형 사고회로는 정말 상상 이상이다. 어쩌면 독심술이 절반만 통하는 게 다행일지도 몰라. 자칫 잘못 읽으면 내 정신이 오염될 수도.
회귀자가 엄한 짓을 못하도록 즉각 외쳤다.
“멈춰요! 이 외팔이공장장. 도대체 뭔 짓을 하려고 합니까?”
내가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하자, 회귀자가 재빨리 천앵을 휘둘렀다.
천검기, 단애(斷崖).
천앵의 검격이 허공에 경계를 그었다. 머나먼 절벽 끝, 바람이 부서지는 곳. 천앵이 구분 지은 곳에 바람의 길이 끊어졌다. 1분 동안, 저 공간으로는 바람이 그 무엇도 싣고 가지 못할 것이다. 바람에 녹아든 냄새도, 공기를 울리는 소리도.
칼 진짜 사기네.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회귀자가 회귀 초부터 들고 다니겠지.
내가 마음속으로 볼멘소리를 할 때, 회귀자도 마찬가지로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왜? 너는 노역자라며. 비록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여기 들어온 이상 군국과 척을 진 신세 아니야?”
“사실 그렇죠. 어쨌든 갇힌 몸이고.”
“그러면 답은 나왔어.”
천앵이 회귀자의 손안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종횡무진 날뛰는 칼을 단숨에 잡아챈 회귀자는, 검을 똑바로 들고는 문 너머를 노려보았다.
“여기 있던 사람을 남기고, 앞으로 내려오는 군국의 개를 다 칠 거야. 하나 들어올 때마다 하나씩.”
“아니. 뭘 쳐요?”
“군국의 개.”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만 뻐끔거렸다.
그러니까 회귀자는, 앞으로 들어오는 모든 군국 소속 인물을 죽일 셈이었다. 진심으로.
“간단하게 설명할게. 잘 들어. 군국에는 두 부류가 있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놈들,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것도 통제하려는 놈들. 그리고 지금 저기 있는 건 후자 중에서도 아주 극단적인 놈들이야.”
정말로 간단히 설명을 끝낸 회귀자는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저놈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기 전에 죽인다.”
“헐.”
“중령은 끄나풀이지. 뭐 어때? 죽이면 반응이 올 거야. 눈이 돌아가서 다 내려오든가. 겁쟁이처럼 지켜만 보든가. 내려오면 죽이고, 아니면 둬. 어찌 되었든, 이제 탄탈로스에 군국은 없게 될 거야.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지킬 수 있어.”
아주 간단한 논리였다.
후에 종말의 조각이 될 수 있는 아지와 티르가 멀쩡하다. 그 와중, 가장 변수였던 나는 사실 군국 소속이 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변수는, 군국의 개입.
그걸 지운다. 통째로.
이게… 회귀자의 시선?
매듭을 푸느니 천앵으로 자르겠다. 어찌 보면 합리적이긴 한데, 좀, 뒤가 없지 않아?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그러면 보급은요? 사람을 오는 대로 죽이면 보급을 끊지 않을까요?”
“내 포켓에는 식량이 있어. 비상시를 대비해서 미리 챙겨놓았지. 그걸 풀 거야.”
“남들은 콩 통조림 먹고 살 때 자기 혼자 식량을 꿍쳐놓고 있었어!?”
이게… 회귀자의 준비성?
“군국이랑 싸우다가 다칠 수도 있잖아요! 저쪽에서 보급상자로 폭탄을 계속 떨어뜨리면 어쩌려고!”
“군국이 가만히 둬도 탈 안 나는 땅에 폭탄을 쏟아부을 만큼 멍청이는 아니야. 간단한 폭탄이라면 내가 처리할 수 있고, 설사 다쳐도 내가 간단한 회복약 정도는 만들 수 있고…. 여차하면 티르칸쟈카에게 부탁해 봐. 흡혈귀라도 되면 되잖아? 티르칸쟈카도 기뻐할걸?”
이게… 회귀자의 인성?
“그렇다고 여기서 영원히 살 수는 없잖아요? 아니면, 정말 영원히 살 생각이에요?”
“영원히는 아니야. 머지않아 탈출할 방법이 생길 거야. 지상에서 ‘그녀’가 떨어진다면, 아마…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나겠지.”
‘내가 죽든, 그녀가 죽든. 남은 이들은 탈출할 수 있어. 무저갱이 무너질 테니까.’
회귀자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막연한 불안감과 비장한 각오. 불확실한 승부 앞에 놓인 검투사가 삶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이게 회귀자의 각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너 죽으면 안 돼. 그러면 세계가 끝나버리잖아.
세계가 되감기든, 아니면 다른 종말이 오든. 남은 사람은 어쩌라고.
일단 막자. 막고 나서 생각하자. 나는 표정을 흐리며 말했다.
“저, 그런데. 방금 제가 약을 좀 치고 왔거든요? 약발 돌 때까지 좀 기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이해가 안 돼? 저것들은 폭탄보다도 위험한 놈들이라니까? 중령 따위라고 하더라도 무슨 수를 가지고 있을지 몰라!”
고작 중령 따위라니? 나름 군국에서는 한 끗발 먹어주는 이들인데 따위라고.
아, 그런데 너희들은 그게 되는구나. 후우, 가끔 여기 스케일에는 적응이 안 된다니까.
내가 이해 못한 얼굴로 있자, 회귀자가 혀를 차고는 들고 있던 천앵을 거두었다.
“혹시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보여줄게. 자, 봐. 무저갱에 온 중령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때 교관실 안쪽에서 나가려는 의지를 읽었다. 중령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회귀자도 그 기척을 눈치채고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회귀자의 옆에 가까이 붙자, 회귀자는 천앵을 붙잡고 중단자세를 취했다.
천검기, 단애.
허공을 베어낸다. 하늘의 검이 바람이 전할 소식을 잘라낸다. 냄새도, 소리도. 공기를 타고 흐르는 것이 단층에서 끊긴다. 단절된 공기의 벽이 나와 회귀자를 감쌌다.
그 상태에서, 회귀자는 검을 아래로 향했다. 천앵에게서 바람이 불어나왔다.
풍운우로(風雲雨露).
압축된 공간이 풀려나가며, 갑작스레 부푼 공간에 이슬과 안개가 자욱하게 낀다. 본디 세상으로 퍼져나가야 할 안개가 단애에 부딪혀 튕겨나온다.
회귀자는 물안개를 불러 나와 자신의 모습을 흐리게 한 뒤 다시 검을 잡았다.
천검기, 천경.
신기루는 머나먼 공간을 지나며 휘어진 빛의 잔영. 그게 고작 1m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재현된다. 이제 나와 회귀자의 모습은 휘어지는 빛 속에 감추어졌다.
직후 교관실의 문이 열리고 장교가 나왔다. 마침 천앵에서 흘러나왔던 바람 한 줄기가 장교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저갱에 부는 바람을 느낀 장교가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잠깐 나와 회귀자에 닿았으나, 그녀의 시야에는 은신술로 숨은 우리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주억거린 장교는 군홧발을 뚜벅거리며 계단으로 향했다. 뒷짐을 진 그녀의 모습이 층계 아래로 사라졌다.
회귀자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급하게 하려니까 좀 숨이 차네.”
“은신술입니까? 대단하네요. 코앞에서도 안 보일 줄이야.”
내 순수한 감탄에, 회귀자는 살짝 우쭐해대서도 겉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흥. 별거 아니야. 소리와 냄새를 막고, 존재감을 흐릿하게 만들어주지만, 기운을 줄기줄기 흘리고 다니는 강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으니까.”
“저번에 저를 엿보려고 할 때도 이걸 쓴 겁니까? 능력은 대단한데 사용처가 하나같이 음습하네요.”
“…닥치고 중령이나 따라가.”
막을 수 있는 소리는 오직 공기로 퍼진 것뿐. 혹여나 발소리가 들릴까, 나와 회귀자는 조심조심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장교는 무저갱 마당까지 나왔다. 주간등이 비치는 곳 한복판에 자리를 잡은 장교는, 뒷짐 진 손에서 고무로 된 공을 꺼냈다.
탄력적이고 튼튼하며 손안에 딱 들어오는 새까만 고무 공. 내 급조한 가죽 공보다 몇 배는 갖고 놀기 좋은 장난감이었다.
통, 통. 장교가 고무 공을 땅에 몇 번 튀겼다. 탄력있는 고무 공은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준비를 끝낸 장교는 아지를 불렀다.
“개의 왕!”
“멍?”
그러자 아지가 모퉁이 너머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장교는 다시 공을 통통 튀기다가, 마당 저편을 향해 거세게 던졌다.
“선물이다!”
고무 공이 하늘 저 멀리 날아간다. 한참을 날아가던 공은 바닥에 통, 통 튕기며 탄탈로스의 반대편까지 굴러갔다.
살랑살랑. 공을 보고 꼬리를 흔들던 아지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땅을 박차고 뛰었다.
“멍멍!”
행복한 듯이 공을 쫓는 아지. 네 발로 냅다 달려 공을 다라잡은 뒤, 한 입에 물려다, 공이 얼굴에 부딪혀 튕겨 나가자 더욱 신이 나서는 뒤쫓는다.
몇 번 놓친 끝아 아지가 고무 공을 물고는 장교에게로 돌아왔다. 장교가 절도 있게 공을 줍고는 의무적인 칭찬을 건넸다.
“잘했다.”
“멍멍! 공!”
“또 던지겠다. 여기!”
“멍!”
‘확실히, 적힌 대로다. 개의 왕은 나를 경계하지 않아…. 예상보다 쉽게 따르게 할 수 있겠어.’
음흉한 속내를 지닌 장교가 아지를 길들이는 모습.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안 돼! 아지야!”
“봤지? 중령씩이나 되어서 처음 하는 일이 개의 왕 길들이기. 수상하지 않아?”
회귀자가 팔짱을 낀 채로 중얼거렸다.
“내 예상이 맞았어. 저들은 ‘만물의 영장’이야. 짐승의 왕을 길들여, 제 뜻대로 다루려는 놈들…. 앞으로 뭔 짓을 할지 몰라. 미리 처리해두는 편이 나아…. 듣고 있어?”
“안 듣고 있어요!”
지금 그게 중요해? 내가 몇 개월 공들인 강아지를 홀랑 낚아채려고 하잖아!
내가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거쳐서 길들였는데! 한계에 달하는 투구수에도 꾸역꾸역 분투했고, 매일매일 밥을 해줬고, 쓰다듬기 털 정리까지 해줬는데도! 고작 훈장 단 제복 장교에게 넘어간다고?
“저, 저 꼬리 가벼운 강아지가! 조금 더 크고 탄력적인 고무 공을 가지고 왔다고 곧장 꼬리를 흔들어?”
“어, 개의 왕이니까? 앗, 야. 움직이지 마. 너무 거세게 움직이면.”
“어림도 없다! 고작 장난감 하나로 아지를 유혹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이미 아지와 몇 개월 지내면서 뭘 좋아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
회귀자의 말도 무시하고 곧장 감옥 안으로 뛰어 올라갔다. 두 칸씩 뛰어올라 내 방에 도착한 뒤, 서랍에 들어있던 고무 공과 강철 원반을 한가득 챙겨 나온 나는, 아지가 보는 앞에서 그 모든 것을 땅에 내던졌다.
공을 물고 오던 아지가 나와 원반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멍?”
“아지야. 이리 와! 너 공 졸업한 지 오래잖아! 우리 드디어 2원반의 벽을 깼으니 슬슬 3원반으로 가야지!”
“멍멍?”
아지는 장교와 나를 번갈아보다가, 고무 공을 탁 놓고 곧장 나에게로 달려왔다. 나는 그 앞에서 원반 세 개를 들어 올린 뒤 약간의 간격을 두고 하늘로 던졌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아지가 원반을 하나 물었다. 그 뒤 감옥 외벽을 딛고는 그보다 높게 있던 원반을 낚아채고는, 마지막으로 몸을 쭉 뻗어서 마지막 원반을 노렸다.
“아이고. 약간 부족하네…!”
그러다 안 닿자, 그냥 손으로 잡아버렸다.
땅으로 내려온 아지의 입에서 원반을 빼내며 칭찬을 해주었다.
“손을 쓰면 반칙이긴 한데, 잘했어. 그렇게 하는 거야!”
“멍! 멍멍!”
신이 나서 팔딱거리는 아지를 곁에 두고 쓰다듬고 있는 도중이었다.
중간부터 아지를 빼앗긴 장교가, 깊게 쓴 모자챙 아래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다가왔다. 군홧발이 땅을 쿵쿵 울렸다.
“…노역자. 왜 나를 또 방해하는 거지?”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텃세입니다, 중령님. 아지와 친해지고 싶다면 저부터 넘으십시오.”
“…네놈. 정녕 죽고 싶은 건가?”
“어이쿠.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 오던 개도 도망갑니다.”
“잡범 따위가 감히 군국의 장교에게…!”
분노한 장교가 한 걸음 나섰을 때.
[살기를 거두거라, 병사여.]그림자에서 목소리가 일었다. 그건 성대를 통해 나온다기보단, 어둠 자체가 떨리면서 만들어낸 목소리였다.
장교는 그 불길한 기운에 움찔하며 이를 악물었다.
“쯧, 시조…!”
[네가 무엇을 하든 상관할 바는 아니나…. 하나 다시 확언하겠다. 휴는 나의 비호 아래에 있고, 그를 향한 어떠한 종류의 위해라도 끼칠 시. 내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그림자가 엄중히 경고했다. 그건 악마가 어둠을 빌어 말하는 것 같기도, 혹은 세상이 준엄한 경고를 내뱉는 것 같기도 했다.
위압감, 그 이상의 공포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장교가 움츠러들었을 무렵.
내가 그림자를 톡톡 건드리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티르. 그렇게 지켜보고 있을 거면 그냥 와요.”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을 집어삼킬 듯했던 목소리가 갑자기 흔들렸다. 잠시 뒤, 그림자에서 티르의 조금 힘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니다. 네 말마따나, 어찌 사람이 매일 같이 지내겠느냐.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지.]“어떻게 사람이 맨날 붙어 다니냐, 제가 그렇게 말 했다고 삐진 거예요?”
[삐진 것이 아니라, 네 말이 맞다 생각하여.]“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어차피 그림자에 눈 심어놓고선.”
[…그럼, 가도 되겠느냐?]“물론이요.”
[금방 가마.]곧이어 지하 무기고의 문이 열렸다. 둥실거리는 관 위에 팔다리를 모아 다소곳이 앉은 티르는 금방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지금까지 문 뒤에서 기다리며 당장 뛰쳐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스타가 다 모였다. 회귀자는 못마땅한 듯 팔짱을 낀 채 숨어있지만 어쨌건 내 편.
아지의 호감도는 아직 내 쪽이 훨씬 더 높고.
티르에 있어선 말할 것도 없다.
장교도 알았으리라. 그녀가 넘어야 할 벽을.
“아지는 못 줍니다. 할 수 있다면, 저보다 더 재미있게 놀아주시던가요!”
장교는 서슬 퍼런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하지만 이 면면 앞에서 날뛰어봤자 자기만 손해. 머지 않아 단념한 장교가 몸을 휙 돌렸다.
‘나를 대놓고 견제하고 있다. 혹시 내 정체를…? 아니, 일개 잡범이 알 리가 없지. 그냥 주도권 싸움인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걸어가며, 장교는 결심을 내렸다.
‘벌써부터 쓰기에는 좀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그분이 위급할 때 쓰라고 주신 세 개의 꾸러미, 그중 하나를 써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