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RAW novel - Chapter (98)
EP.98 걸어오는 죽음
흔히들 죽음은 발이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어디에 숨어도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바싹 뒤따라오며, 늘 죽음을 경계하는 사람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리스 중령의 죽음은 확실하게 두 발을 가지고 걷고 있었다.
여자로 착각할 만큼 곱상하게 생긴 소년이, 명확한 살의와 그럴 능력을 지니고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칼리스에게 걸어 올 때마다 그녀는 죽음과 가까워졌다.
생존본능이 경고를 발해왔다.
“무, 무슨 짓이지? 나는 이 탄탈로스의 교관으로서,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교육생을….”
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장교는 다가오는 회귀자를 향해 더듬거리며 변명했다.
물론 통하지 않았다.
“사실, 놓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죽을 테니까.”
그런 말을 들었다고 놓지 않는다면 그녀 자신을 옭아맬 뿐이다.
장교는 사슬을 집어 던지고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쇠사슬이 바닥에 철그렁 떨어지고, 아지는 조그맣게 눈을 떴다. 여전히 목에 사슬이 감겨있었지만 아지는 그 사실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사슬이 당겨진 정도로는 다치지도 않는다.
단지, 인간끼리 서로 다투는 모습을 조금 슬프게 바라보았을 뿐이다.
피 냄새가 풍길 것을 예감한 아지는 어둠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에 반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사자는 당당하게 다가오는 죽음과 마주했다.
“여어. 망측하게도 남자를 좋아하던 소년 아닌가! 안타깝지만, 중령은 여자다! 태도가 워낙 딱딱해서 착각한 모양이로군!”
실없는 농담이었지만, 지금의 회귀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스위치가 돌아간 이상 회귀자의 마음에는 칼날처럼 벼려낸 살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살의는 이번 생만의 죽음으로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있을 모든 가능성에서 존재를 박탈당하는…. 조금 더 근원적인, 초월적 시점에서의 멸하고자 하는 의지.
“…꼭 그래야만 하겠나, 소년?”
죽음을 겪지 않는 불사자조차, 그 살의를 넘어선 기세를 앞에 두고는 미소를 지을 수는 없었다. 불사자는 언제라도 뛰쳐나갈 수 있도록 몸을 팽팽히 당긴 채 회귀자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둘의 거리는 20보. 회귀자는 앞을 가로막은 그를 향해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너는 팔다리가 떨어져 있는 편이 낫네. 최소한, 그때는 방해가 되진 않았는데.”
“소년, 소년도 당황해서는 허둥거리던 때가 낫군. 그때는 꽤나 인간적이었는데, 지금 소년은 참… 수라와 같구나.”
불사자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여유에서 나온 게 아니라, 상대방과 그의 차이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만큼 가까워졌음에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는다.
바람의 칼날을 날리는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이 거리에서 위협적인 공격을 연달아 퍼부을 수 있으면서도. 회귀자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불사자 따위는 방해조차 되지 않는다는 듯이.
한 걸음, 한 걸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가까워지고 있다. 마치 시시각각 다가오는 약속의 시간처럼, 일정하게.
만일, 이 상태로, 살기에 얽매여 바들거리는 장교에게 닿는다면….
불사자가 중얼거렸다.
“칼리스. 도망쳐라.”
이곳은 무저갱이다. 사방팔방 어디로든 도망칠 곳 없는 가장 막다른 곳.
그것을 알면서도, 불사자는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든, 빨리!”
정신을 차린 장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달렸다, 다급한 발소리가 울린다.
회귀자는 장교의 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너는 없는 게 맞아.”
회귀자가 팔을 당겼다. 단순히 그랬을 뿐인데, 복도를 가득 채운 바람이 한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옅게나마 남아있던 웃음기를 거두며 불사자는 더없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빨리 도망쳐-!”
그 직후. 회귀자는 그 등 한복판을 겨누고는 천앵을 찔렀다.
천검기, 사일(射日).
한 줄기 바람이 분다. 어마어마했던 전조에 비해 나타난 결과는 하찮기 그지없었다. 훅, 하고 누군가 입바람을 부는 듯한, 그런 작고 가벼운 소리가 복도를 따라 흘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시하기엔, 그 위력은 너무나도 강맹했다.
“하앗!”
불사자는 그 즉시 몸을 움직여 회귀자의 검끝을 막아섰다. 예상대로, 보이지 않는 검기가 그의 몸을 꿰뚫었다. 교차한 양팔, 근육, 뼈, 바람이 가득 든 허파를 지나, 등가죽까지 단숨에.
불사자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관통력이 그의 예상을 아득히 웃돌았다. 고작 팔을 교차하고 몸을 던지는 것으로는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숙여!”
그렇게 외치며 불사자는 몸을 비틀었다.
검풍이 그를 꿰뚫고 나아가, 장교의 모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군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모가 허공을 빙글 날았다. 충격에 비틀거린 장교는, 간신히 균형을 잡고는 다급히 계단을 올라 도망쳤다.
회귀자가 혀를 찼다.
“쳇. 그 와중에 몸을 비틀어?”
“하하. 묘기에 가까웠지. 그래도 성공했지 뭔가!”
검풍이 불사자를 꿰뚫는 동안, 불사자는 전신에 힘을 가득 주고는 몸을 비틀었다. 마침 몸을 꿰뚫고 지나가는 동안이었기에 전신으로 붙잡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탓에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다는 검기도 궤적이 어긋나, 장교의 목 대신 어깨 위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죽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회귀자는 별다른 유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래봤자 잠깐이야. 이곳은 무저갱, 누구도 여기서 도망칠 수 없어. 중령은 죽게 될 거야.”
“하하. 여유를 가지게나, 소년. 그녀는 조금 몰려있었을 뿐이다.”
“몰려있으니까 본성이 나온 거지.”
“본성은 하나가 아니다, 소년. 누구에게나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은 앞뒷면처럼 동시에 존재하는 법.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은 이곳에서, 어둡고 컴컴한 땅에서 그녀의 나쁜 면이 도드라졌을 뿐!”
“그래. 이해해.”
회귀자는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러니 나는 나쁜 부분을 죽일게. 좋은 부분은 네가 알아서 해 봐…. 살아있다면 말이지만.”
그 어떤 이도 회귀자를 설득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는 막을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또한, 회귀자의 분노에는 타당한 이유마저 있어, 회귀자 자신조차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불사자는 막막한 감정을 느끼며 말을 걸었다.
“꼭 피를 봐야겠나, 소년?”
점차 싸늘해지는 회귀자의 안색을 보고 불사자가 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 오해하지 말길! 당연히 내 피를 말하는 거니!”
“너야말로. 자기 피를 보면서까지 중령을 지킬 이유가 있어?”
“당연하지. 그녀는 내 친구 아닌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선언하는 불사자. 회귀자는 귀찮은 듯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생색내는 것 같아서 안 하고 있었는데, 이대로 가다간 귀찮아질 것 같으니 말할게. 너를 되살린 건 중령이 아니야. 나지. 저주에 걸려서 골골거리는 오른팔을, 세계수 잎을 쓴 회복약에 처넣어서 재생시켰어. 중령이 너를 구한 것처럼 보이는 건 완벽한 우연….”
“하하! 안다! 오른팔이 내게 말해주었지! 그 일은 정말 고맙네, 소년!”
“…그러면, 왜?”
불사자가 시원하게 말했다.
“어쨌건. 그녀는 나를 도울 생각으로 왔고, 그럴 능력도 있었으니까! 내 오른팔이 때를 맞추어 오지 않았더라도 중령은 나를 도왔겠지! 그럼 뭐, 친구 아니겠나!”
“하아. 그래. 알았어.”
깊게 한숨을 내쉰 회귀자는 천앵을 들고 멈추었던 걸음을 이어갔다. 불사자가 오른발을 뒤로 쭉 뻗으며 호기롭게 외쳤다.
“물론, 나는 소년도 은인이라 생각하고 있네! 적대할 생각은 없어! 아! 질 것 같으니 미리 깔아두는 건 아니야!”
“쳇, 하필 불사자라 죽이지도 못하고…. 날려버리고 가는 편이 낫겠네. 후.”
“못 막을지는 모르나, 쉽게 보내주지는 않겠다!”
회귀자가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며, 불사자는 괴성을 내지르고는 회귀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칼날이 그의 몸을 헤집는 시간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뒤로 물러날수록 더 오래 유린당할 테니까. 이는 돌진하는 중갑기마대에게 마주 달려드는 경보병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어쨌건, 불사자는 그들과 비슷한 꼴이 되었다. 폭력적인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불사자의 강건한 육체가 한순간에 와해하였다.
물리적인 의미로.
*****
‘탈출, 탈출해야 해.’
시조는 인간에게 무심하고, 위험인물은 현재 별다른 문제 없이 노역자와 잘 지내고 있으며, 불사자는 사지가 찢긴 채고, 목표인 개의 왕은 인간에게 호의적이다.
그렇기에 칼리스 중령은 이 임무가 생각보다 쉬울 거라 판단했다. 사람에게 무심한 이들만 가득한 무저갱에 들어가서, 개의 왕만 확보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무언가 극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은 한, 칼리스 역시도 안전할 것이다.
노역자가 지금까지 뻔뻔하게 살아있는 것이 그 증거다, 라고. 가장 끔찍한 착각을 해버렸다.
‘아니었어. 개의 왕을 건드린 순간, 이들은 전부 반응했다.’
노역자는 칼리스가 개의 왕에게 접근한 순간 그것을 방해했다.
시조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보호하고, 그를 위해서는 나라를 적대하는 것도 감수하려 했다.
그들 몰래 개의 왕에게 다가가고 ‘사슬’을 목에 걸자, 위험인물이 눈이 돌아가서 직접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적이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에게 있어 엄청난 비보인 셈이다. 주인 잃은 물건을 주워오겠다는 정도의 감각으로 입안한 작전인데, 그것이 사실 지옥에 걸어 들어가 명계의 왕의 보물을 훔쳐오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였으니.
‘정이 든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방해하려고? 어찌 되었든, 알려야 해. 작전을 취소해야 한다고. 그리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살아남기 위해 탈출하겠다고.
도중 포기는 용납되지 않지만, 그들도 설마 이 지옥의 틈바구니에서 칼리스가 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을 터다.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는 후일을 도모하는 게 나을 터.
칼리스는 4층에 도착했다. 숨이 가빴다. 군국의 군인이 고작 계단을 뛰어오른 정도로 숨이 차지는 않으나, 조금 전 죽음을 간접 경험했던 육신은 격한 호흡을 통해 필사적으로 생의 증거를 갈구하고 있었다.
얼굴에 붉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었다. 그제야 칼리스는 언제나 머리를 누르고 있던 모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히 불안해졌지만, 그래도 목이 붙어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칼리스는 혁대의 숨겨진 부분을 열어 꾸러미를 꺼냈다.
‘연락용.’
군국의 싱크로 타입 마도골렘은 세기의 발명품이지만, 특별한 고유마도를 갖지 않으면 공명할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선 통신시설을 이용하거나 보다 원초적인 방법으로 회귀해야 한다.
지금 칼리스가 들고 있는, 보석이 네 개 달린 브로치같은.
‘하나를 깨뜨리면 안전, 둘을 깨뜨리면 주의. 셋은 위험…. 그리고 넷을 전부 깨뜨리면, 존재하는 모두가 완벽한 적성존재라는 뜻.’
특수한 연금술을 통해 만들어낸 쌍둥이 보석은, 한쪽이 깨지면 다른 쪽도 깨지게끔 만들어져 있다.
일회용에 미리 신호를 정해두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단점이 있으나, 비밀결사인 만물의 영장은 그 특성을 십분 활용하고는 했다.
‘시조까지 우리를 적대한다고 봐야 한다. 부수어야 할 보석은 넷.’
칼리스는 브로치에 매달린 핀을 잡아당겼다. 본래 뾰족해야 할 핀 끝에는 특이하게도 묵직한 쇠구슬이 달려있었다. 그것을 한껏 당겼다가 놓자, 쇠구슬이 튕겨지며 붉은 보석을 강타했다.
쨍그랑, 보석 깨지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탈출하기 전, 보석을 꼭 깨뜨리라고 했다. 그래야 위쪽에서도 탈출 경로를 준비할 수 있다면서.’
하나, 둘, 셋, 넷. 보석 부서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모든 보석을 부수어 연락을 끝마친 칼리스는, 마지막 남은 탈출용 꾸러미를 꺼냈다. 탈출용 꾸러미는 다른 꾸러미보다도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 긴장해서 연달아 손을 미끄러뜨리면서도 칼리스는 연달아 매듭을 손톱으로 긁었다.
그때였다.
『충성. 칼리스 중령님. 통신병 에이비 대위입니다.』
식당에서 자그마한 골렘이 걸어나왔다. 통신병의 싱크로 타입 마도골렘이었다.
낯선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칼리스였으나, 이내 정체를 알아 본 그녀의 안색이 밝아졌다.
“대위!”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행적을 숨기기 위해서는 통신병을 멀리해야 했다. 그런 지시도 받았고.
하지만 탈출하려는 입장에서는 통신병이라도 귀중한 아군이다. 바깥 상황을 중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아군인 것이다.
“마침 잘 왔다. 본관은 탄탈로스 내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이곳의 교육생들은 아직 재사회화되기에는 너무 난폭하군. 그러니 대위, 나를 도와….”
그러나 골렘이 전한 말은, 칼리스의 말을 틀어막았다.
『…군 당국은 칼리스 중령님에 대한 일시적인 권한 정지에 승인하였습니다.』
“뭐?”
어찌나 놀랐는지,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탈출용 꾸러미를 푸는 손이 잠깐 멈추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통신병의 말은 고저가 없이 무미건조했다.
『착오로 탄탈로스에 진입하였다고 하나, 그 역시 실책입니다. 군 당국은 그 실책에 대해 징계 처분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징계라는 말. 그것에 칼리스는 죽을 위기 속에서도 색다른 충격을 안겨주었다.
군국의 심사는 엄격하다. 4레벨이 되기 위해서는 결격 사유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실책이 없는 것, 그것은 공훈을 세우는 것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징계라니. 칼리스는 항변했다.
“무슨, 무슨 말이지? 명령서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받은 명령서에는 보급 과정을 감독하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하나, 무저갱은 5레벨 보안시설입니다. 명령에 따랐다고는 하여도 아무런 확인 없이 탄탈로스에 진입한 것에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명하겠다. 그 부분은 해명할 수 있다.”
칼리스가 다급히 말했으나, 골렘에게서 전해지는 대답은 무정할 정도로 딱딱하기만 했다.
『본관은 내용을 전달할 뿐, 결정 과정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습니다. 해명은 후일 도착할 조사단에 하시기를 권장합니다. 그럼.』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골렘은 짧게 경례하고는 식당으로 돌아갔다. 칼리스의 몸에 힘이 풀렸다.
어떻게, 왜 목숨을 걸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칼리스를 이곳으로 이끈 꿈이 한낱 꿈으로 사라지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야. 탈출하기만 하면 돼.’
만물의 영장은 군국 곳곳에 뻗어있다. 군부부터 행정부까지 온갖 곳에 뿌리내린 그들이니, 돌아가기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여 줄 터. 탈출만 하면 된다.
칼리스는 이를 악물고는 단단히 묶인 매듭을 풀어냈다.
마침 골머리를 썩이던 매듭도 풀렸다. 칼리스는 급히 꾸러미를 헤치고 그 안에 담긴 것을 보았다.
네모낳고 딱딱한 몸체 위, 기하학적인 도형이 그려진 패킷이었다.
‘장비 패킷!’
단검이나 방패처럼 간단한 구조의 장비를 만들어내는 연금술 무기, 장비 패킷.
이 패킷이 탈출의 방법일 것이다. 칼리스는 즉시 생체 단말을 열고 패킷을 꽂았다. 그녀의 전신을 두른 아키 아바타를 타고 흐르던 패킷이 어깨 언저리에서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다른 전언은 없나?’
칼리스가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해 꾸러미 안쪽을 들여다 볼 때였다.
거꾸로 돋아난 칼날이 그녀의 목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