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저희 쪽으로 들어오는 제보가 많고 촬영이 계속 있다 보니 저희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차세진 의원님한테 얘기 듣고 알게 돼서, 제가 이전에 보내신 편지까지 전부 다 읽어 보고 왔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뭐라고요. 그, 저, 사실 편지 보내면서도 굉장히 후회가 많이 되고 그래서…….”
황급히 손을 휘적거린 주경이 말끝을 흐렸다. 재희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제가 여기까지 온 건 편지에 쓰신 내용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이 맞다면, 저희 팀이 최선을 다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할 겁니다.”
재희의 말에 주경의 눈이 조금 커졌다. 재희는 말을 덧붙였다.
“다만 그게 물론 모든 내용을 확신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저는 팩트를 확인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말씀하신 것 중 사실이 아니거나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이 전체 증언의 진실성까지 불신하게 만든다면 제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드릴 수 없다는 것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죠?”
주경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조금 앞으로 내민 재희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써야겠네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서온건설에 로비한 기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 정확히 기억하십니까?”
주경이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러니까, 14년, 15년쯤 됐네요. 처음에는 하청 입찰하는 데마다 따라다니면서 담당 직원들을 접대했습니다. 작은 공사부터 시작해서 2년 정도 입찰 담당, 현장 본사 직원들 접대하다 보니까 당시 과장, 부장, 이런 사람들이 중간에 승진하면서 접대 급도 올라갔습니다. 한정식집에서 식사 대접하고 십만 원, 이십만 원 주던 게 일식집, 룸살롱, 이런 데로 가면서 백 단위, 천 단위로 돈이 뛰었죠.”
“하청 규모도 따라서 올라갔고요?”
재희가 다이어리에 답변 내용을 메모하며 묻자 주경이 그 질문을 수긍했다.
“네, 그렇죠. 저도 이게, 이런 얘기를 하기가 참 부끄럽고…… 제가 뭐가 잘났다고 억울하다고 편지를 써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셔도 할 말 없다는 거 압니다. 그런데 일단 제 입장에서 변명하자면 제가 회사 사장이니까, 책임져야 할 직원들이 있으니까 그게 떳떳하지가 못해도 일단 회사를 굴리는 게 우선이었죠. 건설 하청업체가, 아실지 모르겠지만 본사에서 돈을 제때 안 주는 경우가 굉장히 자주 있습니다.”
“주경공사만의 문제는 아니었겠네요.”
“아주 그,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서온건설은 문제가 뭐냐 하면 계속 미루다가 다음 공사를 할 때가 돼야 그 이전 공사 대금을 주고, 이런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하청을 따지 못하면 자금 융통에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회사 일 따서 메꾸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아랫돌을 빼어 윗돌을 괴는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이야기였다. 더구나 주경의 문제는 로비 금액이 커지며 하청 규모도 따라서 늘어났다는 데 있었다. 규모가 늘어날수록 대금이 밀릴 때마다 문제도 점점 커지는 건 당연했다.
“철저하게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가는 거군요.”
한숨 섞인 투로 수긍하는 재희를 향해 주경이 쓴웃음을 지었다.
“을, 뭐 저희끼리는 우리는 을도 아니고 병, 정이다,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특히 자재 관련으로도 문제가 많은데, 단속이 나오거나 특위 조사가 나오거나 해서 걸리면 무조건 하청업체 잘못으로 다 뒤집어씌우니까요. 본사에서 사용하는 자재에 저희가 간섭할 수 없는 입장 아닙니까. 문서에 기록된 것하고 다른 자재가 들어오는데 이상하다고 문제 제기를 하면 일단 공사를 해라, 이런 식이니까. 그걸 다 알면서도 해야 하는 겁니다.”
메모를 하던 재희는 그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애초에 규형이 회사의 눈 밖에 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현장에서 자재를 속여 쓰는 것과 관련된 문제라고 했기에, 지금 주경의 말은 중요한 증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경우 감리에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감리도 한패니까요. 서온건설하고 거의 같이 일하는 데가 고원종합기술공사, 여기 최대 주주가 채기원이라는 사람인데 이게 남제선 사장 처가 쪽 친척이라고 제가 그렇게 듣긴 했습니다.”
감리업체가 서온건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속일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뜻이었다. 재희는 재차 물음을 던졌다.
“원청업체인 서온건설이 자재 전량을 공급했다는 겁니까? 하청에서 직접 자재 납품받아 진행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요?”
“네. 전량, 전량까지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것보다는 훨씬 높은 비율로 그랬죠. 문서상 원래 사용하기로 한 자재 가격이 저희가 떼올 수 있는 것보다 높아서 본사에 저희가 다른 루트로 자재를 저렴하게 구해 보겠다, 이렇게 얘기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나중에 보니 문서하고 실제 자재가 차이가 나니까, 거기서 차액을 남기니까 안 됐던 겁니다.”
“다른 하청업체들도 사정이 마찬가지였습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 뭐 청명토목, 금목건설, 노경건설, 당원기술공사, 훨씬 더 많은데 생각이 잘 안 나네요. 저희하고 비슷한 시기에 같이 일한 하청업체들인데 대부분 다 같은 문제가 있었죠. 자재 질을 낮추니까 시공 방법을 변경해야 할 때도 있었고, 그런 부분도 대부분 다 이중으로 문서를 작성해서 진행하는데 걸리면 그것도 우리 책임이고.”
재희는 서둘러 주경의 말을 받아 적었다. 그렇다면 하청업체 관련자들 중 서온건설 게이트 당시 현장에서의 문제를 고발하려던 사람이 최소한 한두 사람 정도는 분명히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경이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그래도 일단 대금만 들어오면 되는 거니까, 제 입장에서는 이걸 어떻게 끊을 수가 없는 거죠. 국회의원, 정부 공무원들, 일이 여기까지 가 버리니까…….”
“접대한 사람들 명단은 전부 기억하십니까?”
재희의 물음에 주경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네. 장부 기록을 했죠. 제가 그, 접대를 하면서, 그게 처음에는 제 사비로 거의 충당을 했지만 나중에 금액이 커지면서는 회사 공금까지 끌어다 써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됐었습니다. 특히 그 한교신도시 편의시설 조성 공사할 때는 거기 시장부터 지역구 의원, 뭐 이렇게 해서 한선당하고 엮인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때 제가 접대하면서 현물, 현금, 상당히 넣었죠.”
“장부를 쓰셨다고요?”
“네. 당시에도 거기 지역구 의원이 민병수 의원, 그랬는데 거기 의원실에서 정치후원금을 넣어라 하니까…… 한꺼번에 많이 넣으면 의심을 받으니까, 인당 5백씩 넣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당시에 친척 명의, 저희 회사 간부들 명의까지 빌려서 20명으로 1억 맞춰서 넣고 그랬죠. 거기만 그런 게 아니라 의원실 여러 곳에 넣으니까, 그러니까 장부를 안 쓸 수 없는 겁니다. 아마 저 말고도 다른 하청 사장들도 비슷했을 거예요.”
“그 장부는 어디 있습니까? 왜 공개를 안 하셨죠?”
재희는 눈썹을 좁히며 물었다. 주경의 말이 사실이라면 장부는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였다. 접대 기록이 모두 남아 있다면 그것을 근거로 자금을 추적할 수 있을 텐데, 왜 공개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재희의 말을 들은 주경이 미간을 문질렀다.
“공개를 안 한 게 아니라 못 했습니다. 제가 당시에 변호사 측에 장부를 제공했어요. 그런데 변호사가 얘기하기를 이게 제가 고정민을 자의로 살해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안 된다는 겁니다. 뇌물 줬고, 받은 사람 있고, 그런데 그렇다고 그게 제가 고정민을 안 죽였습니다, 이게 증명이 안 된다는 거죠.”
“장부는 돌려받으셨습니까?”
주경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우리 큰딸이 법대생이에요. 무조건 항소해야 된다, 자기가 선배들한테 연락 다 돌려서 변호사 새로 구하겠다 하고 난리가 났었단 말입니다. 선배들한테 물어봤는데 말이 안 된다고 했다고, 제가 그런 문자 보내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면 그 뭐, 요새 기술 좋으니까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고 그랬답니다. 옆에 다른 사람 있었던 것도 CCTV 찾으면 알 수 있을 거다 했고.”
“그런데 안 됐다는 겁니까?”
“네. 고속도로 CCTV에 다른 사람이 탄 영상이 없다고 하고, 번호도 컴퓨터로 보낸 건데 제가 안 보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판결 받고 나서 항소하고 싶다고 얘기하니까 변호사가 장부 가지고 끝까지 간다, 그러면 가족들도 다 죽자는 거다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차라리 저를 죽인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가족 얘기를 하니까, 제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주경의 말이 조금씩 빨라졌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당시 생각이 났는지 목이 메는 모양이었다. 두어 번 마른기침을 뱉은 주경이 그새 붉어진 눈가를 손등으로 비볐다.
잠시 그를 응시하던 재희는 다시 다이어리로 시선을 돌렸다.
“고정민 씨 얘기를 좀 해 보죠. 법정에서는 만난 적도 없다고 증언하셨다던데 편지를 보니까 실제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네. 제가 그…… 그, 사고, 사고를 내기 전에 만났던 겁니다. 그렇게 둘이서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주경은 말을 두 번 더듬었다. 사고, 라고 발음할 때 주경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그에게 상당한 고통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변호사가 그렇게 증언하라고 시켰다는 건 사실입니까? 이유가 뭐였죠?”
“둘이 그 전에 만났다는 증거가 있냐, 저는 없다고 했죠. 기억이 안 나는 겁니다. 누가 사진을 찍었거나, 뭐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전혀 안 했으니까. 그러니까 변호사는 무조건 부인하라고 그랬던 겁니다. 전에 만났다고 하면 불리해진다고.”
“고정민 씨를 왜 만나셨던 겁니까?”
핏기 없는 얼굴로 마른침을 삼킨 주경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죠. 본사 회계 과장이다, 그러니까 저는 좀 놀랐습니다. 회계 과장한테 직접 연락이 올 일이 없으니까. 당시에 뭐 과장급, 그런 건 이제 제가 접대를 안 했단 말입니다. 간부급하고 대면을 하던 상황이니까. 그런데 어디서 만나자, 날짜하고 시간까지 다 지정을 해서 저한테 문자가 온 거죠. 어쨌든 본사 직원이니까 제가 거절하기가 뭐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나갔더니 거기서 고정민이 얘기를 한 겁니다. 자기가 뇌물 전달책이다.”
“리스트를 관리하니 어디서 주는지를 다 알고 있었던 거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