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정언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묻자 재희가 팔짱을 끼었다.
“민 의원님이 소 제기할 때 새집증후군이라는 말 자체를 안 썼어. 동일한 증상이 그렇게 대규모로 나타난다는 건 확실하게 건축물에 어떤 문제가 있다, 여기 초점을 둔 거야.”
“그래요? 그런데 유사 판례가 있으면 이길 가능성도 높을 텐데, 왜 민 의원님하고 저 건 이후로는 서온건설 대상으로 승소를 못 했지? 얘들도 에코프리미엄 아니면 자재나 환기 장치 핑계는 안 통할 거 아니에요.”
“음, 체크해 봤는데 민 의원님 케이스만큼 원고가 많았던 경우가 없어. 소수 사례 가지고는 기업 상대로 원인이 건축물에 확실히 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힘들잖아. 그리고 2004년 새집증후군 판례20) 보면 원래 원고가 천만 원 지급하라고 분쟁조정 신청했거든. 그런데 당시에 원고 측에서 새 가구를 구입한 사실이 있었단 말이야. 원인이 거기에도 있다고 봐서 법원이 일부만 책임 인정한 거지. 이게 문제야. 새집 입주할 때 새 가구 하나도 안 사고 들어가는 사람 있겠어? 그러니까 온전히 집 때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힘들지.”
듣고 있던 민혜가 어렵다, 하고 펜 끝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얼굴을 찌푸렸다. 재희는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원 기자가 오전에 장원지구 직접 가서 글 올린 사람들 만나 봤대. 여섯 명, 일곱 명 정도. 회사에 직접 문의한 건 세 명인데 답변이 다 똑같이 왔다 하더라고. 어쩔 수 없다 그거지.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미 입주 전에 베이크 아웃(bake out)21) 다 했고, 한 집은 가구에 따로 무슨 약품 처리하는 서비스까지 받았어. 거기는 애가 세 살인데 선천적으로 호흡기 질환이 있고, 아토피가 심해서 아주 민감하다는 거야. 그래서 일부러 에코프리미엄 입주했고. 회사 대응이 미온적이라 법률 상담도 받아 봤는데 개인으로는 이기기 어렵다고 집단 소송 권유했다네.”
“그러면 우리 쪽에서 환경시민단체 전문가 섭외해서 먼저 문제 발생한 집 체크하면 어떨까요? 개별 조사 먼저 진행하면 일단 사측에서는 모를 테니까.”
윤이 끼어들자 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도 그편이 나은 것 같아. 일단 우리하고 취재 진행했던 단체 중에 제일 빨리 진행 가능한 곳에 연락 넣어 보려고. 우선 이미 완공된 단지에 문제가 있다는 게 증명되면 지금 건설 중인 곳도 타격이 갈 수밖에 없으니까, 분양자들이 가만히 안 있을 거거든. 민주영 의원실에도 도움 요청하면 어떨까 싶어.”
“그러면 그건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하고, 신병민 씨 인터뷰 녹취하고 문서는 확인해 봤어요?”
정언이 묻는 말에 민혜가 목을 뽑아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오전에 녹취록 정리하고 문서 가져온 거 강 피디랑 봤어. 증언하고 문서 기록 대부분이 일치하더라고. 장부 일부 확인해 보니까 문서상 자재하고 실제 자재 가격을 맞춰 놨어. 차액은 이중장부 기록하면서 일정 비율로 원청하고 하청이 나눠 가진 것 같고.”
“그럼 이거 공개되면 하청 타격도 불가피하겠네요.”
“그건 어쩔 수 없어. 하청이 아무리 을이라도 불법 저지른 건 마찬가지니까. 만약에 검찰 조사 들어간다면 하청에서는 그냥 가진 거 다 털고 네고 시도하는 게 베스트지. 우리 입장에서도 그렇고.”
단호하게 말한 민혜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신병민 씨가 가져온 게 현장 네 군데, 그 중에 임대주택 건이 세 개. 전 부장님한테 넘겼는데 그 팀에서 해당 현장 자재 문제 직접 확인하겠대. 그쪽이 아무래도 전에 한 게 있어서 정보원 풀이 있는 것 같더라고. 우리 쪽에서도 그러면 시간 절약되니 좋지.”
“오케이. 허 사장 공판 기록 검토하기로 한 건?”
“일단 그것도 아까 체크하고, 최변이 상생변 소속 국선 출신 연결해 주기로 했어. 그쪽하고 다시 한 번 검토하려고. 그런데 공윤승 변론 자체가 우리 눈으로 봐도 너무 허술해. 피고를 변호할 의지가 거의 없다고 해야 되나? 속기록 전부 읽어 봤는데,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공윤승은 허 사장이 처음부터 살인할 의도가 있었다, 이걸 전제로 하더라고. 피고인이 사주가 있었다, 시키는 대로 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변호인이 자기는 그런 사실을 들은 적이 없대. 이런 거 본 적 있어?”
민혜가 어이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정언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미간을 좁혔다.
“의뢰인이 변호인한테 내용 다 말하지 않는 경우 있긴 한데, 이건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천중헌이 공윤승을 허 사장한테 붙여 준 거고, 허 사장 입장에서는 진짜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안 될 상황이었는데 그걸 숨길 리가 있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나, 이게?”
“속기록 보면 허 사장이 공윤승한테 항의를 하거든. 공윤승은 끝까지 그런 적이 없다고 하고. 이것 때문에 중간에 휴정을 두 번 했더라고. 휴정한 뒤에는 허 사장이 자기 실수 인정했고.”
정언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회유한 거네, 그럼. 이건 허주경 사장이 너무 나이브했던 거 아니에요? 상황이 이렇게 됐으면 변호사가 자기 편 아니라는 거 알았어야 하지 않나?”
“그치, 그런 부분이 없진 않지. 근데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잖아. 사람 죽이고 멘탈은 완전히 나갔지, 멀쩡하게 있는 사주범을 없다고 하지, 딸 가지고 협박하지. 어떤 식으로 회유했는지는 몰라도 제정신 아닌 사람 설득하는 게 어렵진 않았을 거 같아. 그러니까 딸이 납득을 못 해서 자료 따로 사본 만들었을 테고.”
돌겠네, 하고 중얼거린 정언이 얼굴을 문질렀다. 듣고 있던 재희가 소파에 등을 묻으며 내뱉었다.
“그래서 평진에 공문 넣었어. 인터뷰 응하시라고. 아니면 우리가 취재한 내용 일방적으로 보도할 수밖에 없다고. 지금 머리 엄청 쥐어짜고 있을걸.”
대화 내용을 부지런히 메모하던 윤은 펜을 멈추며 재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만약에 공윤승 쪽에서 인터뷰 응한다면 서온하고 말 맞췄다는 얘기겠죠?”
“그렇지. 지난번에 취재 거절한 것도 대응책 논의할 시간 벌려고 그런 걸 테니까. 공판 기록 다시 확인하니까 김정면 판사 포함해서 담당 판검사 자체를 신환석 라인으로 채워 놨더라고. 고속도로 왕복했는데 검찰 측에서 범행 이후 CCTV만 제출한 것도 이상하고. 범행 전 CCTV도 확인했으면 조수석에 동승자 있는 거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란 말이야.”
“범행 이후라는 게 정확히 시점이 언제죠? 허주경 사장 증언에서 조창식을 용인휴게소에 내려 줬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휴게소 도착하기 전이나 휴게소 진입 시 CCTV에서 조창식이 확인 안 된 겁니까?”
“검찰 측 주장으로는 동승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화면은 그게 유일하다는데, 글쎄. 그리고 CCTV 화질이 상당히 떨어지고 많이 어두워. 우리 영상팀에서 잠깐 확인했는데 조작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고. 정확한 건 전문가한테 분석 맡겨 봐야 알겠지.”
대답한 재희가 기지개를 쭉 켜더니 어깨를 두드렸다.
“이런 부수적인 증거들은 일단 우리가 하나하나 찾아 가면 되는데, 문제는 계좌 추적이야.”
“검찰에서 추적한 계좌 내역을 사용할 방법은 없나요?”
윤이 묻자 재희가 한쪽 눈썹을 약간 찡그리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우리가 지금 그 목록을 안 갖고 있고, 뭐 그거야 어디서든 구하면 되긴 하지. 그런데 그게 터진 게 벌써 몇 년 전 일이야. 계좌 정리 한 번 했을 거라고. 특히 엄대진. 엄대진이 진송신도시 부지 선정 때부터도 그렇고, 분명히 차명 재산이 상당히 될 텐데 이게 추적이 안 된다는 건 어디서 싹 세탁을 했다는 얘기거든.”
“대포통장이나 페이퍼컴퍼니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거죠?”
“응. 지금 CCTV 상에서 박규형 씨 통해 돈 받아간 한선당 의원들이나 그 주변인들 계좌 추적하는 것 자체는 솔직히 어렵지는 않아. 엄대진계 애들 봐봐, 엄청 안일한 거. 한 번 뒤집어 놓은 거 두 번은 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런 애들은 국세청 통해서만 털어 봐도 바로 끝장나. 그런데 머리인 엄대진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를 세탁했느냐, 이걸 얘들도 정확히 모를 거야. 엄대진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위인은 아니니까.”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산 넘어 산이라더니 팔수록 더 막막한 기분이었다. 윤은 펜 뚜껑 끝으로 아랫입술을 꾹 누르며 나오려는 한숨을 참았다. 다른 셋도 모두 같은 기분인 듯,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새 무너지기 시작한 휘핑크림 위를 휘적거리던 민혜가 윤에게 물었다.
“김 피디, 아까 고원종합기술공사 연락해 봤다고 하지 않았어요? 거기서 뭐래요?”
“오전 촬영 끝나고 다시 걸었는데, 이종규 팀장이 출장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다른 분하고라도 얘기하고 싶다고 책임자 바꿔 달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우인범 부장이라는 사람이 받더니 취재 관련된 건 상부 허락이 있어야 된다면서 연락 주겠다고 하던데요.”
“촬영 전에 걸었을 때도 팀장 출장이란 얘기 있었어요?”
“없었죠.”
윤의 대답에 민혜가 양어깨를 감싸 안으며 진저리를 쳤다.
“아우, 난 그런 애들 너무 싫더라. 사람이 뻥을 치려면 앞뒤를 치밀하게! 이렇게 딱! 준비를 잘 해가지고! 우리가 의심을 안 하게 말을 맞춰야 할 거 아냐!”
“큰일 날 소리 하네. 다 그렇게 치밀하면 우리가 방송을 어떻게 해. 사람이 뭐든 일장일단이 있다고. 그렇게 허술하니까 매번 낚는 재미가 있잖아, 또.”
농담인지 진담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 얼굴로 대꾸한 재희가 자기 시계를 확인했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아 둔 정언의 핸드폰이 전화 화면을 띄우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재빨리 핸드폰을 집어 든 정언이 전화를 받았다.
“네, 서정언입니다. 네. 아, 그래요? 네, 네.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됐네요. 아, 네. 저희가 지금 가서 확인할 수 있는 거죠? 알겠습니다.”
짧은 통화를 마친 정언이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
“노이섭 팀장님인데, 조창식 집에서 발견된 핸드폰 디지털 포렌식 결과 나왔다는데요. 삭제된 기록 거의 다 복원한 거 같아요.”
“어머, 뭐 중요한 거 있으려나?”
민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거 같은데요.”
“빨리 가 봐. 뭐 중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 주고.”
네, 하고 대답한 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정언이 컵을 내려놓고는 몸을 일으켰다. 계단을 내려와 카페를 나서자 정언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윤은 곁에서 정언에게 물었다.
“뭐가 복원됐는지 나왔어요?”
20) 2004년 새집증후군 판례 : 한국에서 최초로 새집증후군에 대해 시공사의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은 2004년이다. 경기도 용인의 신축아파트 입주자가 새집증후군으로 인해 7개월 된 영아의 피부염이 유발되었다며 분쟁조정을 신청하였고, 이 건에 대해 법원은 시공사의 일부 책임을 인정하여 피해배상 요청액 1,000만 원 가운데 일부인 303만 원을 시공자 측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새집증후군’ 첫 배상 받는다] 건설사 측, 조정委결정 수용키로」, 『한국경제』, 2004.8.17.)
21) 베이크 아웃(bake out) : 새로 지은 건축물이나 개보수 작업을 마친 건물에서 보일러 가동 등으로 실내 공기온도를 높임으로써 건축 자재나 마감 재료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을 제거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