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나한테 말하기로는 그러더라고. 이규완 하는 소리가 솔직히 민주영 의원이 파급력이 없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지. 그 뭐 돌려서 말한 건데 눈치 딱 깠잖아. 민주영이하고 붙으면 자기가 할 만하다 그거야. 내가 그래서 아니, 그러면 지금 나보고 해당 행위 하라는 거냐. 이 의원이 그거 나한테 주고 내가 그거 가지고 엄대진 까 봐야 이 의원하고 한선당만 좋지 우리 당에 좋은 게 뭐가 있냐 그러니까 아이, 아니래. 내가 되면 또 황 의원 섭섭하게 하나, 이래.”
“아이고, 이규완 그거 지랄을 아주 풀 컬러 HD로 하고 있네. 안 섭섭하게 하면 뭐, 황 의원 탈당하고 한선당 오라는 거야 뭐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어. 행여나 혹한 거 아니지? 아주 혹했다가는 봐. 내가 아주 가루가 나게 까 줄 줄 알아. 황 의원 나 조심해야 되는 거 알지?”
정색을 하는 한동의 얼굴에 형두가 배를 잡고 웃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랬다가는 내가 먼저 돌 맞아 죽어. 아니, 그리고 내가 뭐 또 그렇게 가루가 될 정도로 잘못 살았다고 그래. 나 그런 거 없는 거 알잖아. 아무튼 이규완 아주 자신만만하니까, 뭐가 있긴 있나 보다 싶더라고.”
“그렇게까지 말하는 거 보면 그냥 작은 건이 아니긴 한가 보네.”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 한동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그래서, 황 의원 생각엔 솔직히 어떨 거 같아? 민 의원 가능성 있다고 봐?”
“야당 후보 통합해서 양자 대결 간다면 엄대진하고 해볼 만하지. 일단 이미지가 좋으니까. 사람이 깨끗하다고. 청와대에서 그렇게 털어도 안 털린 거 봐. 잘못 산 사람은 아니거든. 당내에서도 뭐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그러긴 하는데 일단 초재선 젊은 의원들하고 당원들 지지가 압도적이야. 그리고 경선 들어가면 어차피 대항마가 없으니까.”
“아이 씨, 원론적인 얘기 하지 말고. 누가 그런 거 몰라서 물어? 될 거 같냐, 안 될 거 같냐 그거 묻는 거 아냐.”
“대통령은 하늘에서 낸다는데 내가 어떻게 된다 안 된다 얘기를 해. 투표함 까기 직전까지 모르는 게 선거라는데 그거 알면 점쟁이 하지 국회의원 하겠어? 대한민국에서 아직 색깔론 견고하고…….”
형두가 말끝을 흐렸다. 팔짱을 끼며 미간을 찡긋거리던 한동이 에이, 하고 투덜거리며 자기 잔을 채워 한 잔을 더 마셨다. 젓가락으로 편육 한 점을 집어 먹은 한동은 코끝을 긁었다.
“아래서는 개기고 위에서는 쪼아 대고 아주 죽을 맛이다, 죽을 맛이야. 예전에 사장님이 요새 전 부장 나태해, 특종 막 물어오고 그럴 때 총기 다 어디 갔어, 하고 까면 속으로 내가 어휴,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돈 주니까 참는다, 이럴 때가 차라리 좋았다고.”
듣고 있던 재희는 그 말에 웃는 소리를 냈다. 한동이 젓가락 끝으로 재희를 가리키며 뭘 웃어 인마, 하고 내뱉었다.
“이건 씨발, 뭐 시사고 보도고 좆도 모르는 새끼들이 이사 명패 달고 앉아서는 무조건 VIP 심기 타령을 하면서 입을 막으려고 지랄들이야. 이럴 때일수록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하니까 새파란 놈들이 기자랍시고 정치인 그거 뭐 다 똑같은 거 아닙니까? 누가 되면 좀 낫습니까? 시청자들 멍청한 거 모르십니까? 이러고 따박따박 대들어요. 이런 개 같은 새끼들, 다 똑같으면 똑같이 까든가. 지도 모가지 날아갈까 봐 청와대, 여당, 엄대진에 안 좋은 소리는 요만큼도 안 하려고 하는 새끼들이 시청자들만 멍청하다고 그래.”
“그래도 아직 그런 건 데스크에서 걸러 낼 수 있는 수준 아냐?”
형두의 물음에 한동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정수창 잘리고 위에서 김양운 앉혔는데 김양운 이 새끼가 입으로는 중립, 중립 그러면서 어용 성향이야. 우리 입장에서는 차라리 대놓고 어용인 놈보다는 조금 낫긴 하지. 김양운은 짬이 안 되잖아. 부장들이 회의에서 밀어붙이면 내키진 않아 해도 지가 뭘 어떡해. 우리가 선배인데. 그런데 위에서 정치부 1팀 싹 밀어 버린 것처럼 우리 싹 밀고 중립 외치는 어용 기자들 앉히면 논조 바꾸는 건 순식간 아냐. 손바닥 위에서 노는 기분 아주 더럽다니까. 아니, 오늘따라 술은 또 왜 이렇게 써.”
한동이 마지막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다시 잔을 채웠다. 재희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엄대진은 대포통장 계좌를 어떻게 수백 개씩 확보한 겁니까? 요즘 시세는 개당 칠팔십 정도 한다고 들었는데, 뭐 큰돈은 아니지만 그렇게 대량으로 계좌 구매하면 티가 날 텐데요.”
형두가 겉절이를 으적거리며 대답했다.
“대포통장 거래하는 브로커도 있다던데 그런 식으로 거래하는 건 아닌 거 같더라고. 나중에 혹시 브로커 통해 들통 날까 봐 조심하는 모양이야. 어떻게 계좌 확보하는가, 그건 우리 쪽에서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대포통장 돌려가면서 페이퍼컴퍼니로 현금 입금하고, 시간 지나면 싹 해지해서 스위스 계좌로 넣고 이런 식인 것 같긴 한데.”
“2012년에 조세조약 개정하면서 국세청에서 스위스 은행 계좌도 조회 가능하잖아요. 스위스로 거액 입금하는 계좌 털어 보는 거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게 불가능합니까?”
“음, 그래서 문계준 의원이 국세청 내사 자료 조사하는 중이긴 해요. 계좌번호 확보해야 스위스 계좌 추적할 수 있으니까. 우리 입장에서도 지금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민 의원이 네거티브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이긴 한데, 발등에 불 떨어지면 네거티브가 아니라 네거티브 할아버지라도 해야지 뭐 어떡해.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 못 산다는데 사람이 딱 그 짝이라 답답해 죽겠어.”
“그렇다고 다 같이 하수구에 처박히자고 할 수 있습니까? 물은 맑을수록 좋다고 봅니다.”
재희의 말에 형두가 고개를 짐짓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이거 뭐 왜 이렇게 산천어 같은 인간들이 많아?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정치한다고 나오고 방송한다고 이러는지 몰라. 산천어 되면 흙탕물에 몸 담그고 첨벙거리다 죽어요, 이 사람들아.”
“산천어가 아무 데서나 살 수 있어야 정상적인 나라 아닙니까. 다 같이 미꾸라지 되는 것보다는 낫죠. 문계준 의원님이 자료 입수하실 가능성은 있는 겁니까?”
재희가 웃으며 대꾸하자, 잔을 비운 형두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문 의원이야 뭐 그거 전문이니까 자료 입수는 껌이지. 그런데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이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게 뭐, 그걸로 뭐 증명할 수 있는데. 이게 걱정되는 거지.”
“아무리 작은 증거라도 반드시 뭔가 증명합니다. 그거 잡는 게 저희 일이고요.”
“어우, 강 피디 뭔 대본 갖고 다닙니까? 말할 때마다 설레 죽겠어.”
심장을 부여잡는 시늉을 하며 낄낄거린 형두가 곧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뒀다.
“일단 내가 이정수 검사 통해서 받았던 당시 계좌 목록, 이건 보내 드리겠습니다. 적발된 계좌 중에 대부분은 이미 정리가 된 상태라고 알고 있는데, 뭐 그래도 당시에 자금 흐름이 어떻게 됐는지까지 다 숨길 수는 없으니까. 안영균 선에서 딱 끊기는데 안영균이 어떻게 정리를 했는가, 이걸 제보해 줄 만한 정보원이 있는지도 한 번 알아보죠.”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취재하겠습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무섭게 해. 강 피디는 지금보다 더 최선 다하면 죽어요, 죽어. 적당히 하라고. 젊은 사람이 그렇게 몸 안 아끼는 거 아냐.”
형두가 아직도 그대로인 재희의 잔을 보더니 마시라는 손짓을 했다. 재희가 천천히 잔을 비우자 형두가 다시 잔을 채워 주더니 쯧, 하고 혀를 차며 얼굴을 찌푸렸다.
“얼마나 답답한지 우리도 잘 아니까 진짜 미안하고 그러네. 보는 사람도 이렇게 갑갑한데, 당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고 그래요. 법이란 게 참…… 이게 좋은 마음으로 쓰자고 만든 건데, 사람이 만든 거라 빈틈이 있잖아요. 상식적으로 살자고 법을 만드는데 그걸 비상식적으로 쓰려고 하니까.”
“그러니까 저희가 이 일 하죠. 사람들이 다 준법정신 투철하고 상식적이고 도덕적이면 같은 프로그램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그럴 일 없다는 거 알아도 언젠가는 우리 필요 없는 세상도 오겠지 생각하면서 하는 거 아닙니까.”
“말이라도 듣기 좋네. 아휴, 강 피디도 오늘은 그냥 머리 싹 비우고 한잔해요. 사람이 잠깐 기분 내면서 머리 비우고 그럴 때도 있어야지.”
형두가 벨을 눌러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종업원이 새 소주병을 들이밀어 놓고 문을 닫았다. 형두의 말을 듣고 있던 한동이 다시 병을 따며 낄낄거렸다.
“그 뭐 술도 좋은 사람하고 마셔야 기분이 나지, 환갑 다 된 사람들하고 마셔서 뭔 기분이 나. 강재희 여기 늙은이들 모시면서 의전 하러 온 거지 머리를 비우긴 개뿔, 너 같으면 원로 모시고 머리 비우라고 그러면 기분 나냐, 인마?”
형두가 그 말에 토라진 표정을 했다.
“전 부장은 내가 차마 못 한 말을 꼭 그렇게 하면 아주 기분 째지지?”
“아닙니다. 제가 부장님하고 의원님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요.”
부러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한 재희가 두 사람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르자 한동이 잔을 들어 보이며 짐짓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아주 주둥이 잘 턴다? 이 새끼도 보면 은근 딸랑거리는 게 보통이 아냐. 야 인마, 나한테 딸랑거려서 뭐할 거야. 이사회 가서 폐지 안 하게 좀 봐 달라고 딸랑거려. 너 딸랑거리면 걔들이 버선발로 뛰쳐나와서 맞이할 텐데 왜 그래.”
“아무 데서나 딸랑거리면 그게 딸랑이지 사람입니까?”
“야 이 새끼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목숨 내놓고 살아야 되는 세상인 거 몰라? 너 모가지 몇 개야? 한 번 살지 두 번 사냐? 인생 소중하게 살아.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소리 왜 하는지 몰라? 더럽고 치사해도 모가지 붙이고 있는 게 이기는 거야.”
한동이 재희의 잔을 채워 주며 내뱉었다. 재희는 작은 잔을 순식간에 채우는 술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한숨처럼 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장님이 그런 말씀 하시면 그게 저한테 무슨 설득력이 있습니까.”
“어른이 말하면 듣는 척이라도 해, 인마.”
“저보고 귓구멍 앞뒤로 막힌 새끼라고 하셨던 건 기억 안 나시고요?”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고소장에 법무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재희를 보고 한동이 하던 말이었다. 적당히 넘어가면 될 걸 융통성 없게 귓구멍 앞뒤로 막힌 놈처럼 군다는 소리였다. 욕처럼 내뱉는 칭찬이었다.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재희를 마주 보던 한동이 졌다는 투로 내뱉었다.
“이 버릇없는 새끼, 선배한테 한마디도 안 져 주는 거 봐.”
“기대도 안 하셨잖아요. 저 죽기 전엔 그럴 일 없습니다.”
“아니, 도대체 니들은 젊은 놈들이 왜 자꾸 죽는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 너도 그렇고 서정언도 그렇고. 말이 씨가 된다니까 이 새끼들이 진짜! 환갑 다 된 선배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아주 그냥! 나한테 먼저 죽을래?”
한동이 눈을 부라렸다. 재희는 대답 대신 씩 웃고는 잔을 비웠다. 요즘 들어 단 하루라도 머릿속의 생각들을 좀 털어 내고 싶다고 자주 생각하는 건 사실이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술이라는 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