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정확히 말하자면 조성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얘기합시다. 그런데 그게 어떤 방식으로 조성이 되는가를 몰랐던 거죠. 그건 뭐 엄대진계 의원들도 잘 모른다고 하니까. 고작 초선 비례가 그런 부분까지 다 알 수는 없었겠죠.”
형원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당장 짐작할 수는 없었다. 최창묵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되어 있는 부분이 상당할 것은 뻔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 자신에 대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나머지가 진실일 가능성도 높은 건 사실이었다.
“작년부터 추적하셨으면 이미 정보가 상당하실 텐데, 보도는 언제 하시려고요?”
윤이 묻자 형원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부적으로 얘기된 건 우선 경선 이후입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정언이 의아하다는 투로 물었다.
“경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너무 많은데요. 게다가 이슈 터지면 표 결집력이 있어서 오히려 위험하지 않습니까? 경선 전에 터트려서 떨구고 가는 편이 낫지 않나요?”
“그렇죠. 저희도 그 부분을 생각 안 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엄대진 확실히 보내려면 어설프게 하면 안 된다고요. 이거 가지고 당내에서 이규완이나, 이런 애들이 흠집 내기 해 봐야 소용이 없단 말이에요. 한선당 입장에서는 누가 되든 정권만 잡으면 그만인데 이런 일 있다고 이규완 밀겠습니까? 어차피 내부에서는 다 아는 얘기예요. 안 받아먹은 놈이 없다고요. 막말로 개고기나 소고기나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 그거죠. 그런데 대선으로 올라오면 그건 얘기가 달라져요. 파급력 있는 이슈가 터지면 회색 유권자들이 기울어질 가능성이 있거든요.”
정언이 고개를 한쪽으로 약간 기울였다. 형원의 말을 수긍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형원이 미소를 짓고는 정언을 마주 보았다.
“비자금 관련 정보, 이건 저희 쪽에서도 비장의 무기니까 그냥 말씀은 못 드리고요. 제가 이만큼 얘기했으면 쪽에서도 정보를 좀 줘 보시죠. 박 과장 건하고 조 계장 건, 이 부분 왜 추적하시는 겁니까?”
“서온건설 남제선 회장이 포항 조폭 출신인 용역업체 끼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경일용역이라는 업체인데요.”
정언이 되묻자 형원이 아, 하며 맞장구를 쳤다.
“남제선이 경영권 쥐면서 조폭 이용했다, 이런 소문이 오래 전부터 있었죠. 조폭 용역하고 관련 있다는 거 그 바닥에서는 모르는 사람 없을 겁니다. 신도시 사업 때도 자주 문제 있었잖아요. 아마 90년대에 타블로이드지에서 몇 번 보도도 냈던 걸로 제가 기억을 하는데, 근데 뭐 이게 기업 총수한테 큰 흠이라고 생각 안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조창식 계장이 그 용역업체 소속인 것도 알고 계셨고요?”
그 말에 형원이 어어, 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세를 고쳐 앉은 형원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아니, 몰랐는데요. 진송신도시 현장 노무감독 아니었습니까?”
“박규형 과장님이 본사하고 충돌 있었던 건요?”
정언이 대답 대신 묻는 말에 형원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건 알고 있었습니다. 저하고 몇 번 만났어요. 상생변 최유림 변호사한테 소개받았죠. 처음에는 원주민 데모 관련 얘기 들으려고 만났었는데, 사측에 상당히 반감이 있다는 걸 느꼈죠. 사측 사람인데도 계속 사측에 문제가 있다, 트러블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박 과장하고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 접촉했을 때 조 계장이 그 자리에 동석을 했어요. 미리 약속이 된 건 아니었고, 박 과장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같이 나왔던 거죠.”
창식의 핸드폰에서 복구된 녹취 파일의 내용이 떠올랐다. 규형이 기자나 변호사와 말을 맞추려는 모양이니 제거하라던 경일의 말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서였음이 분명했다.
형원이 음료수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원래 그날 취재하려고 만난 건 아니었거든요. 몇 번 만나고 했으니까, 그러다 보니까 언제 술 한 잔 합시다 얘기가 됐어요. 그게 그날이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 데려오니까 누구냐 물어봤죠. 조 계장이 아, 제가 이 친구랑 친해서 기자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넉살이 좋더라고요.”
“아무 예정도 없이 동행한 거군요.”
“그렇죠. 그런데 조 계장이 있으니까 박 과장이 확실히 말을 고른다, 이런 걸 느꼈죠. 왜 같이 나왔는지 이유도 설명 안 하고. 친하다는데 내가 보기엔 좀 데면데면해요. 그래서 혹시 사측 감시원으로 붙인 건가 싶었는데, 그러고 얼마 안 지나서 박 과장 부고가 왔어요. 자살했다, 현장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는데 감이 영 안 좋더라고요. 이런 일 한두 번 본 거 아니니까. 북부지경 캡유인성 기자라고 있는데, 내가 유 기자랑 친해서 이거 어떻게 됐는지 알아봐 줄 수 있냐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의정부서 얘기로는 무조건 자살이다 그랬다는 거죠. 국과수 부검도 안 하려다가 부인이 하도 우겨서 했다던데.”
의정부서에서 만났던 담당 형사의 태도가 되살아난 건 필연적이었다. 형원이 미간을 긁적였다.
“내가 유 기자한테 야, 현장에 유서 있었냐? 그러니까 없었대요. 이상하잖아. 그런데 일단 그때도 우리 팀이 엄대진 추적하는 데 거의 다 동원된 상태였으니까 그걸 뭐 파 볼 시간이 없었어요. 그러고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난달에 갑자기 자기 조창식이다, 기억하냐 하면서 저한테 연락이 온 거죠.”
“그쪽에서 먼저 접촉을 한 겁니까?”
정언이 묻자 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나는 뭐 그 사람한테 연락해 볼 생각, 이런 거 전혀 안 했죠.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바빠 죽겠는데. 근데 자기가 진송신도시 관련해서 엄대진하고 남제선, 이쪽 커넥션 관련된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기자가 그 말 듣고 어떻게 눈깔이 안 돌아갑니까. 당장 만나자고 했는데 그건 또 안 된대요. 그러면서 자기가 지금 사정이 있다, 일단 다시 연락하겠다. 혹시 이삼 주 지나도 자기가 연락이 없으면 은행 금고에 뭘 맡겨 두겠다고 찾아가라는 겁니다.”
“저희가 취재 시작할 때 조창식을 현장 사무실에서 만났는데, 저희가 취재한 직후에 사무실을 그만뒀더라고요. 경일용역 소속이고 손경일 오른팔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제보를 통해서 조창식이 사측에서 현장하고 박규형 과장님 감시역으로 붙인 사람이었다는 걸 안 거죠. 그래서 박규형 과장님 사망에 조창식이 분명히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쪽에서는 저희 붙은 거 알고 숨긴 거고요.”
정언이 끼어들자 심각한 얼굴로 그 말을 듣고 있던 형원이 아쉽다는 표정을 했다.
“에서 이 건에 손을 댔다, 이걸 제가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네요. 그런 부분은 일단 전 몰랐으니까, 이삼 주 기다리라고 하니까 뭐 제가 어떻게 합니까. 그러다 이제 출장이 잡혔거든요. 엄대진 대포통장에서 해외로 나간 자금 추적하려고 우리 팀이 나갔어요. 그리스 소재 페이퍼컴퍼니에서 세탁 한 번 하고, 그걸 다시 스위스로 뺀다 이 정보를 얻어서 그거 확인하러 갔었거든요.”
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형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형 특종이 확실했다.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에 이 이야기가 터진다면 경쟁자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은 분명했다.
“페이퍼컴퍼니 명의자가 엄대진하고 관련이 있습니까?”
“채기원이라는 사람입니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잠깐 기억을 더듬던 윤은 곧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깨달았다. 고원종합기술공사의 최대 주주, 남제선의 친인척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사람이었다. 정언 역시 그 사실을 떠올린 듯 얼굴을 찌푸렸다.
“서온건설 남제선 회장 처가 쪽 사람이죠? 감리업체인 고원종합기술공사 최대 주주라고 하던데요.”
“어, 알고 계시네요. 맞습니다. 남제선 회장 부인인 김신옥 친정 오촌 조카예요. 이 사람이 나이가 서른하나밖에 안 됐는데, 국내에서 행적 추적해 보니까 뭐 별다른 일을 하질 않아요. 임대업자로만 등록이 돼 있고. 그런데 감리업체 최대 주주에, 서온건설이 인수한 대국시멘트 지분 20퍼센트도 이 사람 소유예요.”
“대국시멘트면 중금속 과다 검출된 시멘트 업체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리고 그리스 페이퍼컴퍼니, 회사 이름이 SO 컴퍼니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신옥 이니셜 S, O일 것이다, 이렇게 짐작을 했죠. 거기 대표 명의가 크리스티안 채라고 돼 있어요. 이 사람이 누구냐, 현지인도 아니고. 그런데 설립에 관여한 법인 취재하면서 그게 채기원인 걸 안 거죠, 우리는.”
“엄대진 비자금 세탁에 서온건설이 관여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네요.”
정언의 말에 형원이 한숨 섞인 소리로 웃었다.
“그렇죠. 우리가 봤을 때 이건 뭐 확실하잖아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 이게 대포통장이니까. 그냥 차명계좌도 아니고 진짜 아무 상관없는 사람 명의라고요. 엄대진이 잡아떼 버리면 증거가 없단 말이에요. 우리가 그래서 대포통장 브로커들, 국내에서 유명하다는 사람들하고 다 접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들 엄대진하고는 상관없다고 얘기를 해요.”
“다른 방식으로 계좌를 확보하는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엄대진 거다, 엄대진 지시로 사들인 거다 이걸 증명해야 되는데. 그것 때문에 우리가 공개를 경선 이후로 미룬 것도 있죠.”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던 정언이 잠시만요, 하고는 휴게실을 나갔다. 형원이 음료수를 몇 모금 더 마시고는 낡은 소파에 등을 묻으며 윤을 보았다.
“김윤 피디님이라고 하셨나? 연차 어느 정도 됐어요?”
“2년 차입니다.”
윤의 대답에 형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했다.
“어쩐지 신삥 티가 나더라. 원래 이 팀에 있었습니까? 에서 못 보던 이름 같은데.”
“들어온 지 몇 달 안 됐습니다.”
“그렇죠? 어우, 그런데 이렇게 큰 건 하려면 간 떨리시겠네. 거기 그, 전한동 부장 같은 프로도 엄대진 건드렸다가 모가지 그냥 날아갈 뻔했잖아요. 취재하면서 협박이나 뭐 이런 거 없었습니까? 우리 애들도 작년부터 취재 시작하고 한 서너 명 그만뒀어요. 신참들은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진짜 뭐 목숨 왔다 갔다 하는데 윗대가리라고 애들보고 그 짓 하라고 할 수 없으니까.”
“뭐…….”
윤은 모호하게 말을 얼버무렸다. 초면에 굳이 그런 얘기까지 털어놓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그러나 형원은 대충 사정을 눈치챘다는 듯 씩 웃었다.
“YBS 난리죠? 서온건설하고 엄대진 파는 거면 이거 방송 안 될 수도 있는데, 그거 알고 하시는 건가?”
“상황이 그렇긴 한데, 되도록 일단 방송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언제 하실 건데요?”
“일정은 미정입니다.”
형원이 손끝으로 턱을 문지르며 눈을 빛냈다.
“우리하고 연계해서 터트리면 딱인데. 우리도 규모가 크지 않으니까, 이거 특종으로 내도 다른 데서 다 입 다물고 묻어 버리면 소용이 없거든요. YBS가 그래도 공중파라 우리랑 공조하면서 투웨이로 계속 후속보도 터트리면 파급력 상당할 거 같은데, 안 그래요? 아이, 그런데 내가 신참한테 말해서 뭐해. 본인이 결정할 수 없잖아요, 그쵸?”
“저는 뭐 그냥 서포트라…….”
윤이 멋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자 형원이 농담처럼 툭 뱉었다.
“에이, 서포트가 너무 잘생겼어. 얼굴 금방 팔려서 취재 힘들겠는데. 거기 강재희 피디도 어디 가서 빠지는 인물 아니잖아요. 그 팀은 얼굴 보고 뽑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