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정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건 그 수많은 살인들이 엄대진과 관련되어 있다는 중요한 증거였다. 원욱이 잠시 정언을 빤히 보았다. 초점이 분명하지 않은 눈은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우리는 몰라요. 의원님, 의원님 하기만 하지.”
원욱이 대답했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지금으로서는 확인 불가능했다. 정언이 뭐라고 더 재차 묻기 전, 원욱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얼굴 볼 일도 잘 없고 관심도 없으니까. 창식이 형이나 직접 만날까.”
“그 국회의원이 누군지는 모르신다는 거죠?”
“글쎄. 하여튼 그 형이 현장에서 박규형 데리고 올라가서, 형 말로는 자기가 민 건 아니라는데 본 사람이 없으니까 모르잖아. 위에서 몸싸움을 좀 했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서 떨어졌다. 우리가 듣기로는 그랬습니다.”
원욱이 말을 돌렸다. 그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손경일이 가장 가까이 두던 인물들이라면 엄대진을 모를 리 없었다. 그를 내려다보던 정언은 더 캐묻는 대신 무표정을 유지한 채 잠시 시계로 눈을 주었다.
“좀 쉬었다가 할까요? 힘드신 것 같은데, 호전되시면 그 뒤에 다시 방문할 수도 있고요.”
정언의 말에 원욱이 갑자기 마른침을 삼키더니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뇨, 아뇨! 말할 수 있습니다. 계속하죠.”
지금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원욱이 정언의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서둘러 말을 이었다.
“박규형 그렇게 죽고 나서, 그때, 그냥 처리가 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뒤에 피디님들이 온 거 아닙니까, 사무실에. 그때 경찰서 가고, 그러고 완전 난리가 났었어요. 위에서 사장한테 전화를 해서 지랄을 얼마나 했는지, 사무실도 바로 닫으라고 그러고. 경찰서에, 그때 같이 갔잖아요. 피디님이.”
그 말에는 언뜻 원망 같은 감정이 묻어났다. 그걸 분명히 알아차렸을 텐데도, 정언의 얼굴에는 어떤 동요도 드러나지 않았다. 정언은 사무적인 투로 재차 물었다.
“경찰서에서 당시에 손경일 사장이 누구한테 연락했던 건지 아십니까?”
“그거는 제가 모르는데, 아마 뭐 그 국회의원, 의원님 그 사람이나 아니면 본사에 높은 사람. 그쪽으로 연락을 했을 겁니다. 매번 그러니까. 적당히 둘러대고 보내라, 박규형 무조건 모른다고 해라. 아마 그렇게 지시가, 오더가 떨어졌을 거예요.”
“지시 사항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죠?”
“사장이 인터뷰하고 와서 우리한테도 그 얘기를 했어요. 취재 오거나, 경찰들이 물어보거나 하면 무조건 모른다고 해라. 증거 없다. 박규형 죽일 때도 창식이 형이 보안실 얘기해서 미리 그쪽, 그거 있잖아요. CCTV. CCTV 껐다고요. 그거 없으면 절대 못 찾는다고.”
정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할 때, 경찰에서 현장의 CCTV가 고장 난 상태여서 영상이 없다고 말했던 걸 윤 역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CCTV가 고장 난 게 아니었나요? 당시에 선 매설이 잘못됐다고…….”
눈썹을 좁히는 정언의 얼굴에 원욱이 끼룩거리며 웃는 소리를 냈다. 정언이 말을 멈췄다. 윤은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원욱을 주시했다. 속에서 긁히는 듯한 그 소리에 까닭 없이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원욱이 마른기침을 뱉고는 거의 속삭이듯 입술을 달싹였다.
“고장이 왜 납니까, 그게. 다 개소리고, 그냥 전원만 딱 끄면 돼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조사 나와도 뭐, 이미 우리 편이니까. 하는 척만 해요. 걔들도 입금 따박따박 받아 간다고.”
“말 똑바로 해요. 지금 그거 경찰이 커넥션 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때까지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이섭이 목소리를 높였다. 원욱이 누운 채 이섭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동공이 작은 눈동자가 희번덕거리며 빛났다.
“이거 왜 이래요. 형사님, 다 알잖아요.”
구멍 뚫린 튜브를 누를 때처럼 숨소리가 단어들 사이로 새었다. 정언이 손을 들어 잠시 이섭을 제지하며 질문을 계속했다.
“그럼 김성학 씨하고 장영관 씨가 조창식 씨를 죽인 건 맞습니까?”
원욱이 다시 정언을 보았다. 기억을 되짚는지 잠시 숨을 몰아쉬며 눈을 깜빡이던 원욱이 입을 열었다.
“사무실이, 사무실 뒤집어졌다고 했잖아요. 취재 오고. 그 뒤로 위에서 뭔 오더가 왔나 봐요. 창식이 형이 집 밖으로 못 나왔어요. 외국으로, 아예 멀리 내보내려고 했는데, 형이 전과가 많으니까. 형이 오래전에 뭐가 하나 걸렸는데 숨어 다니고 그래서, 뭐라고 하지. 소재, 소재불명으로 기소 중지된 건이 있다고요. 그것 때문에 출국이 안 돼. 그러니까 외국도 못 보내고, 일단 집에 있어라. 근데 며칠이면 될 줄 알았는데, 우리가 돈줄이 다 묶여 버렸어요. 사장도 아주 미쳐 버리려고 했다고, 그것 때문에. 위에서 뭘 못 하게 하니까.”
말이 길어지자 원욱의 숨이 가빠졌다. 조창식의 집에서 발견된 핸드폰 속의 녹취 파일과, 의 임형원 기자 앞으로 남겨 둔 동영상이 떠오른 건 필연적이었다. 돈 때문에 손경일과 다퉜던 것도, 엄대진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도 전부 사실이라는 걸 이원욱이 한 번 더 확인해 준 셈이었다.
“돈줄이 왜 묶인 겁니까?”
“그건 뭐 위쪽 사정이니까 우리는 모르고, 그게 아무튼 한 달, 두 달 넘어가니까 창식이 형이 사장하고 엄청 싸웠다고요. 사장도 위에서 만 원 한 장 마음대로 쓰지 말라고 그랬다니까. 우리도 못 받은 돈 많았단 말이에요. 자기도 죽겠는데 형이 자꾸 뭐 어디다가 꼰지르겠다, 그렇게 말을 했다는 거지. 뭐 기자나, 그렇겠지. 그러니까 사장이 성학이하고 영관이 불러서 창식이 죽여라, 그런 거라고요. 성학이, 영관이, 창식이 형, 나, 이렇게 넷이 제일 오래 같이 일했거든요. 그런데 형을 죽이라고 그러니까, 애들도 막 선뜻 그게 안 되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된 거죠?”
“돈. 돈 때문에. 몇 달 돈이 막히니까, 우리도 빠듯하잖아요. 당장 돈 준다 그러니까 눈이 뒤집힌 거지. 창식이 형이 보통 사람은 아닌데, 몇 달 돈줄 말리고 가두니까 별수 없더라 그러데요. 가방 가져가니까 돈 가져온 줄 알고 문 바로 열어 주더라. 그러면 그다음은 쉽지. 그냥 이렇게, 이렇게.”
원욱이 링거가 꽂히지 않은 쪽 손으로 허공에 칼을 찌르는 흉내를 냈다. 메모를 하던 정언은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원욱 씨는 그런 사정을 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거기까지는, 뭐 알았죠. 창식이 형 죽인 거, 성학이한테 들었으니까. 사장이 그랬다고. 창식이가, 걔가 얼마 받는지 아냐. 창식이 죽이면 그 돈 너랑 영관이한테 준다. 근데 나는 한 삼 년 전에 오른팔 인대가 나가서, 팔 심하게 쓰고 그런 걸 이제 잘 못 한다고요. 그러니까 이제 사장이 나는 다른 데 보낸 거죠.”
“다른 데라면…….”
정언이 채 질문을 마치기도 전 원욱이 입가를 비틀었다. 일그러진 오른쪽 눈가에 기묘하게 주름이 잡혔다. 원욱이 정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여자 피디 집 가서 겁 좀 줘라. 집에 사람 없으면 도둑 든 것처럼, 대충 뭐. 사람 있으면, 여자 있으면, 알잖아요.”
킬킬거린 원욱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고는 반대편 검지를 그 안에 넣었다 빼는 시늉을 했다. 즉시 얼굴을 찌푸린 윤이 카메라 액정에서 눈을 뗐다.
“이원욱 씨,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태도 똑바로 안 해요?”
불쾌한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는 윤에게 정언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정언이 펜 끝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누르며 내뱉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계속 얘기하세요.”
정언이 당황하는 것을 보려고 일부러 한 소리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정언은 이런 일이 이미 익숙하다는 듯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원욱이 눈치를 흘끔 보더니 다시 마른기침을 뱉고는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피디님 운 좋은 거고, 집에 안 계셨으니까. 운이 좋았다고. 그러고 그 박규형 부인, 겁 좀 주라고 하니까 내가 전화를 했다고요.”
“어린이집에 삼촌인 척 가장해서 전화한 게 이원욱 씨 본인 맞다는 거죠?”
“그렇지.”
“유괴할 의도가 있었던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요새 좀 어려워요. 옛날 같지가 않아서. CCTV, 블랙박스, 이런 게 많고.”
그 말은 예전에는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윤은 이 장소가 점점 더 불편해졌다. 저런 사람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윤의 심정을 알 리 없는 원욱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계속 주절거렸다.
“어른이면 끌고 와서 며칠 살려 둘 수 있는데, 애들은 그게 잘 안 된다고요. 컨트롤, 어떻게 그런 게 안 되니까 오래 데리고 있기 힘들어. 근데 내가 애들 죽이는 건 좀 찝찝하다, 그러니까 사장이 전화나 해 보라고. 애들 데리고 나올 수 있으면 그냥 하루 이틀 데리고 돌아다니다 아무 데나 버리면 된다고 그래요. 말이 좋지 그게 잘 안 돼요, 사실. 애들이라도 얼굴을 기억하니까. 얼굴 기억하면 죽이는 수밖에 없다고. 안 되면 그냥 겁이나 줘라. 그래서 한 거지.”
수아와 리아의 얼굴을 떠올린 윤은 입술을 말아 깨물었다. 몸이 떨렸다. 같은 인간이 누군가를 그토록 쉽게 도구처럼 이용하고 죽일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윤에게 이해 범주를 넘는 일이었다. 더구나 어린아이들까지 그런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건 더 용납되지 않았다.
정언이 그 무표정한 얼굴 아래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 사찰하거나 하는 것도 이원욱 씨 담당이었나요?”
정언의 물음에 원욱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사찰? 그 막 감시하고, 그런 거요? 아뇨, 그건 내가 안 했죠. 그거는, 왜냐하면 노출 시간이 길어요. 들키기가 쉽단 말이에요. 효율이 떨어져. 미행을 아무리 잘 해도 요즘 세상에는, 한 십 년 이십 년 전만 해도 쉬웠어요. 근데 요샌 블랙박스, CCTV 이런 게 너무 많으니까. 그런 건 우리 같은 애들 쓰면 힘들어요. 전과자니까. 일반인 써야지.”
민주영 의원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보수단체를 이용한 사찰. 정언 역시 그 생각이 나서 물어본 것이 틀림없었다. CCTV나 블랙박스에 걸리기 쉬우니 자신들보다는 일반인을 이용하는 편이 간단하다는 건 논리적이었다.
원욱이 기침을 하더니 거의 턱까지 숨이 찬 듯 헐떡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건, 법에, 법에 걸리는 거. 며칠 전에 누구 차 고장 안 났어요? 그거, 그것도 내가 한 거라고. 사장 오더 받고.”
다음 순간 머리 위로 누군가가 얼음을 쏟아부은 듯한 기분이 된 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때까지 일절 동요하는 기미조차 없었던 정언 역시 순간 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굳어 버린 윤은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원욱을 보았다.
원욱이 색색대는 소리로 말했다.
“사장한테 주소랑 차 번호 받고. 내가 어릴 때 자동차 정비 좀 배워서 아니까, 그런 건 쉬우니까. 전문이거든. 하루 이틀 전에 미리 답사를 한다고요. 그 집이, CCTV가 모형이더라고. 기다리고 있다가 새벽에, 사람 없을 때 브레이크 딱 끊어 놓고 바로 간 거죠. 위에서 그거를, 그런 걸 좋아한다고요. 차로 이렇게 막 장난질 치는 거. 차 사고가 위장이 쉬우니까.”
원욱의 말이 머릿속으로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정언이 눈으로 진정하라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간신히 원욱에게서 시선을 뗀 윤은 숨을 들이쉬었다.
자신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아까도 운전을 하는 동안 혹시나, 혹시나 하는 생각이 따라붙어 불안감에 손이 내내 떨리는 걸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게 원욱에게는 고작 늘 하던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눈앞에서 듣자 감정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