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위에서 좋아한다고요? 누구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언의 말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그러나 원욱은 미처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위가, 뻔하잖아. 사장 위에. 서온. 의원님. 그런 사람들.”
단어들이 토막토막 끊어졌다. 원욱이 잠시 숨을 골랐다. 정언은 그사이를 기다리지 않고 그를 다그쳤다.
“브레이크 절단은 위장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절단하는 거, 그거는 진짜 겁만 주는 거예요. 사고 나면 차 조사 딱 하잖아요. 브레이크 잘린 거 알면 다 겁 엄청 먹는다고. 그러면 보통 운전 최소한 몇 달은 못 해요. 무서워서. 제동 안 돼서, 브레이크 안 들어서 죽으면 운 없는 거고. 내가 그 짓만 한 이십 년 했는데, 사람 죽은 게 한 번인가 두 번밖에 안 돼. 생각보다 그렇게 막, 잘 안 죽는다고요. 운전하는 사람들은 브레이크 이상한 거, 밟으면, 밟아 보면 바로 아니까. 제대로 위장하려면 그런 식으로 안 하지.”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이 본인한테 아주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건 아시죠?”
정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감정이 실렸다. 윤은 정언이 화가 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차마 상상하기도 싫은 저질스러운 말을 바로 앞에서 들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정언이었다.
정언이 지금 화가 난 건 자신 때문이라는 직감이 퍼뜩 지났다. 윤은 떨리는 손끝을 안으로 꽉 말아 쥐었다. 답답하다는 듯 원욱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피디님, 내가 지금, 내가 그거 모르고 주둥이 털겠습니까? 내가 이게, 차라리 감방에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 터는 거예요. 이거 누가 그랬을 것 같습니까?”
원욱은 정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사장이, 우리 사장이 한 짓이에요. 성학이, 영관이, 얘들도 사장이 죽였다고요. 내가 걔들 죽은 거 알고, 사장한테 어떻게 된 거냐. 애들이 왜 죽었냐. 그러니까 사장이 만나서 얘기하자. 돈 준다. 그러고 나 있는 데로 와서 나까지 죽이려고 한 거라고요.”
“손경일이 직접 처리하려고 했다는 겁니까?”
“아, 몇 번을 말해. 내가 얘기했잖아요. 우리 넷이 제일 오래 있었다고. 창식이 형이 오른팔. 우리는 그만큼은 아니라도 제일, 그런 게 있는 놈들. 그런데 창식이 형이 딱 죽었잖아요. 밑에 있는 애들이 낌새가 안 좋았단 말이에요. 혹시 사장이 창식이 형 죽인 거 아니냐고. 내부에서도 분위기 아니까. 창식이 형이 죽었다. 찔려 죽었다 그러니까 다 의심을 하지. 조창식이 여기서는, 일류, 일류라고요. 잔챙이한테 그렇게 갈 사람이 아니라고. 조선족 애들도 창식이 형 못 당해요.”
흥분했는지 원욱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마지막 말은 숨이 차서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자신들의 예상이 거의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오른팔인 조창식을 죽였을 때 조직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날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언이 펜을 든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물었다.
“조직원이 전부 몇 명이나 되죠?”
원욱이 가쁜 숨을 몇 번이고 고르며 천천히 대답했다.
“포항에서, 옛날부터 데리고 올라온 건 한 서른 명 넘는데, 감방 간 애들이나 죽은 애들 빼고 지금 남은 건 한 열 명. 우리 넷이 제일 빠릿빠릿해서 사장이 딱 끼고 있었고, 나머지는 지방 현장 이런 데 관리하죠. 그리고 젊은 애들, 모집해서 잠깐, 잠깐씩 데리고 있거나, 동네 애들, 조선족들 가끔 필요할 때 불러 쓰고. 그런 거 합치면 뭐 백 명은 왔다 갔다 하지. 그러니까 애들도 예전 같지 않다고요. 의리, 그런 거 거의 없어요. 사장이 그거 아니까, 다른 애들한테 못 시키고 자기가 직접 한 거야.”
원욱이 괴로운 듯 몸을 웅크렸다. 이섭이 곁에 서 있던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간호사가 원욱에게 물었다.
“환자분, 계속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원욱은 간호사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손을 휘적거렸다. 당장 죽을 것이 정말 두렵기는 한 모양이었다. 잠깐 가빠진 숨을 진정시킨 원욱이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에서 제보를 받는다, 그거를 내가 여관에서 텔레비전 보다가 알고 어 씨팔, 이거 혹시 사장이 죽였나, 이 생각이 확 든 거지. 그래서 이거를 어떡하나. 왜냐하면 내가 사장한테 돈을 받기로 한 게 있었어요. 차 브레이크 자르는 거, 그것까지만 하고 일단 삼천 받아서 바로 고향 내려가 있기로 했다고.”
쌕쌕대던 원욱이 한참 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전에 사무실 애들이 전화가 와서 형 수배됐다, 이렇게 나보고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신고를 당했다, 그걸 알았거든. 그러면 돈만 받고 바로 튀자. 사장이 의심되는데 어떡해. 돈줄이 없는데. 사장이 성학이랑 영관이 어떻게 된 건지 자기가 얘기하겠다, 통장을 못 쓰니까 현금으로 주겠다 그러고 나 있는 데로 온 건데, 문을 딱 열자마자 칼을 팍 찌르더라고.”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났는지 원욱이 진저리를 쳤다. 이섭이 침대 난간을 붙들며 원욱을 다그쳤다.
“손경일 지금 어디 있습니까?”
원욱이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지. 그거는, 그것까지는. 내가 듣기로 사장도 출국이 막혔다, 그런 얘기는 들었어요. 밑에 애들 한두 명 데리고 일본 건너가려다 막혔다고. 배 구해서 일본이나 중국 잠깐 가 있을까 한다는 거 같은데, 일이 이렇게 돼서 어떨지 모르죠. 그러니까 나는, 살아서 풀려나면 백 퍼센트 내가 죽는다. 그러니까 내가 차라리 감방을 가겠다. 방송에 다 말하겠다.”
원욱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헐떡이던 원욱이 갑자기 손을 뻗어 정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윤은 거의 반사적으로 뛰쳐나가 바로 원욱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사이를 가로막았다. 정언이 김 피디, 하고 불렀으나 윤이 대답하는 것보다 원욱의 말이 빨랐다.
“피디님, 방송에 내 얼굴, 얼굴 다 내보내 줘요.”
원욱이 손을 휘적거리다 이번에는 윤을 붙들었다. 얼음장 같은 손이었다. 쇳조각이 파고드는 듯한 감각에 윤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그의 손을 떼어 냈다. 원욱이 애원하듯 윤을 쳐다보았다.
“내가, 내가 얼굴 다 까고, 아는 거 다 말할 테니까 제발 나 좀 살려 달라고.”
윤은 대답 대신 원욱을 응시했다. 타인의 목숨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이토록 자신의 삶에 집착한다는 게 모순처럼 느껴졌다. 원욱이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배를 움켜쥐었다.
간호사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이섭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이섭이 정언에게 물었다.
“피디님,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정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가 인터뷰 더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팀장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러면 일단 여기까지 하시죠. 우선 경호 인원 배치하고 조사 들어갈 겁니다. 마포서하고 서대문서 쪽에는 제가 연락했고요. 다시 방송국 들어가십니까?”
“네, 그래야죠. 혹시 무슨 특이사항 생기면 바로 연락 주실 수 있나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넨 정언이 윤에게 정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기서 한시라도 더 있고 싶지가 않았다. 바로 장비를 정리해 가방에 쑤셔 넣은 윤은 병실을 나섰다. 말없이 계단을 내려와 주차장으로 향하자, 두어 걸음 뒤에서 도어 오픈 버튼을 눌렀던 정언이 차 문을 열려다 말고 서 있는 윤을 보더니 물었다.
“괜찮아?”
물론 괜찮을 리가 없었다. 윤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안 괜찮아요.”
짧은 한숨을 쉰 정언이 운전석 문에 기대서며 주머니를 뒤적여 습관처럼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잠시 입술 끝으로 담배를 까딱이던 정언이 내뱉었다.
“좋게 생각해. 어쨌든 이원욱이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건 다행이잖아.”
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정언을 마주 보았다.
“저는 그렇다고 쳐요. 그런데 선배가 그날 집에 있었으면, 만약에 어린이집 원장님이 진짜 삼촌인 줄 알고 애들 보냈으면 무슨 일 벌어졌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좋게 생각할 수가 있냐고요. 보셨잖아요. 그런 소리 하면서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거. 남들한테 그렇게 끔찍한 짓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인간인 거.”
“내가 처음에 얘기했잖아. 이런 거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고.”
흥분한 윤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정언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윤은 지금까지 정언이 취재해 왔던 수많은 사건들을 떠올렸다.
그저 쾌락을 위해 젊은 여자들을 강간하고 살해한 사이코패스, 보험금을 타려고 이십 년을 함께 산 부인을 죽인 남편, 귀찮다는 이유로 배가 고파 우는 세 살배기를 때리고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만든 부모, 절실한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정언은 셀 수도 없이 만나 봤을 터였다. 정언이 지금까지 들여다본 그림자 속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윤은 그 순간 실감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을 세계.
정언이 존재해서도 안 되고, 누구도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는 그 어둠 속에 뛰어들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뒤엉켰다. 무슨 생각인지, 윤을 가만히 보던 정언은 곧 말을 돌렸다.
“일단 타. 여기서 자료 바로 보내고 움직이게.”
윤은 대답 대신 정언에게 물었다.
“선배는 그런 말 듣고 무섭지도 않으세요?”
“나 안 죽어.”
정언이 앞을 보며 대답했다. 창백하고 날카로운 그 옆모습은 단호했다.
“선배.”
“그러니까 걱정 그만해.”
정언이 지키지 못할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걸 윤은 이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정언의 의지를 뛰어넘는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아무리 죽지 않으려 노력한다 해도 그 그림자 속에서 정언이 끝까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그건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선뜩한 예감이 등줄기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말이 없던 윤은 정언을 응시했다.
“약속하세요, 그럼.”
목소리가 흔들렸다. 숨기지 못하는 불안감 탓이었다. 정언이 알아차리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소용없는 바람일 게 뻔했다. 정언이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되물었다.
“뭘.”
“그런 일 없을 거라고 저한테 약속하시라고요.”
그건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정언이 그 말을 그냥 웃어넘기거나 들은 척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
그러나 정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돌아온 대답은 확고했다. 정언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절대 안 죽는다고 맹세할게. 됐어?”
그건 단지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까닭을 설명할 수는 없었으나, 그건 분명 정언의 진심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있어도 정언이 약속을 지킬 거라는 기묘한 안도감이 스몄다. 빨리 타, 하고 내뱉은 정언이 운전석 문을 당겨 열었다.
윤은 한 장의 유리 너머로 비치는 정언을 보았다. 주차장의 흰 조명이 선팅된 창을 투과하며 그 창백한 얼굴의 윤곽을 얼핏 흐렸다.
윤은 문득 생각했다.
이 끝없는 어둠 속에서 정언이 혼자이지 않기를,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자신이 꼭 곁에 있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부디 지나친 소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