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그러면 정보현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 플랜 자체가 장기적인 거잖아. 보좌관 남편 얻어 대통령 만든다는 게 진짜 말이 쉽지 거의 불가능한 건데, 십 년 십오 년 뒤 생각하고 가는 거 아냐. 그거 위해서 자기 생활 하나 없이 정치인의 아내로 사는 거고. 주 선배, 그 교회 이름이 뭐예요?”
“은혜영신교회. 출석 신도만 한 만 삼천, 만 사천 된대. 등록 명부만 놓고 보면 더 많겠지.”
예준의 대답을 들은 윤은 바로 포털 사이트에 교회 이름을 검색했다. 교회 홈페이지가 최상단에서 바로 검색되어 나타났다. 곁에서 턱을 괴고 마우스를 움직이던 정언이 중얼거렸다.
“만 삼사천이면 규모 엄청난데.”
“갤러리 메뉴에 교회 봉사 활동 사진 엄청나게 많은데요.”
윤이 홈페이지를 이리저리 클릭해 보며 말했다. 갤러리 메뉴에 들어가자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사진 모음이 나타났다. 윤은 페이지를 넘겨 가며 썸네일을 확인하다 한곳에서 손을 멈췄다.
‘독거노인 도시락 전달 봉사 활동 모임’이라는 제목 옆에 날짜가 붙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윤이 그 사진을 주목한 까닭은 작성자의 이름 때문이었다.
썸네일을 클릭하자 교회 이름이 적힌 앞치마와 두건을 한 사람들이 교회 앞에서 도시락을 쌓아 놓고 찍은 단체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 이거 한 번 보세요.”
윤이 모니터를 가리키자 정언이 파티션 너머로 몸을 내밀었다. 눈을 가늘게 뜬 정언이 미간을 좁혔다.
“사진 확대 좀 해 봐. 이름표 붙어 있는 것 같은데.”
윤은 정언의 말대로 휠을 돌려 사진을 확대했다. 픽셀이 뭉개지기는 했으나 정언의 말대로 앞치마 위에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것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언은 윤 곁에서 몸을 숙이고 손끝으로 모니터를 짚어 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폈다. 정언의 시선이 멈춘 건 오른쪽 끝에서였다.
“이거 정보현이라고 돼 있는 거 아냐?”
윤은 다시 사진을 줄여 보았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정언이 가리킨 이름표의 이름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앞치마 때문에 차림새가 가려진 채였으나, 예준이 말한 ‘교양 있는 사모님 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뭘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윤과 정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예준이 몸을 반쯤 일으키며 손짓을 했다.
“사진 저장해서 나한테 좀 보내 줘 봐.”
윤이 바로 그 사진을 저장해 예준의 메신저로 보내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예준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와이프한테 물어봤는데, 그 여자가 정보현 맞대.”
“그쵸? 느낌이 딱 그렇더라.”
모니터에 눈을 둔 채 대답한 정언이 마우스를 움직여 갤러리를 살펴보았다. 수많은 봉사 활동 모임마다 보현의 얼굴이 빠지는 곳이 거의 없었다. 사진 수십 장을 연달아 클릭해 보던 정언이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진짜 장난 아니네. 돈 받고 해도 이렇게는 못 하겠는데.”
“그러게요.”
윤이 수긍하자 정언이 사진 몇 장을 더 넘겨 보다 손을 멈췄다. 의아해진 윤은 정언을 보다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모니터에 뜬 사진은 보현이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운동장 앞에 걸린 작은 현수막을 배경으로 서 있는 사진이었다. 현수막에 쓰인 글자는 ‘은혜영신교회― 사단법인 어게인라이프 주최 홈리스 자활 지원 바자회’였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언이 갑자기 게시판 하단의 검색창에서 ‘어게인라이프’를 검색했다. 사진 수십 장이 연달아 화면에 나타났다. 그 사진 몇 장을 클릭해 본 정언이 다급하게 예준에게 물었다.
“주 선배, 아까 뭐라고 그랬죠? 정보현이 봉사 활동 뭐뭐 한다고?”
예준이 왜 그러냐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건 다 한다니까. 고아원, 양로원, 독거노인, 연탄 배달, 노숙자 급식…….”
예준의 대답을 듣기 무섭게 정언이 급히 홈페이지 주소창의 주소를 긁어 메신저로 팀원들에게 전체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저기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정언이 고개를 들어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지금 링크 쏜 거 한 번 봐요. 현수막에 홈리스 자활 지원 바자회, 사단법인 어게인라이프라고 돼 있는 거.”
“이게 왜?”
찬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되묻자 정언이 손끝으로 모니터를 치며 말했다.
“지금 내가 대충 봤는데, 정보현이 이 어게인라이프라는 단체하고 노숙자 지원 활동한 내역이 많아요. 그런데 에서 그랬단 말이야. 자기들이 엄대진 대포통장 명의 어떻게 확보하는지 브로커 다 뒤졌는데 못 찾았다고. 그런데 이런 봉사 활동 하면 노숙자들하고 제한 없이 만날 수 있고, 자활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명의 확보하는 거 간단한 일 아니에요? 지속적인 명의 확보가 가능하면 브로커 굳이 낄 필요가 없는 거잖아.”
윤은 그 말을 들은 즉시 포털 사이트와 구글에 ‘어게인라이프’를 검색했다. 홈페이지가 하나 뜨기는 했으나 정보랄 것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게시판은 물론이고 관리자 메일 주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구색 맞추기 용으로 대강 만들어 올려놓은 사이트인 듯했다.
윤은 홈페이지를 꼼꼼히 둘러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그냥 페이크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요.”
“화면 좀 내려 봐. 제일 아래 뭐 표시된 거 없는지.”
정언의 말에 윤은 스크롤을 내려 화면 가장 하단을 보았다. 보통 주소나 전화번호를 써 두는 곳이었으나,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1098이라는 주소 외에는 일절 다른 정보 따위는 눈에 띄지 않았다. 윤은 서둘러 그 주소를 복사해 검색했다. 다행히도 즉시 지도에 위치가 표시됐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EX빌딩이라는 이름이 선명했다.
“EX빌딩이라는데요?”
“홈페이지에 아까 건물 호수 같은 건 없었지?”
“네. 표기 하나도 안 해놨어요.”
정언이 얼굴을 찌푸리며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보나마나 지금 당장 가 봐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때 예준이 퍼뜩 뭔가 생각났다는 듯 정언을 마주 보았다.
“어, 맞다. 철진 선배 강남에서 누구 만난다고 그랬어, 아까. 철진 선배한테 한 번 가보라고 할게.”
대답을 듣기도 전, 철진에게 전화를 한 예준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 선배. 나예요. 아직 강남입니까? 내가 지금 주소 하나 쏠게. 거기 좀 가 봐요. 그 빌딩에 사단법인 어게인라이프라는 데 있는지, 있으면 거기 정체가 뭔지 좀 알아 오라고. 그거 엄대진하고 관련 있는 거 같아요. 메시지 보낼게요.”
턱을 괴고 졸린 표정으로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던 민혜가 눈을 번쩍 뜬 건 그다음이었다.
“잠깐만, EX빌딩?”
“작가님은 또 왜요? 뭐 생각난 거 있어요?”
정언이 묻자 민혜가 대답 대신 거의 무덤 수준으로 쌓아 놓은 자료들 사이를 헤집었다. 책상 아래로 머리를 집어넣고 땅굴 파는 두더지처럼 한참 뭔가를 뒤지던 민혜가 이거다, 하며 고개를 들다가 책상 아래에 머리를 부딪쳤다. 쿵 소리에 깜짝 놀란 윤은 황급히 몸을 숙이며 민혜에게 물었다.
“작가님, 괜찮으세요?”
아파 죽겠다는 얼굴로 뒷머리를 감싼 민혜가 고개만 끄덕이며 정언에게 손에 움켜쥔 서류를 내밀었다.
“정언, 정언, 이거 봐. 우리가 이거 떼 봤던 거.”
정언이 뭔데 그래요, 하며 민혜에게서 서류를 받아들었다. 다음 순간 정언의 표정이 싹 달라졌다.
“왜요?”
윤이 묻자 정언이 대답 대신 그것을 보여 주었다. 등기부등본이었다. 윤은 무심코 눈으로 서류 위의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1098, 소유자 채기원…… 채기원. 그 세 글자에 찬물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언이 채기원의 이름 위를 손끝으로 탁탁 쳤다.
“EX빌딩 채기원 소유야. 채기원이 신사동에 빌딩 두 개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 그리고 여기 강남 정 한선당 성재춘 지역구라고.”
“이게 우연일 확률이 있어요?”
“없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은 정언은 예준에게 손짓을 했다.
“주 선배, 민 선배한테 그 빌딩 채기원 거라고 빨리 얘기 좀 해 줘요.”
“월요일 아침부터 시작이 괜찮은데?”
예준이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들어 보이고는 후다닥 메시지를 보냈다. 그사이 정언은 윤의 어깨를 두드렸다.
“김 피디, 지금 임형원 기자님한테 연락해서 대포통장 사례 나왔던 강남 은행 지점 정확히 어디인지 물어봐. 그때 매핑해서 찾았다고 했으니까. 만약에 우리 생각이 맞으면 EX빌딩 인근 지점들일 거야.”
“잠시만요.”
윤은 바로 핸드폰 주소록에서 형원의 번호를 찾았다. 전화를 걸자 신호가 몇 번 가더니 수신 거부 메시지가 돌아왔다. 아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형원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 회의 중인데요 용건 문자로 남겨 주실 수 있습니까?
윤이 서둘러 답을 보내자, 형원은 채 1, 2분도 지나기 전 은행 이름을 적어 전송해 주었다. 윤은 바로 지도 앱으로 형원이 말한 은행들의 위치를 검색했다. 대부분이 채기원의 EX빌딩 인근이었다. 윤은 정언에게 메시지 화면을 보여 주며 말했다.
“DH뱅크 신사EX빌딩지점, SQ은행 강남제2지점, 한성은행 신사1지점, 모아은행 강남본점이라는데요. 전부 EX빌딩하고 한두 블록 이내 거리고, 지금 찾아봤는데 성재춘 사무실도 EX빌딩 들어가 있어요.”
정언이 화면에 뜬 은행 지점을 메모하며 물었다.
“지난번에 그 유란이랑 메이 CCTV에 성재춘 있었지?”
“있었어요.”
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언이 펜 끝으로 미간을 누르며 반대편 손끝으로 방금 메모한 종이 위를 톡톡 두드렸다. 윤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정언에게 물었다.
“그런데 에서 이걸 왜 몰랐죠? 엄대진 브레인이 안영균인 거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안영균 쪽도 뒤졌을 것 같은데요. 은행 지점도 매핑했으면 증거도 금방 찾지 않았을까요?”
“음, 나도 지금 그게 이상해. 대포통장 수량 자체가 많으니까 이 수량 맞추려면 브로커 아닌 개인이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 일단 우리가 먼저 팩트 체크하고 랑 얘기해 보자고.”
그때 민혜가 손가락을 까딱여 정언을 불렀다.
“정언, 내가 지금 보도 자료 배포 사이트 찾아보니까 어게인라이프 이름으로 된 보도 자료가 있긴 있거든?”
“보도 자료가 있다고요? 기사 내 달라고 배포하는 게 보도 자료 아냐. 어디 기사 난 게 있었어요?”
정언이 되묻자 민혜가 눈썹 위를 긁적이며 모호하다는 표정을 했다.
“뉴스 DB 서치하니까 기사 낸 적이 있긴 하더라고. 꽤 오래전이야. 뭐 별 건 아니고, 그냥 노숙자 자활 지원 봉사단체 만들었다고. 그런데 발기인이 유명 대학 교수, 기업 간부, 언론인, 평론가, 사업가, 이런 식이거든. 이름은 다 안 나와 있고 단체 대표가 윤양한이라고만 돼 있는데…….”
“윤양한이요?”
듣고 있던 윤은 퍼뜩 스치는 기시감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깜짝 놀란 민혜가 윤을 마주 보았다.
“왜 그래요? 아는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