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보좌관 불법 선거자금 문제로? 지금 뉴스 떴어?”
“네.”
윤이 바로 기사 내용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언은 한쪽 귀에 낀 이어폰을 다시 고쳐 꽂으며 물었다.
“아직 구속영장 청구 얘기 없지? 소환 후에 결정하긴 할 텐데, 그럼 빠르면 이번 주 안에 영장 청구할 수도 있겠네.”
“구속될까요?”
“가능성 높아. 최대한 빨리 해치워야 되니까 안 되면 다른 혐의로 걸 거고.”
“일정 생각하면 이번 주는 넘길 것 같은데, 맞죠? 엄대진 마음 엄청 급한가 봐요.”
윤 역시 그 기사를 보니 도리어 조금 안심이 된 모양이었다. 그렇지, 하고 대답한 정언은 다시 화면에 주의를 집중했다. 이런 상황은 도리어 투지에 불을 댕겼다.
정신없이 편집에 집중하던 정언은 무심코 곁에 놓아 둔 테이크아웃 컵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새 컵 안에 남았던 얼음까지 모조리 녹은 뒤였다.
그것을 알아차린 윤이 커피 사 올게요, 하며 말리기도 전 밖으로 뛰어나갔다. 십 분쯤 지나 커피 두 잔을 들고 돌아온 윤은 정언의 앞에 커피와 포장된 샌드위치 하나를 내려놓았다.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손목에 찬 시계를 보자 어느새 점심시간도 지난 뒤였다. 어젯밤부터 커피 외에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는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식욕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자신이 손을 안 대면 혼자 먹을 리 없는 윤까지 굶기는 꼴이었다.
“아, 응. 고마워.”
마지못해 고개를 까딱인 정언은 빨대를 입에 물며 손으로는 샌드위치의 포장을 뜯었다. 그때 갑자기 뭔가 울렁거리는 감각이 확 올라왔다. 밤샘 탓에 컨디션이 나쁜 건가 싶어 미간을 찌푸린 정언의 눈에, 책상 위에 놓인 컵 안의 커피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윤 역시 놀란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정언에게 물었다.
“지금 바닥 흔들리지 않았어요?”
착각이 아닌 듯했다. 윤이 그런 감각을 느꼈다면 이건 밤샘 탓이 아니었다. 정언은 손을 멈추며 주의를 기울였다. 아주 미세한 진동 같은 것이 이어지는 듯하더니 곧 가라앉았다. 흔히 느껴 본 감각은 아니었다.
“뭐지?”
“선배, 지금 SNS에 실시간으로 글 계속 올라와요. 지진이라는데요.”
자기 핸드폰을 확인해 본 윤이 놀란 목소리로 정언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때 두 사람의 핸드폰에서 동시에 긴급재난문자가 울렸다.
― [기상청] 12:43 동해 남부 해상 규모 6.1 지진 발생/여진 등 안전에 주의 바랍니다
지진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경상도 지역에서 이전보다 큰 규모의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는 있었으나, 지금 같은 규모는 정언의 기억에 처음이었다. 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6.1이면 엄청 큰 거 아니에요?”
그렇다면 보도국의 모든 뉴스가 지진 속보 체제로 전환될 게 분명했다. 잠깐 생각하던 정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 피디, SNS 계속 체크하고 이 부분 편집 좀 이어서 해 줘. 나 잠깐만 올라갔다 올 테니까.”
바로 윤에게 부탁한 정언은 서둘러 편집실을 나섰다. 서울에서도 진동이 느껴진 탓인지 그새 경비팀이 엘리베이터 앞을 막고 있었다. 어차피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도 아까웠던 참이라,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간 정언은 사무실 문을 열었다.
“선배!”
문을 열자마자 재희를 찾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재희가 어,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지금 전화하려고 그랬어. 보도국 전체 지진 속보 체제로 전환한대. 도 지진 속보 톱으로 올릴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국장님한테 연락 왔어. 일단 같이 올라가자.”
재희가 서둘러 정언을 데리고 국장실로 향했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국장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와, 하는 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희가 먼저 문을 열어 주며 정언을 안으로 들여보내고는 자기도 따라 들어와 문을 닫았다. 이미 와서 앉아 있던 한동이 뒤를 돌아보았다.
“왔냐?”
“네. 국장님, 괜찮으세요?”
고개를 끄덕인 정언은 선경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경은 검찰에 고발당한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담담했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까닭이겠으나, 그렇다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울 정도였다.
선경이 고개를 까딱이며 정언에게 자리를 권했다.
“일단 앉아, 정언. 안 괜찮을 건 뭐 있겠어. 걱정하지 마.”
정언은 재희와 나란히 앉아 잠깐 숨을 돌렸다. 그사이 선경이 팔짱을 끼며 한동을 보았다.
“한동, 너 오늘 회의에 TF 아이템 올리기로 했었다며? 회의 캔슬됐다고 보고 올라왔던데, 어떻게 할 거야? 갈 거지?”
한동의 얼굴은 최근 본 것 중 가장 투지에 넘쳤다. 선경의 물음에 한동은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연하죠. 무조건 갑니다. 못 먹어도 고 아닙니까.”
정언은 그 말에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었다.
“무조건 가신다고요?”
한동이 약간 흥분된 투로 대답했다.
“지금 안 하면 절대 못 해. 제보팀으로 지금 사진하고 영상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동해 남부 지역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 제보가 상당해. 거기 서온건설 시공 아파트가 많은데 죄다 내진설계 제대로 안 돼 있다고. 진솔이가 지금 제보 중에 서온건설 아파트 있는지 체크 중이고 도하가 바로 현장 날아갔어. 빠르면 오늘 뉴스부터 내보낼 수 있어.”
“그러면 지진 아이템으로 엮어서 올리실 겁니까?”
“오후 회의에서 서온건설 얘기 제외하고 내진설계 미비 관련해서 취재 중이었다고 밀어붙일 거야. 큐시트하고 보도정보시스템에는 방송 직전까지 제목 노출 없이 지진 TF, 내진설계 관련 건이라고만 올리면 돼. 생방 들어가면 그때부터 편집해도 안 늦어. 이건 무조건 패스야. 안 돼도 내가 되게 한다.”
한동의 말대로 지금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 아이템이 회의를 통과할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한동이 생방송 도중 바로 원고를 교체하는 위험 부담까지 감수할 생각을 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방송사고로 취급당해 후속 보도가 불가능한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반드시 이 취재 내용을 내보낼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한 정언은 다시 한동의 계획을 확인했다.
“오늘 방송은 그렇다 치고, 그 뒤는…….”
“다른 일 안 터진다면 여진이나 추가 피해 포함해서 최소한 수요일 정도까지는 지진 뉴스 톱으로 올릴 가능성 높아. 먼저 내진설계 미비하고 부실공사에 초점 맞춰야지. 기사 마지막에 계속 후속 보도 나갈 거라고 예고하고. TK 한선당 텃밭 아니냐. 작년 지진 이후로 그 지역 여론 아주 민감해. 후속 보도 있다는데 자기들이 무슨 수로 막겠어. 절대 못 해.”
한동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한선당에서 지금 이 일을 예의 주시하고 있을 건 확실했다. 특히 엄대진이라면 더 민감할 터였다. 한동이 말을 이었다.
“감리 조작에서 자재 문제로 넘어갈 거야. 신도시 지역하고 서온건설이 시공한 임대주택에 내진설계 안 되게 자재 속였고, 그걸로 입주민들한테 문제 발생했다는 게 다음, 마지막으로 서온건설하고 공공기관, 한선당 커넥션 터트린다. 그럼 니들이 받아서 방송할 수 있잖아. 너 나한테 처음 얘기한 플랜이 이거 아냐.”
선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봐. 해 봐야 아는 거야. 일단 해 보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안 하면 그냥 안 되는 거 아냐.”
“그럼요.”
한동이 맞장구를 쳤다. 선경이 정언에게 물었다.
“정언, 지금 편집 들어갔니?”
“네. 최대한 서두르고 있습니다. 모레는 종편실 넘어갈 겁니다.”
정언의 대답에 선경이 뭔가 잠깐 생각하더니 알겠다는 표시를 했다.
“모레, 오케이. 취재 분량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시간 빠듯하겠네. 편집 마치는 대로 우리끼리 다시 한 번 확인하자. 만약에 얘들이 영장 청구할 생각이라고 해도 나하고 사장님 검찰 소환하고 하면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걸려. 청구해도 영장 발부될 리 없지만 만약에 된다면 당연히 적부심 갈 거야. 그러면 이번 주는 무조건 버틸 수 있으니까 너희들은 다른 생각 하지 마. 알겠어?”
선경 역시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정언이 네, 하고 대답하자 선경이 정언을 재촉했다.
“정언, 넌 빨리 내려가 봐. 시간 없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서둘러 국장실을 빠져나온 정언은 다시 편집실로 돌아왔다. 한쪽에는 핸드폰을 켜 놓고 정신없이 영상을 앞뒤로 돌리고 있던 윤이 뒤돌아보았다.
“어디 갔다 오셨어요?”
정언은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국장실. 오늘부터 에서 TF팀 취재 내용 나갈 거야.”
“어떻게요?”
윤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정언은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았다.
“내진설계 미비 건으로 시작하신대. 그 지역 혁신도시 쪽 서온건설 시공 아파트에서 제보 들어오는 건이 많은 것 같아.”
“안 그래도 지금 SNS에 실시간으로 피해 사진하고 영상 엄청나게 올라오긴 하던데요. 그래도 만에 하나 회의에서 킬 당하면…….”
윤이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정언은 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장님이 무조건 하신다고 했어. 한다면 하는 분이니까 우리는 우리 할 일 하자고.”
“알겠습니다.”
즉각 대답한 윤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정언은 모니터에 눈을 둔 채 생각했다. 단 한 번의 마지막 반격. 자신들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이미 정해진 흐름을 역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흐름이 아닐까. 작은 물방울이 모여 만드는 거대한 격류.
물은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었다. 순리란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종착점은 언제나 옳은 길일 거라는 믿음은 오랫동안 정언을 지탱해 준 유일한 신념이었다. 정언은 잠시 눈을 감았다.
기도는 간결했다.
마지막에 도달한 곳이 부디 모두가 있어야 할 그곳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