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정언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엉망진창이 된 머릿속보다 말이 더 빠르게 쏟아졌다.
“역주행한 트럭이…….”
정언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손을 움켜쥐었으나 떨림은 도리어 더 심해졌다. 서늘한 방 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마로 식은땀이 맺혔다. 깊은 물속에 그대로 빠진 것처럼 귀가 먹먹해졌다. 창묵의 목소리가 몇 겹을 덧씌운 창 너머에서 말하는 것처럼 멀게 들렸다.
“그 트럭이 어떤 트럭인지는 아십니까?”
창묵이 물었다. 입이 붙어 버린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윤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정언의 팔을 살짝 잡으며 선배, 하고 속삭이듯 정언을 불렀다.
그러나 정언은 그 소리도 듣지 못한 채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창묵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창묵이 잠깐 기억을 더듬는지 관자놀이 부근을 누르다 입을 열었다.
“서현국이 을정신도시 현장에 취재 나간 길이었습니다. 그 공사 현장 출입하던 덤프트럭 운전사가 서현국 차를 그냥 역주행으로 받아 버렸죠. 신고가 된 상황에서 사설 구급차가 먼저 도착했어요. 그런데 서현국을 굳이 현장에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더 가까운 병원도 있었거든요. 왜 그랬느냐. 당시 구급차 기사 증언이 있었습니다. 무조건 먼 병원으로 옮기라는 오더를 받았다. 누구한테 받았느냐. 그건 말할 수 없다. 이 증언 기록 나중에 지워집니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쿵쿵대는 소리가 고막을 가득 채웠다. 창묵의 말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그 목소리는 어지럽게 흐트러질 뿐이었다.
“트럭 운전사는 당시에 음주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서현국하고는 어떤 관계도 없었죠.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였는데 집행유예 받고 풀려났어요. 그 사람 반년도 못 살고 죽었습니다. 현장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데, 글쎄요. 그거 자살이라고 믿는 사람 있겠습니까?”
“……그게 사고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죠?”
입 안이 바싹 말랐다. 혀가 움직이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으나, 이미 통제를 잃은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었다. 펜을 움켜쥔 손끝이 새하얗게 질렸다. 잠깐 침묵하던 창묵이 한쪽 눈썹을 약간 찌푸리며 대답했다.
“엄대진이 하조대 방파제에서 본인 입으로 얘기했으니까요. YBS 서현국 아시죠? 서현국 내가 죽였습니다. 최 의원님 하나 여기서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에요. 정확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시에 서현국 사망에 의문 가진 사람들 있었습니다. 저 그때 사회부에 있었습니다. 구조원 증언 얘기 경찰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나왔던 겁니다. 그런데 다들 입 다물었어요.”
― YBS 서현국 아시죠? 서현국 내가 죽였습니다.
들어 본 적도 없는 말이 엄대진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 환청은 소름 끼치도록 선명했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정언은 문득 엄대진을 떠올렸다. 바를 정에 말씀 언 자를 쓰냐고 묻던 그 얼굴.
알고 있었던 건가.
되짚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중으로 보안된 오피스텔 주소를 알아내 빈집털이를 가장하며 경고했고, 남편의 회사를 알아내 전화를 걸고, 번호 없는 문자로 사찰 협박을 하고, 자동차의 브레이크 호스를 끊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한 이들이었다. 서정언이 서현국 딸이란 건 문서 한 장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걸 알면서, 일부러…… 그 순간 마치 감전된 것처럼 강렬한 감각이 전신을 훑고 내려갔다.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들은 마른 나무를 태우는 불길처럼 머릿속으로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정언은 창묵을 뚫어지게 보았다.
“최영직 기자가…… 최영직 기자는 확실히 포섭됐던 겁니까?”
더듬거리며 물은 말에 창묵이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서현국 죽자마자 엄대진 취재 그만둔 거 보면 서현국이 왜 죽었는지 진짜 이유 알았을 겁니다. 죄책감이 있었던 건지 뭔지, 금방 현직 그만두긴 했습니다만…….”
말끝을 흐린 창묵이 퍼뜩 멈칫하더니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창으로 들어오던 마지막 햇살도 지평선을 넘어가고, 바깥에는 어스름이 깔린 지 오래였다. 창묵이 마른기침을 두어 번 뱉고는 남은 물을 마셨다.
“이 얘기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보내 드린 녹취파일 확인해 보시고 혹시 도움을 드릴 부분이 있다면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언은 거의 기계처럼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창묵의 오피스텔을 나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속의 차 키를 찾아 움켜쥔 정언에게, 곁에 선 윤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서현국 기자님 얘기가 너무 충격인데요. 방송국에 이거 아는 사람들 있을까요?”
정언은 걸음을 멈췄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기분이었다. 호흡이 목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숨이 막혀 저도 모르게 셔츠 칼라 부근을 그러쥐자, 멈칫한 윤이 정언의 팔을 잡아 자기를 보게 했다.
“선배.”
온몸의 감각이 전부 낯설었다. 실을 달아 조종하는 인형처럼,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느낌은 불쾌했다. 정언은 멍하니 윤을 마주 보았다. 분명히 시선을 맞추고 있는데도, 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그대로 분해되는 것 같았다. 윤이 눈을 크게 뜨며 정언을 붙들었다.
“선배, 괜찮아요? 얼굴이…….”
정언은 윤의 손을 떼어 냈다.
“아무것도 아냐. 빨리 가자.”
애써 태연한 척 내뱉은 말은 끝이 떨렸다. 윤이 선배, 하고 다시 한 번 정언을 불렀으나 정언은 차에 올라타 바로 문을 잠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윤이 창을 두드렸다. 그러나 정언은 창을 열지도 않은 채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정언의 뒤를 윤이 서둘러 쫓아왔다.
무슨 정신으로 방송국으로 돌아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당장 영직을 만나야 했다. 차에서 내린 정언은 뒤따라 바로 곁에 차를 세우며 앞을 가로막는 윤에게 캠코더를 건넸다.
“캠 가지고 바로 사무실로 올라가. 내 컴퓨터 켜져 있을 테니까 메일함에서 녹취파일 받아서 팀원들하고 확인하고, 인터뷰…….”
“선배, 저 좀 보세요. 잠깐만요.”
윤이 정언의 말을 끊으며 정언의 어깨를 쥐었다. 윤이 이러는 걸 보니 거울을 굳이 보지 않아도 얼마나 엉망진창인 꼴일지 안 봐도 뻔했다.
정언은 윤의 손을 떼어 냈다. 윤 앞에서 형편없는 꼴을 보이는 건 싫었다. 자신조차도 상상한 적 없는 늪에 빠지는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윤에게 그런 기분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비켜.”
“어디 안 좋으세요? 갑자기 왜 그러시는데요.”
윤이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정언의 안색을 살폈다. 조금만 더 버텼다가는 윤 앞에서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았다. 정언은 윤을 밀어내며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인터뷰 내용 공유하고, 송 작가님하고 구성안 수정해.”
“어디 가시려고요? 선배, 대답 좀 해 주세요. 네?”
윤이 뒤를 쫓아오며 물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정언이 아무 말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윤이 선배, 하고 다시 한 번 부르며 정언의 팔을 잡았다. 머릿속에서 날뛰는 분노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따라오지 마!”
정언은 있는 힘껏 윤의 손을 뿌리쳤다. 정언의 격렬한 반응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윤이 한 걸음 물러났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탄 정언은 바로 닫힘 버튼을 눌렀다. CP실이 있는 8층을 연이어 누르자, 닫히는 문 사이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을 마주 보는 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문이 완전히 닫힌 순간 정언은 엘리베이터 벽에 허물어지듯 기대섰다. 등으로 차가운 냉기가 스몄으나 온몸은 타 버릴 것 같은 열기로 떨렸다. 층수 표시창의 숫자가 천천히 올라갔다.
마침내 숫자가 8에 멈추며 문이 열렸다. 끝없이 긴 복도는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다. 속에 있는 것을 모조리 다 토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울렁거리는 가슴 위를 꽉 누른 정언은 잠시 숨을 골랐다.
복도 끝의 문 앞으로 걸어간 정언은 거기 붙은 선명한 명패를 보았다.
최영직 CP.
노크조차 없이 문을 벌컥 연 정언은 안으로 들어섰다. 있는 힘껏 문을 닫자 넓은 방 안으로 쾅, 하는 소리가 잔상을 남기며 번졌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영직이 불쾌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다. 누가, 라고 하려는 듯 입을 열었던 영직이 다음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누구야.”
정언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놀란 듯, 혹은 반가운 듯한 얼굴을 하며 영직이 가까이 다가왔다.
“정언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어릴 적 자주 들었던 영직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아빠랑 같이 일하는 동생이야. 영직이 삼촌이라고 불러.」
아빠가 어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던 말이 환각처럼 머릿속을 한 번 휘돌고 사그라졌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정언은 영직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저 서정언 피디로 여기 온 겁니다.”
내뱉은 말은 딱딱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말투가 호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잠깐 멈칫한 영직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선 채 정언을 마주 보았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저희 아버지 돌아가신 이유 알고 계셨습니까?”
서론 없이 바로 직구를 던지자 영직의 눈썹이 꿈틀했다. 정언은 그 이지적이고 싸늘한 얼굴이 한순간 동요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유라니, 무슨 이유. 그건 사고…….”
“사고가 아니라는 거 알고 계셨냐고 묻는 겁니다.”
영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르자, 정언을 응시하던 영직이 소파를 가리켰다.
“이쪽으로 앉아. 앉아서 얘기하자.”
“저 CP님하고 한가하게 앉아서 얘기할 마음 없습니다. 대답해 주시죠.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서 현직 떠나신 거고요?”
영직이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눈가를 눌렀다. 분명 당혹감에 가까운 표정이 그 얼굴에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