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해당 병원 간호사의 증언입니다. 저희는 김 모 원장에게 직접 해명을 듣기 위해 수소문했으나, 김 모 원장은 윤씨의 죽음 이후 갑자기 캐나다로 이민을 가 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취재 도중, 한 제보자가 김 원장의 이민 과정에 관해 저희에게 연락을 해 왔습니다.”
윤의 멘트가 끝나자 황정률 목사의 녹취록이 덧붙여졌다.
『정 사장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갑자기 누가 최대한 빨리 캐나다로 이민을 와야 된다. 목사님이 좀 알아봐 달라. 그래서 제가 이민 컨설팅 업체를 소개해 줬습니다. 그런데 이 업체 대표가 나중에 저한테 그래요. 목사님, 이 사람 좀 이상해요. 그래서 왜 그러냐, 물어보니까 한국 외교부에서 직접 전화가 왔대요. 김 원장 건 빨리 처리해 달라고. 실제로 더 먼저 오퍼를 넣은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이 이례적으로 처리가 굉장히 빨리 됐죠.』
스크린에 정양훈 사장과 조석문 원장을 실루엣으로 표시한 그림과 자막이 나타났다.
“제보자에게 김 원장의 이민 처리를 부탁한 정 모 사장은 한선당 해외동포위원회 소속 당원이었습니다. 김 원장이 캐나다에서 취업한 한인 병원의 조 모 원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 원장은 십여 년 전 한선당 의원 자녀들의 병역비리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한 인물입니다.”
과거 에서 방영했던 병역비리 편의 자료 화면이 등장했다. 조석문이 작성했던 허위 진단서와, 해당 의원들이 모르는 사실이라고 답변하는 장면들이 지나갔다. 윤은 카메라를 응시했다.
“이를 더 이상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유사한 사례가 더 있으리라 보고 추가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취재 결과 서온건설에 재직하던 이 모 과장과 고 모 과장 역시 해당 출장 업무에 차출되었던 인물로, 두 사람 모두 사망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화면에 이훈주 과장의 사망확인서가 등장했다.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억지로 떠밀려 산을 올라가는 재연 화면 위로 재희의 목소리가 얹혔다.
“이 모 과장은 야산에서 추락해 사망했으며 등산 중 추락사로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인은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건 당일 고인은 셔츠와 구두 차림이었고, 함께 있는 의문의 남성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등산 도중 추락사했다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윤은 재희의 멘트를 받아 말을 이었다.
“또 다른 인물인 고 모 과장은 서온건설 하청업체를 운영하던 허 모 사장이 운전하던 차에 치어 사망했습니다. 유가족은 이를 고의로 보고 허 사장에 대한 소송을 진행했으며, 법원에서 허 사장의 살인 혐의가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허 사장은 계속해서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대역으로 녹화한 허주경 사장의 인터뷰가 나오기 시작했다. 윤은 서둘러 테이블 아래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입 안이 전부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찬수가 잘하고 있다는 사인을 보냈다. 윤은 보일 듯 말 듯하게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하청 입찰하는 데마다 따라다니면서 담당 직원들 접대했습니다. ……한정식집에서 식사 대접하고 십만 원, 이십만 원 주던 게 일식집, 룸살롱, 이런 데로 가면서 백 단위, 천 단위로 돈이 뛰었죠.』
성우가 녹음한 대역 인터뷰는 지나치게 매끄러운 감이 없지 않았으나,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고 과장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죠. 본사 회계 과장이다, 그러니까 저는 좀 놀랐습니다. 어쨌든 본사 직원이니까 제가 거절하기가 뭐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나갔더니 거기서 고 과장 얘기를 한 겁니다. 자기가 뇌물 전달책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 말은 자기가 이거 누가 받는지 다 알고 있다.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냐, 매번 돈 이렇게 갖다 바치면서도 언제 모가지 잘릴지 몰라서 덜덜 떠는 거 언제까지 할 거냐. 발상을 바꿔 봐라. 이 리스트 언론에 터트리겠다고 협박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곧 대역 배우들이 연기한 짧은 클립이 재생됐다. 허주경 사장이 한밤중에 천중헌 이사를 만나 대포폰을 건네받는 장면이었다. 클립 위로 정언의 내레이션이 흘렀다.
『고 모 과장이 허 사장과 접촉한 걸 알게 된 서온건설 측에서는 허 사장에게 고 모 과장의 살해를 사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허 사장과 동승해 현장에서 고 모 과장의 살해를 종용하며 협박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 계장, 조창식이었습니다.』
스튜디오로 다시 앵글이 돌아왔다.
“허 사장은 동승자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그건 허위 진술이라며 CCTV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이 CCTV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 영상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이 직접 증거 조작을 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재희의 질문에 대답한 윤은 스크린에 나타난 CCTV 영상을 가리켰다.
“검찰이 제출한 해당 영상은 용인휴게소 인근 CCTV인데, 보시다시피 야간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화질이 매우 낮습니다. 조수석은 거의 까맣게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도로교통부 확인 결과, 사건 당시 용인휴게소 인근 CCTV는 야간 촬영이 가능한 고화질 기종으로 전수 교체되어 있었습니다.”
도로교통부에서 온 용인휴게소 인근의 CCTV 교체 관련 답변과 경찰대 신우령 교수로부터 온 영상 감정서의 내용이 화면에 떴다. 중간 부분의 소견이 확대되며 빨간색 밑줄이 그어졌다.
“전문가는 고의로 해상도를 낮추고 조수석의 밝기를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재희가 입을 열었다.
“허 사장은 서온건설 천중헌 이사가 자신에게 직접 이 일을 지시했으며, 변호사도 붙여 주었다고 주장합니다. 천중헌 이사가 소개해 준 변호사는 현 신환석 민정수석이 소속돼 있던 로펌 평진 소속의 공윤승 변호사였습니다. 공 변호사는 이 사건의 재심을 포기하라고 종용했으며, 허 사장 측에서 제시한 증거조차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공 변호사의 답변을 듣고자 했으나 평진 측은 취재에 불응했습니다. 해당 재판의 재판부 역시 저희의 공문에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재판의 담당 판사인 김 모 판사는 현재 청와대 신환석 민정수석과 오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희의 멘트 도중 호형이 성옥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건넸다. 성옥이 재빨리 스케치북에 뭐라고 써서 이쪽을 향해 들어 보였다.
― 편성국에서 연락 시도 중, 실검 1위 유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위에서도 드디어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앞으로 절반. 편성국이라면 심석건이 직접 연락을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주조정실과 부조정실 쪽 문을 아예 걸어 잠갔다고 했으니 실력 행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재희의 말처럼 지금 이 상황에서 생방송을 중단한다는 건 더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짜릿한 감각이 등줄기를 달려 내려갔다. 카페인을 한 번에 들이부은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흘끗 거기 눈을 준 재희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양 말을 이었다.
“이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박 과장의 감시역이었던 조씨의 행방을 쫓던 제작진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조씨가 거주하던 연립에서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김정환 교수가 보내 주었던 부검 보고서가 화면에 등장했다. ‘예리한 흉기에 의한 흉부 자창, 두 종류의 상처, 살인 경험이 있거나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인력’이라는 내용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곧 조창식이 살던 연립 근처의 동네 풍경을 스케치한 화면에서, 담당서로 넘어간 네 대의 휴대폰이 화면에 비쳤다. 윤은 마르는 입술을 축였다.
“사건 현장에 남아 있던 휴대폰 디지털 포렌식 결과, 조씨와 또 다른 인물 사이의 녹취파일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곧 조창식의 핸드폰에 남아 있던 손경일과의 녹취 내용이 재생됐다.
『입금이 안 돼서 전화 드렸습니다.』
『아니, 당장 그 돈 없다고 어떻게 돼? 상황 돌아가는 거 알잖아. 우리 쪽에서 지금 뭐 1원 한 장도 마음대로 막 움직일 수가 없다고.』
『그럼 애들 편에 현금으로라도 보내 주셔야 할 거 아닙니까. 감방 가도 지금 이것보다는 낫겠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일을 똑바로 했어야 할 거 아냐! 내가 위에서 아주 돌아가면서 얼마나 깨졌는지 알아? 너 이 새끼, 일 허술하게 처리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여태까지는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 일로 상황 아주 개같이 됐다고!』
고함을 치는 손경일의 목소리가 생생해, 윤은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말아 쥐었다. 손경일. 그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싸늘해졌다. 숨을 들이쉰 윤은 앞을 보았다.
“조씨와 통화를 한 상대는 경일용역 대표인 손경일이었습니다. 조씨는 금전 문제로 손경일과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이 조창식 집 인근 CCTV를 분석한 결과, 용의자는 두 명으로 좁혀졌습니다. 조씨와 경일용역에서 함께 일했던 김 모 씨와 장 모 씨라는 인물입니다.”
곧 에서 짧게 방송했던 해당 뉴스의 화면이 나갔다. 경찰이 저수지에 빠진 차를 끌어올리고 현장을 통제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 역시 얼마 후 강원도 양양의 한 저수지에서 사체로 발견됩니다. 두 사람에게서는 공통적으로 졸피뎀과 알코올 성분이 검출되었으며, 뒤에서 목이 졸려 죽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의 조사 결과 유력한 용의자는 손경일이었습니다.”
수배 전단에 박힌 손경일의 얼굴이 선명했다. 윤은 차가워지는 손끝을 쥐었다 펴며 호흡을 눌렀다.
“살해당한 조씨와 김씨, 장씨는 손경일이 가장 아끼던 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손경일은 왜 이들을 제거해야 했을까요? 우리는 손경일의 부하 중 한 사람이었던 이 모 씨를 통해 그 까닭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이원욱과 진행한 인터뷰 화면 일부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블러 처리가 된 이원욱의 얼굴이 뿌연 필터 너머로 흐릿했다. 헐떡이는 이원욱의 목소리는 변조된 채로도 생생했다. 조창식과 김성학, 장영관의 이름은 묵음으로 처리된 뒤였다.
『취재 오고. 그 뒤로 위에서 뭔 오더가 왔나 봐요. 창식이 형이 집 밖으로 못 나왔어요. 외국으로, 아예 멀리 내보내려고 했는데, 형이 전과가 많으니까. 근데 며칠이면 될 줄 알았는데, 우리가 돈줄이 다 묶여 버렸어요. 사장도 아주 뒈지려고 했다고, 그것 때문에. 위에서 뭘 못 하게 하니까.』
『돈줄이 왜 묶인 겁니까?』
『그건 뭐 위쪽 사정이니까 우리는 모르고, 그게 아무튼 한 달, 두 달 넘어가니까 창식이 형이 사장하고 엄청 싸웠다고요. 사장도 위에서 만 원 한 장 마음대로 쓰지 말라고 그랬다니까. 우리도 못 받은 돈 많았단 말이에요. 자기도 죽겠는데 형이 자꾸 뭐 어디다가 꼰지르겠다, 그렇게 말을 했다는 거지. 뭐 기자나, 그렇겠지. 그러니까 사장이 성학이하고 재선이 불러서 창식이 죽여라, 그런 거라고요. 성학이, 영관이, 창식이 형, 나, 이렇게 넷이 제일 오래 같이 일했거든요. 그런데 형을 죽이라고 그러니까, 애들도 막 선뜻 그게 안 되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된 거죠?』
『돈. 돈 때문에. 몇 달 돈이 막히니까, 우리도 빠듯하잖아요.』
이제 곧 진짜 본론에 접근할 시간이었다. 윤은 자신을 정면으로 찍는 카메라를 응시했다.
“조씨의 핸드폰에서 나온 녹취록이나 이씨의 증언을 보았을 때, 더 위에서 이들에게 일을 지시하는 사람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과연 누구였을까요? 제작진은 조씨가 죽기 직전 접촉한 인물을 만나 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조씨가 연락했던 사람은 사회부 임형원 기자였습니다.”
형원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러고 보니 며칠째 쪽에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형원은 무사한지 문득 궁금해졌다. 형원이 화면 안에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