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ir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에서 첫 화로 선택한 건 900회에서 미처 다 다루지 못한 이야기였다. 경일용역의 실체, 서온건설과 경일용역의 커넥션, 엄대진과 서온건설이 그간 경일용역의 손을 빌려 살해한 사람들을 꼼꼼히 다룬 첫 화의 반응은 예상 외로 컸다.
인터넷에 입소문이 퍼진 건 순식간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채널 구독자 단위가 달라질 정도였다. 회를 거듭할수록 반응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한 달 사이 인터넷에서 프론트라인과 를 모르면 간첩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턱을 괴고 마우스를 움직이던 지혁이 목을 뽑아 말했다.
“어제 올린 영상 지금 22만 찍었어요. 추이 오름세 되게 좋은데요.”
재희가 팔짱을 끼며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벌써? 첫 회는 10만까지 3일 걸렸는데 입소문이 좀 나니까 확실히 빠르네. 팀하고 쪽은 어때?”
“거기는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느린데 낙수효과가 있어요. 채널 구독하면 일단 같이 노출이 되니까. 도 지난주 회차까지 전부 40만 넘겼고 도 오늘 지나면 15만 찍을 것 같아요. 우리는 첫 회가 지금 70만 찍었는데, 구독자 붙는 게 빨라서 전체적으로 파이가 빨리 늘어나는 느낌인데요.”
지혁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편집은 피디들이 각자 담당했으나, 예고편이나 후작업 등 기타 자잘한 사항들은 지혁과 윤이 나눠 맡고 있었다.
영상은 매주 목요일 자정 업로드라, 월요일 밤부터 수요일 오전까지는 거의 스튜디오에 살아야 했다. 어지간히 피곤할 텐데도 반응이 좋으니 기운이 나는 모양이었다.
“인터넷 반응도 체감이 다르다니까. 아까 출근 시간에 메인 확인하니까 정화재단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떠 있더라. 우리 영상 그대로 받아쓰기해서 우선 기사 올린 데 많은데, 포항명인고 쪽에 대선고하고 남정건설 간부들 관련 자료 구할 수 있냐고 연락이 많이 갔나 봐.”
석현의 말투도 들떠 있었다. 이번 주 주제는 엄대진과 정화재단이었다. 엄대진의 아버지인 엄중길이 과거에 어떻게 정화재단을 이용해 남정건설과 정계를 잇는 커넥션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상세히 다룬 회차였다.
보안이 철저해 업로드 전에는 무슨 주제가 나올지 외부에서는 알 수 없었다. 때문에 기자들이 업로드를 기다렸다가 바로 영상을 보고 기사거리를 찾아내 연락하는 게 일상이었다.
자정 업로드라 그때부터 전화와 메시지가 불이 나는 경우가 많아, 팀원들은 아예 목요일 자정부터 아침까지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려놓곤 했다.
“에도 남정건설 관련해서 물어보는 전화 엄청 왔다던데요.”
정언이 한마디를 보탰다. 골절된 어깨가 많이 회복돼, 요즘은 벨포 밴드 대신 보호대를 하고 다니는 중이었다. 아직 자유롭게 운전을 하고 다닐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남들이 너 사고 났던 애라며 뜯어말릴 만큼 일하는 건 여전했다.
팀원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재희가 짧은 한숨을 뱉고는 미간을 문질렀다. 최근 들어 사방에서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이며 방송 출연 요청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모든 팀원들이 다 그랬지만 특히 가장 심각한 건 재희였다. 재희의 다이어리는 각종 일정으로 빼곡해, 빈 날짜가 거의 하루도 없을 정도였다.
“인기 많아지는 건 좋긴 한데 신경 써야 될 게 너무 많네. 일단 오케이.”
충혈된 눈가를 누른 재희는 건너편에 앉아 있던 현진에게 말했다.
“한 작가님, 내가 어제 1회 다시 보니까 우리가 아직 버릇을 못 버렸어요. 전체적으로 흐름 확 당기고, 영상 중요한 부분 몇 분씩 잘라서 돌아다녀도 무리 없게 가야 될 것 같아. 요즘은 어린 친구들이 그렇게 특정 부분 캡처하거나 몇 분 단위로 잘라서 커뮤니티나 SNS에 올리는 게 익숙하다고 하더라고요. 짧게, 짧게 가고 약간 튀어도 괜찮으니까 멘트나 자막 부분을 좀 더 감각적으로 써 보죠. 그리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게 우리가 각자 캐릭터가 있으니까 이게 좀 살았으면 좋겠다 그거야. 이 부분 고민해 보고 내일 오전 팀 회의 때 다시 얘기하죠.”
아마 여기저기서 에 대한 반응을 찾아본 모양이었다. 그 바쁜 사이 시간을 쪼개 모니터링을 했나 싶어 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현진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그래, 하고 대답했다. 재희가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쪽에서 서현국 기자님 건 우리 쪽에서 팔로우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
현국의 이름을 듣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정언에게 쏠렸다. 그러나 정언은 대답 대신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그 얼굴을 잠시 보고 있다가 곧 눈을 돌린 재희가 가볍게 손뼉을 딱 쳤다.
“지금 우리 채널로 나가는 라이브 뉴스는 시간이 짧아서 충분히 다루기가 힘들대. 이건 우선 민 피디랑 최 피디가 하자. 이따 전 부장님 출근하시면 얘기해 봐. 자료가 상당히 많다는데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파악하고, 내일 회의 때 같이 한 번 보자고. 둘이서 팔로우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안 되면 김 피디랑 내가 백업하는 걸로.”
윤이 네, 하고 대답하자 재희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사이 벽에 걸린 스케줄 보드를 눈으로 확인한 정언이 재희에게 물었다.
“스케줄 이거 확실히 다 표시된 건가? 선배랑 김 피디, 오늘 저녁에 OBC 인터뷰 잡혀 있는 거 맞아요?”
“아, 응. 7시 30분으로 돼 있나?”
재희가 몸을 돌려 보드에 적힌 일정을 보았다. 정언이 자기 다이어리를 펼쳐 보고는 눈썹 위를 긁적였다.
“ 2부에 나가는 거죠? 인터뷰 마치고 정리하면 9시쯤 되겠네. 9시 30분에 임형원 기자님하고 만나기로 한 건 기억하고? 그쪽에서 둘이 넘어오면 20분쯤 걸리나?”
“선배가 먼저 가 계세요. 인터뷰 끝나는 대로 제가 강 피디님이랑 이동할게요.”
재희 대신 윤이 대답하자 정언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나 5시에 한남동에서 주 선배하고 인터뷰 있어. 그거 끝나고 시간 봐서 임 기자님 약속 장소로 넘어갈게.”
“지난번에 임 기자님이 SO 컴퍼니 얘기하시지 않았어요?”
론칭 직전 형원을 만났을 때, 형원이 곧 채기원과 직접 접촉할 거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서온건설과 엄대진이 자신을 이용하고 버릴 작정이라는 걸 알게 된 채기원이 해외 도피 중 먼저 쪽에 연락을 해 왔다는 것이었다.
“ 팀이 청도에서 채기원 만났대. 그 팀에 페이퍼컴퍼니 자료 전부 넘겼다네. 주말에 한국 들어올 거고, 입국하는 대로 특검팀이 바로 소환할 거라고 하더라고.”
자기 다이어리를 한참 들여다보며 정언의 말을 듣고 있던 재희가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이송욱 기자한테도 연락 왔었잖아. 그거 언제야?”
“그건 내일 오후에. 이송욱 기자가 우리 스튜디오로 오겠다고.”
정언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재희는 윤에게 시선을 주었다.
“JTV 팀에서 같이 오겠다고 하지 않았어? 거기서 나랑 김 피디 얘기했었지?”
얼마 전 JTV의 시사 토크쇼인 에서 게스트로 재희와 윤에게 출연 요청이 들어온 것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윤은 들고 있던 펜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누르며 미간을 약간 좁혔다.
“ 논조가 좀 걸리는 데가 많다고 기획안하고 취재 방향 협의 없으면 안 나가겠다고 하셨었는데요.”
윤의 말을 듣고서야 생각이 난 듯 재희가 자기 머리를 탁탁 쳤다.
“아, 그랬지. 김 피디, JTV에서 혹시 추가로 뭐 메일 온 거 있나 좀 봐 줄래? 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저께부터 메일 확인을 하나도 못 했거든.”
“네.”
윤이 팀의 공식 메일 계정을 확인하는 사이, 석현이 의자를 빙글 돌려 빼곡하게 채워진 스케줄 보드를 보다가 기가 찬다는 투로 내뱉었다.
“어떻게 된 게 종편에서 더 신났어?”
“에서 그동안 숨겼던 거 다 터트리면서 JTV 쪽에서 특종 보도를 계속 내잖아. 그쪽이 하던 가닥이 있어서 엄청 자극적으로 이슈를 소비하니까 전체적으로 시청률이 좀 올랐대. 그래서 지금 다른 종편에서도 하고 우리 쪽 계속 부르는 거지, 뭐. 우리도 유튜브만 파는 것보다는 파급력 있으니까.”
재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종편 채널 출연 같은 건 YBS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물불을 가리는 건 무의미했다. 대부분의 팀원들은 어디서든 인터뷰 요청이나 출연 제의가 있으면 무조건 응하고 있었다.
물론 그걸 곱게 보는 사람만 있을 리 만무했다. VIP 운운하며 종편 출연이나 인터뷰를 자제하라는 요청을 받은 것만도 여러 번이었다. 발신번호 없이 오는 사찰 문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쪽에서도 더 잃을 게 없는 판이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호형이 들어섰다. 취재를 다녀온 듯, 기세가 한풀 꺾인 더위에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자리에 앉은 호형이 손부채질을 했다.
“아이고, 더워 죽겠네. 일이 좀 재밌게 돌아가는 거 같아요.”
“뭐가 또 재밌어? 난 이제 누가 재밌는 일 생겼다고 하면 막 불안하더라.”
철진이 질색하는 표정을 하자 잠시 숨을 돌린 호형이 낄낄거렸다.
“이거 정보현이 진짜 국회 진출할 생각인가 봐. 국회에서 현선준 기자 만났는데 정관수 있잖아요, 정보현 아버지. 정관수랑 정보현이 한선당 입당한 거 알았어요? 그쪽에서 정관수가 한선당 의원들하고 지역 유지들 사이에서 작업 시작했다는 소문 있대요. 한선당 노원 정 송형창이 지금 골프장 캐디 성폭행 건으로 재심 중인데 거의 실형 확정이라고 봐야 되고, 그러면 그 자리 공석이라 내년 보궐 나올 거라고. 거기 정보현이 나간다는 얘기가 기정사실이라는데요. 지금 다니는 교회가 거기 지역구라면서요.”
“안영균은?”
철진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호형이 에어컨 앞으로 의자를 움직이며 손을 휘적거렸다.
“구치소 들어간 사위가 문제겠어요, 지금? 일 터지고 안영균 검찰 소환되자마자 정관수가 바로 정보현 친정 데려갔다면서요. 캐나다 있던 애들도 불러들였다는데.”
“안영균이 자기 선에서 다 안고 간다고? 정보현 정계 진출하게 내버려 두고?”
정언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묻자, 호형이 몰라,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들은 얘기니까. 안영균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지. 아직 검찰에 입 안 열었다며. 검찰에서 안영균 자택하고 사무실 싹 수색해서 증거 털었는데도 의원님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잖아. 다 자기 선에서 한 거라고.”
“엄대진이 안영균은 보호해 주겠다고 했나?”
정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하는 얼굴에 예준이 턱을 긁적였다.
“아니면 안영균하고 정보현이 엄대진 버릴 생각했을 수도 있지. 어차피 안영균이 여기까지일 것 같으면 안영균이 엄대진한테 몸도 마음도 다 바치고 배신당한 충신 프레임 짜고, 정보현이 충신의 아내로 드라마 쓰면서 썩은 줄 버리고 갈아탈 수도 있지 않아?”
“그것도 말은 되네요. 정관수가 괜히 엄대진하고 줄 대진 않았을 텐데, 바로 딸 데려가고 애들까지 캐나다에서 다 불러들인 거 보면 뭔 그림이 있나 본데? 방송 소스 떨어질까 봐 알아서 잘들 해 주네.”
정언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했다. 그 대화를 들으며 재희가 다이어리에 뭔가를 메모했다. 아마 이 얘기를 확인해 보려는 듯했다. 자리로 돌아가려던 호형이 아, 하며 말을 덧붙였다.
“참, QBC 에서 지금 청와대하고 엄대진이 대선 전에 딜 끝났다는 거 내부 제보자 확보했답니다. VIP 퇴임 후에 친인척 비리 문제 무조건 덮어 주고, 장학재단 설립해서 돈세탁 할 플랜 짰다고. 공영방송 장악 부분 아예 성문화한 내부 문서도 있대요. 여기서 우리 만나서 얘기 좀 듣고 싶다고 그랬다는데요. 백선경 국장님하고도 얘기됐고, 이거 관련해서 이규완 인터뷰도 딴 상황이라고.”
선경의 이름을 들은 재희가 멈칫하며 되물었다.
“국장님이? 그거 누가 얘기했어?”
“ 정환일 피디님이요. 들어오다가 만났어요. 박여원 피디하고 만나고 오는 길이래요. 우리 팀에도 좀 물어봐 달라고, 시간 되는 사람들 최대한 취재에 협조해 주자고 얘기하길래 알았다고 했는데요.”
“QBC에서 그거 방영이 가능하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