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14
영리한 타자다.
빠른 공을 치지 못하니 상대가 변화구를 던지도록 유도했다.
자기가 원하는 공은 놓치지 않는다.
송석현과 궤가 비슷한 타자다.
다른 게 있다면, 송석현은 스윙을 최대한 아끼면서 자기 의도를 숨긴다.
타자의 스윙 하나가 포수와 투수에게 데이터가 된다.
송석현이 덫을 쳐 놓고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사냥꾼이라면, 유선호는 사냥감을 몰아간 뒤 목덜미에 작살을 꽂는 사냥꾼이다.
송석현이 여태 본 프로 선수 중 가장 타격의 수준이 높다.
스타일은 달라도 타격의 완성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 감독이 자신을 2군으로 보냈는지 감이 왔다.
저런 타자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 * *
경기가 끝난 후 송석현은 감독을 찾아갔다.
2군 감독 구창현은 송석현을 보자 밝게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그래. 1군에선 잘 지냈고?”
“네,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머리는 괜찮아?”
송석현이 머리를 만졌다.
“네, 괜찮습니다.”
“나도 경기 봤는데 아주 맞자마자 픽 쓰러져서 놀랬다, 야.”
“죄송합니다. 그땐 제가 맞은 데가 핑 하고 돌아 가지고.”
“네가 죄송할 게 뭐 있어. 던진 놈이 나쁜 놈이지. 사과는 받았고?”
“네, 선배님이 실투라고 사과하셨습니다.”
“실투가 맞나 모르겠네, 그놈 성깔도 보통이 아니라서.”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라 신경 안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 그게 더 마음이 편하겠네.”
구창현이 자리에 앉아 파일 하나를 꺼냈다.
“너 여기서 당분간 지켜보면서 상태를 살피라고 지시가 내려왔더라. 올스타 끝날 때까진 개인 훈련만 해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올스타 끝나면 경기를 뛸 수 있나요?”
“그때 의료진 결과를 확인하고 결정하겠다는데?”
“아…… 건강하면 괜찮겠죠?”
“봐야겠지. 머리라는 게 언제 어떻게 영향이 올지 모르는 일이라서 말이야. 아무튼 지금은 건강하다는 거지?”
“네, 그럼요.”
“그래, 건강이 최고야. 운동도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건강 잃고 돈 벌면 뭐 하냐?”
감독과 헤어진 후 송석현은 2군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김정률의 전담 포수로 지내면서 2군 선수들과 어울린 시간을 짧았지만 송석현에겐 친정과도 같았다.
2군 선수들도 스타가 돼 돌아온 송석현에게 시샘 대신 부러움을 표했다.
“너 배트 이거, 나 주면 안 돼?”
“배트를요?”
“어, 1군의 기운을 좀 받아야지.”
“에이, 형. 그런 건 돈 주고 사야죠. 그냥 가져가면 재수 없어요.”
“그래? 석현아, 그럼 팔아라. 형한테 팔아.”
인간사 새옹지마라던가.
송석현은 자신을 둘러싼 선수들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볼과 반년 전만 해도 사실상 없는 사람 취급 아니었던가.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고 식당으로 향했다.
밥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송석현은 한 식탁에 앉아 있는 유선호, 이지성을 찾아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송석현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지성과 유선호가 수저를 놓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유선호였다.
“그래, 석현이. 만나서 반갑다. 니가 요새 그리 잘 친다고?”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야, 인마. 내도 테리비 다 본다. 니 맨날 하이라이트 나오던데?”
“아…… 예…… 하하.”
“니 잠실에서 장외 홈런 칬다메? 대단하네. 잠실에서 장외 친 건 여태 몇 사람 안 될 낀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노? 몸만 보면 호리호리하니 지성이처럼 뛰다녀야 하는 타입인데.”
이지성이 한마디 거들었다.
“숨겨진 근육이 있나 보죠.”
“근육? 내가 야보다 근육이 없을까 봐 그라나? 뭔가 되게 기술적인 거지. 힘만으론 안 돼. 그럼 개나 소나 잠실 넘기게?”
유선호는 테이블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앉아라. 같이 밥 묵자.”
“네, 선배님.”
송석현이 음식을 받아 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송석현은 밥을 먹기 전 이지성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경기를 봤는데 선배님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호프만 멘탈이 제대로 나갔던데요?”
“그래? 봤어?”
“네, 오늘 조금 일찍 왔거든요.”
“용병 애들은 자존심이 세서 조금만 살살 건드려 주면 멘탈 금방 나가. 그거 보는 재미도 있어.”
송석현을 밥을 먹다 말고 자기 식판과 이지성의 식판을 번갈아 봤다.
음식이…… 다르다.
송석현의 식판에는 갈비가 한가득인데 이지성의 식판에는 웬 오징어와 샐러드가 가득하다.
“오늘 오징어 있었습니까? 안 보이던데…….”
“이건 나만 먹는 식단이야. 이모님한테 부탁했거든.”
“오징어를요?”
“어, 단백질 중에 해산물이 제일 좋다고 해서 말이야. 그 중에서 중금속 안 들어간 게 연체동물 같은 애들이래. 단백질도 많고 건강하고. 낙지가 제일 좋긴 한데 비싸서 쭈꾸미, 오징어 이런 거 먹거든.”
“아…….”
유선호가 말했다.
“지 몸은 음청 챙겨요, 챙기긴.”
“이렇게라도 해야죠. 또 트레이드 될 순 없잖습니까.”
“내도 오징어 좀 먹을까?”
“선배님, 이런 해산물만 먹으라는 거지 해산물도 먹으라는 거 아닙니다. 선배님은 다 드실 거잖아요.”
“허허허, 야. 골고루 먹어야 건강한 거야.”
“저는 제 식단대로 갈 겁니다.”
세 사람은 밥을 다 먹은 후 약속이라도 한 듯 숙소 복도의 티비 앞으로 갔다.
오늘은 올스타전 폭스와의 마지막 경기가 있는 날이다.
티비를 켜자 이제 막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포수로 승승장구
위기는 기회 (1)
“와, 고트 와 저라노?”
고트의 5선발로 나온 정천운은 1회부터 폭스의 불방망이를 견뎌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1회에만 4실점, 2회에 1실점.
함성훈 감독은 김진석을 올리면서 추격의 의지를 다졌지만 안타 하나로 또 2실점.
고트는 1, 2회에 무실점.
티비 밖으로 고트 벤치의 무기력함이 쏟아져 나왔다.
“…….”
송석현은 콧바람을 훅 내뱉었다.
송석현이 빠진 타선은 식물 타선이나 다름없었다.
설진일과 김인환이 분투했지만, 폭스는 다른 팀이 택한 선택지를 뒤따랐다.
까다로운 타자는 거르면 그만이다.
뻔한 전략이지만 적중률이 높았다.
“하이고. 속 터진다, 속 터져.”
유선호가 혀를 찼다.
이지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공이나 치러 갈까요?”
“그래, 그러는 게 낫겠다. 석현이 너도 갈 끼제?”
“……네.”
세 사람은 경기를 보는 걸 포기했다.
역전승을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한 법이다.
벌어진 점수 차를 지켜 낼 투수.
벌어진 점수 차를 따라갈 타자.
선발이 무너져 벌어진 점수 차를 지켜 낼 수 없었고, 송석현마저 빠진 타선은 바람 빠진 풍선이었다.
김인환이 공을 잘 골라냈지만 그게 전부였다.
탕!
탕!
탕!
2군 훈련장에는 이미 많은 선수들이 훈련 중이었다.
송석현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와 그라는데?”
“보통 이 시간에는 경기 보면서 빨래하고 쉬고 그러는데 오늘은 전혀 안 그렇네요.”
“그거 봐서 뭐 하게. 내가 잘해야 올라가지 그거 열심히 본다고 올라가드나?”
“그거야 그렇지만…….”
“내가 스콜피언밖에 안 있어가 다른 데 분위기는 잘 모르지만 여 고트 애들은 진짜 열심히 하는 편이야. 자기들이 봐도 조금만 열심히 하면 뚫고 올라갈 만한 자리가 있다 이거지. 원래 산도 저~ 멀리 정상이 보이면 오히려 힘이 빠지는데 정상이 코앞에 보이면 없던 힘도 생기기 마련이야.”
송석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팀이 보이는 고트도 그렇겠죠? 약점이 많은 팀?”
“뭐…… 약점보다도. 물론 강점도 있겠지만 별로 무서운 팀은 아니지. 고트나 웨일스나 서로 성적은 비슷해도 웨일스가 훨씬 까다로워. 작전도 많이 쓰고 불펜도 좋고, 무엇보다 수비가 좋거든. 팀 전체가 뭔가 끈끈한 그런 게 있어. 걔네들은 이겨도 피곤하지만 지면 더 피곤해.”
“피곤한 팀이긴 하죠. 강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쉬운 것도 아닌 그런 팀……?”
“리그 우승할라카믄 제일로 중요한 게 센터라인이다, 센터라인. 페가수스가 왜 강한 줄 아나? 걔들도 센터라인이 강하다 아이가.”
“그거야 뭐…….”
유선호는 배트를 챙겨 어깨에 걸쳤다.
“그래도 나는 고트에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 잘하믄 올 시즌에 사고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거지.”
“저희 팀이요?”
“그래. 봐라. 센터라인에서 제일 중요한 게 투수랑 포수 아이가?”
“……투수도 센터라인인가요?”
“센터에 서면 센터라인지. 아무튼 간에, 고트가 이번에 투수 음층이 델꼬 왔잖아. 그리고 포수는 네가 보제? 영수랑 동규가 방망이는 시원찮아도 수비는 괜찮거든. 중견수만 지성이가 잘 맡아 주면 내가 보기엔 페가수스만큼은 아니어도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이지성은 어느새 자리를 잡고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한테 부담 지우지 마십쇼. 저는 그냥 1인분만 해도 만족합니다. 제 목표는 병선이 넘는 거예요. 병선이도 중견수로만 보자면 꽤 잘하잖아요.”
“가는 타격이 아니다 아이가.”
“저는 뭐 타격이 된답니까?”
“내가 보기에 너는 승산이 있다. 요새 바꾼 니 폼이 딱 좋다니까. 아까 호프만도 답답해 죽을라 카는 거 못 봤나?”
“저는 제가 답답해 죽을 뻔했습니다. 분명 뻗어 가야 할 공이 자꾸 파울이 나니 죽을 맛이에요.”
“그것도 장점이라니까.”
“안타 못 치는 타자가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송석현은 어느덧 두 사람을 따라서 훈련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송석현이 준비하는 걸 지켜봤다.
“……훈련 안 하세요?”
“니는 저거 안 보이나?”
유선호가 턱으로 훈련장 한쪽을 가리켰다.
송석현이 자리를 잡자 여태 훈련하던 다른 선수들이 삼삼오오 송석현 주위로 모이고 있었다.
“네가 인마, 우째 하는지 궁금해서 애들 모였다 아이가.”
송석현은 콧잔등을 긁적였다.
“아니 무슨 쇼 케이스도 아니고.”
“다들 궁금하지 안 궁금하겠나? 치 봐라. 니는 우예 훈련하는데 어린놈이 펄펄 날아다니는데?”
“저라고 뭐 특별한 훈련을 하겠습니까……. 그냥 저한테 필요한 걸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해 보라고.”
송석현은 배트를 들곤 주변을 살폈다.
열 명이 넘는 선수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시작은 2군도 아닌 재활군 전담 포수.
2군 선수를 무명이라고 한다면 송석현은 흔적도 없는 선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명실상부 최고의 유망주.
유망주란 이름표를 떼도 리그에서 손꼽는 거포.
183cm에 80kg가 조금 넘는 체중으로 잠실 장외를 치는 타자가 됐다.
짧은 기간에 스타가 된 데는 어떤 이유, 비밀이 있지 않을까……라는 게 많은 선수들의 궁금점이었다.
대체 송석현은 어떤 훈련을 할까?
“크흠.”
송석현은 쏟아지는 관심을 모른 체하며 배트를 들었다.
가장 먼저 한 건 기본 자세였다.
발을 90도 각도로 꺾은 후 골반을 회전하며 배트를 내다 멈췄다.
자세는 전반적으로 느리고 또 반복적이었다.
한 번씩 자세를 취할 때마다 스윙 범위를 넓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늘려 나갔다.
“니 뭐 하는데?”
유선호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네?”
“훈련을 그리한다고?”
“아, 일단 하체 회전부터 확인하고 상체랑 핸드로 올라가는 타입이라…….”
“그렇게 하다가 해 뜨것다. 공은 언제 치는데?”
“체조만 한 30분 정도 하고 티 배팅으로 공 서른 개 정도 치면 끝입니다.”
“서른 개? 그걸로 훈련이 되나?”
“저는 스윙에 문제가 없으면 오히려 훈련을 줄이는 편이라서요.”
“이야, 그럼 실질적으로 하는 훈련은 티 배팅 서른 개가 다네?”
“아뇨. 실질적인 훈련은 이 체조죠. 이거 하면서 밸런스 어디 무너진 데 없나 보고 안 좋은 데가 있으면 수정해야죠.”
유선호가 뒷짐을 지곤 웃었다.
“그렇게 해도 1시간이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