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32
자연스러워서 미트질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 할 만큼 부드러운 연계 동작.
황기덕의 선구안은 좋았지만 송석현의 프레이밍이 한발 앞서 갔다.
“황기덕 선수가 잡혔지만 강균승 선수도 만만찮은 타자죠. 3할 30홈런만 있는 게 아니죠. 3할 30도루를 책임지는 2루숩니다. 잘 치고 발도 빨라요. 물론 수비도 잘하고요.”
“작전도 참 잘하는 선숩니다. 감독이 가장 사랑하는 유형의 선수예요.”
이창훈은 초구로 슬라이더를 던졌다.
강균승이 가까스로 배트를 멈추면서 볼.
제2구는 존 한복판의 커브였다.
-스트라이크!
“허를 찔렸습니다. 타이밍이 안 맞았어요.”
“빠른 공을 기다렸던 거 같은데 이창훈 선수가 역으로 갔어요.”
송석현이 체인지업 사인을 냈다.
강균승이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황기덕이 아웃으로 물러난 만큼 자신이 출루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할 터다.
공격적으로 나오는 타자에게 좋은 공을 줄 필요는 없다.
탁!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강균승의 배트가 나갔다.
배트 끝에 맞은 공이 유격수로 향했다.
힘을 잃은 공이 통통 튀면서 유격수에게 흘렀다.
유격수가 대시하면서 공을 잡고 1루로 뿌렸다.
강균승이 다리를 쭉 뻗어 베이스를 밟고 지나갔다.
팡.
공이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심판이 외쳤다.
-세이프!
“세이프! 세이프가 나왔습니다. 강균승 선수의 빠른 발이 안타를 만들었네요.”
“지금은 유격수가 더 빨리 나왔어야죠. 주춤거리면서 한 발 늦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정영수 선수가 수비는 참 견실하게 잘하는데 과감함이 부족한 게 흠입니다.”
“이렇게 되면 발 빠른 선수가 1루에 잘 치는 선수가 타석에 있게 됩니다. 작전이 나와도 되고, 안 나와도 되고. 수비하는 입장에선 머리가 아프겠어요.”
“병살이 나오면 이닝이 끝나는 만큼 스콜피언은 어떤 방법으로든 2루로 가려 할 겁니다. 고트는 강균승 선수의 발을 저지해야 돼요. 송석현 선수가 어깨는 좋다지만 강균승 선수도 충분히 빠르거든요. 포수가 한 번이라 뜸을 들이다면 바로 세이프입니다. 과연 신인 송석현 선수가 이런 부담감을 이겨 내고 실책 없이 송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강균승은 야금야금 리드를 넓혔다.
이창훈은 곁눈질로 강균승을 바라봤다.
타석에는 좌타자 정대한이 들어섰다.
이제 갓 스물한 살이지만 이미 리그 최고의 스타 중 하나다.
데뷔 때부터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대구 아이돌로 떠올랐다.
모델을 연상시키는 큰 키에 8등신 비율, 짙은 이목구비와 호리호리한 몸매는 뉴스에도 오르내릴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1년 차부터 유명 여자 연예인을 만나면서 스캔들을 뿌렸고, 방송에도 자주 얼굴을 내비치면서 대한민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미남으로 손꼽혔다.
얼굴만으로도 유명세를 탈 만하지만 실력도 매우 뛰어났다.
데뷔 1년 차에 OPS가 0.9를 넘었고 20홈런 20도루에 1루 수비까지 완성형으로 평가받았다.
발 빠른 올라운더가 황기덕이라면 잘 치는 올라운더가 정대한일 거다.
콕 집을 약점 없는 타자.
어느 코스든 안타를 만들고, 20홈런, 30홈런도 가능한 타자.
성적으로 보자면 황기덕보다 더 조심해야 할 타자는 정대한이었다.
‘포심, 아웃사이드.’
송석현은 초구로 바깥쪽 빠른 공을 요구했다.
스트라이크가 아닌 조금 빠진 공.
이창훈의 공은 조금 더 많이 빠지면서 볼이 됐다.
강균승은 뛰는 대신 귀루했다.
“고트 배터리가 공 하나를 밖으로 빼면서 강균승 선수의 발을 의식했으나 타자나 주자 모두 속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피치아웃을 한 거나 다름없죠. 이러면 공 하나를 손해 보게 되네요.”
스콜피언 벤치에서 사인이 나왔다.
런 앤드 히트.
공 두 개를 연속으로 빼긴 어려우니 도루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투수도 포수도 고트 벤치에서도 알고 있었다.
웬만해선 주자는 뛴다.
주자가 두려워 빠른 공을 선택하면 타자는 공을 고르기 더 쉬워진다.
알아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게 빠른 주자를 지닌 스콜피언의 저력이었다.
송석현은 고민 끝에 사인을 냈다.
이창훈은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 끝에 고른 이창훈의 공은…… 체인지업이었다.
“주자 뛰었습니다!”
스트라이크존으로 오는 빠른 공.
정대한이 힘껏 스윙했다.
공은 그대로 배트를 향해 오다가 아래로 떨어지더니 송석현의 미트에 박혔다.
송석현은 어느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
송석현이 기합과 함께 2루로 공을 던졌다.
강균승은 이미 반쯤은 온 상황.
2루수도 베이스로 들어왔다.
강균승은 생각보다 빠른 포수의 동작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베이스에 손을 뻗었다.
팡!
탁!
공을 잡는 소리와 함께 글러브가 손을 쳤다.
강균승의 손은 베이스에 닿아 있었다.
강균승은 흘러내린 헬멧을 들고 심판을 봤다.
심판의 손동작은…….
-아웃!
“아웃! 아웃입니다! 송석현 선수의 도루 저지 성공! 강균승 선수의 발이 빨랐지만 송석현 선수의 송구도 정말 빨랐습니다.”
“송석현 선수의 팝 타임이 이 정도였나요?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2초 안에는 무조건 들어오겠네요.”
“공도 정말 빨랐죠? 구속을 재 봤으면 좋겠네요.”
“이창훈 선수가 체인지업을 던졌는데 강균승 선수를 잡아냈다……. 송석현 선수의 어깨가 정말 무섭네요. 다른 팀에서 도루를 자제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저도 말로만 들었지 이 정도로 빠른 줄은 몰랐습니다.”
포수로 승승장구
천재
아웃을 당한 강균승은 감독의 눈을 피해 벤치로 들어왔다.
스콜피언의 감독 이건후가 침음을 흘렸다.
“쟤 팝타임이 얼마라고 했지?”
“최근에 잰 것 중에선 1.91초가 가장 빨랐습니다.”
“그래…….”
감독이 턱을 매만졌다.
“한 번만 더 해 봐. 피지컬이 다가 아니니까.”
“네.”
감독의 눈이 송석현에게 향했다.
“어깨까지 저렇게 좋다고……?”
* * *
탕!
정대한은 이창훈의 패스트볼을 때려 우익수 앞 안타를 만들었다.
“안타! 정대한 선수가 힘껏 당겨서 안타를 만듭니다.”
“바깥쪽으로 잘 들어간 공이었는데 잘 맞췄습니다. 이창훈 선수의 직구를 저렇게 때리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역시 정대한 선숩니다. 천재라는 소리는 아무나 듣는 게 아니거든요.”
투수 이창훈이 마운드를 발로 다졌다.
안타를 맞은 게 못내 분한 눈치였다.
송석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야수 수비를 다시 뒤로 밀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홈런왕 조양철.
홈런왕 타이틀만 세 개가 있는 타자였다.
몇 년째 홈런왕 타이틀은 없었지만 꾸준히 홈런왕 경쟁에선 빠지지 않는 강타자.
“조양철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존재감이 참 무시무시하네요. 최근 다시 홈런 페이스를 올리고 있죠?”
“그렇습니다. 조양철 선수의 장점이죠. 홈런에 기복이 없어요.”
“스콜피언이 과감하게 유선호 선수를 넘길 수 있었던 데는 조양철 선수의 몫도 컸을 겁니다.”
“그렇죠. 유선호, 이지성을 주고 이낙균을 데려온 건 스콜피언 입장에서도 괜찮은 트레이드였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이낙균 선수가 올 시즌에 복귀를 못하면 크게 손해 보는 트레이드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한 데에는 황기덕, 강균승, 정대한, 조양철이라는 황금 라인이 버티기 때문이죠. 여기에 이낙균 선구까지 복귀한다면 스콜피언은 이낙균, 조철웅 선수까지 1번부터 6번까지 국가 대표급 타선을 보유하게 됩니다. 물론 이 중에 핵심이 있다면 황기덕 선수와 조양철 선수겠죠.”
“기복 없는 홈런 타자. 투수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상대일 거 같네요.”
“그럼요. 이창훈 선수라고 해도 조양철 선수는 까다로운 타자일 겁니다.”
볼 카운트는 2-0.
이창훈의 커브와 슬라이더 모두를 골라낸 조양철이 배트를 다시 한번 고쳐 잡았다.
송석현의 손가락이 주저했다.
1루의 정대한은 발도 빠른 타자다.
정대한의 도루를 잡기 위해선 투수는 빠른 공을 던져야 한다.
송석현은 도루를 염두에 두고 역으로 투수에게 변화구 두 개를 요구했지만 주자는 움직이지 않았고 타자는 치지 않았다.
투 볼 상황이면 투수는 패스트볼을 던져야 하는 압박에 직면한다.
‘포심, 아웃사이드.’
공 두 개를 낭비했으니 투수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타자가 패스트볼을 노리는 걸 알면서도 들어가야 한다.
이창훈이 여태 나온 공 중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
탕!
조양철이 힘껏 휘두른 배트에 맞은 공이 좌익 선상을 넘어 3루 관중석 상단을 때렸다.
큼지막한 파울 홈런.
“조양철 선수, 아쉬워하네요. 방금은 너무 배트가 돌아간 거 같습니다.”
“힘이 많이 들어갔네요. 바깥쪽 공이 저렇게 잘 들어오면 결대로 밀어 치는 것도 필요한데 홈런 욕심이 컸나 봅니다.”
“그래도 저런 파울 홈런이 나왔다는 건 타자가 타이밍을 잡았다는 얘기죠?”
“그럼요. 타이밍이 맞았어요. 이창훈 선수라고 해도 조양철 선수의 노림수는 완전히 다 피해 가기 어려울 겁니다.”
이창훈은 로진백을 손에 털었다.
한 방이 있는 타자가 침착함까지 갖췄다.
관중의 시선이 이창훈과 조양철에게 쏠려 있을 무렵, 스콜피언 벤치에서 사인이 나왔다.
‘런 앤드 히트.’
타자와의 싸움에 집중하는 지금 타이밍이 작전의 최적 타이밍이다.
사인을 받은 정대한은 눈만 조금 깜박였다.
강균승이 잡혔다.
작전 미팅에서 듣던 대로 포수의 어깨가 좋다.
다른 팀이라면 도루를 자제할 테지만 스콜피언은 달랐다.
“너희도 익히 알고 있지만 한 번 더 강조할게. 도루는 포수와의 대결이 아니야. 투수와의 눈치 싸움이지. 아무리 어깨가 좋은 포수라도 투수가 타이밍을 내주면 별수 없어. 그러니까 포수 어깨에 신경 쓰지 말고 타이밍 잡히면 뛰어.”
강균승이 잡혔지만 정대한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여기서 도루를 성공하면 강균승보다 발이 빠른 게 된다.
팀에서 도루 3인자보단 2인자가 나은 법이다.
황기덕 같은 돌연변이야 애초에 제외하는 게 맞는 법이다.
“후우.”
정대한이 몸을 살짝 좌우로 흔들었다.
투수가 발을 들기 전 0.3초 전에 뛴다.
너무 빨리도 늦어도 안 된다.
투수의 몸이 살짝 움찔하며 다리가 들리는 찰나가 스타트다.
도루하기로 마음을 먹자 시간이 점점 느려진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뛴다.
뛴다.
뛴……다!
팟!
이창훈이 다리를 드는 것과 동시에 정대한이 스타트를 끊었다.
이창훈의 공은 포심 패스트볼.
조양철이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탕!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아! 파울입니다. 마지막에 많이 휘어서 나가네요.”
“방금은 정말 타이밍이 제대로였죠? 아주 미세한 차입니다. 정말 미세한 차이로 배트가 조금 빨리 돌았어요.”
이미 2루에 도착한 정대한이 몸을 뒤집어 두 팔로 땅을 짚었다.
옷 앞섶은 이미 흙먼지로 가득했다.
“하.”
정대한은 허탈하게 웃었다.
“정대한 선수가 스타트를 잘 끊었는데 정말 아쉽겠네요.”
“작전이 나오는 타이밍은 좋았는데 여기서 고트가 한 번 더 꼬았습니다. 바깥쪽 빠른 공이 아니라 몸 쪽 높은 쪽에 빠른 공을 던졌어요. 보통 도루를 염두에 두면 바깥쪽 빠른 공을 유도하기 마련이거든요. 조양철 선수도 초점을 바깥쪽 빠른 공에 뒀을 텐데 여기서 몸 쪽, 그것도 높은 코스로 올 거라는 건 생각 못 했을 겁니다.”
스콜피언의 감독 이건후의 미간에 내 천 자가 깊게 새겨졌다.
“장 수석.”
“네, 감독님.”
“고트 볼 배합, 포수가 한다고 하지 않았어?”
“네, 감독이 웬만하면 포수에게 맡긴다고 합니다.”
“그래…….”
이건후가 미간을 더 좁혔다.
모두가 투수와 타자의 대결에 신경 쓸 타이밍에 작전을 꺼냈다.
도루를 신경 써서 빠른 공을 던졌다면 조양철의 배트에 걸렸을 테고, 변화구를 던졌다면 정대한의 스타트를 고려해 볼 때 2루에서 살았을 터다.
스콜피언 입장에선 어떤 결과든 손해 보지 않는 장사였는데 여기서 몸 쪽 빠른 공이 들어왔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홈런 타자에게 몸 쪽으로 찌르는 빠른 공.
스콜피언의 작전은 무산됐고 조양철은 카운트를 하나 낭비했다.
누가 봐도 스콜피언이 유리했던 이지선다 게임이었다.
이걸 스무 살짜리가 역으로 허를 찔렀다……?
“차라리 운이었으면 좋겠는데…….”
“네?”
이건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양철이 삼진으로 물러섰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
벤치에서 탄성이 터졌다.
“아깝네.”
“파울 홈런 나오면 꼭 이렇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