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46
그래.
나한테 신경을 써.
나도 발 그렇게 느린 놈이 아니니까.
장대희가 공을 던진다.
바깥쪽에 빠른 공, 정직한 승부.
정동규가 2차 리드를 길게 가져간다.
탁!
파울.
예상했던 바다.
정영수는 그리 좋은 타자가 못된다.
장대희 같은 파이어볼러의 공을 그리 쉽게 쳐 낼 리 없다.
정동규는 다시 야금야금 리드를 넓혔다.
팡!
-세입!
“장대희 선수가 또 견제구를 던지네요.”
“신경 쓰인다는 거죠. 득점권에 주자를 보내고 싶지 않다는 거죠.”
정동규가 몸을 낮추고 무릎을 살짝 좌우로 흔든다.
장대희는 콧바람을 훅 내뱉는다.
대놓고 신경 쓰인다고 광고하는 셈이다.
장대희의 제2구는 바깥쪽 빠른 공.
정영수가 힘껏 배트를 돌렸다.
탁!
배트에 빗맞는 소리.
공이 땅볼로 흘러간다.
유격수가 공을 잡고 2루로 던진다.
2루수가 베이스를 밟고 1루로 던진다.
-아웃!
장대희가 마운드에서 내려가려다 멈칫한다.
“정동규 선수가 2루에선 세입이 됐습니다. 병살이 아닙니다.”
“유격수가 심판에게 어필해 보지만 심판은 세입이라는 판정입니다. 동 타이밍이라고 봤는데 정동규 선수가 조금 빨랐나요?”
정동규가 가슴팍의 흙을 털며 일어섰다.
도루는 못해도 주루는 열심히 해야 하는 법이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슬라이딩을 한 덕을 봤다.
“아니……하…….”
유격수가 심판에게 더는 따지지 못했다.
비슷하면 아웃 아니던가?
설령 정동규가 조금 빨랐다고 해도 이 정도면 아웃을 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정영수 선수가 친 공이 좀 느렸던 거 같네요.”
“이렇게 되면 병살로 끝날 이닝이 계속 이어지죠? 다음 타자는 1번 타자 이지성 선숩니다. 상위 타순으로 이어져요.”
이지성은 장대희의 구위를 이겨 내지 못했다.
중견수 플라이 아웃.
정동규의 헌신에도 이닝은 그렇게 끝났다.
정동규가 털레털레 벤치로 돌아오는 길.
감독이 직접 나와 정동규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파인플레이. 굿.”
정동규는 당황했지만 감독의 주먹에 주먹을 부딪쳤다.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열정도 전염성이 있다.
송석현이 피어올린 불씨가 김인환에게 번졌지만 더는 커지지 못했다.
한 사람만으로 팀을 바꾸긴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이지성과 유선호가 오자 불씨가 더 커졌다.
이지성, 설진일, 김인환, 송석현, 유선호.
타선의 반절 이상이 활활 타오르자 이제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번진다.
감독이나 코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울브스처럼 뎁스가 두터운 팀이라면 치열한 경쟁 때문에 없던 열정도 생기겠지만 고트처럼 1, 2군 간의 차이가 크고 팀워크가 부족했던 팀은 언감생심이다.
감독이 할 수 있는 건 좋은 선수들을 모아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부채가 불씨를 키울 순 있어도 없는 불씨는 만들지 못하는 법이니까.
타선이 살아난 게 아니다.
선수들이 경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갑시다!”
이창훈이 마운드로 오른다.
“가자, 가자, 가자!”
“이기러 가자!”
선수들도 목소리를 높인다.
이창훈은 이후에도 2실점을 내줬지만 공 아흔한 개로 6회까지 채우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2실점 모두 솔로 홈런 두 개.
무모할 정도로 몸 쪽에 붙인 공은 홈런의 제물이 됐지만, 마음 급해진 울브스 타자들이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달려들면서 승부가 빨라졌다.
“넘어간다! 넘어간다! 넘어간다~~! 김인환의 솔로 홈런이 터집니다!”
“좌측 담장! 또 넘어갑니다! 백 투 백! 송석현의 백 투 백 솔로 홈런이 터집니다!”
8회에는 김인환, 송석현의 백 투 백이 터졌다.
솔로 홈런 두 방이지만 승부의 쐐기를 박기엔 충분했다.
점수는 11-7.
고트도 적지 않은 점수를 내줬지만 타선이 폭발했다.
고트는 모든 타자가 안타를 치는 기록을 세우며 남다른 타격감을 과시했다.
다음 날은 월요일, 쉬는 날이지만 선수들을 좋아하기보다 아쉬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지금 바로 불스랑 붙어야 하는데, 왜 하필 내일 쉬냐.”
“이 타격감 그대로 가져가야 하는데.”
“아깝다, 아까워.”
페가수스, 스콜피언, 울브스라는 1, 2, 3위 팀 상대로 7승 2패.
죽음의 9연전 속에 거둔 대승으로 웨일스를 제치고 4위 등극.
벌써 고트의 가을 잠바 예약이 폭발했다.
연예인들도 가장 시구하고 싶은 팀으로 고트를 뽑았다.
팀 순위는 4위지만 현재 최고의 인기 팀, 흥행 몰이가 고트라는 건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웠다.
현재 리그에서 가장 폭발력 있는 클린업.
헐크 김인환.
잠실의 왕 송석현.
타격의 신 유선호.
월요일 스포츠 뉴스의 50%가 고트에 관한 뉴스였다.
그 50% 중 절반은 송석현에 관한 얘기였다.
대한민국의 스타가 된 송석현이지만 아직 스무 살이었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월요일.
송석현은 정미남, 김영석과 영화관 앞에 서 있었다.
포수로 승승장구
한 걸음
“이거 실화냐…….”
“대박이네.”
정미남과 김영석이 신기하다는 듯 송석현을 바라봤다.
송석현은 인파에 둘러싸여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처음엔 한 명, 두 명 쭈뼛거리고 오더니 송석현이 흔쾌히 받아 주자 우르르 몰리기 시작해 벌써 10분 동안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여기가 잠실이야? 뭐야, 이 인기는.”
“스타는 스타네. 야구 선수가 저 정도로 인기 있는 게 말이 되냐?”
“질투도 안 난다, 질투도 안 나. 저 정도 인기는 너무하잖아.”
“확실히 고트가 인기 팀은 인기 팀이네. 서울 팀이라 그런가?”
“와, 저거 보이냐? 존예……. 핵존예랑 사진 찍네.”
“잠깐만. 저 새끼 저거 뭐야. 와, 봤어? 봤어? 봤냐?”
“……저거 백 프로야. 백 프로 여자가 일부러 자기 가슴 갖다 댄 거야. 대박……. 쌉부럽다…….”
“나도 야구 계속할걸…… 하…….”
“야구 했어도 넌 석현이 뒤에 병풍처럼 서 있었겠지.”
“어쭈? 시비냐?”
“아니라고 부정해 보시든가. 석현이만큼 할 수 있었다면 내가 인정하고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간다.”
“……음, 쩝.”
어린아이와 사진을 찍은 걸 마지막으로 송석현은 정미남과 김영석에게 돌아왔다.
“많이 기다렸어? 아직도 시간 좀 남네. 미리 영화관에 들어가, 아니면 여기서 팝콘 좀 씹다가 가?”
“여기서 뭐 먹을 수나 있겠냐, 다들 너한테 사진 찍자고 달려드는데. 가자, 영화관으로.”
“그럼 고고, 고고.”
영화가 끝난 후 세 사람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송석현은 키득거리면서 정미남의 옆구리를 찔렀다.
“운 거 실화냐?”
“누가 울었다고.”
“눈가에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나 지우고 말하시지?”
“안 울었거든?”
“애들이나 보는 애니 본다고 징징거리더니 지가 제일 감동받아서 우는 거 보게.”
“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 밥 뭐 먹을래?”
“말 돌리는 거 봐. 큭큭, 영석아. 얘 말 돌……. 야, 너도 울었냐?”
“아니거든!”
자리를 옮긴 세 사람이 택한 곳은 닭갈비집.
금세 닭갈비 한 판을 다 먹은 후 볶음밥까지 시켰다.
“공부는 잘되어 가냐?”
송석현이 김영석에게 물었다.
김영석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 이상하게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가 안 된다.”
“그렇다네. 대학교 가면 고등학교랑 완전 다르다며? 9시 강의도 못 듣는다고 하던데.”
“어, 희한하지 않냐? 고등학교 땐 6시에 일어나서 12시에 잤는데 대학교에 들어가니까 9시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하, 신기해. 고등학교 때 너무 버닝 해서 이제 그런 버닝이 안 되나?”
“그래서 공부를 한다는 거야, 안 한다는 거야?”
김영석은 말 대신 콜라만 벌컥벌컥 마셨다.
정미남은 팔짱을 낀 채 키득거렸다.
“얘 요새 우리 가게 단골이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공 미친 듯이 친다니까.”
“크으, 시원하다. 예전에는 몸 쓰는 게 싫었는데 요샌 세상만사가 다 재밌어. 요샌 뉴스도 재밌다니까.”
“딱 시험 기간에 공부하기 싫을 때 증상이네. 그래 가지고 어디 재수 성공하겠어?”
“아…… 이게 문제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몸이 안 따라 주네. 벌써 늙었나.”
“늙기는, 풀어진 거지. 한번 풀어지면 다시 조이는 게 어려운 거야. 아님 군대나 가든가.”
“진짜 그래야 되나. 지금은 시간 낭비하는 거 같아. 정미남, 이 새끼가 제일 부러워. 얘는 군대도 공익 아냐.”
정미남이 제 무릎을 탁탁 쳤다.
“꼬우면 너도 수술 하든지.”
“일상생활에 지장 없으면 군대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얘가 공익인데 내가 현역이라는 게 말이 돼?”
“아니면 너도 빨리 결혼해서 애라도 쑴풍쑴풍 낳아. 그럼 상근이라도 갈 거 아냐.”
“에이 씨. 연애도 못하는데 애는 어떻게 낳냐?”
“눈 딱 감고 너 좋다는 여자랑 응? 파바박! 하면 되지.”
“나 좋다는 여자가 없으니까 이러고 있는데……. 약 올리냐?”
“그럼 네가 매달리든가. 만날 여자 없다고 타령만 하면 여자가 생기냐?”
“아, 여자는 어디서 만나냐.”
“대학생인 네가 여자 타령하면 나랑 애는……. 아니다. 송석현 이 새끼는 여자가 지천으로 널린 쌉새끼지.”
“왜 이러세요? 나는 엄연히 솔론데.”
“솔로? 소오오오올로? 그래서 아까 가슴 감촉이 어땠냐? 푹신하디? 아주 이 새끼가 제일 나쁜 놈이야. 아주 쌉새끼야. 온갖 여자들이랑 딱 달라붙어 가지고 사진 찍는 거 보면 속이 아주 뒤집어진다니까.”
“너도 꼬우면 프로 하든지.”
김영석이 키득거렸다.
“너도 할 말 없지?”
“아, 짜증.”
세 사람은 볶음밥에 다 먹은 후에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정미남은 술집이 아니라 카페로 간다는 사실에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송석현이 몸 관리를 내세우자 별수 없었다.
“그래서 말이야.”
김영석이 운을 띄웠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건데…… 니들 웃지 마라?”
“응. 배꼽 잡고 웃을 준비 다 돼 있구요.”
“웃기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지.”
“아, 진짜. 나는 진지하다고.”
“그럼 빨리 말해 봐.”
김영석이 숨을 골랐다.
“나 보건대 갈 생각이야. 물리치료사 되고 싶어.”
송석현과 정미남이 웃음기를 거뒀다.
“내 성적이면 보건대야 프리패스잖아. 물리치료사가 앞으로 핫하데. 취직하기도 좋고 또 혹시 모르잖아, 나도 야구팀에 취직할지?”
정미남이 한숨을 쉬었다.
“진심이냐? 보건대? 네 성적에? 너희 집에선 알아?”
“모르지. 알면 난 뒈졌지.”
“보건대는…….”
송석현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의대를 가, 의대. 무슨 보건대야?”
“이제 더는 공부를 빡세게 하는 게 불가능해. 난 글렀어. 보건대면 어쨌든 의료 계통이기도 하고, 전망도 밝고, 내 적성이랑도 맞을 거 같아.”
“이놈이 나이 먹고 일을 내네. 꼭 조용한 애가 일은 크게 낸다니까.”
“보건대가 어때서, 인마. 무엇보다 여초라고, 여초. 보건대는…… 여자가 더 많아서 어지간히 못생긴 애들도 여자 친구가 쉬지 않고 생긴대. 그것도 진짜 괜찮은 애들을 번갈아 만난다니까.”
정미남의 한쪽 눈썹이 씰룩였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