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55
“어…… 제구만 좋으면 먹힐 거 같아요.”
“그래?”
임진필이 손을 털었다.
“하필 폭스네. 피닉스랑 붙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는데.”
선발투수의 몸풀기가 끝난 후, 투수코치 연우식이 송석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때?”
“괜찮습니다.”
“아니, 진짜로. 냉정하게. 폭스 애들한테 통하겠어?”
“어…….”
송석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연우식이 송석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별로구나?”
“별로까지는 아닌데…….”
“아닌데?”
“결정구가 마땅치 않아서 좀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역시 그렇지?”
연우식이 턱을 매만졌다.
“저런 애들이 정말 애매하단 말이지. 딱히 약점은 없는데 강점도 없어……. 후, 그래, 알았어. 천운이도 준비시켜야겠구만.”
경기 시작에 임박하자 사직의 1, 3루 내야석엔 발 디딜 틈도 없이 팬들로 가득 찼다.
홈팀 폭스는 최근 불스를 꺾고 6위에 올랐다.
4위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위다.
고트에 스윕 당한 불스가 이후 연패로 빠진 게 폭스엔 행운이었다.
5위 웨일스와의 승차도 그리 많이 나지 않는다.
아직 가을야구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 * *
“안녕하십니까, 야구팬 여러분. 사직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SBC 캐스터 구정윤.”
“해설 최희동입니다.”
“오늘 고트와 폭스와의 경기, 사직에 많은 팬들이 찾아와주셨습니다.”
“고트도 상승세, 폭스도 상승세 아닙니까? 고트는 이제 한국시리즈 직행을 위해 뛰고 있고, 폭스는 포스트시즌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양 팀의 타격이 살아나면서 상승세가 시작됐는데 좀처럼 방망이가 식지 않고 있어요.”
“원래 폭스야 불방망이로 유명한 팀이었지만 올해 최고의 타선을 뽑으라면 아무래도 고트의 KSY를 빼놓을 수 없죠. 역대 최고의 클린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파워의 김인환, 완성형 송석현, 연륜의 유선호까지. 이제는 송석현 하나만 피하면 끝나는 타선이 아니에요.”
“분명 투타 모두 고트가 앞서고 있긴 한데 오늘 경기는 좀 색다릅니다. 고트가 대체 선발을 내세웠어요.”
“고트가 조금 여유가 있나 봅니다. 임진필 선수를 선발로 내세웠습니다. 아직 1군에서 보여 준 게 없는 투순데 과감하달까요, 아니면 좀 과하달까요. 2군 성적도 나쁘진 않지만 확 눈에 띄는 면모도 없었거든요.”
“오늘 폭스도 5선발 최영경 선수 아닙니까? 양 팀 선발이 조금 약하다……. 이러면 양 팀 타선이 오늘 또 터질 수 있겠는데요?”
“오늘 사직마저 타격전으로 간다면 양 팀 팬들은 신나게 즐기기 어려울 겁니다. 가슴 좀 졸여야 할 거예요.”
-플레이볼.
1회 초 마운드에는 투수 최영경.
1번 타자는 이지성.
최영경은 직구와 스플리터 두 개로 스트라이크 두 개를 잡았다.
이지성은 배트를 더 짧게 잡고 타석에 바짝 붙었다.
어떻게든 치고 나가겠다는 심산.
직구와 스플리터 두 개밖에 없는 타자이니만큼 타자의 선택지도 좁았다.
컨택이 좋은 이지성에게 구종이 단조로운 투수는 쉬운 상대였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삼진을 잡아내는 최영경 선숩니다.”
“이지성 선수가 꼼짝을 못 했죠? 저 커브, 굉장히 좋네요. 각이 좋아요.”
“원래 최영경 선수가 커브를 던졌나요? 처음 보는 거 같은데요.”
“최영경 선수가 새로운 구종을 연마했나 봅니다. 커브, 사실 가장 배우기 쉬운 구종이지만 가장 실전에서 써먹기 힘든 구종이기도 한데 최영경 선수가 잘 써먹네요.”
벤치로 돌아온 이지성이 고개를 내저었다.
“커브 각이 상당한데?”
송석현이 물었다.
“빡세요?”
“노리는 거 아니면 치기 힘들겠어.”
이지성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설진일이 땅볼로 아웃.
커브를 건드려 땅볼이었다.
“아나, 갑자기 웬 커브야?”
송석현은 대기 타석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투수가 새 구종을 장착해서 나타났다.
시즌 중에 새 구종을 장착하는 일은 드물지만 최영경이라면 그럴 만하다.
투 피치 불펜 투수.
선발로 뛰기 위해선 구종 세 개 정도는 필요한 법이다.
이지성, 설진일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니 커브를 새로 배운 게 아니라 다시 던지기 시작한 게 분명하다.
팡!
-스트라이크!
“최영경 선수가 커브를 잘 써먹네요. 타자들이 커브에 적응을 못 합니다.”
“커브를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터라 타자들이 혼란스러워할 만하죠.”
커브가 먹히자 직구와 스플리터도 먹히기 시작한다.
떨어지는 공에 약한 김인환은 스플리터에 삼진.
송석현은 다시 벤치로 돌아가야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함성훈의 미간이 좁아졌다.
포수로 승승장구
프로라는 벽 (2)
1회 말.
마운드에는 임진필.
1번 타자는 폭스의 박찬희.
송석현은 타석의 박찬희를 위아래로 훑었다.
스트라이드가 좁고 무게중심도 앞으로 쏠려 있다.
전형적인 컨택에 집중한 타자.
파이어볼러라면 몸 쪽 공 한두 개만 던져도 구위에 밀리기 일쑤일 테지만 오늘 투수는 임진필이다.
구속도 구위도 특별할 게 없다.
‘커브.’
변화구 하나로 타자를 체크해 본다.
팡!
-스트라이크!
“임진필 선수가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 들어가네요.”
“커브가 괜찮네요. 각도가 괜찮아요.”
송석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상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가 있다.
변화구의 완성도가 2군 수준을 넘었다.
‘포심.’
바깥쪽의 포심 패스트볼.
커브 이후에 빠른 공은 전형적이지만 커브가 눈이 익은 타자는 대처가 쉽지 않다.
나이 먹어서 구속이 떨어진 선발투수가 커브를 아끼는 이유다.
탕!
박찬희가 어깨를 돌리면서 공을 그라운드에 밀어 넣었다.
2루수가 몸을 날렸지만 공을 잡진 못했다.
“박찬희 선수가 안타를 신고합니다.”
“잘 노려 쳤네요. 좋은 코스로 들어온 공이었는데 욕심 없이 잘 친 거 같습니다.”
임진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송석현은 방금 상황을 복기했다.
좋은 코스에 좋은 공이 들어왔는데 타자가 쳐 냈다…….
박찬희가 맞추는 기술이 좋은 편이지만 파워는 부족한 유형이다.
그런 박찬희에게 1회부터 공을 맞는다는 게 영 불안하다.
“타석에는 2번 타자 김형남 선수가 들어옵니다. 강한 2번 타자죠?”
“예, 요새 맹타를 휘두르는 타잡니다. 폭스의 상승세를 이끄는 타자죠.”
김형남은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스트라이드를 넓게 잡았다.
강하게 칠 자신이 있단 얘기다.
‘슬라이더.’
송석현의 사인에 임진필이 외곽으로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김형남은 배트를 내지 않았다.
“…….”
송석현이 미간을 좁혔다.
방금 슬라이더는 잘 미끄러져 들어왔다.
배트를 내지 않았다는 건 초구 변화구를 예상했든가, 초구를 두고 볼 심산이었단 얘기다.
노련한 타자다.
‘포심.’
송석현이 타자의 몸 쪽에 붙어 앉았다.
팡!
-볼. 인사이드.
김형남은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조금 깊었네요. 볼입니다.”
“김형남 선수가 오늘 공을 잘 고르네요. 역시 잘 치는 선수들은 공도 잘 골라요.”
“빠른 주자를 1루에 두고 볼 두 개. 이제 주자가 뛸 타이밍이 나옵니다.”
임진필의 퀵 모션은 괜찮은 편이다.
1루 주자 박찬희가 투수의 타이밍을 재느라 아직 뛰지 않았지만 이제는 슬슬 뛸 타이밍을 잡을 때가 왔다.
‘체인지업.’
주자와 타자가 노리는 건 바깥쪽 직구일 거다.
한 번 더 꼬아서 체인지업.
임진필이 던진 공이 김형남의 배트에 맞았다.
“2루수! 2루수가 잡고 토스! 유격수가 베이스 밟고 1루로! 4-6-3 병살이 나옵니다!”
“좋은 기회를 병살로 날리네요. 폭스는 이게 아쉽죠. 병살이 많습니다.”
“고트는 위기를 기회로 살리네요.”
투수가 야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잘 빠진 공을 잘 잡았다.
“정동규 선수의 수비는 역시 발군이네요. 방금은 빠질 거라고 봤거든요.”
“고트에서 드래프트 1라운드로 뽑은 선수 아닙니까. 입단하자마자 1군으로 데뷔하고 주전까지 꿰찬 선수죠. 요새 2루수에 공격력이 출중한 선수들이 등장해서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수비가 안정적인 알토란같은 선숩니다.”
병살을 잡아냈지만 송석현의 표정은 어두웠다.
방금 체인지업은 애매했다.
정석적인 체인지업이지만 낙폭도 구속도 특별할 게 없다.
김형남이 직구 타이밍에 쳐서 병살을 만들긴 했지만, 정동규의 수비 덕에 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후우.”
다르다.
이창훈, 한민석 같은 투수의 공을 받다가 임진필의 공을 받아 보니 위기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임진필의 구위는 컨디션 안 좋은 한민석과 비슷하다.
다행인 것은 한민석보단 제구가 더 좋다는 점 정도.
정천운이 5선발로 안착하면서 2군에서 잘하면 1군에서도 통하는구나, 쉽게 생각했는데 1군과 2군의 차이가 이 정도였나 싶다.
탕!
탕!
“안타! 안탑니다! 연속 안타를 허용하는 임진필 선수. 폭스의 타격이 역시 만만치 않네요.”
“김경심, 최재국 선수가 폭스의 KS포죠. 여기에 오충진 선수까지 더하면 리그 수준급 클린업이 됩니다.”
“병살을 잡자마자 실점 위기로 몰리는 고틉니다.”
폭스의 클린업은 예상대로 강력했다.
임진필의 포심이 타자의 배트를 이겨 내지 못한다.
임진필의 변화구는 좋은 편이지만 투수는 구종의 절반 이상이 포심이다.
포심이 안 통한다는 건 50%를 잃고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다.
탕!
“중견수 머리 뒤로! 뒤로! 뒤로! 잡아냅니다! 이지성의 슈퍼 플레이! 담장 앞에서 기어이 잡아내고 맙니다!”
“오늘 고트의 수비가 견실하네요. 그저 방망이만 좋은 팀이 아닙니다. 공수 모두 균형이 잡혀 있는 팀이에요.”
“폭스가 득점 기회를 잡고도 득점을 하지 못합니다. 아쉽겠어요!”
공수 교대.
고트의 선두 타자는 송석현.
투수 최영경은 송석현에게 초구로 몸 쪽 빠른 공 하나를 보여 줬다.
-스트라이크!
“송석현 선수에게 초구를 잡고 시작하는 최영경 선숩니다. 오늘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지 공도 시원시원하게 던지네요.”
폭스의 포수 박진환이 입을 열었다.
“오늘 영경이 공이 좋아. 쉽지 않을걸.”
“네, 오늘 쉽지 않네요.”
송석현의 김빠지는 대꾸에 박진환이 입맛을 다셨다.
‘스플리터.’
최영경의 결정구, 스플리터.
몸 쪽 빠른 공 다음에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처럼 잘 먹히는 레퍼토리는 없다.
자신감이 붙은 최영경은 지체 없이 공을 던졌고, 송석현도 가볍게 배트를 내밀었다.
탕!
“좌중간을 꿰뚫는 안타! 송석현 선수는 1루를 밟고 2루까지 넉넉하게 달립니다.”
“스플리터가 잘 떨어졌거든요? 분명 볼인데 송석현 선수가 이걸 쳐 내네요.”
“떨어지는 공에 유난히 강한 송석현 선숩니다.”
박진환이 한숨을 쉬었다.
이걸 친다고? 볼을?
이 정도면 노려서 쳤다고밖에 볼 수 없다.
노림수가 읽힌 건가?
폭스는 유선호를 볼넷으로 1루로 보내고 최재완과 승부했다.
‘포심. 몸 쪽.’
초구부터 몸에 바짝 붙는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