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58
“저도 처음에는 실투로 봤지만 포수가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걸 보면 의도적으로 쓰고 있다고 봅니다. 정진오 선수가 공이 아주 빠른 선수는 아니거든요? 보통 하이 패스트볼은 공이 빠른 선수가 구사하는 편인데 정진오 선수는 공이 빠르지 않은데도 잘 활용하네요.”
“정진오 선수만의 노하우가 있는 걸까요?”
“제가 보기엔 공의 회전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에 다시 한번 봐야겠지만 공의 회전수가 꽤 높은 거 같아요. 저 정도 rpm이면 적어도 2,000대 후반은 된다고 봅니다. 공의 회전수가 많다면 구속이 아주 빠르지 않아도 하이 패스트볼이 통할 순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래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에요. 공이 빠른 선수들도 하이 패스트볼은 위험해서 잘 활용하지 않거든요.”
“그렇군요.”
4번 타자를 잡아낸 정진오가 활짝 웃었다.
승리투수 요건까지는 아웃 카운트 두 개.
정진오는 5번 타자에게 삼진, 6번 타자에게 볼넷, 7번 타자에게 삼진을 잡아냈다.
“좋아!”
정진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송석현은 벤치로 돌아가기 전 정진오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오늘 첫 승 하겠는데요?”
“부탁한다. 점수 좀 더 내줘라. 홈런 좀 빵빵 쳐 줘.”
“그게 그렇게 쉬우면 저도 참 좋겠네요.”
6회가 넘어가자 폭스에선 투수를 교체했다.
바뀐 투수는 좌투수 정하균.
직구와 스플리터를 구사하는 투수로, 좌투수 김인환에겐 최악의 상성이었다.
김인환의 삼진.
송석현은 우익수 앞 안타.
유선호는 땅볼을 치면서 병살.
세 타자 만에 6회 초가 끝났다.
정진오는 다리를 달달 떨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6회 말.
고트는 불펜 투수 정홍민을 올렸다.
“고트도 오늘 경기 빠르게 승부합니다. 투구 수에 여유가 있는 정진오 선수를 내리고 정홍민 선수를 올렸네요.”
“이러면 양 팀 모두 불펜 싸움으로 가겠네요. 어제 고트가 불펜을 많이 썼거든요. 여유는 없을 거예요.”
“6회 말 폭스의 공격은 하위 타순부터 시작합니다.”
정홍민의 초구는 볼.
송석현은 공을 받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에 힘이 없다.
투수가 공을 제대로 채지 못했다는 얘기다.
정홍민의 컨디션이 오늘 썩 좋지 못하다.
팡!
팡!
팡!
“정홍민 선수가 세 타자 연속 볼넷을 허용합니다. 세 타자 모두에게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 아쉬운 승부였습니다.”
“하위 타순인 만큼 과감하게 승부했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맞더라도 들어갔어야죠. 위기도 위기지만 공을 너무 많이 던졌어요. 아직 6횝니다. 정홍민 선수가 빨리 내려가면 불펜도 그만큼 과부하가 심해지는 겁니다.”
함성훈이 마운드로 향했다.
정홍민은 공을 꽉 쥐고 감독의 눈을 피했다.
“수고했다. 다음에 더 잘해 보자.”
정홍민이 고개를 숙였다.
“후, 죄송합니다.”
“다음에 더 잘하면 돼. 수고했어.”
다음 투수는 고진석.
고진석이 마운드에 올라갔다.
“함성훈 감독이 승부수를 띄우네요. 오늘 경기는 무조건 잡고 간다는 사인입니다.”
“연이어 필승조 두 명을 내세우네요. 이거 오늘 경기에서 지면 고트가 타격이 크겠어요. 어제도 불펜을 많이 끌어다 썼거든요.”
송석현이 고진석의 연습 투구를 받았다.
직구와 포크볼을 구사하는 전형적인 마무리 투수.
국내에 포크볼을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몇 안 되는 투수였다.
팡!
팡!
공을 받은 송석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에 힘이 있다.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김형남.
2번 타자지만 장타력이 있는 타자였다.
‘포심, 아웃사이드.’
초구는 우선 바깥쪽으로 안전하게.
송석현이 미트를 바깥쪽으로 내밀었으나 공은 몸 쪽 깊숙한 곳으로 흘렀다.
퍽!
김형남은 공을 피하지 않고 맞아 냈다.
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필했지만 심판은 고개를 저었다.
“몸 돌렸잖아.”
피하진 않았지만 몸을 가져다 대진 않았다.
밀어내기.
점수는 3-1.
고진석이 미안하다며 손짓했다.
다음 타자는 3번 김경심.
송석현은 타자가 초구 포심을 노리고 올 걸 예상해 포크볼을 요구했다.
타자는 예상대로 헛스윙.
다음 빠른 공도 헛스윙.
송석현이 바깥쪽에 미트를 가져다 댔다.
바깥쪽 빠른 공 사인.
고진석의 공이 미트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탕!
“우익 선상! 빠졌습니다! 빠졌어요! 파울이 아니라 안타! 안탑니다!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까지 홈인! 1루 주자까지~ 승부, 승부! 세입! 세입입니다! 싹쓸이 2루타가 터집니다!”
“김경심 선수가 기어이 하나 해 주네요. 정말 잘 밀어 친 공이었습니다.”
“김인환 선수의 머리를 지나쳤는데 이게 파울이 아니라 안타가 됐습니다. 폭스가 6회 말에 4점을 내면서 4-3. 역전을 합니다.”
“고진석 선수까지 올리면서 승부수를 띄웠는데 함성훈 감독의 한 수가 빗나갔네요. 이러면 고트, 타격이 큽니다.”
파울이 될 공이 안타가 됐다.
정진오는 끝내 벤치 뒤로 나갔다.
1점 차 역전.
유선호가 목소리를 키워 외쳤다.
“1점이야, 1점! 또 역전하면 돼!”
유선호의 독려에 6회 말 고진석이 추가 실점 없이 내려왔다.
폭스는 9회 초까지 점수를 내지 못했지만 고트도 점수를 내지 못했다.
점수는 4-3.
고트의 패배.
김정률까지 올리는 초강수를 뒀지만 고트는 병살만 네 개를 치면서 자멸했다.
다음 날은 마이클 피시가 등판해 7이닝 1실점 호투를 했지만 김진석, 이백찬이 각각 2실점, 1실점을 보태며 역전.
폭스전 주중 3연전의 결과는 3연패, 스윕이었다.
* * *
[고트의 무리수. 스텝이 꼬이다] [연승으로 헤이해진 고트. 이 시국에 선발 옥석 고르기?] [연승으로 가려진 고트의 약점. 믿을 수 없는 불펜] [홍기원 감독의 일침. 야구는 투수 놀음] [벌써부터 물밑으로 감독 물색? 고트의 내우외환]스윕의 후유증은 컸다.
프로야구 최고 인기 팀답게 고트의 패배를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들이 도배됐다.
새 감독을 찾고 있다는 기사까지 뜨자 팬들은 아침부터 갑론을박했다.
야구 커뮤니티에선 고트 감독 교체 기사로 댓글만 1천 개가 넘는 논전이 벌어졌다.
선수들마저 구단이 함성훈 감독을 신임하지 못하고 후임 감독을 찾고 있단 기사에 놀라 서로 다음 감독이 누군지 정보를 염탐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것이 오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자 선수들은 어떤 노선을 타야 할까 눈치 싸움에 들어갔다.
첩첩산중(疊疊山中).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감독 교체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팬들은 차기 감독 후보군을 놓고 좋네 싫네, 싸우기 바빴다.
하필 주말 3연전 상대는 1위 페가수스.
팀 분위기는 어수선했지만 고트는 멕킨지, 이창훈, 한민석으로 이어지는 선발 라인업이었다.
어느덧 순위는 4위.
1위 팀과 홈경기 주말 3연전.
경기 시작 전, 김정률이 선수단을 불러 모았다.
“자, 다들 주목.”
포수로 승승장구
팀 고트
“솔직히 말해 보자. 우리 이런 일 한두 번 아니지?”
김정률의 물음에 선수들이 우물쭈물 서로 눈치 봤다.
“시즌 초에는 치고 나가다가 후반부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기자들은 여름에 약한 고트, 떨어질 팀은 떨어진다, 고트 이번에도 또! 이런 기사 써 대기 시작하잖아. 난 딱 이맘때가 아, 이제 여름이 끝나 가는구나. 곧 가을이 오겠다, 싶어.”
선수들이 피식 웃었다.
고트로 입단해 고트에서 성장해 온 선수들은 크게 웃지도 못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딱 이맘때야. 우리 감독 바뀌는 건가? 다음 감독은 누구지? 외부 영입인가? 내부 승진인가? 어떤 코치가 실세지? 누구 줄을 타야 하지? 아, 감독 안 바뀌면 줄 잘못 잡았다가 × 되는 거 아냐? 다들 대갈빡 엄청 굴리잖아. 안 그래?”
“크흠.”
“그만하자, 우리. 감독이 바뀌고 자시고. 언론이 지랄을 하든 말든. 왜 야구에 집중을 못 하고 자꾸 딴짓을 해, 딴짓을.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 우리가 강팀이냐? 우리가 우승 후보야? 우리 최근 우승한 게 언제냐? 20년도 넘어, 20년도. 포스트시즌 자주 갔다고 해서 강팀인 건 아니야. 돈 처발라서 겨우 포스트시즌 턱걸이하면 광탈. 또 돈 처발라서 포스트시즌 턱걸이하면 광탈. 하이고, 지겹다, 지겨워.”
김정률은 손뼉을 두 번 쳤다.
“질 수도 있어. 이길 수도 있고. 야구잖아. 그런데 이기든 지든 간에 쪽팔리진 말아야지. 야구 할 시간에 핸드폰 붙잡고 어딜 그렇게 통화를 해, 통화를. 프런트 애들을 왜 그렇게 들들 볶아. 걔들 옆구리 찔러서 정보 얻고 싶어? 설령 니들이 줄 잘 잡았다고 쳐. 니들이 실력이 떨어지는데 줄 잘 잡아서 주전 자리 꿰찼다고 치자고. 그럼 안 쪽팔릴 거 같아? 우리 야구 선수야. 누가 야구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겠냐? 니들은 팀 동료한테 눈칫밥 먹으면서 야구 하고 싶냐? 잘하면 나가는 거고, 못하면 못 나가는 게 프로야. 감독이 바뀌고 자시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기자들이 떠들든 말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야구를 잘하냐, 못하냐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니냐?”
서일혁이 대꾸했다.
“그래, 맞는 말이야.”
김정률이 말없이 선수들을 훑었다.
“우리 감독이 문제라서 우리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 우리 감독이 불펜 어깨를 갈아 넣었냐, 아니면 신인들한테 기회를 안 줬냐? 그것도 아니면 주전 박아 놓고 휴식 한 번 없이 쭉쭉 빨아먹었냐? 아니지? 감독이 삽질하는 게 아니라면 결국 성적은 선수가 하는 만큼 나오는 거야. 내가 미리 말해 두는데 니들 언론이랑 인터뷰하는 새끼들 나오면 내 손에 뒈지는 거야. 니들 지금 친한 기자들한테 전화 오지게 올 거야. 씹어. 니들 구린 거 터뜨린다고 해도 감수해. 우린 팀이야. 팀이 무너지면 혼자 난리 부르스를 쳐도 아무것도 안 된다. 내가 해 봐서 알아. 이 팔 세 번 갈아먹어 봐서 안다. 니들이 김영훈같이 미친놈이 아니라면 무너진 팀으로는 혼자서 지랄 발광해도 소용없어.”
김정률이 숨을 가다듬었다.
“우린 우승 후보는 아니지만, 우승 가능성이 있어. 내가 여태 뛰었던 시즌 중에 가장 우승 가능성이 높아. 짬 찬 놈들은 알 거야. 타이밍은 한번 지나가면 영영 안 와. 아, 내년에 어떻게 또 잘해 보지, 뭐. 개소리야. 꼭 그렇게 생각하면 내년은 더 엉망이야. 생각을 바꿔. 올해 어떻게든 잘해 보자. 올해가 마지막이다. 니들한테 나처럼 어깨 갈아 버리라는 말 안 해. 오버 페이스하란 얘기 아니야. 하지만 야구에 관해선 완전히 불 태워 버려. 시즌이 끝났을 때, ‘아, 그때 조금 더 잘해 볼걸.’ 이딴 생각 하면 이미 늦었어. 다음 시즌에도 똑같아. 그렇게 어영부영 지내다가 어영부영 은퇴하는 거야. 우리 팀을 봐라.”
김정률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우리 팀 베테랑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랑 일혁이 둘이야. 우리 둘 나이면 다른 팀에선 고참 수준이야. 우리 선배들이 어떻게 됐는지 다 봤을 거야. 우리 팀은 나이 먹고 애매한 선수들한테 가차 없어. 그렇다고 우리 팀을 떠난 선배들이 다 잘됐을까? 주전으로 뛰다 은퇴한 선배들 없어. 고트에서 뛴다는 건 다른 팀보다 선수 생명이 몇 년은 더 짧다는 얘기야. 니들 수준이 어중간하면 더 짧아질 거고. 그러니까.”
선수단에 침묵이 감돌았다.
“한 경기, 한 경기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고 뛰자. 우리 팀은 여름 되면 내려가는 팀이 아니라, 그저 잠깐 주춤한 거라고 보여 주자. 그리고 한국시리즈에 가서 우승해 버리자. 올해는 가능성 있잖아. 우리 투수들이 좀만 버텨 주면 얘네들이 멱살 잡고 우승시켜 줄 거야. 안 그래?”
김정률이 송석현과 김인환을 가리켰다.
열중쉬어 하던 송석현이 당황해선 눈알을 좌우로 굴렸다.
“제가요?”
“우승 못 하면 네 탓이야. 알지?”
김정률이 한쪽 눈을 찡긋하곤 송석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송석현이 어버버거리자 선수들이 크게 웃었다.
“제일 어린 막내도 입 꾹 닫고 저렇게 열심히 뛰는데 선배라는 사람이 후배 보기 쪽팔려서야 되겠냐? 안 그래?”
“네!”
“우리 쪽팔리진 말자. 어?”
* * *
페가수스와의 주말 3연전 잠실 경기.
고트는 용병 멕킨지를 앞세웠지만 3-2 석패했다.
4연패.
5위와도 1경기 차.
언론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고트의 하락을 점쳤다.
페가수스와의 3연전, 선발은 조진희와 김성훈.
고트는 최근 페이스가 떨어진 이창훈과 한민석.
무엇 하나 고트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목요일 저녁.
송석현은 퇴근을 준비하다 발걸음을 멈췄다.
“지금 공을요?”
“어, 가능할까?”
송석현의 퇴근을 막은 이는 한민석이었다.
“모레 선발인데 오늘 공 던지시려고요? 아까 불펜에서 몸 안 푸셨어요?”
“조금 풀다 말았어. 뭔가 해 볼 게 있어서. 도와줄 수 있어?”
“어…… 네. 알겠습니다.”
송석현이 다시 장비를 차려입고 실내 연습장으로 향했다.
한민석은 송석현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송석현이 한민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며칠 전보다 볼살이 조금 홀쭉했다.
“선배님, 왔습니다.”
“어, 그래. 늦은 시간에 미안하다.”
“아닙니다.”
격세지감.
오만불손할 정도로 당당하던 한민석이 몇 주 사이에 달라졌다.
머리도 짧아졌고 살도 빠졌다.
최근 부진이 단순 컨디션 난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다른 선수나 관계자들도 걱정할 정도니 본인도 모르지 않았을 거다.
“내가 요새 폼을 바꾸고 있거든.”
“시즌 중에요?”
“어, 더는 안 될 거 같아서 손을 좀 내렸어.”
“아아.”
송석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구가 안 좋은 선수들의 마지막 선택지는 릴리스 포인트를 낮추는 거다.
릴리스 포인트가 낮아지면 좌우 균형을 맞추기 쉽고, 좌우 불균형이 줄어들면 제구가 용이해진다.
다만 손이 아래로 내려가는 만큼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 위력이 약해진다거나 구속이 줄어드는 위험이 있어 제구를 잡기 위한 마지막 방편쯤으로 미뤄 두는 수단이었다.
“코치님과 상의하신 겁니까?”
“아직. 아마 반대하시겠지.”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시즌 중인데.”
“그래도 해 봐야지. 고집만 부릴 순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