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59
한민석이 덤덤하게 말했지만 송석현은 뼈아팠다.
차라리 짜증을 내고 욕을 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할 거다.
“내가 예전에 안 해 본 건 아니야. 좀 하다 말았거든. 요 며칠 다시 해 보니까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더라고.”
“그럼 지금 던지시겠습니까?”
“그래, 부탁 좀 할게.”
“네, 편하게 던지십쇼.”
송석현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포수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을 거다.
굳이 자신을 잡고 부탁하는 건 자신이 어리거나 만만해서가 아닐 거다.
주전 포수의 인정.
배터리의 호흡은 그라운드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팡!
한민석이 가볍게 공을 던졌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지만 미트로 파고드는 힘이 제법이었다.
“좋습니다.”
“미트 가져다 대 줘. 내가 거기다 던질 테니까.”
“네, 우선 가운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송석현이 미트를 정 가운데에 놨다.
한민석의 릴리스 포인트는 사이드암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팡!
팡!
구속은 110km/h 언저리였지만 미트에 박히는 소리가 우렁찼다.
“어때? 구속 좀 올려 볼까?”
“모레가 경긴데 무리하진 마시고 천천히 올려 보시죠.”
“오케이.”
한민석이 구속을 점차 올렸다.
공은 미트가 가는 대로 따라왔다.
구속이 130km/h를 넘자 점점 빠지는 공이 나왔다.
한민석은 그럴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다시 공을 던졌다.
퍽!
아예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이 나오자 한민석이 손을 허리에 대곤 한숨을 쉬었다.
“자꾸 빠지네.”
“선배님,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해. 뭐든 좋으니까 해 봐.”
송석현이 마스크를 열고 일어섰다.
“구속이 올라가니까 선배님의 중심축이 자꾸 기웁니다.”
“기운다고? 어떻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져서 던집니다.”
“아…… 그래?”
“릴리스 포인트를 억지로 높이려고 몸이 기우는 거 같습니다.”
한민석이 제 머리를 툭툭 쳤다.
“후, 역시 무린가, 단시간에는…….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보네.”
“릴리스 포인트를 밑으로 내리는 건 신경 쓰지 마시고 조금 더 릴리스 포인트를 앞으로 끌어당기는 건 어떠세요?”
“그게 더 어렵고 시간 오래 걸리잖아?”
“릴리스 포인트를 당기지 못해도 그 느낌만으로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민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송석현은 배트를 쥐고 타격 자세를 잡았다.
“타격이든 피칭이든 비슷합니다. 결국 회전과 직선 운동인데 최적의 스윙은 타원형입니다. 타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정확도가 높아집니다. 이건 본능이라서 끈 달린 돌멩이 같은 걸 정확하게 던지라고 하면 사람들은 원형으로 돌리다가 던질 때는 꼭 타원형으로 던집니다.”
송석현이 배트를 놓고 공을 잡았다.
“피칭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도 이와 똑같은 메커니즘입니다. 공을 쥔 손의 궤적이 타원형에 가까울수록 정확도는 높아집니다. 궤적을 타원형으로 만들기 위해선 스트라이드가 길어야 하고 릴리스 포인트가 최대한 앞에 있어야 합니다.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스트라이드와 릴리스 포인트 모두를 늘리기는 건 단기간에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릴리스 포인트를 낮추지 않고 최대한 앞에 두고 던진다는 느낌만 가져가도 결국 궤적이 타원형을 그리게 돼서 제구에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타원형…….”
한민석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들은 대로 야구 박사구나.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냐?”
“그냥 이것저것 주워들은 겁니다. 하지만 저도 고등학교 때 제구를 늘리려고 써먹은 방법이라 선배님한테도 도움이 될까 싶어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게 되는 거야? 방법이 있을 거 아냐?”
“기본으로 가야죠. 우선 벽을 보고 서서 릴리스 포인트가 될 지점을 찍어 놓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에다 수건을 묶어서 정확히 포인트를 수건으로 치는 겁니다. 수건의 궤적이 퍼져 나오면 스윙이 퍼져 나온다는 증거예요. 수건이 창으로 찌르듯이 나가야 제대로 스윙하는 겁니다.”
“하, 시즌 중에 섀도 피칭이라.”
“선배님 에이밍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에이밍은 뭔데?”
“골반이 돌아가기 전에 상체가 피칭 준비를 마치고 고정된 자세를 말합니다. 에이밍을 수정하는 건 쉽지 않지만 타원형 스윙을 하다 보면 확실히 좋아집니다.”
한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 해 보지, 뭐. 지금보다 나빠질 것도 없는 거 같은데.”
“우선 코치님과 상의한 후에 진행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코치님은 더 디테일한 훈련을 제시해 주실 거예요.”
“후, 그래. 그래야지. 여태 코치님 말을 쌩 깐 게 있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연 코치님 성격 아시잖습니까? 그런 거 개의치 않으실 거예요.”
“그래……. 그래도 네가 말한 섀도 피칭 어떻게 하는지만 알려 줘 봐, 오늘 연습 좀 해 두게.”
“네, 어떻게 하냐면은…….”
포수로 승승장구
팀 고트 (2)
페가수스와의 2차전.
투수코치 연우식은 자신을 찾아온 한민석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지금 투구 폼을 바꾸겠다고?”
“네, 요새 제구가 너무 날리는 거 같아서 중심축을 좀 더 세워 보려 합니다.”
“그래……? 예전에는 괜찮다더니.”
“그건……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내일이 등판일인데 괜찮겠어?”
“다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조금씩 개선할 생각이라서……. 어려울까요?”
“일단 좀 해 보자. 투수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이유가 있겠지. 결국 자신이 제일 잘 알거든.”
“감사합니다, 코치님.”
경기 시작 전.
송석현은 불펜에서 이창훈의 공을 받았다.
감독과 투수코치 모두 참관하에 불펜 피칭을 지켜보는 일은 종종 있지만 이창훈은 유독 더 긴장했다.
팡!
팡!
공 하나를 받을 때마다 송석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 투구가 끝나자 함성훈 감독이 송석현을 불렀다.
“어떤 거 같아?”
“직구 구위는 조금 줄어든 게 맞는 거 같습니다. 불펜 피칭이라고 해도 회전이 안 느껴져요.”
“단순한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는 건데…….”
“그래도 체인지업은 정말 좋습니다. 급이 달라졌어요.”
“그래? 다른 구종은?”
“그에 반해 커브나 슬라이더는 직구 회전이 줄어서 그런지 조금 무딘 느낌은 있습니다. 그래도 서드 피치로는 충분히 좋습니다.”
“그러면 슬라이더는 체인지업이 안 먹힐 때만 구사하고 커브를 서드 피치로 던지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 거 같은데. 포수 생각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슬라이더는 회전에 민감해서 굳이 안 써도 될 거 같고……. 커브는 공 하나씩 보여 주기 용으로 쓴다면 타이밍 무너뜨리기에 좋을 거 같습니다.”
“좋아. 오늘 창훈이 컨셉은 체인지업 마스터로 가 보자. 체인지업 비중을 확 올려 버려. 그래야 다음 경기부턴 커브나 슬라이더가 더 잘 먹힐 거 아냐.”
“아, 예.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함성훈 감독이 먼저 자리를 떴다.
투수코치 연우식이 송석현에게 어깨동무했다.
“확실히 우리 감독님이 스마트해. 그치?”
“예,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데 석현아.”
“네, 코치님.”
“듣자 하니 어제 민석이 공을 따로 받아 줬다면서?”
“네, 민석 선배님이 말씀하셨나요?”
“그래, 섀도 피칭으로 교정하는 법을 네가 알려 줬다고 하던데.”
“그냥 제가 했던 방법을 보여 드린 겁니다. 저는 코치님께 여쭤보고 결정하시는 게 좋다고 귀띔했는데……. 죄송합니다, 코치님.”
연우식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너 혼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저한테요?”
“그래, 민석이가 언제부터 너한테 그런 걸 물어보기 시작한 거야?”
“어제 갑자기 절 붙잡고 물어보셨습니다.”
“어제부터라……. 하여간 성격 급한 건 확실하네, 오늘 바로 나한테 달려온 걸 보면. 다행이야.”
연우식이 송석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워낙 공이 좋은 놈이라 고집 드럽게 셌는데 몇 번 털리고 나니까 자기도 심각한 걸 깨달은 모양이야. 진즉에 깨달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달라졌으니 다행이지. 앞으로 민석이가 너 귀찮게 하거들랑 나한테 말해. 내가 남아서 연습시키는 게 맞지, 우리 에이스를 야근시킬 순 없잖아.”
송석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저야 공 받는 거 상관없는데…….”
“민석이가 성격이 거칠어 보여서 그렇지 심성은 착해. 그러니 너무 안 좋게 보지 말고.”
“예, 그럼요.”
“오늘 창훈이 어때? 진희 상대로 해볼 만하겠어?”
송석현이 자신의 미트를 내려다봤다.
“저 체인지업이라면 충분히요.”
* * *
경기 시작 전.
주말 홈경기 3연전임에도 1루 내야 곳곳이 비어 있었다.
4연패와 더불어 뉴스 랭킹을 뒤덮은 부정적인 기사, 상대는 리그 1위 팀.
또 한 번 패배를 목도하고 싶진 않았던 팬들은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
-플레이볼.
이창훈이 먼저 마운드에 올랐다.
페가수스의 1번 타자는 부동의 리드오프 최영석.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2루수 후보로 언급되는 선수였다.
“고트가 피시, 멕킨지 두 용병을 내세우고도 패전의 명예를 뒤집어쓰면서 4연패에 빠졌습니다. 평소라면 에이스 이창훈 선수에게 기대를 걸 텐데, 최근 고트의 팀 분위기도 그렇고 이창훈 선수의 성적도 그렇고 썩 좋지 못합니다.”
“어느덧 페가수스와 4경기 차이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번 3연전에서 1승도 못 가져가면 사실상 1위 탈환은 어려워집니다. 4경기 차도 쉽게 줄일 수 없는 차이거든요.”
이창훈은 초구로 바깥쪽 빠른 공 하나를 던졌다.
최영석은 고개 한번 끄덕이더니 타석에 더 바짝 붙었다.
“몸 쪽 공이 안 무섭다 이거네?”
“창훈이가 좀 빡치겠는데.”
고트 벤치에서 걱정과 우려가 쏟아졌다.
에이스 이창훈을 상대로 1번 타자가 타석에 바짝 붙었다.
몸 쪽 빠른 공에 연연하지 않고 다 치겠다는 선언이었다.
“참 나.”
이창훈은 쓴웃음 한번 짓고선 다시 바깥쪽에 공을 던졌다.
탕!
최영석이 공을 쳤지만 2루수 땅볼.
힘껏 1루로 뛰었지만 넉넉하게 아웃이었다.
-아웃!
“첫 타자 최영석 선수를 공 2개로 잡아냅니다. 일단 이창훈 선수의 시작이 좋네요.”
“방금은 최영석 선수가 체인지업을 너무 급하게 건드렸어요. 똑같은 코스로 오다 보니 너무 쉽게 생각한 거 같습니다.”
최영석은 벤치로 돌아가자마자 손가락을 흔들었다.
“오늘 직구 별로야. 직구 노려서 치면 돼.”
리드오프의 첫 번째 임무는 상대 투수에 대한 정보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입수하는 일이다.
공을 많이 보면서 팀 타자들에게 상대 투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본인이 직접 상대해서 알려 주곤 한다.
최영석은 공수 모두 뛰어난 2루수이기도 했지만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선수이기도 했다.
상대 야수는 물론 투수의 특징과 디테일까지 잡아내는 눈이 있기에 페가수스 왕조 부동의 리드오프로 평가받았다.
“오케이. 직구가 별로라는 거지…….”
페가수스 선수들은 이창훈의 직구에 포커스를 맞췄다.
어떤 투수든 간에 적어도 50% 이상은 직구로 던지기 마련이다.
직구가 별로라는 말은 타자가 50%는 먹고 들어간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탕!
2번 타자 심창규가 이창훈의 초구 커브를 받아쳐 2루로 나갔다.
커브의 궤적을 본 4번 타자 김욱은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홈런 좀 까 놔야겠는데?”
이창훈은 3번 타자에게 풀카운트 끝에 볼넷을 허용하며 1회부터 땀을 뻘뻘 흘렸다.
“오늘 이창훈 선수가 제구에 애를 먹네요.”
“공을 상당히 신중하게 던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글쎄요. 너무 잘 던지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꼬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원님도 투수 출신이니 잘 아시겠군요.”
“네, 저도 현역에 있을 때는 오히려 칠 테면 쳐 보라고 생각하고 던질 때가 구위도 그렇고 제구도 가장 좋았습니다. 너무 잘 던지려고 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거든요.”
“이창훈 선수도 지금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걸까요?”
“오늘 구위가 그렇게 안 좋은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신중하게 던지려고 몸에 힘이 들어가고 역으로 더 제구가 안 되는 거 같습니다.”
“위기의 순간, 4번 타자 김욱 선수가 나옵니다. 1사 1, 2루. 고트로선 참 힘든 상황이에요.”
김욱은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송석현에게 인사했다.
“석현아, 석현아. 홈런 좀 그만 쳐라. 형한테 홈런왕 양보해야지.”
“그럼요. 선배님이 홈런왕 가져가셔야죠. 저 요새 홈런 안 나오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럼 형한테 홈런왕 양보하는 거지?”
“예, 예. 얼마든지 가져가십쇼.”
팡!
-볼. 아웃사이드.
“오늘 창훈이 공 너무 시원찮은 거 아니냐?”
“선배님 홈런 치라고 던져 주시는 거 몰랐습니까?”
“이런 밀어주기는 담합인데……. 그래도 내가 고맙게 받을게.”
다음 공은 아까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오는 직구.
김욱이 제대로 힘껏 스윙했다.
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