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61
“나이스!”
“나이스!”
송석현이 벤치로 돌아오자 선수들은 평소 하던 세리머니 대신 자리에서 서서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
짝짝.
송석현은 코를 긁적이면서 선수들을 지나쳤다.
송석현은 벤치 끝단에 앉아 숨을 골랐다.
“하, 짜식.”
김인환이 송석현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걸 치냐?”
“쳐야죠. 쳐야 이길 거 아니에요.”
“징글징글한 놈. 저 공을 어떻게 친 거야?”
“지성 선배랑 같이 한 훈련이 도움 된 거 같아요. 특히 파워 클린이랑 파워 스내치 같은 거. 제 생각보다 스윙 스피드가 더 빨랐어요.”
“그냥 네가 미친놈 아닐까? 나도 하이풀 하는데 왜 안 되지?”
“형은 그렇게 무겁게 하이풀 하느니 그냥 파워 클린이라도 해요. 형이라면 나보다 훨씬 더 빨리 파클 무게를 늘릴 수 있는데 왜 하이풀만 해요?”
“어려워. 쇄골 다칠까 걱정도 되고.”
“그러니까 연습해야죠, 잘 얹을 수 있게. 웬만한 역도 선수만큼 드시는 분이 너무 약한 소리 하는 거 아닙니까?”
“나도 좀 해야 하나…….”
송석현에게 홈런을 맞은 후 조진희는 좌절하기는커녕 더 눈에 불을 켜고 피치를 올렸다.
좌타자에게 강한 조진희가 피치를 올리자 유선호는 꼼짝도 못 하고 삼진.
공수 교대였다.
“오늘 잠실 경기 아주 재밌게 흘러갑니다. 1회부터 송석현 선수의 아름다운 홈런이 나오면서 2-0으로 고트가 앞서갑니다. 지난 4연패를 깔끔하게 씻어 버리는 초대형 홈런이었습니다. 잠실에서 장외 홈런도 드문데 저 정도 장외 홈런은 제 야구 인생에서 처음 보는 홈런이었습니다. 아마 이 정도 홈런이면 역사로 남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 야구공을 잡으신 분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행운이겠는데요?”
“야구공이 어디까지 날아갔을지 궁금하네요.”
송석현의 홈런 한 방은 단숨에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페가수스 타자들은 이창훈의 직구를 노리며 들어왔지만 연신 헛스윙, 땅볼을 반복했다.
한 타순이 다 돈 후에야 김욱이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내가 보기엔 쟤 체인지업이 하나가 아니야. 속도만 줄인 체인지업이랑 속도 줄이고 낙차 키운 체인지업 두 개가 있어. 특히 저 낙차는 내가 보기엔 조절할 수 있는 거 같아.”
“그게 되나……?”
선수들이 내일 선발투수로 예고된 김성훈을 바라봤다.
김성훈은 말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체인지업 전문이 아니라.”
“아무튼 직구가 시원찮다고 너무 덤벼들지 마. 지켜보자. 어차피 직구 구위는 맛탱이 갔어. 카운트 몰려도 충분히 칠 수 있으니까 이번 타순에선 최대한 공 많이 보면서 투구 수 늘리고 적응하자고.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좋아, 좋아. 스윕 가자!”
“스윕!”
3회 초.
페가수스의 1번 타자 최영석이 초구 커브를 지켜봤다.
송석현은 미동도 없는 최영석을 보더니 몸 쪽 직구를 요구했다.
팡!
-스트라이크!
몸 쪽 직구에 최영석이 고개를 한번 갸웃하곤 다시 타석에 바짝 붙었다.
송석현은 씨익 웃더니 바깥쪽에 미트를 가져다 댔다.
-체인지업.
이창훈은 흠칫 놀랐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바깥쪽으로 들어가는 134km/h 체인지업.
최영석은 배트를 내려다 멈췄다.
팡.
-스트라이크!
“삼구 삼진! 1번 타자 최영석 선수를 삼구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오늘은 최영석 선수가 전혀 힘을 못 쓰네요. 저런 선수가 아닌데 이상하네요.”
낙차 없이 스피드만 느린 직구.
누구보다 눈이 좋은 최영석이기에 스윙을 하려는 순간 공이 조금 느린 거 같다고 생각해 배트를 멈췄다.
다른 선수들이라면 잡아낼 수 없는 찰나의 감각이지만 감이 좋은 최영석이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예민한 감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끄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야 아셨나 보네.”
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투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초구 직구 사인.
타자가 들어오기 전부터 사인을 내 버린다.
포수의 확신.
상대 팀이 뒤늦게 이창훈의 체인지업이 까다로운 걸 알고 공을 지켜보기로 전략을 짰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이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거다.
투수가 새로운 구종을 들고 왔다면, 심지어 그게 위력적인 변화구라면 당연히 아웃 카운트를 잃더라도 오래 봐 놔야 다음에 칠 거 아닌가.
상대 팀의 전략을 안다면 대응은 더 쉽다.
상대가 전략을 바꿀 때까지 집요하게, 치사할 정도로 판다.
팡!
-아웃!
팡!
-아웃!
“두 타자 연속 삼진! 두 타자 연속으로 커브에 삼진을 당합니다.”
“이창훈 선수의 커브에 오늘 타자들이 힘들어하네요. 이창훈 선수 커브가 저렇게 좋았나요?”
“이창훈 3회까지 삼진 5개. 오늘 무시무시하네요. 닥터 K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체인지업을 염두에 둔다?
그렇다면 다른 구종만 던지면서 체인지업만 노리는 걸 포기하게 만들면 된다.
커브를 결정구로 쓴다면 상대가 커브에 반응하기 시작할 거다.
상대가 커브에 반응한다는 건 상대의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투수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좋고, 타자는 선택지가 적을수록 좋다.
커브에 초점을 두는 순간 이창훈의 140km/h 초반의 직구는 최소 5km/h 이상 더 빠르게 체감될 거다.
“저 약은 놈.”
정용욱은 송석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예상했지만 그렇다고 팀의 전략을 바꿀 순 없었다.
타자는 생각이 복잡해질수록 불리해지는 생물이다.
전략을 한 번, 두 번 바꾸기 시작하면 머릿속이 꼬인다.
설령 자신이 포수라도 팀 차원에서 전략을 낼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다만…… 자신이라면 커브를 노리고 들어갈 거다.
아니, 역으로 자신한테는 체인지업을 던지지 않을까?
같은 포수끼리 자존심이 있으니 역시 체인지업을…….
아니면 역의 역으로 그냥 커브로 승부를……?
“아…….”
정용욱은 자신도 늪에 빠졌다는 걸 자각했다.
한번 잡념이 시작되면 막을 수 없다.
정용욱은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명상, 명상.
생각을 비워야 한다.
“형! 뭐 해요? 안 나가요? 공수 교대잖아!”
“아, 맞다!”
포수로 승승장구
팀 고트 (4)
5회 말.
점수판에는 2-2라는 점수가 적혀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삼진입니다! 조진희가 오늘 벌써 삼진만 일곱 개를 뽑았습니다.”
“5회 말. 조진희 선수가 삼진으로 이닝을 끝내면서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이 오겠네요.”
“저런 투구를 하는 조진희 선수가 2점을 줬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인데 이창훈 선수도 이에 질세라 단 2점만 내주면서 페가수스 타선을 잘 막아 내고 있습니다.”
“어제의 패배로 고트가 4연패에 빠졌었는데 오늘 경기는 최근 경기 중에 가장 내용이 좋은 경기네요.”
“페가수스가 하락세의 고트를 만나 한껏 반겼을 텐데 경기 내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 * *
클리닝 타임.
양 팀 선수들은 벤치로 들어와 잠시 숨을 돌렸다.
간식을 먹는 선수도 있었고 눈을 감고 명상하는 선수도 있었다.
송석현은 포수 마스크를 벗고 앉아 바람을 쐬었다.
“오늘 리드 좋다?”
선발투수 이창훈이 송석현 옆에 앉았다.
“선배님 공이 좋으신 거죠. 오늘 체인지업은 알아도 못 치겠던데요?”
“뭐, 리드가 좋은 덕이지.”
“공이 좋은 덕이죠.”
둘은 너 나 할 거 없이 파하하 웃었다.
“6회까지 갈 수 있을까? 아까 홈런도 욱이 형이 타이밍만 맞췄는데 넘어갔잖아, 잠실에서.”
“지금 투구 수로 보면 7회, 8회도 되죠. 홈런이야 어쩔 수 없구요.”
“공이 내 마음대로 안 가네. 꽉꽉 눌러 주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창훈이 자기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꼭 힘으로 눌러야 맛이 나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변화구로 농락당하면 타자 멘탈이 더 깨진다니까요. 멘탈이 깨지면 경기 운영하기 훨씬 쉽죠.”
“그러냐?”
이창훈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신기하지. 살다 보니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게 있네. 공이 시원찮아졌는데 체인지업이 이렇게 좋아질 줄 누가 알았어? 그것도 하루아침에. 진작 이런 체인지업을 던졌다면 FA 때 최소 10억 이상 깔고 갔을 텐데.”
“욕심도 많으시네요. 이미 벌 만큼 다 버셨잖아요. 평생 놀고먹어도 3대가 먹고살아도 남는 돈 버셨으면서. 전 부럽습니다, 선배님.”
“어이구, 니가?”
뒤에서 바나나를 오물거리던 유선호가 송석현 뒤에 앉았다.
“인마, 니는 못해도 100억이야, 100억. 요새 물가 오르는 거 보면 니는 150억 받아도 머라 칼 사람 하나도 없다.”
“인생은 모르잖습니까? 저는 무사히 FA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괜히 FA 때 아프거나 부진하고 그래서 헐값에 계약하면 너무 힘들 거 같아요.”
“그러니까 몸을 애껴. 야구라는 게 그래.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너무 열심히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게을러도 안 돼. 적당히. 열심히는 하지만 오버는 아닌 정도로.”
“그게 더 어려워요. 애매한 거.”
“인생에 정답이 없으니까 다 어려운 거야. 니처럼 어린놈이나 나처럼 늙다리 아자씨나 사는 게 어려분 건 다 똑같다, 똑같아.”
클리닝 타임이 끝나 가자 이창훈이 고개를 돌려 유선호를 바라봤다.
“선배님.”
“와?”
“저 오늘 승리 하나 따고 싶습니다. 선배님도 홈런 하나 쳐 주셔야죠.”
“와 나한테 그라노? 야한테 해라, 야한테. 뭐 내는 치기 싫어 안 치나.”
“석현이한테는 그냥 볼넷 줘 버리고 말잖아요. 선배님, 한 방 부탁드립니다. 무조건 선배님한테 승부하는데 찬스는 선배님한테 나겠죠. 이번 공격도 딱 인환이부터 아닙니까.”
“그러면 인환이한테 치라 카믄 되지.”
“그래도 인환이보단 선배님이죠. 선배님이 홈런 하나 치시면 제가 소원도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됐다, 뭔 소원. 그리고 내도 진희한테 홈런은 자신 없다. 쟈 오늘 이 악물고 던지는 거 안 보이나?”
“흠흠, 제 사촌 동생이 주윤흰데 혹시 아세요?”
주윤희라는 말에 유선호의 눈이 번뜩했다.
“그 주윤희? 내가 아는 가 맞나?”
“네. 윤희가 주변에 예~쁜 친구들이 참 많은데……. 예쁘고 심성도 고운 애들이 많데요.”
“윤희가 아이고 친구?”
“뭐, 마음에 안 드시면 어쩔 수 없지만 윤희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야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선배님이랑 자리 한번 마련하면 어떨까 싶었거든요.”
유선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홈런 말고 타점은 안 되나?”
“에이, 선배님. 제가 윤희 친구들 얼굴 다 봤어요. 윤희가 평균이에요, 평균. 윤희보다 예쁜 애들도 있다니까요. 겨우 타점 가지고 되겠어요?”
“그래, 함 해 보자. 니 그 말 구라로 하는 거 아이제?”
“그럼요, 그럼요. 아, 석현이도 홈런 하나 더 치면 형이 책임지고 자리 만들어 줄게. 너도 찬스가 나면 쳐.”
송석현은 어색하게 한번 웃고는 포수 마스크를 집었다.
“가시죠. 일단 막아야 역전을 할 거 아닙니까?”
“그래, 가자. 막으러 가자.”
6회 초.
선두 타자는 1루수 김한성.
온몸이 근육으로 덮인 남자였다.
“김한성 선수 오늘 성적이 별로 안 좋죠?”
“네. 오늘 이창훈 선수의 변화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힘 하면 김인환 선수와 더불어 리그에서 손꼽는 최고의 거포인데 오늘은 타구가 제대로 뻗어 가는 게 없네요.”
“페가수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죠. 김인환 선수와는 동갑내기로 고교 시절에는 라이벌이었지만 김인환 선수가 조금 더 1인자에 가까웠죠. 프로로 진출한 이후엔 정반대, 김인환 선수는 적응을 하지 못했지만 김한성 선수는 그야말로 라이징 스타로 리그를 휩쓸었습니다. 페가수스 왕조의 일원으로 승승장구하면서 두 동갑내기의 차이가 영영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김인환 선수가 성큼 성장했습니다.”
“1루수, 3번 타자,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좌타자와 우타자라는 차이를 빼곤 공통점이 많은 선수들입니다. 두 선수들의 라이벌전도 오늘 경기의 키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김한성 선수가 또 삼진을 당하네요.”
“저 체인지업 오늘 심상치 않습니다. 정말 좋아요. 뚝 떨어집니다.”
“다음 타자는 김욱. 오늘 동점 투런을 칠 만큼 컨디션이 좋습니다.”
송석현은 김욱에게 대놓고 볼넷을 내줬다.
김욱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에이, 후배님. 홈런왕 밀어준다면서 왜 이래?”
“오늘 창훈 선배님 제구가 안 좋나, 왜 저럴까요?”
“넉살은.”
김욱을 1루로 보낸 후 5번 타자 김성현에게 초구로 바깥쪽 빠른 공.
-스트라이크!
김성현은 다리가 풀려 고개를 떨어뜨렸다.
“김성현 선수가 좋은 공을 놓쳤네요.”
“바깥쪽 코스가 오늘 페가수스 타자들에겐 난젭니다. 직구가 빠르게 들어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오늘 이창훈 선수의 직구가 140 초반이거든요. 충분히 칠 수 있는 직군데 체인지업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으니까 자꾸 배트가 늦어집니다. 저렇게 스트라이크를 먹으면 더 기운이 빠지죠.”
송석현이 투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이번에도 바깥쪽 코스.
아까보다 살짝 빠져 들어가는 코스라 타자가 배트를 멈췄다.
-스트라이크!
-132km/h.
“또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체인지업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