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85
“그냥 예전부터 사모했었다, 꼭 만나 뵙고 싶다, 나 진지하다 이렇게 썼지.”
“……그게 끝?”
“어, 그렇게만 쓴 게 끝이야.”
“그렇게만 썼는데 바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고요?”
“그렇다니까.”
“스읍…… 형. 저한테까지 거짓말을……. 실망인데요.”
“진짜라니까. 근데 만나 보니까 문자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더라.”
송석현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뭔데요?”
“좀 안 좋은 일을 당했었대. 누군지는 말 안 해 줬는데 되게 잘나가는 연예인이랑 사귀었나 봐. 이름만 들어도 아는 그런 사람?”
“오오, 누군지는 모르고요?”
“나도 안 물어봤어. 존심 상하게 뭐 하러 꼬치꼬치 물어보냐? 누나 말로는 자긴 진지했는데 그쪽에서 자꾸 자길 너무 쉽게 생각했다나?”
“아아, 쉽게…….”
“누나 멘탈이 완전히 나갔었대. 자기가 그렇게 쉬운 여잔가 싶어서 자괴감도 들고. 그때 내가 문자를 보낸 거지. 처음에 누나가 날 부른 것도 내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어. 자기가 그렇게 쉬워 보이냐고 화풀이하려고 부른 거였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을 흘기네. 형한테 왜 화풀이를 해요?”
“너도 나 쉽게 보냐, 이런 거지. 자기는 번호 준 적도 없는데 왜 연락하냐고.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화를 엄청 내더라고. 나도 한마디도 말 못 했고. 그러더니 또 혼자 막 울더라? 혼자 술도 엄청 먹고. 난 말리지도 못했어. 그러다가 갑자기 막 픽 쓰러지더니……. 하, 토도 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 주인이 경찰 부른다면서 화도 내고……. 진짜 엄청 힘들었다니까.”
“그게 언젠데요? 형 부산에 있을 때 아니에요?”
“응, 누나도 그때 부산에 있었거든. 어떻게 SP스포츠 쪽에 연락이 닿아서 숙소로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택시에서 또 토한 거야. 그거 닦고 치우고 돈까지 줬다, 야. 영업 못 한다고 10만 원 달라더라. 첫 만남은 완전 개진……. 아무튼, 그렇게 좋진 않았어. 숙소에 데려다줄 때쯤에 깨더라고. 하, 첫 만남은 최악이었어, 최악.”
“그런데 어떻게 사귀게 된 거예요? 서로 최악인데.”
“다음 날 뜬금없이 나 부르더라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고 했었어. 난 됐다는데 계속 불러서 나갔지. 갔는데 이번엔 다른 여자들도 같이 있대? 남자는 나 혼자고 죄다 여자야. 얼결에 거기에 꼈는데 누나 친구들이 막 몰아가더라고. 거기에 우리 팀 팬도 있었거든. 아, 그 누나가 너한테 사인받아 달라고 했는데. 나중에 꼭 해 줘라.”
“알았어요, 알았어.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 누나 친구들이 다 했어. 왕 게임이다 뭐다 하면서 나랑 누나랑 어떻게든 이어 주려고 하고. 나는 적당히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누나는 싫지 않은 눈치더라? 나 화장실 가는데 누나 친구가 내 옆구리를 팍팍 찌르더라고. 누나가 보기에만 철벽이지 여중, 여고, 교대를 나와서 숙맥이라고 진지하게 고백해 보래. 그래서 그날 숙소 데려다주는 길에…… 음…… 고백해 봤지, 뭐. 어차피 안 되면 마는 거니까.”
“그래서 오케이?”
김인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날부터 사귄 거야. 웃기지? 나도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니까.”
짝짝짝.
송석현이 손뼉을 쳤다.
“역시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쟁취하네요. 그렇게 또 사귀는 방법도 있네. 대단하다, 대단해. 그게 일주일 전 얘기라는 거죠?”
“그치.”
“역시 남자는 적극적이야 된다니까. 형도 용기를 가지니까 결국 잘 풀리잖아요. 축하해요, 형. 솔로 탈출!”
김인환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보다 누나가 더 적극적인데…….”
“네?”
“아냐, 아냐.”
“그런데 형, 누나 SNS는 닫은 거예요? 아까 들어가니까 아무것도 없던데.”
“일단 닫았지. 열애설은 인정하기로 했어. 사진까지 다 나왔는데 어쩌냐. 나만 미안하게 됐지, 누나한테.”
“사진 보니까 누나가 형 엄청 좋아하는 거 같던데. 오오. 능력자~.”
김인환이 이마를 긁적였다.
“아니, 뭐,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사귀다 보니까, 그렇게 뭐, 어? 그렇게 음, 음. 그렇게 된 거야?”
송석현이 눈을 깜박거렸다.
“뭐 그렇게 말을 더듬어요. 얼굴은 왜 또 그래요? 형, 혹시 술 마셨어요? 얼굴이 빨간데?”
“사우나를 너무 해서 그래, 사우나를. 아우, 내일 제대로 일어날지 모르겠다.”
김인환이 옷을 벗더니 바로 이불을 덮었다.
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인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생략된 얘기가 많은 거 같은데…….”
“자자, 자. 오늘 너무 피곤하네. 잠 좀 푹 자자.”
“음…… 알겠습니다. 자도록 하지요. 나머지는 내일 또 듣도록 하겠습니다.”
“할 얘기 없어. 그게 단데, 뭐. 자, 인마. 얼른 자.”
다음 날 아침.
스포트라이트는 김인환의 차지였다.
김인환과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대체 어떻게 된 거냐며 연유를 묻기 바빴다.
김인환은 이들을 피해 다녔으나 대전 구장에 진을 친 취재진까진 피할 수 없었다.
“예, 예. 현재 진지하게 교제 중이고, 앞으로 더 좋은 관계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판에 박힌 말이지만 기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김인환을 바라보는 선수와 코치들의 표정은 더 진지했다.
“대체 왜……?”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되네. 인환이가 요새 좀 잘한다고 해도 인환이보다 더 잘하고 돈 많이 번 선배들도 죄다 칼 차단당했잖아?”
“인환이의 매력이 대체 뭐야? 한가연을 어떻게 꼬신 건데?”
“통곡의 벽 한가연이 뭐가 아쉬워서…….”
“너도 사진 봤지? 한가연이 완전히 뿅 간 거. 한가연이 더 좋아하는 거 같던데.”
“세상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많아.”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사이 김정률과 유선호는 뒤쪽에 뒷짐을 지고 서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점마들이 우예 알겠노.”
“하,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샤워도 혼자만 하려고 해서 깔끔 떠는 줄 알았는데.”
“내도 진짜 이번엔 시즌 끝나모 바로 소개팅을 해야긋다.”
“형은 소개팅이 아니라 맞선이겠지.”
“……고마 냉탕보다 못한 놈이 으디서 말을 함부로 섞노?”
“뭔 소리야, 냉탕보다 못하다니? 난 실속파라니까.”
유선호가 코웃음 쳤다.
“실속은 무슨. 소탐대실이다, 소탐대실.”
유선호가 자리를 뜨자 김정률이 당황한 얼굴로 유선호를 쫓았다.
“소탐대실이 뭔 말인데? 뭐가 소탐대실이야?”
“아이다. 내가 말을 잘못했네. 소탐대실이 아이라 유명무실.”
“아이, 형!”
“희야 가는 길에 꽃을 못 뿌릴망정 으데서 태클이고, 태클이.”
* * *
경기 시작이 가까워졌지만 피닉스와의 대결보다 김인환의 열애설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웠다.
고트 벤치에선 웃음과 농담이 쏟아졌다.
“아, 짜식들. 긴장감이 없네.”
피닉스의 4번 타자이자 국가 대표 4번 타자인 경수인이 마뜩찮은 얼굴로 고트의 벤치를 훑었다.
피닉스의 선발투수 정광우도 혀를 찼다.
“잘나간다 이거지 뭐. 요새 고트 장난 아니잖아.”
“그래도 짜식들이 경기 전에는 긴장한 티라도 내든가. 아주 웃고 난리 났네.”
“억울하면 형이 이겨 주든가.”
“나 혼자서 그게 되냐?”
“영훈이는 하잖아.”
경수인이 피식 웃었다.
“염병. 그럼 네가 투수니까 네가 영훈이만큼 하든가.”
“나는 무리데스. 나는 그저 그런 B급 투숩니다.”
“오오, B급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네?”
“이 정도면 우리 팀에선 A급이지.”
“영훈이 오면 넌 C급이야, C급.”
정광우가 입맛을 다셨다.
“영훈이는 언제 오려나. 내년에는 될까?”
“그 정도 혹사했으면 솔직히 은퇴해도 이상하진 않지.”
“빠르면 내년 복귀 가능하다 하지 않았나?”
“빠르면이지. 내가 보기엔 잘해 봐야 내후년으로 본다. 그마저도 우리가 아는 영훈이는 아닐 거야. 내 바람이지만 차라리 영훈이가 은퇴해서 전설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어. 지금 우리 전력으로 영훈이 돌아와 봐야 우리가 짐이나 되지 뭐.”
“이미 우승 반지 한 번 꼈다고 룰루랄라네, 형.”
“나라고 안 답답하겠냐? 에휴. 우리는 언제 리빌딩 해서 가을 야구 단골손님이 되려나.”
“형, 근데.”
“근데 뭐?”
“형은 안 궁금해? 천하의 한가연이 넘어간 거? 그것도 김인환한테! 형도 몇 번 까였다며?”
경수인이 쓰게 웃었다.
“취향이 독특한가 보지.”
“거참, 신기하단 말이지. 대체 무슨 매력일까? 천하의 철벽녀 한가연을 어떻게 꼬셨지?”
* * *
쾅!
“우측 담장! 우측 담장! 우측 담장! 넘어갔습니다! 김인환의 솔로포! 오늘 경기 2연타석 홈런! 김인환이 오늘 김우민 선수를 흠씬 두드리고 있습니다.”
“김인환 선수의 힘은 정말 놀랍네요. 거의 배트 끝에 맞은 거 같은데 담장을 넘어갑니다. 이 무시무시한 힘, 헐크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김인환 선수의 몸을 보세요. 몸통이 두텁고 허벅지와 엉덩이도 튼실합니다. 저 코어, 저 코어의 힘으로 홈런을 치는 거라고 봅니다, 전.”
“피닉스는 오늘도 초반부터 무너지네요. 피닉스가 공들여 키우고 있는 김우민 선순데 고트라는 벽은 참으로 높고 무섭네요.”
“피닉스의 리빌딩은 이제 시작입니다. 제대로 리빌딩을 하려면 적어도 3년입니다. 3년 동안 좋은 신인 선수들을 발굴하고 기존의 유망주를 길러 내야 화수분 야구가 가능하거든요. 힘들어도 피닉스는 꾸준히 밭을 갈아야 합니다. 경험치라는 게 무서운 거예요. 김인환 선수를 보세요. 김우민 선수와 동갑이지만 올 초까지만 해도 미운 오리 새끼였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명실공이 리그 최고의 거포의 일원 아닙니까?”
김인환이 벤치로 돌아오자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와 물었다.
“제수씨한테 세리머니 안 하냐?”
“사랑의 힘이야?”
“김인환, 연애한다고 홈런 뻥뻥치는 거 봐. 부럽다, 이놈아.”
김정률만 팔짱을 낀 채 풀 죽은 얼굴로 김인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인환은 김정률과 손을 마주치면서 물었다.
“형, 왜 그렇게 봐요?”
김정률은 푸우,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부럽다, 이놈아.”
“네? 저요?”
“좋겠다, 좋겠어.”
영문을 모르는 김인환은 눈만 깜박거렸다.
“뭐가 좋아요, 대체?”
“다! 다! 다아아아!”
포수로 승승장구
대전 피닉스의 눈물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피닉스라 행복합니다~.
-딴, 딴, 따다단, 피닉스 홈런!
-딴, 딴, 따다단, 피닉스 홈런!
9회 말.
14-2.
2사 만루 찬스에게 경수인이 나오자 피닉스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가를 힘껏 불렀다.
필사적인 응원가에 고트 선수들도, 고트 팬들도 합죽이가 됐다.
탁!
“우익수! 우익수! 우익수가~~! 잡습니다! 설진일의 파인플레이! 경기 끝! 경수인 선수의 공이 담장을 넘지 못했습니다. 14-2. 고트의 대승입니다.”
“피닉스 팬들이 열과 성을 다해 응원했지만 아쉽게도 오늘도 피닉스는 지고 말았습니다. 잠깐 반짝 반등을 하다가 다시 8위. 피닉스 팬들의 가슴은 오늘도 아리네요.”
“그에 반해 고트 팬들은 축제 분위깁니다. 오늘 경기로 페가수스와는 1경기 차, 1경기 차로 줄었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피닉스와의 대전이 남아 있어요.”
“페가수스 팬들은 피닉스의 활약을 간절히 원하겠네요.”
“오늘 경기의 MVP는 김인환 선수가 뽑혔습니다. 오늘 경기 3연타석 홈런의 주인공이죠? 전타석 출루 기록도 세웠습니다.”
“하하, 김인환 선수, 오늘 열애설 때문에 혼쭐난 게 아닐까 싶었는데 오히려 성적이 더 잘 나왔어요. 이게 사랑의 힘인가 싶습니다.”
“고트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헐크 김인환과 잠실의 왕 송석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홈런을 마구 생산하고 있잖습니까?”
“올해 초만 하더라도 고트의 팜이 황폐화됐다고 너도나도 떠들던 때가 있었는데. 격세지감입니다. 고트의 팜에서 나온 KS포. 리그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의 듀오라고 봅니다.”
* * *
“응, 응. 알았어, 누나. 응. 누나도 힘내.”
경기가 끝난 후 숙소 안.
김인환은 화장실로 들어가 한가연과 통화했다.
송석현은 핸드폰으로 김나영과 톡을 하면서 TV를 힐끔거렸다.
“흠흠.”
화장실에서 나온 김인환이 헛기침했다.
“너도 이제 화장실 써야지?”
“통화 다 했어요?”
“어, 뭐 적당히.”
“좋겠다. 깨 쏟아지네요, 쏟아져. 누나가 되게 적극적이네요. 전화를 몇 번 하는 거예요, 흐흐.”
“그러게, 하하.”
김인환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그런 분이 통곡의 벽이었대요? 그렇게 적극적인데?”
“글쎄, 그거야 나도 뭐 잘…….”
“형의 마력인가?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매력?”
“에이, 그런 게 어딨냐? 그냥 뭐 연애 경력이 짧다 보니까 초반에 확 불타는 거 아니겠어?”
“형, 아까 보니까 혼나는 거 같던데, 맞죠? 세리머니 안 했다고 혼났죠?”
“……어떻게 알았어?”
“다 아는 수가 있죠. 다 겪었으니까.”
“너도?”
송석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무 자주 하지는 마요,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니까. 딱 결정적일 때만.”
“아아, 그런 것도 생각해 둬야겠네.”
김인환이 침대에 누웠다.
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형, 푹 자요. 내일 홈런을 쳐야 세리머니 해서 여자 친구의 기분을 풀어 줄 거 아니에요.”
김인환은 얇은 이불을 배에 걸치곤 침대에 바로 누웠다.
눈을 감았는데도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흐흐.”
김인환은 몸을 꿈틀거리면서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송석현이 나왔다.
“…….”
“…….”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 말이 없었다.
송석현은 수건을 가리키곤 집어 들었다.
“수건이 여기 있었네요.”
“……그래.”
송석현이 화장실로 들어가자 김인환이 베개로 얼굴을 덮었다.
그때 다시 화장실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