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88
김정률이 인사를 건넸지만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데면데면했다.
황시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야, 야. 그만 가라. 우리 팀 분위기 안 좋아.”
“응? 왜?”
“왜긴, 인마. 올해에도 포시 못 가면 감독 바뀐다는 소문이 파다해.”
“그래서 애들도 죽상이야?”
“포시 못 가면 모기업에서 지원도 줄인단다. 우리 연봉도 간당간당해.”
“세게 가네.”
“오늘은 이만 가. 다음에 밖에서 얘기하자고.”
“알았어, 형. 나중에 연락하자.”
김정률은 고트의 벤치로 돌아왔다.
투수코치는 김정률에게 어딜 돌아다니냐며 핀잔을 줬다.
“노가리 좀 까는 게 국룰인데 왜 쿠사립니까, 코치님?”
“넌 맨날 돌아다니니까 그렇지.”
“가서 분위기도 살피고 정보도 얻고 하는 건데, 너무 구박하신다.”
“정보는 무슨. 그래서 뭐라도 건진 거 있냐?”
“웨일스 애들이 발등에 불 떨어진 거? 이번에 포시 못 가면 감독 날아가고 연봉도 줄인다던데?”
“그거는 다 아는 사실이고.”
“나는 몰랐는데?”
“너는 실속이 없어, 실속이. 다 아는 걸 이제 알아 와 놓고 유세는. 이번 3연전 동안 웨일스 벤치는 가지 마. 저기 애들 날카로우니까. 괜한 분란거리 만들지 마란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아이, 형은 참 잔소리만 늘었어.”
“코치님. 코치님이라고 하라고.”
“늬예, 늬예, 알겠습니다, 코치님.”
김정률이 음료수를 꺼내 먹으면서 투덜거렸다.
“웨일스가 뭐라고 별 걱정을 다 해.”
* * *
5-1.
3회 말을 마친 전광판의 숫자는 5-1을 가리켰다.
웨일스가 5, 고트가 1.
고트의 선발투수 정천운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땅만 보고 있었다.
해설자와 캐스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 고트가 영 힘을 못 쓰고 있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고트의 타선이 로버트 유진 선수에게 제대도 말렸습니다. 3횐데 삼진만 네 개째에요.”
“이에 반해 정천운 선수는 삼진이 아직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홈런만 두 개를 맞았어요. 정천운 선수가 리그 최고의 5선발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이건 뒤집어 말하면 믿고 맡기기엔 불안하다는 얘기거든요. 이닝 소화력이 좋은 건 확실하지만 방어율이나 경기 내용은 좀 아쉬움이 많아요. 물론 5선발투수에게 많은 걸 바랄 수는 없고, 정천운 선수가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는 것도 맞습니다.”
“고트에선 선발투수 정천운 선수를 벌써 내렸습니다. 길게 가져가는 게 고트의 팀 컬러인데 오늘은 좀 다르네요.”
“이제 30경기도 안 남았어요. 한 경기, 한 경기가 아주 소중한 시점이란 얘기죠. 이제는 버릴 경기 같은 건 없습니다. 무조건 한 경기라도 따내야 해요.”
“마운드에 올라온 건 노진환 선수네요. 고트의 추격조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타석에는 이재훈 선수가 들어옵니다. 3할 40도루의 주인공이죠. 국가 대표 우익수를 겸하고 있습니다. 장타력도 있지만 발도 빠르고 어깨도 좋아요. 웨일스의 기둥 같은 선숩니다.”
바뀐 투수 노진환은 이재훈에게 안타 후 도루를 내줬다.
“노진환 선수, 어차피 도루는 이미 준 겁니다. 도루 준 건 잊어버리고 김재홍 선수와의 승부에 집중해야 해요. 김재홍 선수의 펀치력을 조심해야 합니다.”
노진환은 김재홍에게 2-2까지 끌고 갔으나 결정구로 가져간 슬라이더가 빠지지 않았다.
탕!
“좌측 담장을 향해 뻗어 가는 공! 갑니다! 갑니다! 갔습니다! 김재홍의 투런포! 웨일스가 고트를 상대로 폭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7-1. 이 점수는 쉽지 않습니다. 고트의 폭발력을 감안해도 쉽지 않아요.”
“웨일스가 갈 길 바쁜 고트의 앞길에 고춧가루를 뿌리네요.”
“급한 건 웨일스도 마찬가지거든요. 고트는 오늘 경기까지 지게 되면 페가수스와의 승차가 3경기까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타선이 터져 주지 않으면 오늘 고트, 쉽지 않겠는데요?”
송석현이 오른손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노진환은 4회에 추가 실점 없이 막아 냈지만 한 이닝 동안 서른세 개의 공을 던지며 지친 티를 냈다.
4회 말 공격은 김인환.
김인환이 나서고 송석현이 대기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 위의 로버트 유진은 김인환을 보며 로진백을 매만졌다.
“오케이. 컴온.”
포수로 승승장구
성난 고래 (2)
팡!
-스트라이크!
김인환은 외곽으로 꽂힌 패스트볼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트의 벤치에선 욕까지 튀어나왔다.
“저런 공을 스트라이크를 줘?”
“해도 너무하네. 공 두 개는 빠진 거 같은데.”
“무슨 존이 저 따위야?”
로버트 유진이 밝게 웃으며 포수가 던진 공을 받았다.
김인환이 타석에 바짝 붙어서 다음 공을 기다렸다.
탁!
“파울! 김인환 선수가 체인지업을 걷어 냈습니다.”
“방금 공은 좀 빠졌는데 김인환 선수가 건드렸어요.”
“0-2. 오늘 로버트 유진 선수의 페이스가 좋습니다.”
김인환은 타석에서 물러나 한숨을 쉬었다.
벤치에 있던 유선호가 중얼거렸다.
“오늘 심판 와 이라노? 태평양도 저런 태평양은 처음 보네.”
한 선수가 대꾸했다.
“원래 외곽 많이 잡아 주잖아요, 저 양반은 특히.”
“그래도 정도가 있지. 저래 잡아 주면 우예 치노 말이다.”
로버트 유진은 이어 연속 볼 두 개를 던졌으나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범타를 유도해 아웃 카운트를 늘렸다.
“김인환 선수, 아웃. 오늘 고트의 공격이 KS 포에서 이어지지 않네요.”
“고트의 핵심은 결국 클린업 타선 KS포거든요. KS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점수를 내기 어려워요. 고트의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KSY가 역대 최고의 클린업 중 하나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만큼 의존도도 높아요.”
김인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벤치로 돌아갔다.
“오늘은 뭐 답도 없는데요. 우타자였으면 몸에 맞을 공도 잡아 주고 있어요.”
타석에 송석현이 들어서자 고트의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가를 불렀다.
로버트 유진은 응원가를 들으며 씨익 웃었다.
“고의사구, 고의사구네요. 7-1에서 고의사구를 줍니다.”
“송석현 선수도 어이없다는 표정입니다. 여기서 고의사구를 줄 필요가 있을까요?”
“송정남 감독의 결정에 조금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송석현이 1루로 걸어 나가자 고트 팬들은 상대 투수 로버트 유진에게 야유를 쏟아 냈다.
로버트 유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유선호는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타석에 완전히 바짝 붙었다.
“선배님, 그러다 몸에 맞겠습니다.”
웨일스 포수 조진열이 웃으면서 농담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차가웠다.
“치아라, 마. 시그럽다.”
포수가 벤치를 바라봤다.
벤치에서 나온 사인은 바깥쪽.
로버트 유진이 바깥쪽 커브를 초구로 던졌다.
탁!
“우익수, 우익수~ 잡습니다. 우익수 플라이. 유선호 선수가 노림수를 갖고 스윙했습니다만 너무 높게 떴습니다.”
“방금은 스윙이 너무 컸습니다. 저런 식으로 스윙을 하게 되면 모 아니면 도 아니겠습니까? 유선호 선수 같은 베테랑이 저런 스윙을 왜 가져갔을까요?”
유선호는 배트를 주우면서 중얼거렸다.
“수인이는 되드만 와 내는 안 되노.”
6번 타자 최재완이 로버트 유진의 공을 치면서 2사 1, 2루를 만들었지만 로버트 유진은 바로 땅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후우.”
함성훈 감독은 고개를 뒤로 젖히곤 목뒤를 주물렀다.
코치들도 다를 바 없었다.
짜증 나는 표정, 답답한 표정, 신경질적 표정 등 가지각색의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5회가 끝난 후 클리닝 타임.
전광판의 숫자는 8-3.
고트의 하위 타선이 추가점을 냈지만 벤치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완전 말맀다.”
유선호의 말에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마 저거, 심판을 갖고 논다, 갖고 놀아.”
“유일재 심판 저 사람이 원래 바깥쪽은 후하잖아요.”
이지성이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로버트 유진이 잘하는 거야. 1회부터 조금씩 바깥쪽으로 공을 빼더니 이제는 공 한 개 이상 벗어난 건 무조건 스트라이크 콜 받잖아. 저것도 투수 능력이지, 뭐.”
“이러다 로버트 저놈 완투할 거 같은데 어떻게 끌어내리지?”
선수들의 시선이 유선호에게 쏠렸다.
“하던 대로 해야지 우야겠노. 안 하던 거 해 뿌몬 더 망한다, 망해. 오늘만 야구 할 끼가?”
로버트 유진은 6회에도 7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왔다.
7.1이닝 3실점, 7K, 3BB.
웨일스 팬들이 로버트 유진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탕!
“중견수! 중견수! 중견수 머리 뒤로! 아, 잡았습니다! 정기수 선수의 나이스 플레이!”
“김인환 선수가 큰 스윙으로 반전을 노려 봤지만 어쩔 수 없었네요.”
“11-3. 11-3으로 웨일스가 고트와의 경기를 승리로 이끕니다.”
“오늘 고트는 로버트 유진 선수에게 완전히 꽁꽁 묶여 버리면서 KS포가 침묵했습니다. 웨일스는 3번 타자 김인환 선수에게 철저하게 승부를 피했고, 송석현 선수에겐 고의 사구만 두 번을 내줬습니다. 오늘 송석현 선수는 전 타석 출루를 했는데 모두 볼넷입니다. 사실상 KS포를 걸렀던 거나 마찬가지예요.”
“고트가 안 좋을 때 흔히 겪었던 일 아닙니까? 중심 타선 KS포만 거르고 승부. 최근에는 이런 전략이 안 통했는데 왜 오늘은 통했을까요?”
“유선호 선수가 들어오고 이지성, 설진일 선수가 앞에서 버텨 주기 시작하면서 KS포 거르기가 안 통했죠. 하지만 오늘은 유선호, 설진일 선수 모두 부진했습니다.”
“두 선수가 부진한 이유가 있을까요?”
“유선호 선수는 자기만의 존이 확고한 선숩니다. 그러니 통산 출루율이 4할이 넘어가겠죠. 하지만 그 얘기는 오늘처럼 존이 넓은 타입의 심판을 만나면 곤란해진단 뜻입니다. 설진일 선수에 대해 얘기하자면 이 선수는 초구 좋아하고 초구를 참 잘 치는데 수 싸움에는 약해요. 로버트 유진 선수처럼 존을 넓게 활용하는 선수를 만나면 아무래도 초구 공략이 쉽지 않죠.”
“이렇게 오늘 웨일스가 승리를 가져가면서 웨일스가 4위와의 격차를 한층 좁혔습니다. 이에 반해 고트는 페가수스와의 경기 수를 3경기로 늘리면서 1위 탈환에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이번 3연전에서 1, 2위와 4, 5위의 선이 확실하게 가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 * *
경기가 끝난 후 잠실.
송석현은 퇴근하지 않고 배트를 어깨에 맨 채 연습장으로 들어섰다.
피칭머신을 앞에 두고 그저 배트를 잡고 서 있기를 10분.
송석현은 배트를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이 봐라, 이 봐라. 니 뭐 하노?”
“선배님, 안 가셨어요?”
유선호가 배트를 한 손에 쥔 채 연습장으로 들어섰다.
“어쩐지 안 보인다캤다. 니 여서 빠따 돌리고 있었나?”
“그냥 뭐…… 있었어요.”
“공 안 쳤나? 공이 안 보이네.”
“네. 그냥 있었어요.”
“그냥? 하이고. 와? 니 집에 와이프라도 있나? 집에 드가기 싫나?”
송석현이 손사래 쳤다.
“아뇨. 그게 아니라.”
“그게 아이몬?”
“그냥 이런저런 생각 좀 했거든요.”
“뭔 생각?”
송석현이 배트를 들고 타격 자세를 잡았다.
“실은 오늘 고민이 많았거든요. 공을 칠까, 말까. 로버트 유진의 공이 좀 빠지긴 했어도 제 배트가 기니까 저라면 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제 타격 폼이 망가질까 봐 안 쳤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 팀이 너무 크게 졌잖아요. 4번 타잔데 어떻게든 타점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모르겠어요. 잘한 게 맞나.”
유선호는 송석현의 엉덩이를 발끝으로 툭 때렸다.
“지금 우리 포스트 시즌이가?”
“예?”
“지금 우리 리그 하는 거 아이가?”
“예, 그쵸.”
“포시라면 모를까, 리그할 땐 절대로 타격 폼에 손대지 마라. 아니, 포시에서도 웬만하면 타격 폼 건드는 거 아이다. 자기 존을 만드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거든.”
“음 음, 오늘 같은 경기에서도요?”
“그래, 지면 지는 거지, 니가 혼자서 멱살 잡고 이길 수 있는 경기가 몇 개나 되겠노? 1경기? 2경기? 그거 이기겠다고 나머지 경기 버릴 끼가?”
“아아.”
송석현이 그제야 조금 웃어 보였다.
“제가 잘못한 거 아니었네요.”
“잘못은 무슨.”
송석현은 유선호의 방망이를 가리켰다.
“그런데 선배님은 오늘 왜 오신 거예요? 연습하시려구요?”
“내도 오늘 배트 마이 못 휘둘렀잖아. 그래서 찌부둥해가 공 좀 칠라고 왔지.”
“제가 도와드릴까요?”
“됐다. 나는 혼자 하는 게 좋다. 왜? 니도 할 끼가?”
“아뇨. 선배님 말씀 들으니까 오히려 오늘은 배트 안 휘두르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내일 경기를 위해서라도.”
송석현이 유선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매번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 덕분에 배우는 게 많아요.”
“듣는 놈들이 웃겠다. 내가 니한테 배워야지 니가 내한테 배울 게 있나?”
“리빙 레전드한테 안 배우면 누구한테 배웁니까. 헤헤.”
유선호가 피식 웃었다.
“띄워 주기는.”
“선배님 오래 안 있으실 거면 제가 기다릴까요? 같이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서…… 어떠세요?”
“아이다. 오늘은 가볍게 돌리고 집에 가 푹 잘라꼬. 밥 무으면 늦게 잔다 안 카나.”
“아. 네, 그럼 먼저 가도 될까요?”
“그래. 가라, 마. 후딱 가서 푹 자고 일나라.”
“넵.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래. 낼 보자.”
송석현이 떠난 후 유선호는 피칭머신을 돌렸다.
탕!
탕!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