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91
정미남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가게가 바빠서 거의 못 왔는데 그래도 잠실은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왔지.”
“석현이는 그런 말 없던데?”
“석현이 보고 갈 시간도 없었어. 1시간이나 봤나? 요새 가게가 오죽 잘돼야지. 돈은 많이 벌어서 좋긴 한데 공부할 시간도 빠듯해서 힘들다.”
강형찬은 김인환 상대로 8구 승부 끝에 볼넷을 내줬다.
김영석이 혀를 찼다.
“저게 문제야. 결정구도 없는데 배짱도 없어. 계속 안전빵으로만 던지려고 하니 예측이 너무 쉽잖아.”
“투아웃 주자 1루에서 석현이가 나오네.”
송석현이 나오자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팬들까지 다 일어섰다.
“오오, 고트의 송석현. 팔방미인 송석현. 장외 홈런 송석현. 날! 려! 버! 려!”
“날! 려! 버! 려!”
“날! 려! 버! 려!”
김나영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귀가 울리다 못해 머리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였다.
“워워워워워!”
“워워워워워!”
“날려 버려!”
팬들은 응원을 쉬지 않았다.
정미남과 김영석도 일어나 응원을 보탰다.
김나영은 타석에 선 송석현을 바라봤다.
“석현이가 인기 정말 많긴 많구나.”
강형찬은 초구부터 바운드되는 커브를 던졌다.
김인환이 뛰려고 했으나 정용욱은 틈을 주지 않았다.
송구 자세를 취하자마자 김인환이 뛰는 걸 포기했다.
이를 본 해설자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저게 정용욱 효과죠. 정용욱 선수의 송구 능력을 알기 때문에 확실히 빠지는 거 아니면 달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정용욱이 다시 자세를 잡고 앉았다.
‘포심. 존 안으로.’
정용욱이 미트를 내밀었다.
강형찬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깥쪽에 공 세 개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
공을 받아 든 정용욱이 인상을 찌푸렸다.
페가수스 최성연 감독이 뒷목을 주물렀다.
“쟤는 저 성격, 하……. 저 성격이 문제야. 너무 소심해. 겁이 많아.”
“죄송합니다.”
투수코치가 자기 죄인 양 고개를 숙였다.
“너무 생각이 많은 게 문제야. 생각이 많으니 공도 마음을 못 잡지.”
송석현은 제3구 체인지업을 걸렀다.
3-0.
페가수스 벤치에선 거르라는 사인을 보냈다.
“석현이한테 공을 안 주네. 그냥 걸러 버려.”
“당연한 거 아니야? 요새 누가 석현이한테 승부하겠어?”
“석현이가 잘하긴 정말 잘하네.”
“그럼. 누구-.”
“야.”
“……크흠.”
2사 1, 2루.
유선호가 나오자 정용욱이 먼저 말을 걸었다.
“어서 오시게나. 기다리고 있었네.”
“인환이, 석현이 거르고 내한테 승부하는 기가?”
“왜? 자존심 상해?”
“자존심 상할 게 뭐 있노. 갸들이 요새 내보다 잘하는데.”
“그러게 더 잘하지 그랬어. 요새 시원찮아. 이번 시즌은 쉬어 가는 시즌인 거지? 하긴 시즌 중반까지 경기를 못 뛰었잖아. 그치?”
유선호가 피식 웃었다.
강형찬의 초구는 바깥쪽 걸치는 포심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아아, 공 좋다. 선호는 어렵겠는데?”
정용욱의 이죽거림에 유선호가 배트를 어깨 위로 당겼다.
“그래, 공 좋네. 함 던져 봐라, 내 함 쳐 보게.”
제2구는 포심 패스트볼.
유선호는 한가운데 공을 힘껏 잡아당겼다.
탕!
공은 우측 폴대를 한참 지나 담장 위에 꽂혔다.
“아직 힘은 남아 있네, 우리 선호, 힘은 좋아. 타이밍이 안 맞아서 그렇지.”
유선호가 입맛을 다셨다.
“파울 홈런 다음엔…… 알지? 조심해?”
“징글징글하다. 주둥아리 안 다무나?”
“꼬우면 홈런 치든가.”
강형찬의 3구는 체인지업.
유선호의 배트가 나가려다 멈췄다.
정용욱이 3루심에게 손짓했으나 돌지 않았다는 판정이었다.
“이야, 허리 힘 좋아. 그걸 참네.”
유선호는 말을 아꼈다.
강형찬의 4구 포심은 파울, 5구 커브는 볼, 6구 포심 파울, 7구 체인지업 볼.
3-2 풀카운트.
페가수스 벤치에선 어렵게 승부하란 사인을 보냈다.
뒤 타자 최재완은 유선호에 비해선 쉬운 상대.
한 타자만 잡으면 이닝 종료이니만큼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커브. 바운드.’
속으면 좋고, 안 속으면 어쩔 수 없는 공.
강형찬이 커브를 던졌다.
유선호의 허리가 돌았다.
정용욱이 미트를 내밀었지만 공은 들어오지 않았다.
바운드 되려던 공이 유선호의 배트 끝에 걸렸다.
“우측 담장! 우측 담장으로 가는 공! 공이! 넘어갔습니다! 유선호의 스리런! 1회 초 유선호가 스리런을 날립니다!”
“방금은 완전히 떨어진 공이었는데 유선호 선수가 잘 노려서 쳤습니다.”
“유선호의 스리런으로 시작부터 3점을 가져오는 고틉니다.”
“페가수스와 고트가 3경기 차 아닙니까? 페가수스 입장에선 5선발 강형찬 선수가 나오는 경기가 가장 걱정스러웠을 부분인데 결국 시작부터 우려가 현실이 됐습니다. 페가수스는 고트와의 경기 차를 벌리는 게 목적이었을 텐데 마음대로 되진 않네요.”
“이제 스무 경기나 남았나요? 3경기 차는 까마득한데 고트가 희망의 불씨를 살립니다. 유선호가 피운 희망의 불씨예요.”
유선호가 주먹을 불끈 쥔 채 베이스를 밟았다.
고트 팬들의 함성은 덤이었다.
포수로 승승장구
1위는 나의 것 (2)
-아웃!
-아웃!
-아웃!
“멕킨지 삼자범퇴! 1회, 2회, 3회 모두 삼자범퇴를 기록하면서 쾌조의 스타트를 알립니다.”
“멕킨지 선수가 기복이 조금 있어서 그렇지 일단 한 번 공이 먹혀들기 시작하면 어쩔 도리도 없이 말립니다. 커터와 투심, 싱킹 패스트볼을 사용하는 선수들의 특징이죠.”
“이렇게 3회까지 3-0. 고트가 1회의 득점을 그대로 잘 지켜 내고 있습니다. 반대로 페가수스의 타선은 오늘은 좀 잠잠하네요.”
“타순이 한 번 돌 때까지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한 타순 돌았거든요? 4회에는 또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멕킨지가 선수들의 환대를 받으며 벤치로 돌아왔다.
송석현은 미트를 벗고 손을 탈탈 털었다.
“공 끝이 어우…….”
송석현의 말에 김인환이 데워 놓은 찜질팩을 건넸다.
“이거 해.”
“고마워요, 형.”
“오늘 멕킨지 공 좋아?”
송석현은 말 대신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럼 오늘은 승산이 좀 있나?”
“우리만 잘 치면 해볼 만할 거 같아요.”
4회 초 공격은 7번 타자 강하영.
강하영은 타석에 들어서자 숨을 크게 들이켰다.
“강하영 선수와 강형찬 선수의 대결입니다. 강형찬 선수가 초반에 3점을 뺏긴 게 크지만 추가 실점이 없어요.”
“이 정도면 아직까진 준수하다고 봅니다. 고트의 클린업을 상대로 3점이면 나쁜 성적은 아니거든요.”
“타석의 강하영 선수는 최근 들어 점점 타석수가 늘어나고 있네요. 하지만 성적은 아직 좀 부족하죠?”
“타율이 2할 7푼. 좌익수를 맡는 선수에겐 좀 부족한 성적이죠. 장타율도 3할 8푼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이 선수의 출루율은 좀 특이해요. 4할 1푼 3리. 타율보다 1할 4푼 이상 높습니다. 아주 특이한 케이스예요. 물론 아직 누적이 쌓이지 않아서 액면 그대로 믿긴 어렵지만, 나름 참고할 만한 기록 같습니다.”
팡!
팡!
팡!
강하영이 배트를 타석 밖으로 집어 던졌다.
“볼넷. 볼넷입니다. 강형찬 선수가 강하영 선수에게 볼넷을 내줬습니다.”
“지금은 승부했어야죠. 강하영한테도 승부를 걸지 못한다면 누구한테 승부를 걸겠습니까? 아쉽네요. 강형찬 선수가 너무 공을 예쁘게, 완벽하게만 던지려고 하는 거 같아요. 이럴 땐 한가운데로 던지더라도 과감하게 가야죠. 하위 타순 아닙니까.”
“다음 타자는 정백선 선숩니다. 최근 피로감이 쌓인 정동규 선수를 대신해 백업으로 나왔는데 의외의 알토란 같은 성적을 보여 주고 있죠?”
“고트가 1, 2군의 갭이 크다. 유망주가 없다는 얘기를 꾸준히 들어 왔습니다만 강하영이나 정백선처럼 준수한 백업 수준의 선수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오히려 고트의 약점은 확실한 스타급의 부재였죠. 고트가 FA로 갭을 메워 왔으나 모자란 부분이 있었습니다.”
“FA 영입을 가장 많이 하는 팀 중 하나였지만 성적은 투자에 비해 항상 아쉬웠죠.”
“하지만 이번에 김인환, 송석현 같은 로컬 보이들이 성장하고 늦깎이 설진일이나 트레이드로 온 이지성, 유선호도 안정적으로 안착하면서 1군의 스쿼드가 풍족해졌습니다. 기존의 주전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팀으로서는 잘된 일이죠. 많은 전문가들이 고트의 뎁스가 부족하다고 얘기하는데 1군, 2군 모두를 통틀어서 말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1군만 콕 집어 얘기한다면 오히려 신구 조화나 실력 밸런스가 잘 맞는 팀이에요.”
“하지만 고트가 클린업 의존도가 높은 것도 사실 아닙니까? 클린업 외에서 득점 루트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데요.”
-볼. 볼넷. 타자 1루로.
캐스터와 해설이 대화를 하는 사이 정백선이 볼넷을 얻어 1루로 걸어갔다.
무사 주자 1, 2루.
강형찬이 모자를 벗어 땀을 닦았다.
“이걸 보세요. 고트의 하위 타순이 약한 건 맞지만, 하위 타순은 어떤 팀이든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지금처럼 하위 타순에서 득점을 못 내더라도 출루를 이어 가면서 상대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리고 공격 찬스를 상위 타순에 이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거든요.”
포수 정용욱이 마스크를 들어 올렸다.
“타임. 잠깐 얘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정용욱이 마운드로 걸어가자 강형찬은 마른 입술에 연신 침을 발랐다.
“쟤들을 피해 가면 어쩌자고? 쟤들은 시시해서 싫어? 김인환, 송석현한테 정면 승부하고 싶어?”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다음은 영수야. 9번 타자한테도 꼭 이렇게 승부하세요. 어?”
“죄송합니다.”
“너 초구로 한복판 직구 안 던지면 네 얼굴에 내가 공 던져 버린다. 알았어?”
“네, 네.”
정용욱은 마운드에 내려가기 전 강형찬의 배를 툭 쳤다.
“당당하게 던져, 당당하게.”
“네. 죄송합니다.”
정용욱이 다시 홈 플레이트로 돌아왔다.
타자는 정영수.
정영수가 배트를 길지도 짧지도 않게 잡곤 몸을 살짝 흔들고 있었다.
유격수답게 체구는 크지 않지만 유니폼 위로 드러나는 근육이 도드라졌다.
“무사 1, 2루. 타자는 9번 타자. 지금은 승부를 해야 할 타이밍 아닙니까?”
“맞습니다. 승부를 해야죠. 지금은 과감하게 몸 쪽 승부로 병살을 노려야 해요. 어렵게 갈 필요는 없어요. 큰 거 맞아도 1점입니다. 정영수 선수의 펀치력으론 1루 주자까지 불러들이기 어려워요. 올 시즌 홈런이 세 개가 전부거든요? 장타력은 거의 없는 선수예요.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강형찬은 바로 공을 던지지 않았다.
로진백을 만지작거리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숨을 세 번, 네 번 들이켰을까.
강형찬이 다리를 살짝 들어 초구 한복판에 빠른 공을 던졌다.
탕!
정영수가 몸을 뒤로 뒤집으면서 배트를 돌렸다.
배트에 맞은 공은 하늘로 높이 떴다.
좌익수가 담장 뒤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동시에 2루 주자도 베이스를 밟고 뛸 준비를 마쳤다.
“좌익수가 손을 뻗어서, 점프……가 아니라, 공이 넘어갔습니다! 홈런! 홈런이에요! 정영수 선수의 홈런! 정영수 선수가 기어이 홈런을 때립니다.”
“방금은 투수도 어쩔 수 없었어요. 볼넷만 두 개라서 승부할 타이밍이었거든요. 타자가 잘 노려서 친 거 같습니다.”
“정영수 선수까지 홈런을 치면서 고트는 클린업과 하위 타선 모두에서 홈런이 나옵니다. 고트의 하위 타선이 약하다고 몇 분 전에 얘기했는데 민망한 일이 됐네요.”
“정영수 선수가 홈런을 때린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1위 팀을 만나서 더 펄펄 나나요? 오늘 고트의 공격력이 심상치 않습니다.”
6-0.
페가수스 벤치에선 투수를 내렸다.
고트 팬들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바뀐 투수 장지훈은 이지성, 설진일을 범타로 잡아냈으나 김인환에게 볼넷을 내줬다.
“페가수스가 또 위깁니다. 또 위기예요. 송석현 선수 앞에 밥상이 차려져 있습니다.”
“송석현 선수를 거르기도 애매한 게, 뒤에는 오늘 스리런의 주인공 유선호 선수가 있거든요. 컨디션이 좋은 타자를 상대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에요.”
“장지훈 선수의 선택이 궁금해집니다.”
정용욱은 눈으로 송석현의 위아래를 훑었다.
넓지 않은 스트라이드, 긴장이 풀린 어깨와 손목, 얕은 숨.
긴장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가 돼서야 몸에 힘이 들어갈 테다.
베테랑도 아닌데 힘을 뺄 때와 줄 때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포심. 몸 쪽.’
정용욱의 사인에 장지훈이 입술을 한 번 훔쳤다.
송석현에게 몸 쪽 승부.
망설이는 사이 정용욱의 손가락이 다시 한번 사인을 냈다.
‘포심! 몸 쪽!’
짜증을 동반한 손가락의 움직임에 장지훈이 얼른 자세를 취했다.
눈으로 김인환을 한 번 견제한 후 몸 쪽으로 힘껏 공 하나를 꽂았다.
송석현의 움직임은 정용욱의 예상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