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193
“네.”
“잘해 보자, 오늘도. 부담 갖지 말고. 오늘 경기만 잘하자. 오늘만 생각해.”
“네, 오늘만.”
* * *
-플레이볼!
1회 초 고트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1회 말 마운드에는 이창훈.
1번 타자 최영석이 타격코치의 말을 되뇌며 타석에 들어섰다.
“구위가 죽었다. 철저하게 밀어 치기. 밀어 치기.”
최영석은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발을 타석 안쪽에 콱 박았다.
타석 가장 앞에, 가장 몸 쪽으로 내민 발.
뒷발로 타석에 바짝 붙어 섰다.
“역시 페가수스네요. 업데이트가 빨라요, 빨라.”
함성훈의 볼멘소리에 투수코치는 소리 없이 콧바람만 훅훅 내뱉었다.
“최영석 선수가 타석에 바짝 붙어 섰습니다.”
“이창훈 선수의 몸 쪽 승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인데요. 이창훈 선수가 몸 쪽 공을 안 던지는 타입은 또 아니거든요.”
이창훈이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구위가 떨어진 건 숨길 수 없는 법인가.
팡팡!
송석현이 미트를 손으로 치면서 이창훈의 시선을 끌었다.
바깥쪽으로 던지라는 사인.
상대의 의도와 상관없이 하던 대로 하라는 신호였다.
“후우, 마누라 말을 들어야지.”
이창훈이 한번 씨익 웃었다.
초구는 바깥쪽 빠른공.
타석에 바짝 붙어 선 최영석에겐 스위트스폿에 정확히 맞힐 수 있는 공이었다.
탁!
최영석이 친 공은 그대로 1루와 2루 베이스 사이를 지나 1루 베이스 파울 라인을 향해 꺾였다.
최소한 단타 혹은 2루타.
최영석이 1루 베이스를 향해 힘껏 뛰다 속도를 줄였다.
촤아악!
미끄러지듯 달려와 설진일이 글러브를 뻗었다.
공은 그대로 글러브에 빨려 들어와 아웃.
우익수가 원래 있어야 할 위치보다 한참 더 앞에 있었다.
-아웃!
“아웃! 설진일 선수의 나이스 캐치가 나옵니다!”
“고트가 여기서 시프트를 썼어요. 최영석 선수가 타석에 바짝 붙어 서자 고트는 야수들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고트의 시프트에 최성연 선수의 안타가 아웃으로 둔갑됩니다. 상대가 한 수를 보여 주면 반대로 또 한 수로 맞받아치네요.”
2번 타자 심창규는 1번 타자 최영석과 똑같이 타석에 바짝 붙었다.
고트도 시프트를 풀지 않고 그대로 우익 선상으로 선수들을 이동시켰다.
“서로 서로의 의도를 숨기지 않습니다. 고트는 철저히 바깥쪽으로 승부할 생각이고 페가수스도 철저히 바깥쪽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창훈 선수가 몸 쪽 공을 안 던지는 선수가 아닌데, 오늘 경기 양상이 재밌네요.”
“이창훈 선수도 웃네요. 서로 패를 까고 화투를 돌리고 있어요.”
포수로 승승장구
1위는 나의 것 (4)
이창훈의 초구는 바깥쪽 체인지업.
심창규가 헛스윙했다.
-스트라이크!
심창규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자신의 배트를 세웠다.
“이창훈 선수의 체인지업 낙차가 상당합니다.”
“원래 다양한 공을 던지는 투수가 이창훈 선순데 최근에는 체인지업 비율이 늘었습니다. 자신의 결정구로 정해 놓은 모양이에요. 전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제2구는 바깥쪽 포심.
심창규가 움찔했다.
팡.
미트로 공을 잡은 송석현의 어깨가 움찔했다.
심판은 미트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큰 소리로 콜했다.
-스트라이크!
“아.”
심창규가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콧바람을 훅훅 내뿜었다.
해셜자는 클로즈업된 송석현의 미트를 보며 말했다.
“방금은 송석현 선수 프레이밍의 승리라고 봅니다. 공 반 개에서 한 개 정도는 빠진 건데 그걸 끌어서 안에 넣었어요. 저런 스킬은 소위 짬이라고 하죠, 경험이 쌓여야 가능한 건데 송석현 선수는 루키임에도 곧잘 하는 편이에요.”
“타자로서의 재능뿐만 아니라 포수로서의 재능도 상당하죠.”
“맞습니다. 너무 티 나지 않게, 하지만 투수가 손해 보지 않게 미트질을 하는 거. 쉬운 거같이 보여도 리그에서 이 정도 실력을 갖춘 포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솔직히 8개 팀 주전 포수 중에도 아쉬운 선수가 있을 겁니다.”
송석현이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아웃사이드. 슬라이드.’
이창훈이 던진 공에 심창규의 배트가 끌려나왔다.
툭.
배트 끝에 맞은 공이 힘없이 2루 방향으로 굴러갔다.
2루수가 공을 잡고 1루로 토스, 아웃.
심창규가 배트를 어깨에 걸치고 벤치로 돌아왔다.
“어디로 올지 뻔히 아는데 못 쳐?”
타격코치의 농담 반, 진담 반의 소리에 벤치의 분위기는 더 무거워졌다.
페가수스의 3번은 김한성.
김인환과 함께 고교 야구에서 손꼽는 거포였으며 현재도 팀 내 홈런 2위를 기록 중이었다.
이창훈의 초구는 몸 쪽 높은 공, 볼.
다음 공은 커브, 헛스윙.
송석현은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툭.
배트 끝에 걸린 공이 투수 앞으로 흘렀다.
송석현은 공을 잡아서 그대로 1루로 공을 던졌다.
아웃, 공수교대.
양 팀 무득점이었지만 페가수스의 분위기는 더 가라앉아 있었다.
2회 초 고트의 공격.
마운드에는 여전히 용병 투수 스티프 호프만이 서 있었다.
팡!
팡!
-아웃!
5번 타자 유선호가 호프만의 빠른 공에 손도 제대로 대지 못하고 타석에서 물러섰다.
호프만은 기세를 살려 두 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했다.
“호프만, 오늘 컨디션이 좋네요. 공이 날카로워요.”
“페가수스는 용병 투수도 참 잘 뽑습니다. 왕조를 만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2회 말 페가수스의 공격.
타자는 4번 타자 김욱.
“좋은 거 하나 주라, 석현아.”
김욱이 농담을 하며 타석에 들어섰다.
“예, 그럼요. 한가운데 직구 들어갑니다.”
“정말이지? 형이 너 믿는다.”
“네. 믿고 휘두르세요.”
송석현이 이창훈에게 사인을 보냈다.
‘커브.’
페가수스의 4번 타자 김욱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노림수다.
유들유들해 보이는 성격과 달리 영민한 머리로 상대 투수의 노림수를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김욱을 상대하려면 아예 힘으로 찍어 누르든지 아니면 예상외의 공을 섞어야 한다.
이창훈이 공을 던졌다.
팡.
밑으로 떨어지는 공. 볼이었다.
“직구라고 하지 않았니, 석현아?”
“공이 하도 힘이 없으니까 아래로 떨어졌네요.”
“누가 봐도 커브 아니니?”
“힘이 없어서 떨어진 겁니다, 선배님.”
송석현이 볼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지금 이창훈의 구위는 누가 봐도 무디다.
제구와 볼 배합으로 어찌어찌 경기를 꾸려 가고 있지만 노림수가 좋은 김욱은 지금의 이창훈에겐 최악의 상대다.
‘체인지업. 아래로.’
볼넷을 주더라도 쉽게 가지 않는다.
송석현이 김욱을 상대로 내린 결론이었다.
탕!
“안타, 안탑니다. 김욱 선수가 가볍게 공을 때려 내면서 1루 베이스를 밟습니다.”
“시프트를 이겨 내는 공이었어요. 김욱 선수의 타격감이 좋은데요?”
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손을 올렸다.
존을 벗어난 공인데 정확하게 때렸다.
처음부터 노렸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에게 정면 승부 안 할 테니 존을 넓혀서 자신이 칠 수 있는 공을 기다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쳤다.
“까다롭네…….”
40홈런도 때려 낸 타자지만 홈런보다 방금의 안타가 더 거슬린다.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할 줄 아는 4번 타자.
타점 생산에는 최적화된 타자다.
“다음 타석에는 김성현 선수가 들어섭니다. 외다리 타법의 달인이죠. 데뷔 이후 쭉 3할을 쳐 온 천재 타잡니다.”
“어제는 큰 활약이 없었는데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송석현이 이창훈에게 사인을 보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오늘은 투구 템포를 선수마다 다르게 가져가자고 얘기를 나눴다.
서두르는 타자에겐 최대한 느리게, 여유가 필요한 타자에게는 최대한 빠르게.
준비 시간이 길고 레그킥을 하는 타자에겐 템포를 올려야 한다.
‘포심.’
우선 바깥쪽 빠른 공.
김성현은 초구를 지켜봤다.
-스트라이크.
송석현이 공을 던지자 이창훈이 바로 또 공을 던졌다.
커브.
김성현이 다리를 앞으로 길게 뻗으면서 공을 밀어 때렸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은 그대로 1루 방향으로 날았다.
김인환이 공을 낚아채고 바로 김욱을 아웃시켰다.
“병살! 여기서 병살 플레이가 나오네요.”
“방금은 김인환 선수의 수비도 좋았지만 김욱 선수가 조금 안일했던 거 같습니다. 언제라도 귀루할 수 있게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리드를 어정쩡하게 벌려 놨어요. 타자가 김성현 선수니까 안타가 나오면 3루까지 가겠다는 생각을 한 거 같은데 여기서 병살이 나왔네요.”
“고트는 오늘 수비가 제 몫을 톡톡히 해냅니다. 고트가 수비도 이렇게 단단한 팀이었나 싶어요.”
“고트가 크게 드러난 부분이 없어서 그렇지 수비에서 문제가 생긴 적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야구팬이 생각하는 고트는 좀 귀공자 같다, 열심히 안 한다 이런 이미지가 있지만 되짚어 생각해 보면 수비에 구멍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요. 페가수스처럼 역대 최고의 센터라인 정도는 아니지만 수비에 구멍이 없다는 건 우승 경쟁에선 중요한 부분이죠.”
타석에 정용욱이 들어섰다.
정용욱은 2루수 머리 위를 넘기는 안타로 1루를 밟았다.
다음 타자는 유격수 김형우.
공수주를 모두 갖춘 유격수로 추앙받는 선수였다.
탁!
“1루 주자는 3루로! 타자 주자는 1루로! 김형우의 안타! 페가수스가 병살 이후에도 추격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이게 페가수스의 힘입니다. 거를 타선이 없어요. 클린업을 지나면 역대 최고의 포수 정용욱이, 다음에는 역대 최고의 유격수 김형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수비가 중요한 포지션이지만 공격력도 어느 팀에 가도 클린업도 할 수 있는 성적이거든요. 탄탄한 수비와 고른 타선의 힘. 이게 페가수스의 장점이죠.”
이창훈이 로진백을 매만졌다.
시프트를 해도 기어이 뚫어 버린다.
쉬어 갈 타선이 없다.
잡념이 머리로 스며들었다.
다음 타자는 홍성욱, 송민준.
8번, 9번 타자지만 홍성욱은 OPS 0.8, 송민준은 통산 장타율 5할이 넘는 거포다.
자신의 밋밋한 공으로 두 명의 거포를 잡아낼 수 있을까?
‘타임.’
송석현은 머뭇거리는 이창훈을 보자 마운드로 올라갔다.
“선배님.”
“어, 왜 올라왔어?”
“느린 공이 안 와요.”
“응?”
“직구도 체인지업도 모두 다 최고 구속이에요. 타이밍이 똑같아져요, 그럼. 조금만 더 힘 빼고 던져 보시는 게 어떠세요?”
“아…… 그랬나. 내가 너무 세게 던지고 있었네.”
송석현이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창훈은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느리게. 더 느리게.”
송석현이 사인을 보냈다.
‘커브.’
이창훈이 커브를 스트라이크존 한복판에 던졌다.
-스트라이크!
“80km/h대의 슬로 커브로 카운트를 올리는 이창훈 선수. 홍성욱 선수가 황당하다는 듯이 공을 바라봅니다.”
“저런 공이 오면 힘 빠지죠. 의외로 저런 공 못 치는 타자들이 많거든요.”
다음 공은 바깥쪽 체인지업.
홍성욱이 스윙했다.
부웅!
-스트라이크!
“헛스윙! 홍성욱 선수가 또 한 번 혀를 내두릅니다. 111km/h짜리 체인지업이 들어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