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16
공에 자신감이 붙다 못해 차고 넘친다.
이런 날에는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제구가 날리기도 한다.
억지로라도 힘을 빼야 한다.
송석현의 사인은 바깥쪽 빠른 공.
피치아웃은 아니다.
송석현은 웬만하면 피치아웃을 하지 않는다.
리그 최고의 도루 저지율을 가진 포수고, 공 낭비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포수다.
한민석이 초구를 바깥쪽에 힘껏 던졌다.
탁!
-파울!
“황기덕 선수가 도루를 시도해 봤지만 파울이 나오면서 다시 귀루 합니다.”
“강균승 선수가 잘 밀어 쳤는데 공이 뒤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건 상대 투수의 공에 눌린다는 얘기거든요.”
“오늘 한민석 선수의 컨디션은 확실히 좋아 보이네요. 함성훈 감독의 노림수가 통하는 거 같습니다.”
스콜피언의 이건후 감독의 손이 바빴다.
이건후 감독의 사인은 코치를 거쳐 타자와 주자에게 전달됐다.
한민석은 1루에 두 번 견제를 한 후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스윽.
강균승이 배트를 가로로 눕혔다.
“번트 시도!”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 강균승은 마지막 순간에 배트를 뺐다.
황기덕도 도루를 하려다 황급히 귀루 했다.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 강균승 선수가 번트를 대려다 마지막 순간에 배트를 뺐습니다.”
“방금은 뭐였죠? 페이크 번트였나요? 번트 슬래시를 하려다 마음을 바꾼 건지, 당최 저도 잘 모르겠네요. 지금은 몸 쪽으로 몰리긴 했어도 존 안에 잘 들어온 공이었거든요. 번트를 대려면 지금 댔어야죠.”
스콜피언 이건후 감독이 혀를 찼다.
희생 번트 하나가 이리도 어렵던가.
스콜피언 팬들도 탄식을 쏟아 냈다.
“뭐 하는 거야?”
“댔어야지!”
“아! 답답해!”
강균승은 배트를 거둔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곤 배트로 헬멧을 툭툭 때렸다.
한민석의 공이 꼭 자신에게 날아오는 거 같아 자기도 모르게 무서워서 몸을 뺐다.
조금 전 황기덕이 몸에 맞는 공에 비명을 지른 게 아직도 뇌리에 남은 탓이었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 노 볼입니다. 여기선 강균승 선수의 선택지가 좁아지죠.”
“어쩔 수 없어요. 지금은 최대한 밀어 친다 생각하고 병살만 피하면 됩니다.”
“투 스트라이크이니만큼 황기덕 선수도 이제 마음이 급해서 2루 도루를 더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을까요?”
“예. 그럴 수도 있죠. 고트의 배터리도 생각이 많아질 겁니다. 여기서 변화구를 던지면 황기덕 선수에게 도루를 줄 가능성이 커지고, 그렇다고 계속 직구 승부하기엔 상대가 올해 최다 안타를 친 강균승 선숩니다. 언제 또 귀신같이 감을 잡고 안타를 때려 낼지 몰라요.”
송석현이 타자와 1루 주자를 번갈아 살폈다.
송석현의 오른손이 사인을 냈고, 미트는 타자의 바깥쪽을 가리켰다.
투수의 공을 떠난 공은 존에서 조금 먼 쪽을 향해 날아왔다.
평소라면 강균승이 칠 공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히트 앤드 런 사인이 나온 만큼 번트를 댄다는 심정으로 배트를 가볍게 휘둘렀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결과는 삼진.
타자의 배트를 농락하듯 공은 속도를 죽이더니 바깥쪽으로 더 휘어 나갔다.
송석현은 그대로 공을 잡고 2루로 던졌다.
스타트가 빨랐던 황기덕이다.
한민석이 체인지업을 던진 만큼 송석현이라도 도루를 잡아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결과는 간발의 차로 아웃이었다.
“아웃! 투 아웃! 여기서 스콜피언이 투 아웃을 당합니다.”
“황기덕 선수가 도루에 실패했습니다. 아, 이건 커요. 이건 병살이나 마찬가지죠.”
“송석현 선수의 어깨가 이렇게 좋습니다. 천하의 황기덕 선수를 단번에 잡아냈어요.”
“제가 보기엔 말이죠, 저는 투수 출신이라 투수의 눈으로 경기를 보자면. 투수 입장에선 1루 주자에게 스타트를 뺏겼거든요. 이러면 포수가 어깨가 좋든 나쁘든 간에 5할 이상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요. 여기에 주자가 발까지 빠르면 도루 성공은 7할, 8할 이상으로 올라가죠. 황기덕 선수라면 지금 타이밍에 무조건이다 싶을 만큼 도루에 성공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발이 느렸어요. 확실히 느렸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황기덕 선수에게 문제가 생긴 걸까요?”
“아무래도 몸에 맞은 공이 영향이 있는 거 같습니다. 옆구리를 맞았거든요. 권투에서도 옆구리를 제대로 맞게 되면 숨도 못 쉽니다. 대미지도 오래가고, 발도 느려지거든요. 도루라는 게 한순간에 온몸의 근육을 폭발시키는 작업인데 옆구리를 다쳤으니 온몸의 힘을 제대로 전달하는 게 쉽지 않겠죠.”
좌타자 정대한은 공 네 개로 플라이 아웃.
한민석이 밝은 얼굴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좋았어. 황기덕 어떻게 잡은 거야?”
“1루에서 자꾸 몸을 비틀길래 많이 아픈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승부해 본 거죠, 뭐.”
“짜식. 하여간 눈치도 빠르다니까.”
한민석의 호투가 무색하게 1회 말 고트의 공격은 세 타자 연속 범타.
스콜피언의 1선발 케니스 챔피언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2회, 3회까지 양 팀 무득점.
한민석은 3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절정의 컨디션을 과시했다.
4회 초.
다시 황기덕과 한민석의 대결.
송석현은 초구부터 미트를 몸 쪽 높은 곳에 가져다 댔다.
한민석도 송석현의 의도를 눈치챘다.
팡!
-볼. 인사이드.
“황기덕 선수가 깜짝 놀랍니다. 몸에 제대로 붙인 공이었어요.”
“오늘 한민석 선수의 제구가 가끔 저렇게 들쑥날쑥하거든요? 타자 입장에서는 타석에서 조금 떨어져서 존을 좁히는 게 필요합니다.”
몸 쪽 공을 하나 보여 준 후 바깥쪽 외곽에 빠른 공 하나.
-스트라이크!
정석적인 볼 배합, 뻔한 볼 배합이지만 황기덕은 쉬이 대처하지 못했다.
옆구리에 그냥 멍도 아닌 피멍이 들어 있는 상태다.
맞은 데 또 맞으면 아닌 말로 시즌 아웃을 선언하고 아예 병원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후우.”
황기덕이 배트를 짧게 잡고 심기일전했다.
한민석의 3구는 한가운데라고 여겨도 무방할 만큼 몰린 공.
황기덕이 스윙을 시작하자 공은 빠르게 몸 쪽으로 휘었다.
놀란 황기덕이 주춤하는 사이 공은 그대로 존을 통과했다.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 한민석 선수가 시원시원하게 카운트를 잡습니다.”
“황기덕 선수가 오늘은 조금 주춤하네요.”
스콜피언의 이건후 감독이 콧바람을 세게 내뱉었다.
상대 포수 송석현에게 황기덕이 농락당하고 있다.
황기덕에 몸 쪽 공에 반응하기 시작하자 의도적으로 몸 쪽 공을 섞으면서 겁을 준다.
몸에 맞는 공을 두려워하는 건 본능이라 작전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체인지업! 삼진! 한민석 선수의 체인지업이 오늘 춤을 춥니다. 우타자들이 꼼짝을 못 합니다.”
“한민석 선수의 체인지업 보세요. 외곽으로 타고 가다가 갑자기 바깥쪽으로 빠지거든요. 과장을 좀 보태서 말하자면 사이드암의 슬라이더처럼 꺾여 나갑니다.”
“그건 너무 나가신 거 아닙니까? 하하하.”
“그만큼 각이 좋다는 거죠. 보통 체인지업 낙차에 주목하는데 한민석 선수의 체인지업은 낙차보다 횡 변화가 더 눈에 띄네요.”
황기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벤치로 돌아왔다.
스콜피언 이건후 감독이 침음을 흘렸다.
스콜피언의 최대 장점은 선봉장 황기덕부터 이어지는 1, 2, 3, 4번의 무차별 폭격이다.
리그에서 가장 발 빠른 황기덕, 안타왕 강균승, 천재 타자 정대한, 타점 머신 조양철.
네 명의 타순으로 1, 2점이라도 뺀다면 5회 이후에는 리그 최고의 불펜을 앞세워 잠그기에 돌입한다.
단기전일수록 1점이 중요한 만큼, 선봉장 황기덕의 역할은 평소보다 더 커지는 법이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한민석이 시작부터 황기덕의 옆구리를 맞추고, 송석현이 도루까지 잡아내면서 황기덕이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고트가 이 정도였나…….”
한민석의 이름을 라인업에서 봤을 때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떠올라 도리질 쳤다.
포수로 승승장구
무딘 창, 날선 도끼
한민석은 강균승에게 안타 하나를 내줬지만 삼진과 범타를 곁들어 4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4회 말, 선두 타자는 김인환.
스콜피언의 선발투수 챔피언은 낮게 깔아 던진 체인지업으로 땅볼을 유도했으나 김인환은 골프 스윙으로 퍼 올렸다.
“하늘 높이!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뜬 공! 중견수, 중견수, 중견수~~~ 못 잡았습니다! 중견수 황기덕 선수가 놓쳤어요! 아, 황기덕. 오늘 여러모로 미스가 많습니다.”
“방금은 공이 너무 높게 떴어요. 지금 바람도 제법 불거든요? 이런 날씨에 공이 저렇게 높이 뜨면 캐치가 쉽진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곤 해도 저 공은 꼭 잡아야 하는 공이긴 한데, 스콜피언 입장에선 아쉽겠어요.”
“타자 주자 김인환 선수는 2루로. 2루에서 멈춥니다.”
“자, 이러면 고트는 득점 찬스죠. 안타 하나면 타점이 나옵니다.”
“오늘 챔피언 선수가 철저하게 고트의 클린업을 상대로 피해 가는 투구를 했거든요. 하지만 주자가 나갔어요. 여기서 계속 피하면 주자가 쌓입니다. 한 점도 치명적인 단기전에서 대량 실점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챔피언이 로진백을 들었다.
타자는 송석현.
앳된 얼굴이지만 펀치력은 메이저리거가 안 부럽다.
저 나이에 저 성적이면 실력에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일 만도 한데, 어지간해선 배트도 내지 않는다.
투수가 옳다구나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풀스윙.
포수 구승철이 미트를 밖으로 뺐다.
볼넷 주고 유선호를 상대하자는 사인이었다.
“볼. 볼넷입니다. 송석현 선수를 거르네요.”
“아무래도 송석현 선수보단 유선호 선수가 더 쉽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스콜피언에서 한솥밥을 먹은 만큼 누구보다 서로 잘 알 테고요.”
챔피언은 초구부터 몸 쪽 낮은 쪽에 공을 붙였다.
-볼. 로우.
공 두 개가 빠지는 낮은 공.
유선호가 인상을 쓰면서 타석에서 물러섰다.
“이랄 끼가?”
유선호가 포수 구승철을 노려봤다.
구승철은 정면을 보며 말했다.
“기덕이는 정통으로 맞았어, 인마.”
서로를 잘 안다는 건 서로의 약점을 잘 안다는 얘기나 진배없다.
유선호는 어깨, 팔꿈치, 무릎, 손목 등 안 다친 곳이 없었고 수술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릎.
어깨나 팔꿈치야 수비할 때나 신경 쓰이지 타격할 땐 무리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무릎은 다르다.
거구의 체형, 오랜 시간 외야와 지명타자를 오갔던 수비, 지독할 만큼 넘쳐 났던 연습량은 무릎에 무리를 줬다.
고트에선 지명 타자에 전념하면서 무릎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아따, 피곤하네.”
유선호가 어쩔 수 없이 타석에서 반 발 떨어졌다.
맞힐 의도는 없더라도 챔피언이 계속 몸 쪽에 붙인다면 언제 또 몸에 맞을지 모를 일이다.
팡!
-스트라이크!
몸 쪽에 빠른 공 붙이고 바깥쪽 변화구 하나.
유선호가 챔피언의 체인지업이 시원하게 헛스윙했다.
“1-1. 유선호 선수가 챔피언 선수의 체인지업에 속았습니다.”
“저건 안 속을 수가 없죠. 저렇게 예쁘게 잘 들어오는데 어떻게 안 속겠어요?”
3구는 바깥쪽 빠른 공, 4구는 바깥쪽 커브.
유선호는 5구째 들어오는 체인지업을 건드리면서 병살을 만들었다.
“무사 1, 2루가 2사 3루가 됐습니다. 스콜피언의 송석현 거르기 작전이 잘 먹혀 들어가고 있어요.”
“유선호 선수가 오늘 활약이 부진합니다. 스콜피언이 이지성, 유선호 선수를 꽁꽁 묶고 있어요.”
다음 타자는 3루수 최재완.
올 시즌 성적은 2할 5푼, 포스트 시즌 진출 팀 중 가장 3루수가 약한 팀이다.
챔피언은 초구부터 자신 있게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강속구를 뿌렸다.
탕.
가벼운 타격음과 함께 최재완이 좌익수 방면으로 공을 보냈다.
힘에 밀려 멀리 가지 못한 공이었지만, 좌익수 바로 앞에 떨어지면서 김인환이 홈을 밟았다.
“최재완의 1타점 적시타! 여기서 고트가 1점을 먼저 뽑아냅니다.”
“최재완 선수가 욕심 안 부리고 정말 잘 쳤습니다. 생애 첫 포스트 시즌 안타이자 타점이죠?”
1-0.
먼저 점수를 내준 스콜피언 이건후 감독이 미간을 찌푸렸다.
선취점을 내줬다.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든 점수는 스콜피언이 먼저 뽑을 거라 여겼는데 예봉이 막히니 경기가 답답하게 흘렀다.
챔피언은 추가 실점 없이 4회 말을 넘겼다.
5회 초 스콜피언의 공격.
한민석이 연속 2 볼넷으로 잠시 위기를 맞나 싶었지만 플라이 볼 하나, 삼진 두 개를 섞으면서 최고의 컨디션을 뽐냈다.
5이닝 무실점.
스콜피언 이건후 감독이 연신 물을 마셨다.
5회 말 고트의 무득점 후 6회 초.
황기덕은 한민석의 몰린 체인지업을 외야 깊숙한 곳으로 날려 보내면서 출루를 하나 싶었지만 이지성의 호수비가 빛났다.
“이지성의 나이스 캐치! 담장까지 달려가서 공을 보지도 않고 캐치해 버립니다. 정말 훌륭한 외야 수비였습니다.”
“친정 팀 가슴에 비수를 꽂았어요. 자신을 밀어낸 황기덕 선수의 공을 직접 잡아내면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황기덕 선수가 오늘 많이 힘듭니다. 운도 안 따라 주네요.”
황기덕이 부진하자 강균승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구속이 점점 떨어지는 한민석에게 10구를 넘어가는 승부 끝에 우익수 앞 안타.
정대한과의 승부에선 2루 도루 성공.
4번 타자 조양철의 타석에선 3루까지 밟았으나 다음 타자가 삼진을 당하면서 끝내 홈을 밟지 못했다.
“하!”
벤치로 돌아온 강균승이 헬멧을 벗어 던졌다.
홈이 이렇게나 멀었던 적이 있던가.
6회 말.
고트는 설진일이 선두 타자로 나왔다.
이건후 감독은 여든두 개의 공을 던진 챔피언을 내리고 사이드암 투수 성훈기를 올렸다.
3+1선발로 가는 만큼 에이스 챔피언의 투구 수를 관리해 줄 필요가 있었다.
“설진일 선수의 타석에서 성훈기 선수가 올라옵니다. 사이드암 투수고, 올 시즌 방어율은 3.92. 12홀드를 기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