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42
“괜찮아?”
“네. 조금 아픈 게 다예요.”
“내가 네 몫까지 열심히 뛸게. 걱정하지 말고 지켜봐라.”
“걱정 안 해요. 선배님 믿습니다.”
서일혁이 송석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맙다, 전부. 다 고마워.”
“네?”
“니 덕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는데 경기도 나가 보네. 진짜 고맙다.”
서일혁은 다친 송석현을 대신해 교체됐다.
다음 타자는 유선호.
정광욱은 풀카운트 끝에 스플리터로 병살을 끌어냈다.
다음 타자는 삼진.
정광욱이 포효하면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
함성훈이 팔짱을 낀 채 왼 주먹을 꽉 쥐었다.
송석현이 다친 건 지금 큰 문제가 아니다.
큰 부상도 아니고 이미 타석도 설 만큼 다 섰다.
수비도 서일혁이면 믿을 만하다.
문제는 흐름.
송석현의 부상 이후 흐름이 페가수스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야구는 실시간 게임이 아니다.
서로 한 턴씩 주고받는 게임이다.
한 턴씩 주고받는 게임일수록 흐름은 오래가기 마련이다.
8회 말, 페가수스의 공격.
투수는 여전히 홍대성, 타자는 9번 타자 송민준.
“홍대성 선수가 오늘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트가 왜 홍대성 선수를 1라운드에 뽑았는지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좌완인데 구속이 150km/h를 넘는다? 그럼 무조건이죠. 지금도 잘 던지지만 아직 더 성장할 부분이 무궁무진합니다.”
홍대성은 송민준을 상대로 빠른 공 네 개로 2-2를 만들었다.
“송민준 선수, 홍대성 선수의 빠른 공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타자들은 더 집중해서 공 하나를 확실하게 노려서 치는 게 필요합니다. 직구가 너무 빠르다 싶으면 스윙폭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에요.”
홍대성의 5구는 슬라이더.
백 도어 슬라이더를 노렸지만 공이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지면서 3-2 풀카운트.
홍대성은 결정구로 체인지업을 선택했다.
팡.
힘없이 떨어진 체인지업은 그대로 포수의 미트로 들어갔다.
송민준은 공을 치는 대신 지켜보면서 볼넷.
무사 주자 1루.
홍대성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최영석 선수가 들어섭니다.”
“방금 전에는 무조건 잡았어야 했는데 볼넷을 내준 게 아쉽네요. 페가수스 상위 타순으로 이어지는 만큼 9번 타자는 잡아 줬어야죠. 홍대성 선수가 좀 미숙한 모습을 보여 줬네요.”
서일혁이 타자와 주자를 번갈아 봤다.
1루 주자는 발이 느리고 최영석은 3할 타자.
어설픈 변화구는 최영석에게 통하지 않는다.
병살을 노리기엔 최적의 상황.
공까지 빠른 홍대성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 쪽에 미트를 가져다 댔다.
팡!
-스트라이크!
한복판에 가까운 공이지만 최영석은 움찔하면서 공을 놓쳤다.
좌투수가 던진 강속구는 우타자 몸 쪽을 파고들면서 날아온다.
초구를 놓쳤지만 최영석도 성과가 있었다.
서일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몸 쪽 빠른 공으로 병살을 유도하려는 생각이라면, 자신도 쉽게 당해 줄 마음이 없다.
2구는 바깥쪽 빠른 공, 볼.
3구는 체인지업, 볼.
2-1 상황.
최영석은 배트를 짧게 말아 쥐었다.
결정구는 몸 쪽 직구다.
홍대성이 피칭을 하려는 순간 최영석이 번트 자세를 취했다.
3루수는 바로 대시.
최영석은 다시 타격 자세를 취했다.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
원래는 번트 자세를 계속 취하고 있다 타격을 하는데, 최영석은 타격 전에 잠깐 번트 자세만 취하고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왔다.
타격 자세가 흐트러지는 만큼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최영석의 임기응변이었다.
홍대성이라면 어설픈 임기응변으로도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홍대성의 공은 예상대로 몸 쪽으로 오는 빠른 공이었다.
공은 몸 쪽으로 붙어 왔지만, 코스는 높았다.
최영석은 볼티모어 촙처럼 강하게 내리쳤다.
굳이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를 한 이유.
몸 쪽 공을 친다면 삼유간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만큼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로 미리 공간을 벌려 둔 거다.
“3루수 스치는 공! 안타! 안탑니다! 주자는 3루까지. 3루까지 달립니다. 타자 주자는 1루에서 스톱. 무사 주자 1, 3루.”
“최영석 선수, 정말 재주꾼이네요. 이번 안타는 만들어 낸 안타예요. 상대 수비를 흔들어서 자기가 원하는 코스에 공을 보냈습니다. 영리합니다. 왜 악마 2루수라고 불리는지 알겠어요.”
함성훈이 한숨을 토했다.
역시 흐름이 넘어가 버린 건가…….
지금 상황에서 함성훈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중 최선을 뽑자면 역시 하나.
투수 교체.
“홍대성 선수가 마운드에서 내려옵니다. 고진석 선수로 교체되네요.”
“페가수스도 그렇고 고트도 그렇고 오늘 던질 수 있는 모든 투수가 다 올라오고 있습니다.”
“광고 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포수로 승승장구
한국시리즈 7차전 (11)
고진석이 올라와 몸을 풀었다.
팡!
팡!
팡!
미트를 울리는 소리가 우렁찼다.
올해 서른 살.
첫 FA를 맞는 클로저.
리그에 몇 되지 않는 정통파 우완 강속구 포크볼러.
“투수 고진석 선수가 올라옵니다. 이렇게 되면 고트도 쓸 수 있는 투수는 거의 다 쓴 거 같아요.”
“이제 남은 불펜 투수는 딱 한 명, 김정률 선수가 남았습니다. 연장까지 가게 된다면 고트는 뒤가 없어요.”
타자가 타석으로 들어온다.
함성훈이 팔짱을 낀 채 눈알을 바삐 움직였다.
8회 말 1점 차 무사 1, 3루에 타자가 심창규다.
근래에는 보기 드문 고전적 2번 타자 역할에 최적인 선수.
타격도 잘하지만 작전에도 능하다.
현재 고트의 약점은 내야 1, 3루 수비 불안.
이건 대놓고 페가수스가 희생 번트로 1점을 가져가라고 판을 벌인 것과 같다.
다만, 다행이라면 아껴 둔 고진석 카드가 지금 상황에선 최선이라는 점이다.
번트를 대기 가장 어려운 공이 낮은 코스의 빠른 공과 커브.
고진석의 패턴은 바깥쪽 낮은 코스를 노리는 원 패턴에 가까웠다.
“으음.”
함성훈이 침음을 흘렸다.
감독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믿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함성훈은 무력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툭툭.
고진석이 로진백을 손에 털었다.
고진석도 오랜 암흑기를 거치고 있는 불스에서 활약한 덕에 우승 반지를 껴 보지 못했다.
처음에 고트에 트레이드 됐을 땐 고향 팀을 떠난다는 슬픔보단 왜 하필 고트냐고 원망했었다.
강팀도 약팀도 아닌, 돈만 많이 쓰는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 고트.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주축 선수들까지 대거 트레이드되면서 올 시즌은 몸 관리 잘해서 FA 몸값이나 올리려 했다.
첫 마음은 자포자기였으나 시즌이 거듭될수록 희망이 생겼다.
다 진 경기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어 버리는 KS포는 전율이었다.
어쩌면, 어쩌면이 혹시로 변하고 혹시가 역시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순위는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지만 끝내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다다랐다.
평생 한 번도 꿈꿔 보지 못한 기회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야구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우승 반지를 껴 보지 못한 채 은퇴할 수 있다.
그땐 세상을, 운명을, 팔자를 탓할 수도 없다.
“후우.”
고진석이 숨을 가다듬었다.
포수 서일혁의 사인은 바깥쪽 빠른 볼.
어차피 고진석의 패턴은 90% 이상이 바깥쪽 빠른 공이다.
가끔 몸 쪽 공이나 높은 공 하나 집어넣는 경우도 있으나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바깥쪽 빠른 공으로 카운트를 올리고 포크볼로 삼진.
뻔한 원 패턴이지만 알고도 파훼할 수 없는 원 패턴.
고트의 내야수들이 전진 수비로 나섰다.
오늘 1, 3루 내야수들 상태가 메롱이다.
야수를 믿으면 안 된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투수의 힘으로 타자를 눌러 버려야 한다.
팡!
스트라이크!
초구는 149km/h.
전광판에 뜬 구속에 해설자가 흥분했다.
“초구부터 149km/h! 굉장한 속돕니다. 지금 고진석 선수가 초구부터 기어를 끝까지 올려 버렸습니다. 공이 빠른 선수긴 하지만 저건 거의 최고 구속이거든요.”
“0-1. 심창규 선수가 꼼짝도 못 했습니다.”
“공이 저렇게 낮고 빠르게 간다면 번트 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통상적으로 저런 코스는 번트를 대도 성공률이 다섯 번 중에 한 번 성공하면 잘하는 수준일 겁니다.”
심창규가 작전코치를 힐끔 쳐다봤다.
지금 상황은 누가 봐도 작전이 나올 타이밍이다.
초구는 투수의 공을 지켜보기 위해 기다렸다.
벤치의 선택은 뭘까?
상대가 내야를 좁혀 놓고 투수가 강속구를 던져도 번트 강행? 아니면 강공?
작전코치의 손이 분주해졌다.
심창규는 가만히 작전코치의 손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고트의 내야수들이 몸을 잔뜩 낮췄다.
서일혁도 사인을 고민했다.
‘직구.’
똑같은 코스에 똑같은 빠른 공.
고진석이 2구를 던지자 주자들이 바로 뛰었다.
타자 심창규의 선택은 강공.
배트가 공을 때렸다.
“삼유간! 유격수가 잡고…… 홈! 홈승부! 홈에서~~!”
거구의 송민준이 성난 표정으로 홈을 향해 달렸다.
포수 서일혁은 홈을 막은 채로 미트를 내밀었다.
팡!
쾅!
서일혁이 공을 잡음과 동시에 송민준이 어깨로 서일혁을 밀었다.
서일혁도 작은 덩치는 아니었지만 거구 송민준이 가속도를 살려 부딪치자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동시에 송민준은 발을 뻗어 홈을 밟으며 심판을 바라봤다.
“…….”
심판은 마른침을 삼켰다.
“끄으응.”
서일혁이 앓는 소리를 내며 왼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왼손, 미트에는 공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아웃!
“아웃! 유격수 정영수의 홈 승부 판단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아웃! 아웃입니다! 서일혁의 헌신적인 플레이! 끝까지 공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고트의 벤치에서 코치가 튀어나와 서일혁을 살폈다.
서일혁은 코치의 부축 아래 고개를 들었다.
“괜찮냐?”
“괜찮아요.”
“너 제대로 쓰러졌어. 정말 괜찮아?”
“네.”
“너 상태 안 좋아 보이는데……. 교체하자, 일혁아. 넘어질 때 너무 크게 넘어졌어. 머리 부딪친 거 같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
“네. 정말 괜찮아요.”
서일혁이 코치의 팔을 잡았다.
“저 정말 괜찮아요. 그러니까 제발 빼지 말아 주세요. 네?”
“……너 지금 스스로 일어설 수 있으면 오케이. 못 일어나면 교체할 거야.”
“잠깐만요.”
서일혁은 숨을 몇 번 들이쉬고 내뱉더니 천천히 땅을 짚고 일어섰다.
몇 번이나 끙끙 소리를 냈지만 끝내 몸을 바로 일으켰다.
“하아, 하아. 이제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