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43
“후.”
코치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고집은. 알았다. 너 이상한 점 보이면 바로 바꿀 거야.”
“저 어디 안 다쳤어요. 절대 바꾸지 마세요. 네?”
서일혁이 코치와 대화하는 사이에 페가수스와 고트 선수들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3루수 박종일이 벤치로 들어가려는 송민준을 불러 적당히 하라고 핀잔을 주자 송민준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화가 난 박종일이 송민준에게 다가가려 하자 페가수스 코치가 박종일을 잡았고, 이에 고트 벤치에선 박종일에게 손을 떼라고 소리쳤다.
최영석과 심창규가 코치 편을 들면서 큰 싸움으로 번질 뻔했으나 서일혁이 몸을 털고 일어서자 일단락됐다.
“정말 괜찮아?”
심판의 물음에 서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상은 온몸이 고통에 몸부림칠 정도로 아리고 쑤셨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온몸으로 충격을 받아 낸 터라 머리도 어질하고 몸도 욱신거렸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언제 또 한국시리즈 7차전에 서 볼 것인가.
설령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물러설 수 없다.
“경기 재개됩니다. 서일혁 선수의 헌신적인 플레이로 7-6의 점수는 유지됩니다.”
“경기가 꽤 오래 중단됐어요. 이러면 투수 어깨가 식을 수 있거든요. 이번 타석은 3번 김한성 선수가 나옵니다. 김한성 선수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토종 거폽니다. 여기서 큰 거 한 방 맞으면 사실상 경기는 끝이라고 봐야 돼요.”
고진석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여기서 실투 하나면 평생의 짐이 될 거다.
구태여 따지지 않아도 자명한 일이다.
실투는 안 된다.
정확하게, 더 정확하게.
고진석이 초구를 힘껏 던졌다.
팡!
-볼.
공 반 개 정도가 빠졌다.
고진석이 숨을 골랐다.
다음 공은 바깥쪽 빠른 공, 볼.
2-0.
불리한 카운트, 서일혁이 포크볼 사인을 냈다.
모험이었으나 타자도 쫓기는 심정이라는 건 똑같았다.
고진석이 던진 공은 존 아래로 그림처럼 뻗어 갔으나 타자는 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봤다.
“스리 볼! 스리 볼입니다! 김한성 선수가 공을 지켜봤습니다.”
“아무래도 투 볼 상황이라 타자가 적극적으로 노릴 만한데 김한성 선수가 아예 칠 마음이 없었거든요? 이건 스트라이크 하나 들어오기 전까지 기다렸거나, 아니면 팀 차원에서 치지 말라는 작전이 나온 거 같습니다.”
3-0.
만루를 채워 병살을 노릴 건가, 아니면 정면 승부로 갈 것인가.
다음 타자 김욱의 컨디션은 최고조다.
서일혁이 벤치의 사인을 기다렸다.
‘승부!’
고트의 선택은 정공법.
서일혁이 몸 쪽에 미트를 가져다 댔다.
고진석이 가장 빠른 공으로 몸 쪽을 찔렀다.
“아.”
공을 던지자마자 고진석은 아차 싶었다.
조금 얕았다.
공이 중심으로 조금 말려 들어갔다.
김한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배트를 휘둘렀다.
탕!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좌측 담장~~~!”
공이 높게 떴으나 멀리 갔다.
좌익수 강하영이 담장을 향해 힘껏 뛰었다.
강하영이 이를 꽉 문채 워닝 트랙에서 몸을 돌렸다.
어두운 밤하늘, 핀조명처럼 떨어지는 라이트, 그리고 거기서 떨어지는 야구공 하나.
담장을 넘기엔 충분한 공이었으나 강하영이 팔을 쭉 뻗었다.
가을 선선한 바람이 강하영이 볼을 스쳤다.
순간 고트 팬들이 눈을 찌푸렸다.
가을바람이 돌풍처럼 휘익 불더니 공이 점점 힘을 잃었다.
강하영이 까치발을 들고 좌로, 우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강하영의 외침을 듣지 못한 걸까.
공은 야속하게도 담장을 넘었다.
“안 돼!”
-파울.
강하영은 그제야 자신의 발이 파울라인을 밟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파울! 공이 마지막에 휘어서 파울이 됩니다. 고트 입장에선 구사일생. 페가수스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쉬운 상황.”
“정말 위험했습니다. 정말 위험했어요.”
고진석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한성도 아쉬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섰다.
3-1.
고진석의 선택은 포크볼.
김한성의 선택은 기다림.
볼넷, 1사 만루였다.
페가수스 팬들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김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카메라가 김욱을 클로즈업했다.
함성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고트가 또 투수 교체를 합니다.”
“고트가 정말 뒤가 없네요. 정말 과감합니다.”
김정률이 불펜을 열고 뛰어나갔다.
김정률을 보자 고트 팬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지만, 고트 팬들은 굳게 믿었다.
비록 퇴물로 불렸던 김정률이지만 지금은 고트의 수호신이 됐다.
-고트의 김정률! 고트의 김정률! 고트의 김정률! 오오오오! 오오오오오!
-고트의 김정률! 고트의 김정률! 고트의 김정률! 오오오오! 오오오오오!
대단찮은 응원이었고, 대단찮은 응원가였다.
하지만 고트 팬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이보다 더 길면 사족이었고, 이보다 더 짧으면 미완이었다.
김욱도 김정률의 등장에 쓴웃음을 지었다.
동갑의 나이, 두 사람 모두 스타플레이어였지만 한 사람은 왕조의 4번 타자로 승승장구했고 한 사람은 쇠락하던 팀에서 퇴물로 손가락질받았다.
두 사람 모두 평생 상상도 못 한 장면일 거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투수와 타자로 만날 거라 누군가 귀띔했다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터다.
그러나 지금.
한때 영웅이었으나 퇴물이었고 지금은 클로저가 된 사나이가 마운드에 있었다.
평소 사람 좋고 장난기 어린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두 눈엔 결기가 넘쳐흘렀다.
투수코치 연우식이 김정률의 어깨를 두드렸다.
“미안하다, 힘든 상황에 불러서.”
김정률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원래 이럴 때 나오는 거야. 그래야 에이스지. 안 그래, 형?”
김정률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연우식은 코끝이 찡했다.
“내가 마무리할게. 한 점도 안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려가.”
“그래. 해 보자, 우리.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가 봐야지.”
김정률이 홈 플레이트를 쳐다봤다.
“내가 장담할게. 이제부터 단 한 명도 저 홈 플레이트를 못 밟을 거야. 내 어깨를 가는 한이 있어도 절대 저기 못 보내 줘.”
포수로 승승장구
한국시리즈 7차전 (12)
팡!
팡!
김욱은 김정률의 연습 투구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구속은 140km/h를 오가는데 미트에 박히는 소리는 150km/h가 넘는 거 같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공이 야생마처럼 거칠다.
넋 놓고 쳐다만 볼 순 없다.
김욱은 김정률의 피칭에 타이밍을 맞추며 타석에 들어섰다.
“1사 만루. 고트는 최고의 위기입니다.”
“여기서 점수를 내준다면 사실상 경기는 9할은 끝이 나는 거예요.”
김욱이 자세를 잡고 김정률을 쳐다봤다.
중요한 타석일수록 초구가 중요하다.
초구는 피칭의 방향성을 보여 주는 나침반이다.
초구부터 과감하게 들어오는 투수는 결정구도 과감하게 들어오기 마련이다.
안타 하나면 2점 이상 내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
김정률이 과연 과감하게 승부할 수 있을까?
병살을 위해서라면 바깥쪽 싱커일 확률이 80%.
김정률이 서일혁과 사인을 주고받으면서 두 번 고개를 저었다.
혹시 투수가 다른 생각을 하는 거 아닐까?
김욱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확률로 따져야 한다.
바깥쪽 싱커를 노려야 한다.
욕심내지 않고 짧고 간결한 어퍼 스윙으로 대응한다.
포수와 사인 교환을 마친 김정률이 초구를 던졌다.
김욱은 초구부터 배트를 내밀었다.
팡!
스트라이크!
“헛스윙! 김정률 선수가 커브로 헛스윙을 이끌어 냅니다.”
“초구부터 저렇게 높은 유인구를 던지네요. 김욱 선수가 완전히 속았습니다.”
김욱이 헬멧을 고쳐 썼다.
떨어지는 공이라 생각한 순간, 공은 로켓을 단 듯 하늘로 휙 솟구친다.
소위 UFO 커브.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커브다.
“0-1. 스트라이크 하나 잡았으니 이제 변화구 하나 던질 수 있는 카운틉니다. 김욱 선수가 잘 골라내야 해요.”
김정률의 2구는 바깥쪽 빠른 공.
김욱은 이번에야말로 기다렸다는 듯이 스윙했다.
부웅!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 김정률 선수가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이끌어 냅니다.”
“김욱 선수가 전혀 타이밍을 못 잡네요. 이러면 0-2.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죠. 변화구에 끌려 나올 수밖에 없어요.”
김욱이 제 헬멧을 툭툭 쳤다.
바보 같았다.
변화구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바깥쪽 싱커만 염두에 뒀다.
김욱이 생각을 가다듬었다.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으니 이제 몸 쪽에 깊숙한 싱커, 바깥쪽 높은 커브, 슬라이더로 유인구 하나를 뺄 거다.
그렇다면 선택해야 한다.
결정구라면…… 역시 바깥쪽 슬라이더.
지금 몸 쪽 공은 싱커라고 해도 투수에게 부담이 크다.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져 놓은 후 바깥쪽 싱커를 던져야 타자에게 더 치명적인 만큼, 이번 공은 슬라이더일 확률이 높다.
잠깐.
그런데 오늘 자신이 생각한 확률이 잘 맞았던가……?
김정률의 공은 바깥쪽 코스였다.
슬라이더로 빠진다고 해도 조금 존에 몰린 공.
김욱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스윽.
그때 공이 마치 브레이크라도 걸린 듯 점점 힘을 잃었다.
배트는 가속도를 받아 날아가는데 공은 점점 느려진다.
‘아, 체인지업이 있었어!’
탁.
“유격수! 유격수가 잡아서 2루로! 2루에서 1루로! 병살! 병살입니다! 김욱의 병살타!”
“그라운드 볼 리그 최고의 투수답게 김정률이 병살로 이닝을 종료시키네요. 방금 공은 정말 좋은 체인지업이었습니다. 124km/h 저 정도면 타자가 안 속으려야 안 속을 수가 없죠.”
“7-6. 고트가 아직 1점 뒤지고 있지만 1점 차 승부를 지켜 냈습니다.”
김욱은 하늘을 보며 장탄식을 내뱉었다.
김정률의 싱커, 슬라이더, 커브가 워낙 특별하다 보니 체인지업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김정률의 체인지업은 빠른 공과의 구속 차이가 좋아 리그에서도 평균 이상의 A급 공이다.
우완 파이어볼러일 때도 커브와 체인지업은 일품인 선수였던 만큼 언더 핸드로 전향한 후에도 커브와 체인지업은 여전했다.
“선배님!”
“형!”
“그걸 막을 줄은 몰랐어요!”
김정률이 벤치로 돌아오자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와 김정률을 얼싸안았다.
“놔, 놔! 징그러워!”
“김정률! 김정률! 김정률!”
“김정률을 경배하라!”
“오오! 야구의 신이시여!”
“오버들 하지 말라고, 인마!”
김정률이 선수들을 떼어 낸 후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겨우 고비 하나 넘긴 거야. 이번에 우리 점수 못 내면 끝이다, 끝. 무슨 말인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