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49
사단이 해체될 게 뻔한 코치들이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훈련했을 리 만무했다.
천만다행으로 2군 감독인 구창현은 입단부터 은퇴까지 고트 맨이었고 이후에도 고트 코치를 해 온 고트 성골이었다.
나 홀로 마음이 떠 버린 코치들을 다독거리면서도 2군을 이끈 덕에 엉망으로 전락하진 않았다.
고트가 올해 우승하긴 했지만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다져 올라간 승리는 아니다.
2군에서 올라온 설진일, 송석현이라는 보석이 포텐을 터뜨렸고 퇴물로 불리던 김정률이 완벽하게 부활하면서 방어율 1점대 마무리가 됐다.
김봉사로 불리던 김인환은 KS포가 됐고 트레이드로 데려온 유선호, 이지성마저 전성기의 모습을 되찾았다.
올 한 해는 모든 우주의 기운에 고트에 모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심지어 초짜 감독 함성훈마저 이름 없는 감독 대행에서 지략가로 거듭나면서 리그 1순위 감독이 돼 버렸다.
유선호, 이지성 트레이드를 성공시키고, 5선발과 6선발을 오가면서 투수진도 안정화시켰다.
더불어 돌성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불펜 관리를 우직하게 밀고 나가 올 시즌에는 연말 행사처럼 벌어지던 투수들의 병원행이 싹 사라졌다.
다른 팀이 보기에도 고트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의 지분이 지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팀들도 내년에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기에 새로운 팀으로 변모한 부산 아스트로 보이즈를 비롯해 웨일스, 스콜피언, 불스도 새로운 감독과 코치들을 들이고 내부 FA 잡기에 주력하는 중이다.
오직 페가수스만 올해 FA 최대어 김욱을 놓아주면서 내년은 포기했나, 갸우뚱하지만 막상 내실을 들여다보면 역시나다.
리그에서 2군부터 1군까지 뎁스가 가장 탄탄한 팀이 다름 아닌 페가수스다.
2년 동안 리그 1위를 달성해 놓고도 한국시리즈 탈락이란 불명예를 안았지만 내년에 페가수스가 1위를 달성해도 이상하지 않단 얘기다.
이런 와중에 FA 최대어와 유망주 둘을 영입에 성공한 건 기쁜 일이지만 반대급부로 내주는 건 더 많다.
고트가 페가수스처럼 2군부터 1군까지 피라미드처럼 촘촘해지려면 적어도 2~3년은 필요하다.
고트는 우승팀이지만 리빌딩이 필요한 팀이다.
리빌딩을 위해선 기둥이 될 만한 선수들이 많아야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데 지금은 딱 필요한 개수만큼만 있다.
스페어타이어 없이 무작정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영입이 죄다 성공했는데도 껄쩍지근하네.”
김학인이 턱을 긁적였다.
* * *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김욱은 사장, 단장과 악수하는 사진을 찍고 난 후 함성훈과 독대했다.
함성훈은 커피 한 잔을 김욱에게 건넸다.
김욱은 커피는 됐다면서 물을 따로 꺼내 마셨다.
“일사천리네요.”
함성훈의 말에 김욱이 손사래 쳤다.
“편하게 말씀해 주십쇼.”
“아, 그게 또 그러네. 본인이 더 불편하지. 아무튼 축하해. 우리 팀에 들어온 거 환영하고.”
함성훈이 손을 내밀자 김욱이 손을 맞잡았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우승팀으로 영입됐잖습니까.”
“빈말이지만 기분은 좋네. 그래도 페가수스랑 우리랑 같나. 쉽지 않을 결정이었을 텐데 고마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년에도 꼭 우승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이지. 내년에도 우승해야지.”
함성훈은 커피를 몇 번 홀짝이다 김욱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한 팀이 된 거잖아. 그치?”
“네. 그럼요.”
“그러면……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김욱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왜 고트에 왔냐구요?”
“말 안 해도 아네.”
“이미 도장도 찍었는데 그게 중요한가요?”
“내가 자네 개인사가 궁금해서 묻는 건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김욱이 턱을 당기면서 침음을 흘렸다.
함성훈은 채근 대신 커피 잔을 내려놓고 김욱의 답을 기다렸다.
“궁금하신 게 결국 페가수스 상황이신 거죠?”
“아니라고 말하면 너무 내숭이지?”
“푸우우. 살짝, 스파이 느낌이 나서 기분은 좀 그렇네요.”
“비밀을 누설해 달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궁금해서 그래. 나도 귀동냥이라는 걸 좀 하고 싶거든.”
“으음.”
김욱은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몇 번 두드렸다.
함성훈도 손가락을 소파에 툭툭 두드렸다.
“예, 뭐. 비밀도 아니고 말씀 못 드릴 거 없죠.”
“그래? 시원시원해서 좋네.”
“예상했다시피 지금 페가수스 분위기가 기류가 확 바뀌었어요.”
“어떻게?”
“돈 풀던 걸 줄이는 거죠. 진희도 나갔겠다, 리그 1위를 해도 한국시리즈 떨어진 것도 벌써 두 번째고 하니 아무래도 우승 가능성도 그렇고, 투자할 가성비가 안 나온다고 보는 거죠.”
“조진희가 있는데도 우승 못했는데, 조진희가 없으니 앞으로 더 어려울 거다?”
“네. 그래서 저한테도 FA로…….”
“액수 말하기 그러면 넘어가고. 나도 그런 거 디테일하게 알려고 하는 거 아니니까.”
“아닙니다. 이왕 말하는 거면 다 까야죠. 이제 한 팀이 되는 건데.”
김욱이 손가락 여섯 개를 폈다.
함성훈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는데. 정말 액수가 그것밖에 안 됐어?”
“그것도 계약금 5에 옵션 15입니다.”
“한 2~3년 전 시세면 몰라도 요새 시세는 아니잖아?”
“그렇죠. 저도 2~3년 전이면 옳다구나 받았겠죠.”
“깐깐하게 계산한다면 터무니없는 금액도 아니긴 한데…….”
“금액도 금액이지만 태도가 너무 아니더라구요. 그냥 무조건 양보는 없답니다. 자기들이 내건 조건이 최고의 조건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계약이라는 게 서로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구단 사정이 어려우면 설득하는 척이라도 해 보든가, 아니면 배 째라고 하는데 기분 좋을 리가 있습니까.”
“팀 분위기가 좀…… 그렇네.”
“새롭게 단장이 왔거든요. 앞으로 프런트 야구, 효율적인 야구를 한다는데 말이 효율이지 제가 짬밥이 몇 년인데 느낌이 오잖습니까. 앞으로 연봉 짜게 주겠다는 거죠. 긴죽재정 이런 거죠.”
“흠흠. 그래, 긴축재정.”
“아, 예. 긴축.”
20억 차이라면 영구 결번이 걸렸다고 해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액수 차이가 크면 기존의 코치, 선수, 프런트 직원들이 나서서 정과 친분에 호소하기 마련이다.
이 타이밍에 페가수스의 단장이 바뀌고 기존 코치들도 싹 갈려 버렸다.
선수들은 연이은 한국시리즈 탈락에 의지도 꺾여 있었다.
김욱을 위로하고 설득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진 거다.
이때 프런트에선 김욱에게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협상은 없다면서 최종 액수를 통보했으니…….
일련의 과정을 보면 결론은 하나다.
애초에 페가수스는 김욱을 영입할 마음이 없었다.
돈의 가치로 보자면 야구는 적자 산업이다.
냉정하게 돈으로 본다면 현재 FA는 거품이 끼었다.
문제는 거품이 걷히질 않으면서 적정가가 돼 버렸다는 거다.
야구판에서 오래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외부에 있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야구판은 고비용 저효율 산업일 뿐이다.
최근에는 옵션까지 없애는 추세인데 옵션을 15억까지 넣었다는 건 철저하게 비즈니스로만 본다는 얘기다.
“그런데 말이야.”
함성훈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왜 다른 팀이랑은 접촉 안 한 거야? 너라면 수요가 꽤 많았을 텐데.”
“상위권 팀 중에서 3루수가 비어 있는 팀은 고트 하나뿐이잖아요.”
“너라면 1루수든 지타든 갈 수 있잖아.”
“저는 평생 3루수로 뛰었고 3루수로 은퇴할 겁니다.”
“3루에 애착이 크네.”
“네. 아, 그렇다고 3루 아니면 출장 안 한다는 거 아닙니다. 저 그 정도 꼴통은 아니에요. 포지션은 3루지만 팀 사정이라면 1루나 지명도 갈 수 있습니다.”
함성훈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알았어. 아무튼 앞으로 잘해 보자고.”
“네. 잘 부탁드립니다.”
포수로 승승장구
스토브리그 (3)
김욱은 감독실을 떠나기 전, 함성훈에게 말했다.
“돈도 돈이지만 제가 고트에 꼭 오고 싶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음?”
“석현이랑 한번 뛰어 보고 싶었거든요. 재밌잖아요, 빅볼. 라인업도 알차고. 이름도 생각해 놨습니다. KKYS. 뭔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럼 석현이가 6번으로 가야 하나?”
“에이, 이름만 KKYS로 가는 거죠. 석현이 밀어내고 4번 가면 누가 4번 가든 부담될걸요.”
김욱이 껄껄 웃으면서 감독실을 나갔다.
함성훈은 김욱을 배웅한 뒤 홀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확실히 사람이 유쾌해서 좋네.”
야구가 개인 능력 비중이 큰 팀 스포츠라지만, 팀워크는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오랫동안 보지 않았나?
고트가 꾸준히 수혈해 온 FA가 팀 분위기를 어떻게 해치는지.
이낙균, 최대규, 강문규 세 명의 FA를 트레이드로 내보낸 건 큰 타격이지만, 선수단 사기 진작에는 즉효였다.
“KKYS…… 음. 역시 촌스러워.”
KS처럼 입에 딱 달라붙지 않는다.
함성훈은 저녁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았다.
광주에서 오기로 한 손님, 김정덕과 정근기를 기다리기로 한 참이었다.
두 사람이 감독실로 찾아온 건 저녁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긴장한 티를 숨기지 못한 두 사람은 프런트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감독실을 찾았다.
“아, 반가워. 고트에 온 거 환영해.”
함성훈이 손을 내밀자 두 사람이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구, 귀청 떨어지겠네. 일단 앉아, 두 사람.”
“감사합니다!”
함성훈은 두 사람을 마주 보며 앉았다.
김정덕이나 정근기나 큰 키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어깨가 떡 벌어져 있었다.
김정덕이야 고졸 프로 2년 차지만 불스에서 주전 중견수를 하고 있는 유망주이자 즉전감이었고, 정근기는 불스가 작년에 드래프트 2라운드에 뽑은 대형 유망주였다.
불스가 하위권이기에 2라운드로 뽑힌 거지, 1라운더라고 해도 무방했다.
이미 완성형이라고 불릴 만큼 공수주에 뚜렷한 약점이 없었다.
다만, 올해에는 허기영이라는 초대형 유격수를 불스가 뽑으면서 정근기의 입지가 애매해졌다.
메이저리그 직행을 말리면서까지 불스가 데려온 선수라 앞으로 누구에게 더 많은 기회가 갈 건지 예측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유격수이니만큼 3루, 2루도 가능한 자원이었지만 함성훈이 이 틈을 이용했다.
신형 핸드폰이라고 해도 다음 해 똑같은 종류로 업그레이드된 기종이 나온다면 기차 하락이 가팔라진다.
본래의 가치가 변한 건 아니지만 비교 대상이 생기면 저절로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불스가 정근기의 효용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거절하기 힘든 안을 내밀었다.
강석현과 강환윤.
올해 초까지 고트의 필승조 불펜이었던 선수다.
두 사람 모두 재활 중이지만 강환윤은 내년에 복귀하는 스물네 살의 좌완 파이어볼러고, 강석현은 내후년에 복귀하는 스물아홉 살의 선수지만 역시 좌완 파이어볼러다.
여기에 외야 수비로는 A급으로 인정받는 중견수 정병선을 얹으면서 불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 줬다.
올해 불스는 내부 FA만 네 명이다.
일찍이 네 선수와 FA 계약을 마치면서 내년 대권에 욕심을 내고 있다.
시즌 중반까진 내년 대권 도전은 먼 나라의 일이었을 테지만 시즌이 끝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고트는 챔피언에 올랐으나 입지가 불안하고, 페가수스는 한국시리즈 2연속 탈락으로 체면을 구겼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
누구나 대권을 도전할 만한 상황에 도달했다.
갑자기 불스가 일본 프로야구 출신 코치들을 대거 영입한 것만 봐도 이례적이다.
일본 야구단과 자매결연을 하면서 오랫동안 교류를 해 온 불스지만 단 한 번도 일본 프로야구 출신을 코치로 들인 적이 없다.
갑작스러운 일본 프로야구 출신 코치진, 재빨리 마친 내부 FA 단속.
그저 쇄신을 하자고 대대적인 투자를 할 리가 없다.
목표는 우승이다.
문제는 우승을 위해선 마운드 보강이 절실했다.
박신언을 얻기 위해 고진석, 김진석이라는 필승조 불펜 둘을 내주면서 안 그래도 황량한 마운드가 더 메말라졌다.
조삼모사일 수 있으나 고트는 불펜 투수가 절실히 필요했다.
트레이를 단행하면서 누구보다 불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함성훈이었기에 가능했던 과감한 딜이었다.
강석현의 경우 내후년에나 돌아오는 자원임에도 불스가 덥석 받아들인 것만 봐도 불스가 얼마나 몸이 달아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보수적으로 볼 때나 강석현의 복귀가 내후년이니 만큼 재활에 일가견이 있는 일본의 재활의학을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더 빨라질 수 있다.
딱 반년만 더 복귀를 당길 수 있다면 가장 불펜이 갈급한 여름에 강석현이 돌아온다.
내부 사정은 모르지만 불스는 지금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차 있는 건 확실하다.
불스가 리빌딩을 천명했다면 김정덕이나 정근기 같은 핵심 유망주를 절대 내줬을 리 없다.
오히려 올해 대권 도전을 선언했기에 계륵이 된 정근기도 덤으로 얻어 올 수 있었다.
정근기는 내년에 유격수와 2루 백업으로 활용한 뒤 내년부터 병역을 해결하면 딱 맞다.
리빌딩의 한 조각으로 삼기에 정근기만한 자원도 없다.
“두 사람 집은 어떻게 구했고?”
“아? 네?”
김정덕이 두 손을 꼭 잡았다.
“일단 급한 대로 여기 모텔을 잡기로 혔는데…… 아니 했는데요.”
“모텔?”
“내일 엄마, 아빠가 올라와서 같이 집 봐준다고 했으, 했습니다.”
“으음. 근기 너는?”
“저도 오늘 같이 자기로 했습니다.”
“집은?”
“집은 조금…… 그게 좀.”
함성훈이 씨익 웃었다.
정근기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대번 알 수 있었다.
“일단 서울에 원룸이라도 집 하나 얻어 놓는 게 좋지 않겠어? 아니면 구단에 문의해. 이 근처에 구단이 잡아 놓은 숙소가 있어. 기숙사 같아서 이용은 잘 안 하지만, 그래도 우리 팀 선수면 공짜로 이용할 수 있어.”
정근기가 활짝 웃었다.
“정말 여기다 집 얻어도 되는 겁니까?”
“일단은. 확정할 수는 없어. 무슨 말인지 알지?”
“아…… 예, 뭐. 알겠습니다.”
정근기가 고민한 건 자신이 1군에서 뛸 수 있느냐, 없느냐.
자신이 1군에서 뛸 수 없으면 집을 얻을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