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62
-볼. 하이.
구인선이 첫 타자 이지성에게 연이어 빠른 공 두 개를 몸 쪽에 던지자 심판이 마스크를 벗고 나가 구인선에게 경고를 줬다.
조심하라는 뜻이었으나 황근성은 바로 벤치에서 튀어나왔다.
“타자 옷깃도 스치지 않았는데 왜 주의를 주는 거야? 투수한테 부담 주는 거야?”
황근성의 항의에 심판이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양 팀 모두 주의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고트한텐 이 정도로 경고하지 않았잖아? 차별하는 거야, 뭐야.”
“차별이 아니라요.”
심판이 숨을 후, 내뱉었다.
“한민석은 공이 좌우로 잘 빠지고, 구인선은 공이 위아래로 잘 빠지는데 똑같은 코스로 공이 들어오잖습니까. 똑같은 코스로 공이 들어오면 아무래도 구인선이 더 의도성이 짙죠. 그걸 감안해서 주의를 주는 겁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심판이 한쪽 눈을 찡그렸다.
“말이 안 된다구요?”
코치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얼른 심판과 감독 사이에 몸을 밀어 넣었다.
“아무튼 주의하겠습니다.”
황근성도 더는 항의하지 않고 벤치로 돌아갔다.
심판은 혀를 차더니 다시 마스크를 썼다.
경기가 재개되자 구인선이 바깥쪽에 빠른 공을 밀어 넣었다.
방송사 카메라 스트라이크존에선 라인에 걸쳐 들어간 공이었다.
-볼. 아웃사이드.
투수와 포수 모두 아쉽다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황근성이 다시 나오려 하자 심판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코치가 황근성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심판을 자극하면 안 될 거 같습니다.”
황근성은 씩씩댔지만 벤치를 나가진 않았다.
구인선의 애매한 공들이 연달아 볼로 판정되자 금세 만루가 채워졌다.
1사 만루 유선호의 타석.
좌타자에 강한 구인선이지만 3-1 상황에서 던진 포크볼이 뒤로 빠지면서 점수는 1-0.
다음 타자 김욱은 좌중간을 꿰뚫는 안타로 싹쓸이 2루타를 신고했다.
“…….”
황근성은 잔뜩 골이 난 얼굴로 경기장만 바라봤다.
안 그래도 제구가 썩 좋지 못한 투수가 구인선이다.
심판의 존이 빡빡해지자 구인선은 연이어 볼넷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고트의 수비 때는 정반대였다.
한민석은 몸 쪽 빠른 공은 자주 섞어 주면서 웨일스 타자들을 타석에서 떼어 냈다.
한민석의 몸 쪽 공은 볼이 많았으나 바깥쪽 빠른 공은 연이어 스트라이크였다.
[너무 멀어요. 타자들한테는 너무 멉니다, 저 코스가.] [오늘 웨일스 타자들이 감을 잘 못 잡는 거 같습니다. 직구 타이밍에 배트가 따라오질 못하네요.] [한민석 선수의 투구 폼이 좌타자에겐 더 매서운 만큼 우타자에겐 오히려 호재거든요. 변화구가 사이드로 휘면 휠수록 우타자한텐 공이 더 잘 보일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반대예요.] [왜 그렇죠?] [한민석 선수가 몸 쪽 공을 두려워하지 않고 던지다 보니 우타자는 공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걸 보게 되거든요? 평소라면 ‘고맙습니다.’ 하고 치겠지만 저 공이 얼마나 더 깊게 들어올지 모르니 두려운 거죠. 지금 슬라이더도 섞어서 던지고 있어서 직구인 줄 알았다가 스윙했는데 슬라이더면 바로 빈볼입니다. 한민석 선수한테 빈볼 맞으면 그거 오래갈 겁니다. 유난히 공이 묵직하기로 유명한 선수기도 하거든요.]몸 쪽 공으로 겁주고 바깥쪽 공으로 카운트 잡기.
정석적인 조합이지만 그만큼 잘 먹히는 조합이었다.
한민석의 까다로운 투구 폼, 구질, 구속은 타자들에겐 골칫덩이였다.
웨일스가 똑같이 맞불을 놓고 싶어도 구인선은 스트라이크존에 조금만 애매하게 들어가도 볼이 나오니 경기 흐름은 예측할 필요도 없었다.
구인선은 4회 5실점으로 강판.
한민석은 7.1이닝 4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때 점수는 8-4.
황근성의 손발이 묶이자 이때부턴 실력 싸움이었다.
선발, 수비, 불펜 모두 비슷하지만 중심 타선에선 고트가 한두 수 위였다.
주중 2차전은 12-5.
주중 3차전은 18-3.
엄청난 점수 차에 웨일스 팬들은 일찍 자리를 뜨는 이들이 속출했다.
3연전 스윕 후 만난 팀은 부산 아스트로 보이즈.
고트는 위닝시리즈로 경기를 마감하며 오랜만에 다시 연승 가도에 올라섰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으니…….
포수로 승승장구
불타는 방망이 (1)
6월 1일 일요일.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
인천에선 고트의 원정 경기가 끝나 갔다.
전광판의 숫자는 7-1.
이제 막 8회를 마치고 9회로 접어들었다.
[웨일스가 오늘도 지면 스윕입니다. 벌써 두 번째 스윕이에요.] [분명 4, 5월만 하더라도 웨일스가 고트 상대로 천적 포지션을 잡은 거 아니냐, 말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말은 다 사라졌어요. 웨일스의 장점인 마운드가 무너지면서 속수무책입니다.] [올 시즌 최대규, 강문규를 내세워 우승까지 노려 보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두 선수가 나란히 이탈해 버린 것도 큰 문제라고 봅니다.] [여기에 최근 김재홍 선수까지 부진하면서 2, 3, 4번이 완전히 무너졌으니 이건 화타가 와도 어려운 상황이에요. 타선의 어려움을 불펜을 통해 풀어 가려는 황근성 감독이지만 그것도 벌써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불펜 혹사 지수 10위 중 다섯 명이 웨일스 선수들입니다. 20위로 넓히면 열 명이 넘어요.] [불펜이 강점인 웨일스도 잦은 등판에는 별수가 없네요.] [웨일스가 작년에 고트에 투수 네 명이나 내주는 빅딜을 강행했죠? 당시에는 정홍민 선수를 제외하면 모두 즉시 전력감은 아니라는 평가라 웨일스가 크게 성공한 트레이드라고 했는데 그 선수들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어리고 가능성 있던 선수들이거든요. 2군에서 그나마 잘 던진다는 투수들까지 죄다 끌어오는 상황인 만큼 웨일스는 무려 4명의 투수를 내보낸 게 뼈아플 겁니다.]경기는 설진일, 김인환의 백 투 백 홈런과 정진오의 등판으로 마무리됐다.
최종 점수 11-1.
황근성 감독은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벤치를 떠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 고생했다.”
경기가 끝난 후 고트 선수들은 짐을 챙겨 인천을 떠났다.
서울로 돌아온 선수들은 코치들의 잔소리를 들으며 하나둘 버스를 떠났다.
“내일 휴일이라고 너무 막 놀지 말고. 어?”
“쉬는 날에는 푹 쉬는 게 최선이야. 알았냐?”
“일 만들지 말자, 일.”
김욱은 빠르게 흩어지는 선수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유선호가 김욱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물었다.
“와? 표정이 와 그라는데.”
“심심하네. 고트가 참 심심해. 어떻게 웨일스일 때보다 더 심심한 거 같아.”
“짜슥이. 와? 못 놀아서 심심해 죽겠나? 여자 끼고 놀고 싶어 죽겠나?”
“여자 끼고 놀 나이는 이미 지났고. 그냥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이라도 하고 싶은데 애들이 쪼르르 집에 가 버리니 누굴 붙잡고 뭐라 할 수도 없고 참.”
유선호가 껄껄 웃었다.
“와, 안 좋나? 운동할 땐 운동하고 쉴 땐 쉬고. 딱 니 스타일 아이가?”
“그래도 일요일에는 딱 맥주 한 잔 하고 노가리도 털면서 한 주를 마무리하는 게 낙인데 말이야.”
“여도 마이 달라졌다. 작년에 사고 친 애들이 확 나가 뿌면서 물갈이가 돼 가꼬 웬만해선 커피 마시면서 얘기하지 술도 잘 안 마셔.”
“누가 들으면 내가 술꾼인 줄 알겠네. 나도 시즌 중엔 술 잘 안 마셔. 간단하게 맥주 한 잔에 치킨 먹으면서 노가리 까는 낙이 있는 거지.”
“그래도 천지개벽한 거지. 고트하면 맨날 룸 가서 술 처 묵고, 여자 바까 가며 노는 게 하루 이틀도 아이었는데 완전 바뀌었으니.”
“대단했지, 고트. 다들 엄청 부러워했잖아, 고트에서 2군으로만 뛰어도 연예인 사귀는 건 일도 아니라고.”
“술 사겠다는 회장님도 엄청 많고 말이야.”
“정률이 때문에 그런가, 요샌 많이 줄긴 했어.”
“투수 중에는 정률이가 있고 타자는 내가 있으니까 기강이 딱 잡히는 거지.”
김욱이 코웃음쳤다.
“아유, 저 셀프 자랑. 석현이랑 인환이 덕이 아니고?”
“새파랗게 어린 애들이 뭘 알겠노.”
“걔네 둘도 정률이 따라서 전체 관람가로 노니까 다들 알아서 몸 사리는 거지. 걔네 둘이 작정하고 놀았어 봐. 형이라고 별수 있겠어?”
“걔들을 그렇게 다독거려서 옳은 길로 이끄는 것도 내가 덕이 있어서 그런 거다, 덕.”
“네, 네. 덕이 있으시군요. 아휴. 됐다. 나도 집에 가서 토끼 같은 마누라랑 여우 같은 딸이나 봐야지.”
“말이 반대 아이가. 여우 같은 마누라랑 토끼 같은 딸이겠지.”
“우리 집은 내 말이 맞거든요?”
김욱까지 떠난 후 유선호가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놀아 줄 놈이 아무도 없나.”
* * *
송석현은 집으로 가자마자 샤워를 했다.
손톱 밑까지 깨끗하게 씻은 뒤에 김나영의 배에 귀를 댔다.
“안녕. 아빠가 왔어. 잘 놀고 있었어?”
김나영이 송석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오늘도 잘했어, 3안타 경기.”
“몸 많이 무겁지?”
“괜찮아. 아직 내가 어려서 그런가. 언니들은 손발도 붓고 힘들다는데 난 아직 괜찮아.”
“그건 다행이네. 헤헤. 준비는 다 했어?”
“준비할 것도 없어. 내일 엄마가 와서 해 준대.”
“그래? 장모님이 고생이 많으시네.”
김나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괜찮겠어, 나 집 비우고 친정에 가도?”
“나 없는 시간이 많잖아. 거기서 당분간 지내고 있어. 나도 앞으론 거기로 출퇴근할게.”
“너도 쉬어야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더 늘 텐데.”
“별 걱정을 다 하시네.”
“후, 걱정되지. 올해 아시안게임에 뽑히려면 성적 계속 잘 유지해야 되잖아.”
“그거야 말로 별 걱정 아닐까?”
송석현의 말에 김나영이 눈을 몇 번 깜박였다.
“……틀린 말은 아니네.”
“넌 몸조리에만 신경 써. 오케이?”
“알았어. 너도 이제 애아빠니까 몸조심하고.”
“아이고, 그럼요. 아무렴요. 헤헤.”
* * *
다음 날 송석현은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김나영을 친정으로 데려다줬다.
점심을 함께한 후 오후에는 정미남과 김영석을 만났다.
“학교생활은 할 만하냐?”
송석현의 물음에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빡세. 외울 건 왜 이렇게 많은지.”
정미남의 푸념에 송석현이 크게 웃었다.
“그러게 그냥 가게 물려받아서 잘 운영하면 되지 갑자기 웬 대학교를 다닌다고.”
“나도 캠퍼스 라이프는 즐겨 봐야 하지 않겠냐?”
“그래서, 좀 즐겼어?”
정미남이 어깨를 으쓱했다.
“미팅도 해 보고 소개팅도 해 보고. 나는 요새 만족하고 산다.”
“영석이 넌?”
“나도 좋아. 집에서 잔소리가 엄청 심하긴 한데 빨리 취직해서 나오려고. 안 그래도 미남이가 같이 자취하자고 엄청 꼬시고 있어.”
“자취라……. 뭐, 그것도 낭만이지.”
“너는 중간 과정 없이 바로 결혼 후 임신이라 평생 못 느껴 보겠네?”
“아쉬워하길 바라는 거 같다.”
“아님 말고. 후후. 이제 곧 예정일이지?”
“어. 후, 요새 좀 긴장이 되네. 경기도 손에 잘 안 잡히고.”
정미남이 말했다.
“너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요새 고트 성적이 애매~해. 니 성적도 애매~하고. OPS만 높지 홈런이나 안타가 적어.”
“야. 자꾸 나를 피하는데 그럼 어떡하냐? 그래도 앞뒤로 형들이 잘해 주잖아. 나는 연결 고리지, 연결 고리.”
“4번 타자가 연결 고리를 하면 되냐.”
“욕심내다 망하는 거야, 인마. 상대가 맞불을 놔야 나도 좀 휘두르지 않겠냐?”
김영석이 말했다.
“그럼 내일은 너도 배트 좀 휘두르겠네.”
“내일? 아, 내일은 아스트로랑 하네.”
“요새 아스트로가 핫해.”
“내일 재밌겠네. 서로 맞불 놓는 팀 아냐? 시청률 폭발하겠구만. 부산 대 서울, 최고 인기 팀 2팀이 붙었으니 이건 뭐.”
정미남이 말했다.
“내일 시원하게 한 방 날려라. 기대할게.”
송석현도 사양하지 않았다.
“내일은 나도 풀스윙 간다. 요새 재밌어, 아스트로 보이즈.”
* * *
화요일 잠실 경기.
서울 고트와 부산 아스트로 보이즈의 주중 3차전.
최근 1위에 올라서며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아스트로 보이즈와 작년 1위 팀 고트의 승부는 언론이며 팬이며 가릴 것 없이 관심이 최고조에 다다랐다.
작년 고트의 1위 이후 이제는 부산의 차례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왕조를 노리는 고트와 20년 이상 묵은 우승의 한을 풀고자 하는 아스트로 보이즈.
두 팀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았다.
선발진의 성적은 리그 중위권이지만 타선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1, 2위를 다퉜다.
여기에 강력한 불펜까지.
리그에서 구장이 크기론 서로 1, 2위를 다투는 팀이 홈런도 1, 2위를 다투는 것도 비슷했다.
주중 1차전.
1회 초.
고트는 멕킨지를 올려 7구만에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7구지만 멕킨지는 2안타를 허용했다.
“아스트로가 대단하네요. 초구부터 비슷하면 그냥 휘둘러 버려요.”
타격코치가 혀를 내둘렀다.
“시즌을 치르면서 더 공격적으로 가는 거 같아.”
“이러면 경기는 빨리 끝나겠네.”
“애들이 전부 풀스윙이야.”
코치들도 서로 한마디씩 보탰다.
함성훈이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오늘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함성훈의 말에 투수코치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