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69
“그것도 그거고. 후…….”
김영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한테만 말하는 거지만, 아니 뭐. 우리 팀에서는 알 사람은 다 아는 거지만. 크흠.”
김영훈이 목소리를 낮췄다
“올 시즌 끝나고 난 은퇴할 거다.”
“……네?”
“목소리 낮춰.”
“아, 네 네. 은퇴요? 선배님이요?”
리그에서 방어율 1점대 투수는 단 한 명이다.
고트의 마무리 김정률.
마찬가지로 리그에서 방어율 0점대 투수도 단 한 명이다.
피닉스의 김영훈.
난공불낙.
타자들이 손댈 생각조차 못 하는 투수.
피닉스를 제외한 일곱 개 팀 감독, 단장, 선수들의 소원이 있다면 김영훈이 빨리 리그에서 사라지는 일일 터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거든. 여기서 더 던지면 일상생활 할 때도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하니까 별수 있나. 원래 이번 시즌 복귀도 욕심이었어. 그래도 마무리는 제대로 짓고 끝내고 싶었거든.”
“아…….”
송석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영훈의 은퇴.
매스컴에서 한참이나 시끄러울 내용이었다.
“복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올 시즌 정말 재밌거든. 올림픽도 뛰어 봤고, 이번에는 풀 시즌으로 치러도 봤고. 우리 팀 꼬라지를 보니 포시는 힘들 거 같아서 포시 못 뛰는 게 아쉽지만, 너 같은 놈도 만나 보고 다 좋아.”
“많이 아프신 겁니까?”
“적당히. 아니, 꽤.”
“…….”
송석현은 한참 뜸들이다 물었다.
“그런데 이건 비밀 아니십니까? 왜 저한테……?”
“아직은 대외비지. 원래는 시즌 끝나고 발표하려고 했는데…… 그냥 내 입이 간지럽네. 올림픽도 끝났고 시즌도 다 끝나 가고 굳이 뭐 비밀로 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서.”
“네에…….”
송석현이 두 볼을 부풀렸다.
“너무 아쉽습니다. 선배님은 뛸 때마다 리그에서 신기록을 세우실 분인데.”
“데뷔도 너무 늦었고, 첫 시즌부터 너무 달렸어. 이럴 수밖에 없는 운명, 뭐 이런 거라고 생각해.”
“네에…….”
“그래서 말이다, 석현아.”
“네.”
“분발해라. 이제 나 은퇴하면 너랑 나 통산전적 영원히 안 바뀌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그때 송석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김영훈이 받아 보라고 고갯짓하자 송석현은 전화를 받으면서 방을 나갔다.
“응, 나영아. 무슨 일이야?”
문이 닫히자 김영훈은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열었다.
“……결국 연락은 없네.”
포수로 승승장구
쓸쓸한 가을.
금메달을 딴 야구 대표님은 공항에서부터 환대를 받았다.
원래는 시끌벅적한 해단식이 기다렸으나 울브스 선수의 음주 운전 사태가 터지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자 자, 다들 고생했습니다.”
“고생했습니다!”
선수들과 코치들, 관계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기다리던 가족들과 함께 뿔뿔이 흩어졌다.
부모님이 찾아온 이들도 있었고, 여자 친구가 찾아온 이도 있었고, 와이프와 자식들이 찾아온 이도 있었다.
이마저도 속하지 않은 선수는 소속 팀 선수와 함께했다.
“선배님,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송석현은 헤어지기 전 김인환과 함께 김영훈에게 인사했다.
아직 김영훈이 은퇴한다는 사실은 송석현밖에 몰랐기에, 송석현의 인사는 제법 길었다.
“그래. 가. 저기 제수씨가 기다리는 거 같은데.”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그래. 둘 다 수고했어.”
“들어가십쇼!”
김인환과 송석현은 자신들을 기다리는 와이프를 향해 잰걸음을 옮겼다.
김영훈은 캐리어를 세워두곤 쓴웃음을 지었다.
“짜식들. 와이프도 이쁘구만. 애도 이쁘고. 후.”
김영훈은 한참이나 두 가족의 재회를 지켜본 뒤 고개를 숙였다.
캐리어를 끌고 다른 길로 가려는데 누군가 손으로 어깨를 툭툭 쳤다.
“김영훈 선수. 바쁘지 않으시면 사진이나 하나 찍어 주시죠,”
선글라스를 쓴 긴 머리의 여자가 김영훈을 올려다봤다.
“뭐야. 넌 여기 왜 나왔어?”
김영훈을 맞이한 건 피닉스의 단장 김시윤이었다.
“왜긴. 쓸쓸한 솔로끼리 위로해 주려고 왔지.”
* * *
김영훈과 김시윤을 태운 차는 대전이 아닌 서울로 향했다.
“그냥 바로 대전으로 가지, 왜.”
“그래도 금메달도 따고 고생했는데 여기서 맛있는 것도 먹고 좀 해야지.”
“무슨 맛있는 거? 고기면 됐지.”
“내가 사 줄게. 예약까지 다 해 놨단 말이야.”
“누군 돈 없어서 그러냐. 그냥 푹 쉬고 싶어서 그러지.”
두 사람은 이후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김시윤은 라디오를 켠 후 창문을 조금 열었다.
“추운데 왜 창문을 열어?”
“살짝 잠이 오려고 해서. 왜? 많이 추워? 닫아 줘?”
“아냐, 됐어. 졸음운전으로 세상 하직하는 것보단 추운 게 낫지.”
“기껏 데리러 왔구만 말하는 거 하곤.”
김영훈은 팔짱을 끼더니 콧바람을 내뿜었다.
“미안. 괜한 소리 했네.”
“알면 됐어. 나도 귀하신 몸이야. 너도 잘 알지?”
“네, 네. 누가 모른답니까.”
“내 핸드폰이 얼마나 바쁜지 알아? 그래도 너 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거란 말이야.”
“그래. 고맙다, 고마워.”
“으휴. 진짜. 어디서 그렇게 배배 꼬여 가지곤.”
“뭘 꼬여. 나 괜히 인성 파탄자로 만들지 마시죠.”
김시윤은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바람 소리에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조금 잠길 수준이었다.
“근데 영훈아.”
“왜.”
“너 언제까지 말 안 한 거야?”
“뭘.”
“혜린이.”
김영훈이 고개를 차창 쪽으로 돌렸다.
“뭐가.”
“내가 바본 줄 알아. 이 정도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게 정상 아냐? 나도 혜린이랑 누구보다 친한 사람이야.”
“그래서 뭐.”
“그래서 뭐는. 두 사람 어떻게 된 거야. 이 정도 기다렸으면 얘기해 줄 때 되지 않았어?”
김영훈이 의자를 더 뒤로 눕혔다.
“말하기 싫어?”
“……졸리다. 이따 도착하면 깨워.”
김영훈이 눈을 감자 김시윤이 한숨을 쉬었다.
* * *
“시즌 끝나고 말하려 했구만.”
김영훈과 김시윤은 식사를 마치고 2차로 술집까지 함께했다.
소주 한 병을 물처럼 비운 김영훈이 이마를 매만졌다.
“너 어디까지 알고 있냐?”
“두 사람, 별거가 아니라 이혼한 거.”
“……그럼 다 알고 있네.”
“그게 다야. 혜린이가 더는 얘기 안 했거든. 그 이후로 연락도 잘 안 되고. 아니, 혜린이가 안 하는 거지만.”
“그러면 됐잖아.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해?”
“깨가 쏟아지던 두 사람이 헤어졌는데 그럼 얘기가 안 필요해?”
“살다 보면 또 그렇고 그렇게 되는 거지, 뭐.”
“야.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진 지 내가 다 아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후우우.”
김영훈은 소주 한 병을 더 시킨 후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었다.
“그래. 뭐, 길게 얘기하면 신파가 되니까 짧게 얘기할게.”
“왜 둘이 헤어지게 된 거야?”
“혜린이 유산했어.”
“뭐?”
김시윤이 놀라 눈을 깜박였다.
“나는 임신이나 유산 같은 거 한 번도 혜린이한테 들어 본 적 없는데?”
“……아무튼. 서로 탓하다 마음이 떠났어. 다시 한국 와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혜린인 미국에 남기로 했고. 이게 끝이야.”
“야.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말을 해야지.”
김영훈이 볼을 긁적였다.
“디테일까지 필요하냐? 그냥 그렇다고 알아들으면 되지.”
“그게 제일 중요한 거잖아. 왜 서로 탓하게 된 건데?”
“아 참. 이 회사 피곤하게 구네.”
김영훈이 혀로 볼을 밀었다.
“나 미국에서 재활할 때 혜린이는 심심해서 죽으려고 했어.”
“어. 그래서?”
“그래서 현지에서 영어도 배우고, 연기도 배우고 그랬거든. 그러다 애가 생겼네? 나는 엄청 좋아했지. 근데 혜린이 반응이 좀 그렇더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부터 좀 서로 그랬어.”
“혜린이가 싫어한 거야?”
“그건 또 아니야. 뭐랄까……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어. 아무튼. 나는 애도 생겼고 하니까 재활을 한국에서 할까 생각도 했는데 본인은 미국에 더 있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러자고 했어. 아직 임신 초기라 조심해야 하니까 미국에서 좀 있다가 한국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혜린이가 자꾸 밖으로 돌기 시작하데. 처음엔 연기 레슨 받는다고 하더니 다음에는 무슨 모임 간다, 친한 언니 보러 간다…….”
“그래서?”
“우리 산부인과 간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였나. 혜린이가 밤늦게 연락하더라고. 자기 접촉 사고 났다고. 큰 사고는 아니었어. 차 범퍼는 찌그러졌지만 사람이 다치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었는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 산부인과에 갔는데 유산이라데?”
김영훈이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
“어이가 없고 화도 나고. 그래도 본인이 제일 힘들 거 아냐. 내 딴에는 위로를 해 줬는데 혜린이는 오히려 나한테 화를 내더라. 이게 다 내 탓이라고. 나 때문에 미국 와서,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
“혜린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교통사고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전부 내 탓이래.”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의사 말로는 유산의 이유가 교통사고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고 했거든. 임신 초기에는 유산되는 경우가 종종 있대. 나도 사람이잖냐. 갑자기 내 탓을 하는데 어이가 없잖아. 나도 화나고 슬픈데 걔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쩌겠어. 그냥 속으로 삭였는데 혜린이는 계속 나한테 시비 걸더라. 내 탓인데 자기한테 미안하지 않냐고.”
“정말 혜린이가 그랬다고? 정말이야?”
“물어봐 그럼. 혜린이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네가 물어봐서 나도 겨우 꺼내는 말이야.”
“…….”
“더는 그런 진실 공방하면서 서로한테 상처 주기 싫었어. 나랑 헤어지고 싶냐고 물으니까 싫다는 대답도 안 해. 그래서 한국 와서 도장 찍었고, 혜린이한테 적당히 재산도 떼어 줬어. 이혼 조정 끝나니까 혜린이는 다시 미국 가더라. 그게 끝이야.”
“……대체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게 다야. 무슨 사건 사고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게 전부야, 진짜.”
김시윤이 고개를 저었다.
“둘 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얘길 안 한 거야?”
“부부 간의 일이야. 너랑 아무리 친해도 그런 얘기까지 다 까발린 순 없잖아.”
“……그래도 이렇게 마무리하는 건 아닌 거 같아.”
“뭘 아니야, 아니긴. 그게 끝이야, 정말. 그때 이후 혜린이랑은 연락 안 한 지도 오래됐어.”
“믿을 수가 없어. 두 사람이 그렇게 끝난 거.”
“당사자가 끝났다는데 왜 네가 난리야. 참 나.”
“그렇잖아. 두 사람이-.”
“됐어. 술이나 마셔.”
김영훈이 김시윤의 잔에 술을 따랐다.
“원래 재활 더 길게 해야 됐어. 그런데 나도 멘탈이 나가니까 집중할 게 필요해서 올 시즌에 복귀한 거야. 그 덕에 팔이 매일같이 아파서 죽을 지경이다만 어쩌겠냐. 모든 건 다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김영훈은 소주잔 대신 물컵에 소주를 따랐다.
“그래서 미리 말하는데 나 은퇴 번복 이런 거 없어. 매달리지 마. 너 오늘 온 거 은퇴 말리려는 목적도 있다는 거 부정 못 하지?”
“…….”
“나 진짜 어깨고 팔꿈치고 안 아픈 데 없어. 더 욕심 없어, 나. 은퇴할 거야. 혜린이한테 나 잘 사는 거 보여 주려고 복귀한 건데 걔한테 연락도 없는 거 보면 완전히 끝났어. 이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 올림픽 금메달까지 땄으면 나 할 거 다 해 본 거잖아.”
“하아. 그래. 나도 너한테 더 무슨 말을 하겠어.”
“뭐~ 우리 팀에 나 없으면 내년에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긴 하다만, 그거야 우리 단장님이 고민할 거지 내가 고민할 건 아닌 거 같고.”
김시윤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니 말대로 사실 오늘 너 한번 잡아 보려고 만난 것도 있어. 너랑 혜린이 얘기 듣는 게 첫 번째긴 했지만 말이야.”
“하나는 성공했으니 됐네.”
“……그래. 단장으로서 짐은 단장이 짊어져야지. 네가 고민할 건 아니고.”
“나도 내 인생 하나로 벅차. 야구단 얘기는 여기서 스톱합시다.”
“알았어.”
두 사람은 서로 잔을 부딪쳤다.
“그럼 김영훈.”
“왜.”
“아니야. 됐다.”
“뭐, 뭐. 말해.”
“너 내년에는 뭐 할 건데? 뭐 준비해 둔 거 있어?”
“없어, 그런 거. 아, 미리 얘기하는 건데. 나한테 코치니 뭐니 이런 거 시킬 생각 하지 마. 코치 연수 받으러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으니까.”
“너 정도면 연수 안 해도-.”
“됐어. 나도 나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 모시면서 코치 생활하고 싶진 않아. 말이 코치지 요새 코치가 코치냐. 감독이고 코치고 요샌 선수가 갑이야. 더는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다. 이제는 좀 편하게. 편~하게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