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7
“생각보단 좋아. 재활 꾸준히 하면 일상생활 하고 남들처럼 운동하고 그런 건 문제가 없대. 짧으면 1년, 길면 2~3년 걸리겠지만 말이야.”
“야구는 안 되고?”
“안 되지, 야구는.”
“왜?”
“왜는. 야구처럼 허리를 많이 쓰는 운동이 어딨어? 게다가 폭발적으로 허리를 틀어 하는데 그러면 백 프로 수술이야.”
“허.”
김정률이 한숨을 쉬었다.
수술.
야구 선수들에게는 의례적인 통과 관문일 뿐이지만, 반가운 소리는 아니다.
김정률도 팔꿈치와 어깨 수술을 했지만 예전 기량을 회복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물며 그보다 더 큰 공사인 허리 수술을 한다면…….
야구 선수 김형석은 없을 터다.
“그래서 깔끔하게 은퇴하기로 했다. 뭐,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었잖아. 이번에 훈련도 네가 우겨서 따라온 것도 컸고, 나도 마지막으로 좀 해 보고 싶기도 했고.”
“후우우.”
김정률이 고개를 숙였다.
김형석은 김정률의 다리를 툭툭 쳤다.
“오바는. 왜 네가 그러냐?”
“하, 외로워서 그런다, 외로워서. 우리 이제 서른하나야. 우리 나이에 이제 막 취직해서 신입으로 들어가는 애들도 있는데 우린 죄다 은퇴를 하고 있네.”
“뭐, 모르고 야구 시작했냐?”
“알아. 알아도 뭐 기분이 그러네. 우리 동기 중에 남은 건 이제 너랑 나 둘인데 너까지 가면 나 혼자네.”
“외롭냐?”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네, 후우. 너까지 나가면 이제 내 차례 같다.”
“넌 더 해 봐. 그래도 천하의 김정률인데 기회가 더 있겠지.”
“글쎄다.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자신은 없다.”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해 봐. 네 말대로 남들은 우리 나이에 신입으로도 들어가는데 네가 쫄 게 뭐야. 어쨌든 넌 공을 던질 수 있잖아. 나는 아예 공을 던지면 안 되는 몸이고.”
김정률이 자기 어깨를 보여 줬다.
“나도 이 팔만 수술 세 번이야.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다고. 공이 완전 노답인데 무슨.”
“내가 너만큼만 던져도 열심히 해 봤을 거다, 짜식. 내 앞에서 앓는 소리 할래?”
김정률이 눈썹을 씰룩했다.
“미안하다.”
“네가 이번에 일본까지 훈련하러 온 거 보면 나름 마음 단단히 잡은 거 같은데, 그 마음 잊지 말고 쭉 해 봐. 무슨 말인지 알지?”
“……그래.”
“동기 없다고 우울해하지 말고. 야구 선수가 서른 넘어가면 노장이야. 이 나이에 은퇴하는 거 이상한 거 아니다. 그러니까 네가 선배 노릇 잘해.”
“이제는 누구한테 힘들다고 얘기도 못 하겠네.”
김정률은 이마를 매만졌다.
고트는 젊은 팀이다.
1군에 김정률보다 나이 많은 노장이 없다.
다른 팀이라면 어린 유망주를 많이 올려서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고트는 달랐다.
애매한 1군은 FA 보상 선수로 나가기 일쑤다.
노장에게 시베리아 벌판과도 같은 곳이 고트였다.
김정률이 여태 버틸 수 있었던 건 그가 잘하기 때문이 아니다. FA 이후 부상, 부상 후 성적 하락으로 다른 팀에서조차 그를 트레이드 대상에 안 올렸기 때문이다.
일본에까지 나와 훈련하고 있지만 과연 자신이 1군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확신은 없었다.
다만 자신은 있었다.
여태까지 길도 모르고 헤맸다면, 이제는 방향을 잡았다.
어떤 팀이든 시즌이 지날수록 투수는 모자라기 마련이다. 자신이 2군에서 친구와 후배와 함께 운동하다 보면 다시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형석마저 은퇴한다고 하자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자신의 은퇴도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걸 실감했다.
“그래서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김정률의 물음에 김형석은 턱을 괴었다.
“지금 생각한 게 세 가지 있는데…….”
“세 가지나? 오오, 뭔가 준비해 둔 게 있나 보네.”
“준비까지는 아니고. 모교에서 코치 제안이 왔었거든. 구단에서도 스카우트 팀을 제안했고. 둘 다 밥 벌어먹고 살기는 나쁘지 않은 거 같아.”
“나머지 하나는?”
“하나는 해외 취업인데…….”
“해외?”
김형석이 씨익 웃었다.
“히로토 코치가 나한테 같이 일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어.”
“히로토 코치가?”
“그래, 자기는 타자 출신이라서 투수 출신이 필요하대. 괜찮으면 일본에서 재활하면서 자기랑 일해 보지 않겠냐고 하던데?”
“너 일본어도 못하잖아.”
“그거야 그렇지. 그래도 나쁘지 않은 제안 같더라. 코치를 하면 페이가 문제고, 스카우터 하면 전국 각지로 여행을 가야 하고. 둘 다 내 취향은 아니잖아.”
“여기서 일하면 돈은 많이 준대?”
“음, 아니. 지금은 자리 잡는 중이라 월급은 많이 못 줄 거래.”
“그런데 넌 여기서 일하고 싶어?”
“어차피 힘든 거면 아예 제대로 일하고 싶어. 히로토 코치가 아는 게 많잖아. 일본이 재활 쪽으로는 한국보단 나으니까 여기서 재활도 하고 히로토 코치한테 제대로 배우면 한국으로 돌아가도 뭔가 제대로 대우를 받지 않을까 싶다. 내 커리어로 아마야구 코치가 최대일 텐데 일본 유학파라는 딱지가 붙으면 프로 코치도 뚫을 수 있지 않겠어?”
“이미 마음 정한 거냐?”
김형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마음을 정한 건 아닌데 말하다 보니 이게 제일 낫긴 하네. 여태 어영부영 선수 생활을 했는데 여기서 확실히 재활도 하고 코치 경력도 쌓고, 딱 좋네.”
“……흠.”
“이따가 히로토 코치랑 얘기를 한번 해 봐야겠다.”
“그럼 넌 이번에 한국 안 들어가게?”
“들어가긴 같이 들어가야지. 들어가서 구단이랑 얘기도 해야 하고 짐도 챙겨서 다시 일본 오든가 해야지.”
“일본…… 일본이라고…….”
김형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뭘 네가 청승맞게 구냐? 힘든 건 난데.”
“너까지 한국에 없으면 많이 외롭겠구나 싶어서.”
“반대로 생각해, 그럼. 내가 일본에 있으면 놀러 갈 친구가 있잖아.”
“내가 여기까지 놀러 오리?”
“못 놀러 올 건 뭐야. 한국이랑 여기랑 코앞인데.”
김형석이 김정률 앞에서 손가락을 탁탁 튀겼다.
“너도 정신 차리고 훈련해. 이제 곧 우리도 코치할 나이다. 멋지게 뛰다가 은퇴해라. 천하의 김정률이 마지막 가는 길은 간지가 나야지.”
김형석은 말을 마치고 먼저 자리를 떴다.
혼자 남은 김정률이 눈을 감았다.
“세월 빠르네, 빨라…….”
* * *
마무리 훈련을 마친 후 세 사람은 히로토 코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동안 고생했어요. 다들 좋은 성과를 얻은 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김정률이 모자를 벗어 고개를 숙였다.
“코치님 덕분에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팔 각도도 많이 올라왔구요.”
“이번 스프링캠프를 잘 보낸다면 오버핸드까지 올릴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해도 입스를 고치는 거지 예전 구위를 다시 찾는 건 어려워요. 그건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입스 고친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구속도 차근차근 늘려 봐야죠.”
“팔 각도를 다 올리면 그땐 스트라이드를 조금씩 넓혀 가세요. 스트라이드를 넓히면 골반 회전 각도를 늘리세요. 하나씩 고쳐 가다 보면 구속을 늘리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히로토 코치는 김인환을 바라봤다.
“김인환 선수는 제가 많이 못 도와드려서 마음에 걸리네요.”
“아닙니다. 저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김인환 선수의 반사 신경은 훌륭해요. 컨택 능력이 안 따라 줘서 나쁜 공을 치는 게 문젭니다. 노선을 확실히 선택하세요. 컨택 능력은 키울 수 있지만 자신의 존을 작게라도 확실히 고정시켜 놓고 키워 가야 합니다.”
“예, 조언 감사합니다.”
히로토 코치의 눈이 송석현에게 향했다.
자신과 네 사람과의 인연은 송석현으로부터 시작됐다.
“석현.”
“네, 코치님.”
“너는 내가 본 20세 중에 가장 똑똑하고 침착한 선수야. 손목 힘은 내가 본 어떤 선수보다 더 뛰어나. 마인드도 훌륭하고.”
“칭찬 감사합니다.”
“듣자 하니 한국에선 2군에도 못 들었다고 하던데, 참 안타까운 일이야. 혹 그 팀을 나오거든 나한테 연락해. 네가 포수고 한국인이라지만 1~2년만 기초를 닦으면 일본에서도 프로에 도전할 수 있어. 그건 내가 자신해. 그러니까 기죽지 말고 열심히 해. 넌 꼭 성공할 거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히로토 코치가 웃으면서 네 사람을 봤다.
“형석은 곧 돌아올 거지?”
“네,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래, 한국에서 잘 마무리하고 와.”
“네,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그동안 다들 고생 많았어요. 짧지만 여기서 얻은 경험이 여러분의 프로 인생에서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안녕히 가세요.”
네 사람은 히로토 코치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다.
히로토 코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포수로 승승장구
Solo
한국에 돌아왔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송석현은 집에 하루 묵었다가 다시 2군 구장으로 복귀했다.
김형석은 정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일본행을 준비했다.
김정률과 김인환은 스프링캠프를 위해 또 출국했다.
재활군에 남은 투수라곤 고창현 하나.
고창현도 구단과 은퇴를 협의 중이었다.
남은 재활군은 이일석, 고영진, 한진철 셋.
이 중 이일석은 36세, 한진철은 38세.
방출 대상이었다.
고영진만 재활에 매진했다.
일곱으로 시작한 재활군이 이젠 둘.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반길 수 없는 미래였다.
* * *
“들어.”
김형석은 일본으로 가기 전 송석현을 불러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감사합니다.”
송석현은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떠먹었다.
“크, 맛있는데요?”
“그렇지? 여기 국물이 끝내준다니까.”
두 사람이 먹는 음식은 녹두 삼계탕이었다.
“많이 먹고 힘내야지, 석현이.”
“감사합니다, 선배님.”
“힘들지?”
“아닙니다. 힘든 거 하나도 없습니다.”
“안 힘들긴. 나도 나가고 정률이도 스캠 가고. 다들 은퇴까지 했으니 너도 머리가 아플 거 아니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김형석은 닭 다리 하나를 주욱 찢어 살을 발랐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지금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지금 재활군 몇 남았지?”
“저까지 둘입니다.”
“영진이랑 너랑 이렇게 둘인가?”
“예.”
“그럼 오히려 잘됐네. 지금은 재활군을 끌고 가는 것도 좀 그렇잖아? 아마 너희 두 사람, 머지않아 2군으로 올려서 쇼 케이스 할 거야. 스캠 중에 할지, 시즌 중에 할지는 몰라도 길어야 서너 달? 서너 달 안에는 무조건 한 번 올릴 거야. 지금 2군이…… 음…….”
김형석이 고기를 뜯다 말고 인상을 찌푸렸다.
“애매하지. 2군이 성적은 잘 나오는데 그렇다고 막 특급 유망주다, 이런 애들은 없어. 네 차례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릴 순 있어. 하지만 일단 두각을 나타내면 금방 주목받을 수 있어. 아…… 스읍.”
김형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포수라도 좀 힘들려나.”
“…….”
“2군 훈련에만 참여해도 다들 네 진가를 알아볼 텐데. 일단 기다려 봐. 재활군이 유야무야되면 2군에 합류하게 될 테니까. 네 타격이야 이미 수준급이니 너를 안 써 보려야 안 써 볼 수가 없겠지.”
“예, 뭐, 기다려 봐야죠.”
“그래, 열심히 해 봐. 고트가 치고 올라가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의외로 빈 구석이 좀 있어서 자리 잡으면 오래갈 수 있어. 나중에는 너무 쓸놈쓸이라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서도…….”
김형석이 턱으로 송석현의 그릇을 가리켰다.
“뭐 해? 먹자.”
“예.”
“많이 먹고 힘내라. 기죽지도 말고, 여기서 포기하지도 말고. 너도 알지? 지금 명단 다 나와서 다른 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 어찌 됐든 여기서 쇼부를 쳐 봐.”
두 사람은 식사가 끝난 후 커피를 한 잔씩 뽑아 길을 걸었다.
김형석은 커피를 후후 불어 가며 마셨다.
“선배님, 일본 언제 가십니까?”
“사흘 후에.”
“빨리 가시네요.”
“여기 있어 봐야 뭐 할 게 있다고. 정해졌으면 빨리빨리 해야지.”
김형석은 그새 커피를 다 마시곤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너는 진짜 잘할 거야. 네 나이에, 아니 지금 야구판에서 너처럼 야구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도 드물 거다. 낭중지추라고 하지 않냐. 조금만 기다려. 금방 너 뚫고 나올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힘내라, 힘. 파이팅.”
김형석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송석현은 남은 커피를 홀짝였다.
“후, 이제 진짜 혼자네.”
* * *
스프링캠프 동안 2군이라고 놀지 않는다.
2군 선수 중에 쓸 만한 선수들은 스프링캠프로 가지만 국내에 남는 선수들도 수십 명이었다.
2군 선수들은 국내에 남아 실내 연습장에서 연습을 했다.
근래에는 2군도 따로 스프링캠프를 가기도 하지만 고트는 국내 훈련으로 대신했다.
송석현은 2군 훈련 참여를 기대했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대책 없이 길어졌다.
시즌 시작까진 두 달이 채 안 남은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