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71
오로지 직구 하나로만 김인환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건 진짜…….”
김인환이 고개를 내저으며 타석으로 돌아갔다.
김영훈은 마운드에서 내려오기 전 송석현을 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벤치로 돌아온 김영훈이 앓는 소리를 냈다.
포수 김창현이 물을 가져와 김영훈에게 건넸다.
“왜 무리를 해? 페이스 조절 한다며.”
“그렇다고 안타 쳐 맞고 싶진 않거든. 기록 내주는 건 더 싫고.”
“요새 들어 너 더 무리하는 거 같아. 좀 쉬엄쉬엄해. 1~2점정도 내줘도 돼. 우리 그 정도는 점수 낼 수 있다고.”
김영훈이 물을 들이켰다.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뭐긴 뭐야. 기록이지.”
“기록? 네가?”
“남겨진 기록은 영원하잖아.”
“네 실력에 웬 기록을 걱정해? 등판할 때마다 신기록인데.”
김영훈이 씨익 웃었다.
“기록은 영~원한 거야. 기록을 남겨 두고 먼저 은퇴하면 상대 전적은 영원히 남는 거라고.”
“별 소리를 다 하네.”
2회 초도 금방 끝났다.
김영훈은 글러브를 챙겨 마운드로 올라갔다.
“석현이 만나러 가 볼까나.”
포수로 승승장구
새 물결, 새 바람
팡!
-스트라이크!
송석현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바깥쪽에 꽉 차게 들어오는 빠른 공.
[김영훈 선수의 초구 스트라이크. 저런 공은 어떤 타자라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제구가 정말 기가 막혔어요.]김영훈이 포수가 던진 공을 받았다.
오른팔을 한 번 크게 돌린 후 다시 자세를 잡는다.
김영훈을 보고 있던 경수인의 표정이 어두웠다.
“짜식이, 그냥 왼팔로만 던지라니까…….”
김영훈의 2구는 바깥쪽 커브.
전매특허 뚝 떨어지는 커브에 송석현이 허리가 돌다 멈췄다.
-볼. 로우.
김영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다음 공은 바깥쪽 체인지업.
송석현은 이번에도 골라냈다.
“후.”
김영훈이 코를 긁적거린다.
2-1.
[이제 승부 타이밍입니다. 투수가 여기서 볼 하나를 더 늘리면 카운트가 많이 불리해져요. 여기서는 확실한 승부구를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김영훈이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송석현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결정구는 커브.
하늘 높이 올라가다 아래로 뚝 떨어지는 고각 커브였다.
부우웅!
-스트라이크.
[헛스윙! 헛스윙입니다. 김영훈 선수의 커브가 제대로 먹혀 들어갔어요.] [저거죠. 저 커브야말로 김영훈 선수의 최고의 결정굽니다.]김영훈이 포수의 공을 받으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몸을 뒤로 돌려 로진백을 집었다.
“아씨…….”
2-2 카운트.
김영훈의 선택은 몸 쪽 빠른 공.
송석현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다.
[안타! 안타! 송석현 선수가 좌중간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내보냅니다. 2루타 코스! 송석현 선수가 1루 베이스를 밟고 2루를 노립니다. 서서 들어가는 송석현 선수. 고트가 첫 타자 출루에 성공했습니다.] [방금은 정말 인 앤 아웃 스윙의 전형과도 같았어요. 보기에는 타이밍이 좀 늦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배트가 채찍처럼 휘어져서 나왔습니다. 저게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는 쉽게 구현하기 어렵거든요. 공이 눈에 보이는데 끝까지 참다가 스윙하는 거, 그게 어려운 겁니다. 그게 된다면 저렇게 몸 쪽 공도 안타로 만들 수 있는 거구요.]김영훈이 한 번 웃어 보였다.
다음 타자는 유선호.
김영훈은 심판에게 사인을 보낸 후 좌투수 글러브로 갈아 끼웠다.
“거참, 치사하구로.”
오른손에 글러브를 낀 김영훈은 초구부터 160km/h가 넘는 공을 뿌렸다.
유선호도 힘껏 스윙했지만 배트 끝에 맞히는 파울이 전부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유선호와 김욱의 연속 삼진.
안타가 터진 건 최재완의 타순이었다.
[중견수! 공을 놓쳤습니다! 송석현 선수는 그대로 3루를 밟고 홈까지, 홈까지, 홈에서~~ 세입입니다!] [공이 높게 뜨긴 했지만 저런 공은 처리해 줘야죠. 바람이 심하게 분 것도 아니었거든요.] [피닉스가 최근 수비 실책이 많이 줄긴 했지만, 이렇게 간간이 나오는 실책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1-0.
김영훈은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후 벤치로 돌아왔다.
“왜 그렇게 무리해? 적당히 좀 맞춰 잡아.”
경수인의 말에 김영훈이 자기 오른 어깨를 가리켰다.
“얘가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았거든.”
“야, 힘들면 더 쉬엄쉬엄해야지 왜 스퍼트를 올리냐?”
“그게 나야. 그러니까 내가 어깨 갈아 가면서 우승시켰지.”
“후, 몸 관리하면서 하면 더 오래 뛸 수 있잖아. 아니면 내년에 재활을 더 하고 뛰든가. 네 실력이면 마흔이 넘어서도 뛸 거다, 인마.”
김영훈은 고개를 저었다.
“형 말대로 내 실력이면 꾸역꾸역 마흔까지 뛸 수 있겠지. 아마 성적도 괜찮을 거야.”
“그럼. 너 잘할 거야. 그러니까-.”
“그런데 난 그렇게 하기 싫어.”
경수인이 인상을 확 구겼다.
“왜?”
“이제 그만한 열정이 없어졌으니까.”
“뭔 열정 타령이야? 네가 제일 잘하는 게 야구면 야구를 해야지.”
김영훈이 미소를 보였다.
“난 세상에서 무의미한 게 가장 싫거든. 열정이 없으면 의미도 없잖아. 그런데 내 어깨의 유통기한만 끝난 게 아니라 내 마음속의 야구의 유통기한도 올해로 끝이야.”
“얀마.”
“그리고 형, 쟤들 봐 봐.”
김영훈이 손가락으로 고트 벤치를 가리켰다.
“저렇게 실력 있고 열심히 뛰는 애들이 있는데 꾸역꾸역 경기만 채우고 싶지 않아. 나처럼 어깨며 팔이며 갈아 넣는 야구는 여기서 종식시켜야지. 내가 여기서 딱 물러나 주는 게 멋있어.”
김영훈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구시대의 끝과 신시대의 시작. 멋있잖아.”
“개소리한다. 나보다 한참 어린 놈이 무슨 구시대 타령이야.”
“아, 형도 구시대에 포함이거든?”
“나까지 도매급이냐?”
김영훈이 흐흐, 웃었다.
“아무튼. 여기서 물러나는 게 멋있는 거야. 어영부영했다간 쟤들한테 잡아먹히게 생겼어. 더 추해지기 전에 내려가야지. 이 팔이 그나마 정상일 때.”
경수인이 김영훈의 왼팔을 매만졌다.
“통증 심하냐?”
“아니라고 말하면 구라겠지?”
“……후. 그러게 재활 제대로 다 하고 오라니까.”
“형, 내가 그렇게 이성적인 놈이라면 내 어깨 갈아서 우승 못 시켰다니까. 이게 나야. 꼴통.”
경수인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5회 초 피닉스 공격.
2사 1, 3루 타자는 경수인.
경수인이 타석에 들어서며 송석현에게 말을 걸었다.
“영훈이 공 잡아 보니까 어땠어?”
“영광이었습니다.”
“오늘 영훈이 공 잘 치더라. 살살 해.”
“운이 좋았습니다. 선배님이랑 한 팀에 뛰어 본 덕입니다.”
“몇 경기 한 팀 뛰었다고 죄다 투수 공을 잘 치면 포수들이 죄다 배리 본즈게?”
경수인이 다리를 넓게 펼친 채 허리를 감았다.
“좋은 공 부탁한다.”
에이스 피시는 경수인을 상대로 풀카운트까지 몰아갔다.
경수인이 파울을 연달아 치며 11구까지 승부가 길어졌다.
‘커브.’
송석현이 바닥을 가리키며 미트를 아래로 내렸다.
피시가 던진 커브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뚝 떨어졌다.
경수인의 몸이 휘청거리더니 몸을 뒤로 젖히며 스윙했다.
탕!
노 스트라이드로 허리를 돌려 치는 타법.
흔히들 정확도는 높지만 장타력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경수인에겐 다른 얘기였다.
[좌측 담장! 넘어! 갔습니다! 경수인의 스리런! 큼지막한 스리런을 잠실에서 신고합니다!] [빠른 공을 노렸다가 마지막에 커브인 걸 알고 허리를 틀었는데 그걸 홈런으로 연결시키네요. 와, 정말 대단합니다. 이게 베테랑의 관록인가요?]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맛을 다셨다.
경수인은 홈을 찍고 벤치로 돌아왔다.
“오늘은 형이 캐리시켜 줄게.”
김영훈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오늘 형 컨디션 좋네?”
“앞으로 너 등판 경기 때 형이 캐리시켜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던져라.”
“오오, 노익장.”
“야, 어린놈만 야구 잘하는 거 아냐. 묵은 놈은 더 잘해.”
“흐흐흐. 형이 무슨 묵은지야?”
경수인이 김영훈의 머리를 헝클었다.
“야구판에서 나이 먹는다고 퇴물 되는 거 아니라고, 인마.”
김영훈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무슨 말인지.”
“그러니까 무조건 은퇴니 뭐니 하지 말고 시즌 끝날 때까진 생각 좀 해 봐. 내가 보여 줄게, 나이 먹는다고 다 퇴물 아니라는 거.”
“알았다구요, 묵은지 성님.”
9회 말.
전광판의 점수는 5-1.
김영훈은 마지막 타자 김인환 상대로 하이 패스트볼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아웃!
[헛스윙 삼진! 경기가 끝났습니다!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 김인환 선수의 배트가 공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김영훈 선수가 완투를 하고 경기를 끝냈네요. 정말 빠른 공이었습니다.] [161km/h. 9회에 160km/h를 던지는 투수에게 1점을 낸 게 오히려 대단해 보입니다.] [리그 최강의 KS포도 김영훈이라는 산을 넘기엔 아직 조금, 정말 조금 부족했습니다. 오늘 송석현 선수가 3안타 경기를 한 게 그나마 고트의 유일한 위안이라면 위안일까요?]경기를 마친 후 김영훈은 왼팔을 연신 흔들면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대기 타석에 있던 송석현은 어깨에 배트를 걸친 채 김영훈을 바라봤다.
“…….”
김인환이 풀죽은 표정으로 송석현을 지나쳤다.
“안 가? 뭐 하고 있어.”
“갈 거야.”
송석현은 김인환과 함께 벤치로 돌아갔다.
김영훈은 피닉스 팬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를 보는 송석현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 * *
피닉스에게 1패를 내줬지만 고트는 이후 2연승으로 위닝시리즈를 챙겼다.
김영훈이 없는 피닉스 마운드는 KS를 막을 수 없었다.
어김없이 두 사람은 홈런을 하나씩 추가했다.
다음 경기는 수원 원정 경기.
4회 초.
전광판 점수는 8-2.
고트가 8점이었다.
[리그 초반만 해도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는데, 페가수스의 최근 성적은 정말 악몽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리그 8위, 꼴지예요.] [악재와 악재가 계속 겹쳤죠. 부상자가 속출하고, 시즌 중 감독까지 사퇴했습니다. 제아무리 강팀이라고 해도 리더십이 무너지고 악재가 겹치면 어쩔 수 없다는 걸 페가수스가 증명한 셈이죠.] [용병이 전력의 절반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페가수스는 그 용병 농사마저 부진했습니다.] [선수들 개개인 성적을 보면 여전히 매력적이거든요. 하지만 엇박자가 계속 나면서 시너지 효과가 전혀 나지 않았어요. 한 선수가 복귀하면 두 명이 다치는 식이니 어쩌겠습니까.]페가수스와의 3연전은 다른 의미로 야구팬의 주목을 끌었다.
김인환, 송석현의 홈런 경쟁.
한국 프로야구 홈런 신기록까지 걸린 레이스.
수원 외야에는 페가수스 팬보다 잠자리채와 글러브를 든 다른 팀 팬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페가수스는 두 선수의 홈런 신기록의 희생양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두 선수에겐 아예 승부를 피하면서 야유가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