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78
낮은 코스의 커브를 본 이후에 하이 패스트볼이라면 더더욱.
김영훈 정도의 하이 패스트볼은 아니더라도 박성민 정도의 타자를 상대하기엔 충분하다.
정진오는 힘을 실어 공을 던졌다.
회전을 잔뜩 먹은 공이 포수의 미트를 향해 날아왔다.
원하던 대로, 원하는 코스로 오는 공.
타자가 허리를 돌렸다.
탕!
[높습니다!]박성민이 친 공이 좌측 담장을 향해 날아갔다.
날아가는 속도, 각도만 본다면 담장은 넘기고도 남을 공이다.
다만 회전을 먹은 공은 자꾸 왼쪽으로, 왼쪽으로 꺾여 날아갔다.
파울이냐, 홈런이냐.
텅!
공은 폴대를 맞고 담장 안에 떨어졌다.
[홈런! 솔로 홈런! 박성민의 홈런이 터집니다! 점수는 3-2. 여기서 박성민의 솔로 홈런이 터졌습니다.] [이래서 높은 공이 위험한 겁니다. 정진오 선수의 하이 패스트볼이 좋은 공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저렇게 장타로 이어질 가능성도 열어 둬야 하거든요.] [박성민 선수의 시즌 8호 홈런. 홈런이 많이 없는 선순데 오늘 중요한 경기에서 홈런을 쳐 주네요.]박성민이 상기된 얼굴로 베이스를 돌았다.
홈을 밟자마자 벤치로 가 김영훈 앞에 섰다.
“오늘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선배님!”
“그, 그래. 파이팅 좋네. 그래. 열심히 하자.”
박성민이 홈런을 쳤지만 정진오는 흔들리지 않았다.
볼넷 하나만 내주고 무실점으로 이닝 종료.
7회 초 고트의 공격은 공 다섯 개로 끝났다.
7회 말 피닉스의 공격.
고트는 또 투수를 바꿨다.
[오늘 고트가 투수 교체 타이밍이 빠릅니다.] [점수가 1점 차이니만큼 확실히 막겠다는 거죠.] [투수는 정천운 선숩니다. 이닝 소화력이 좋은 선수이니만큼 8회까지 끌고 갈 수도 있겠네요.] [네. 그럴 가능성이 높죠.]정천운은 두 타자 연속 범타를 만들었다.
다음 타자는 경수인.
경수인은 볼넷으로 출루했다.
[고트가 싸움을 피합니다.] [경수인 선수를 상대로 굳이 무리한 승부를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겠죠.] [5번 타자는 김창현 선숩니다. 한 방은 있는 타잔데 올해 타율이 2할 3푼……. 많이 낮아요.] [통산 타율이 2할 2푼이니 올해는 조금 낫다고 볼 수 있겠네요.] [피닉스의 포수는 항상 좀 아쉬운 거 같습니다.] [김창현 선수가 큰 기대를 받으면서 기회를 받았지만 기복이 너무 심해요. 올 시즌 9경기 무안타 경기도 있었죠. 올 시즌 2할 8푼까지 나왔던 성적이 2할 3푼까지 떨어진 거라면 정말 엄청난 수직 하락입니다.]정천운이 초구 커브를 던졌다.
사이드암의 커브는 바깥쪽으로 더 멀리, 많이 휜다.
김창현은 당연하다는 듯 헛스윙.
다음 공은 바깥쪽 슬라이더였다.
“……!”
송석현은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슬라이더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복판.
김창현은 선구안은 부족해도 스윙에 망설임이 없는 타자다.
탕!
[큽니다!]가운데 담장을 향해 날아가는 공이지만 아치가 거대했다.
로켓이 날아가듯 공은 허공을 뚫은 후 천천히 가라앉았다.
[홈런! 홈런! 여기서 투런이 터집니다! 4-3! 4-3 역전! 피닉스가 홈런 한 개로 역전을 이어 갑니다!] [이야, 여기서 또 홈런이 나올 줄은 몰랐거든요. 김창현 선수가 정말 힘이 좋긴 합니다.]함성훈이 미간을 쓰다듬었다.
김정률을 빼곤 지금 불펜에서 확실한 에이스가 없다.
불펜만 빼서 본다면 고트의 불펜은 리그 중위권.
높게 쳐도 4위에 들긴 힘들 거다.
정진오, 정천운이 리그 5선발도 가능한 자원이긴 하지만 통산 방어율이 4점대를 오가는 투수다.
전천후 투수가 유용하긴 해도 불펜에는 1이닝을 맡아도 확실하게 맡아 줄 에이스 몇은 꼭 필요한 법이다.
“오케이! 좋았어!”
김영훈도 역전에 환호성을 질렀다.
포수 김창현은 벤치로 돌아와 김영훈을 안았다.
“형이 보여 준다고 했지?”
“역시 우리 마누라! 우리 마누라가 최고야!”
4점.
1점 차지만 김영훈에겐 차고 넘치는 점수였다.
김영훈은 9회까지 단 한 명의 출루 없이 경기를 끝마쳤다.
동시에 리그 순위도 바뀌었다.
고트는 여전히 1위였지만 2위에 아스트로 보이즈, 3위에 불스, 4위는 스콜피언, 공동 5위는 울브스와 피닉스였다.
고트는 아스트로 보이즈에 0.5경기 차였고, 피닉스는 4위 스콜피언과 1경기 차였다.
내일 경기에 1위와 4위가 바뀔 수 있는 상황.
함성훈은 코치들과 악수를 나누다 아차, 싶은 표정으로 피닉스 벤치를 바라봤다.
포수로 승승장구
Good bye (6)
경기가 끝나 후 대전 숙소.
고트의 코치들이 한 방에 모였다.
함성훈 감독은 침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설마요. 설마 내일 또 나올 리가…….”
“네, 맞습니다. 분명 오늘 왼손으로도 던졌습니다.”
“선발 예고는 정광우잖습니까.”
“정광우는 선발이라기보단 1번 투수일 겁니다.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바로 김영훈이 들어올 가능성 100%롭니다.”
“지금이 고교 야구도 아니고 그게 될까요?”
코치들의 말에 함성훈은 고개를 내저었다.
“대부분 오른손으로 던졌고, 왼손으론 세 타자만 상대했습니다. 그것도 평소와 달리 구속이나 구위가 약했어요. 왼손으론 워밍업만 했다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완투하고 내일 올라올까요?”
“코치님들도 잘 아시겠지만 고등학생 땐 이보다 더한 일정도 소화하지 않습니까. 일주일에 완투를 세 번, 네 번 할 때도 있었죠.”
“그거야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시합에서 두 경기 연속 완투도 있잖습니까. 작년 시합에 그런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 아닌가요?”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함성훈이 손으로 눈가를 주물렀다.
“뭐, 아무튼. 중요한 건 지금 그런 일이 생기느냐 마느냐가 아니에요. 혹사의 문제는 협회에서 풀어 갈 일이고. 고등학생들도 완투 다음 날에 완투를 뛸 수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심지어 김영훈에게 오른손으로 던진 후에 다음 날 왼손으로 던지는 건 대단찮은 일이죠.”
수석 코치가 헛기침했다.
“저기, 감독님. 그게 통하는 건 어디까지나 고등학생들의 수준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완투 다음 날에 던져도 통하는 겁니다. 하지만 여긴 프롭니다. 김영훈이 재작년에 우승시킬 때도 대부분 최소한 하루나 이틀은 걸러 등판했습니다. 설령 내일 올라온다고 해도 지친 김영훈이라면 크게 걱정할 거 없을 겁니다.”
“고등학생이니까 통했다……? 글쎄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 같은 프로지만 김영훈과 한국 선수들 수준 차이가 꽤 벌어진 것도 사실 아닙니까? 게다가 내일은 왼손으로 던집니다. 좌타자들은 아예 무안타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좌중이 조용했다.
타격 코치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하필 이때 왜 피닉스를 만나 가지고…….”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내일 진짜 김영훈이 올라오면 어떡하냐.”
코치들은 그제야 최악의 가정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함성훈은 코치들의 갑론을박이 끝나길 기다린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내일은 석현이를 2번으로 세웠으면 합니다.”
“석현이가 2번이요? 3번도 아니구요?”
수석 코치가 귀를 의심했다.
“1번은 정덕이로 놓고 석현이 2번, 욱이 3번은 고정으로 두는 게 지금은 베스트라고 봅니다.”
“왜 그렇게 두시는지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우리 타순이 좌우 밸런스도 좋고 출루율, 장타율 모두 균형 잡힌 건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좌타자들에게 어떤 기대를 걸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출루율을 높이는 전략은 김영훈에게 무의미합니다. 일발 장타. 우타자들의 일발 장타에 희망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 석현이랑 욱이가 최대한 많은 타석에 들어올 수 있도록 상위 타순으로 당겨야죠.”
수석 코치가 침음을 흘렸다.
“김영훈에게 홈런을 뺏는 게 더 어려운 일인 거 잘 아시잖습니까. 올 시즌 김영훈의 피홈런은 한 개로 알고 있는데요.”
“꼭 홈런만 장타가 아닙니다. 홈런을 치면 베스트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장타가 중요합니다. 정덕이가 출루하고 석현이, 욱이가 장타로 연결시켜서 1점이라도 득점하는 게 내일 전략입니다.”
수비 코치가 말했다.
“차라리 상대 내야진을 흔드는 건 어떨까요? 피닉스의 수비 약한 거야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번트랑 페이크 슬래시로 내야진을 압박한다면 반드시 몇 번 기회가 나올 겁니다.”
“그것도 제가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으로 볼 때 그게 더 어렵습니다.”
“아…… 그런가요?”
“김영훈은 그라운드 볼러가 아닙니다. 좌투수일 땐 9이닝당 삼진을 열 개 이상 잡는 투숩니다. 번트를 대는 것도 상대의 공을 어느 정도 커트해 낼 수 있을 때의 얘기지 160km/h가 넘는 공을 번트를 대서 내야를 흔드는 건 너무 고난이도예요. 무엇보다 우리 선수들은 작전에 능하지 않습니다. 여태 방망이로 승승장구해 왔는데 이제 와서 번트, 작전, 빠른 발로 승부를 본다는 건…… 음…… 쉽게 말해서 우리의 약점으로 상대 약점을 상대하는 겁니다.”
조용하던 투수 코치가 말했다.
“감독님이 말씀하신 전략은 우리의 강점으로 상대 강점을 상대하는 겁니까?”
“음, 그렇게 되겠죠. 우리의 강점이라고 하면 좌우 가리지 않고 장타력 좋은 타자들이 많다는 겁니다. 좌타자들이 힘을 못 쓴다고 해도 송석현, 김욱이라는 카드가 있잖습니까. 둘 다 리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타자들이니 운이라곤 해도 두 사람에게 운을 배팅하는 건 가능성 있는 승부라고 봅니다.”
코치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감독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확실한 반론이 있다면 여기서 나서야 한다.
기존의 타순은 완벽에 가까웠다.
테이블 세터진의 출루율은 4할을 훌쩍 넘었고, 중심 타선의 장타율은 6할이 넘어갔다.
그뿐이랴.
좌우, 좌우로 이어지는 타순은 상대 표적 등판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마운드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팀을 1위로 만든 역대 최강의 타선이자 타순.
1위가 걸린 마지막 경기에서 감독은 기존의 타순 대신 임기응변을 내세웠다.
팀의 중심이자 4번 타자인 송석현을 2번으로 올리는 파격.
함성훈 감독의 말엔 논리가 있었으나 관성은 쉽게 바꿀 수 없는 법이다.
감독의 말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아니면 코치들끼리 서로 입을 맞춰서 다시 한번 제동을 걸어 볼 것인가.
서로의 눈치를 보는 와중에 수석 코치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4번도 진일이한테 맡기는 게 좋겠네요.”
“…….”
최연장자인 수석 코치의 말은 감독의 주장에 쐐기를 박는 한 방이었다.
“어차피 좌타자들에게 희망이 없다면 진일이가 1번을 맡든가 4번을 맡는 것도 답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정덕이가 출루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진일이도 한 방이 있으니 4번이 적당한 거 같은데요.”
“저도 그 부분은 고민했는데 코치님 생각도 그러시다면 4번까지는 그렇게 타순을 결정하도록 하죠.”
“예. 그러면 어쩔 수 없이 5번부터는 쭉 좌타자로 이어지겠네요.”
“하위 타순에선 정말 홈런 한 방을 기대해야죠. 선호나 인환이라면 언제든 홈런 하나 치는 건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타순은 대충 윤곽이 잡힌 거 같고……. 오늘 마저 얘기 마치는 게 어떠십니까? 내일은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회의도 어려울 거 같은데.”
“네. 그러시죠. 1시까지 확실히 매듭짓고 내일 점심때 다시 논의하도록 하죠.”
* * *
송석현, 김인환의 호텔방.
송석현은 자정이 넘도록 눈을 감지 못했다.
자신이 아는 김영훈이라면 내일 반드시 등판한다.
그것도 왼손으로 던질 거다.
160km/h이 넘는 강속구를 구석구석 찔러 넣는다면 제아무리 메이저리거라도 제대로 쳐 내기 어렵다.
하물며 한국에서 김영훈의 전력투를 쳐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고속 슬라이더…….
직구 두 개와 슬라이더 하나면 삼진이다.
평소 동체 시력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송석현이지만 김영훈의 슬라이더는 좀체 구분할 수 없다.
디셉션이 좋은 데다 패스트볼 자체가 빨라 가늠할 시간이 없다.
“안 자?”
“어, 형. 형 안 자고 있었어?”
“네가 사부작거리니까 잠이 잘락 말락 하다 안 오네.”
“쏘리. 내가 소리를 냈나?”
“왜 안 자. 내일 걱정돼서?”
“내일 김영훈 선배가 나올지도 모르거든.”
“내일? 음…… 그럴 수도 있겠네. 그 선배는 진짜 도깨비 같잖아. 내일 올라와서 완투해도 이상하지 않지.”
“내일까지 지면 우리 3위로 내려갈 수 있어. 그러면 포스트 시즌 진짜 어려워지는 거고.”
“그런가?”
김인환이 베개를 두 개로 높였다.
“그러면 뭐 어때. 3위로 가서 우승하면 되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포시는 단기전이잖아. 단기전은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
“넌 참 걱정이 많아. 난 우리가 3위로 간다고 해서 우승 못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송석현이 피식 웃었다.
“자신감 많아졌다, 형. 맨날 걱정만 하던 사람이 형이었는데.”
“반대로 넌 자신감이 많이 죽었다. 맨날 태평하던 놈이 너 아니었냐?”
“그런가?”
“전에는 1군에만 들어도 소원이 없다던 놈이 이제는 1위 못 할까 봐 걱정을 하냐?”
“그때랑 지금이랑 같나.”
“그때랑 다를 건 또 뭐야. 어차피 야구를 하는 건데.”
“음……?”
김인환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렸다.
“무조건이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고민만 쌓여. 나도 겪어 봤거든. 무조건 나는 홈런을 쳐야 돼, 장타자가 돼야 돼, 1군에 머물러야 돼. 그때부터 슬럼프였어. 결과만 생각하면 스텝이 꼬이게 돼 있어. 그냥 지금만 생각해. 어떡하면 지금 더 잘할 수 있을까?”
“허허. 뭐야, 형. 완전 도인 다 됐네.”
“너야 시작부터 여태껏 수직 상승만 했지만 난 올라갔다, 내려왔다 해 봤잖아. 떨어질 거 걱정한다고 안 떨어지는 거 아니고, 못 올라가면 어쩌냐 한다고 실력도 없는데 올라가는 거 아니야. 실력이 있으면 올라가는 거고, 실력이 없으면 내려가는 거고.”
“하지만 단기전은 운적인 요소도 크잖아.”
“야, 운도 실력만큼 따르는 거야. 로또도 사는 놈이 당첨되는 거 아니냐? 하나 사는 놈보다 백 개 사는 놈이 더 당첨될 거고, 한 번 사는 놈보다 매주 사는 놈이 더 당첨될 거고.”
김인환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푸우우. 그러니까 잘 자고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 그리고 너, 영훈 선배 의식하는 건 좋은데 말이야.”
“…….”
“자꾸 벽이라고 생각하지 마. 그럼 진짜 벽이 되니까.”
김인환이 송석현에게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