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82
다른 선수들도 이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1위 실패라는 단어가 제법 현실감이 생겼다.
경수인도 아니고, 클린업도 아니고 2번 타자에게 쓰리 런.
예상 밖의 비수였기에 더 아리고 시렸다.
7회 초는 순간 삭제였다.
난다 긴다 하는 좌타자 유선호, 김인환이지만 좌타 킬러 김영훈에겐 고양이 앞에 쥐나 다름없었다.
7회 말 피닉스의 공격.
경수인으로 시작하는 피닉스의 공격이었지만 다섯 타자나 출루하고도 무득점으로 끝났다.
8회에도 양 팀 무득점.
9회 초 고트의 공격.
선두 타자는 송석현.
김영훈과 송석현이 마주 보고 섰다.
김영훈의 초구는 슬라이더.
-스트라이크!
[송석현! 엄청나게 큰 스윙을 보여 줍니다.] [스윙이 너무 커졌어요. 송석현 선수 좀 자중해야 합니다.]떨어지는 공에도 망설임 없는 헛스윙.
김영훈이 커브를 던진다.
-스트라이크!
[연속 두 번의 헛스윙입니다. 송석현 선수가 아예 감을 못 잡고 있어요.]김영훈은 포수가 던진 공을 받았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 걸까?
평소의 송석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포수가 3구로 슬라이더를 요구한다.
타자가 변화구에 감을 잡지 못한다면 변화구를 연속해서 던지는 것도 방법이다.
김영훈도 고개를 끄덕이곤 다리를 들었다.
스트라이크존으로 가다 떨어지는 슬라이더라면 이번에도 송석현이 속고 말 거다.
“흡.”
숨을 들이마시면서 힘껏 공을 뿌린다.
손에서 공이 벗어나는 느낌이 좋다.
제대로 회전을 먹었다.
날아가는 높이도 무릎 높이.
저기서 떨어지기만 하면 타자는 속절없이 헛스윙이다.
-부웅.
송석현도 스윙을 시작한다.
예상한 대로 몸이 날아갈 듯 헬기 프로펠러처럼 힘껏 돌린다.
“……?!”
김영훈의 눈이 커진다.
돌아간 송석현의 몸 뒤로 배트가 채찍처럼 휘는데 골프채를 잡듯 스윙했다.
어퍼 스윙을 넘어 골퍼 스윙.
뒷머리가 찌릿했다.
-쾅!!!
송석현의 헬멧이 벗겨졌다.
[우와와와아!! 큽니다! 엄청 큽니다!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초초초초대형 홈런! 초대형 홈런이 터집니다!] [역대 최장 거리 홈런으로 보입니다. 잴 수도 없겠어요. 치자마자 담장은 이미 넘겨 버리는 홈런이었습니다.] [3-3! 3-3 동점! 송석현의 솔로 홈런 하나로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김영훈이 모자를 푹 눌러썼다.
저번 타석부터 연이은 헛스윙.
송석현의 노림수였다.
헛스윙을 연신 하면서 변화구에 약하다는 인상을 심어 준 거다.
아니, 그런 스윙이라면 변화구에 약할 수밖에 없다.
평소 송석현은 약점이 없는 무결점의 타자다.
송석현은 일부러 자신의 약점을 만들었다.
투수와 포수 모두 약점을 노릴 수밖에 없도록 판을 깔았다.
송석현은 애초에 좋은 공을 노린 게 아니다.
상대가 좋은 공을 줄 리 없다는 전제하에 처음부터 슬라이더, 그것도 낮은 쪽 슬라이더를 노리고 있었다.
송석현의 힘이라면, 스윙이라면 얼마든지 담장을 넘길 수 있기에 가능한 전략.
두 번, 세 번은 통하지 않을 전략이지만 한 번이라면 상대방이 방심해서 말릴 수밖에 없는 전략이다.
“하, 짜쉭이. 완전 타짜네 저거.”
홈런을 맞았지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역시…… 야구는 재밌어.”
김영훈이 다시 로진백을 들었다.
송석현이 벤치로 돌아가자 그야말로 잔치였다.
“송석현! 송석현! 송석현!”
선수들은 물론 코치들까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3-3.
아직 동점이지만 김영훈이 홈런을 내줬다는 게 중요하다.
뒤집을 수 있다.
가능성이 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클린업 모두 삼진을 당하면서 분위기가 얼어붙긴 했지만 9회 말 김정률이 무실점으로 막아 내며 경기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이때 다른 팀 경기 결과도 전해졌다.
현재 아스트로 보이즈 1위, 2위 불스, 3위 고트, 4위 스콜피언, 5위 피닉스.
고트가 오늘 경기를 이긴다면 아스트로 보이즈와 경기 수는 같지만 상대 전적, 득실 모두 우위로 1위, 진다면 3위까지 밀려난다.
스콜피언은 경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현재 웨일스에게 1점 차로 뒤지고 있었다.
피닉스가 이기고 스콜피언이 진다면 피닉스가 4위.
양 팀 모두 물러날 수 없는 벼랑 끝에서 연장 10회가 시작됐다.
포수로 승승장구
Good bye (10)
전광판의 점수는 여전히 3-3.
고트의 마운드엔 김정률이 서 있었고, 피닉스의 마운드엔 김영훈이 서 있었다.
12회 초 고트의 공격.
[선두 타자 송석현 선수가 나옵니다.] [9회에 기가 막힌 동점 홈런을 선두 타자로 뽑아냈죠? 이번 타석, 양 팀 모두 긴장해야 할 겁니다.]송석현이 타석에 섰다.
가을바람이 볼을 훑는다.
김영훈의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매번 알면서도 매번 칠 수가 없다.
-스트라이크!
[155km/h. 구속이 조금 줄었어요.] [지금 거의 완투하는 거나 다름없거든요. 어제 경기 완투하고 오늘 경기까지 완투하는 셈입니다.] [그래도 155km/h……. 과연 김영훈은 김영훈이네요.]송석현이 숨을 고른다.
요행은 한 번에 족하다.
이제는 실력으로 쳐야 한다.
머리로 생각하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반응한다.
여태까지 쌓아 온 데이터에 의하면 바깥쪽 빠른 공 다음엔 70% 이상이 바깥쪽 코스다.
초구 바깥쪽 빠른 공 다음에 바깥쪽 코스에 들어오는 공의 60% 이상은 패스트볼, 40%가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실제론 슬라이더가 대부분이다.
확률적으로 지금 노려야 할 공은 바깥쪽 빠른 공.
숨을 고르는 순간, 바깥쪽으로 빠른 공이 날아온다.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난 공.
잠시 멈칫 하는 사이 공이 휙 꺾이면서 존에 들어온다.
-스트라이크!
[백도어 슬라이더. 송석현 선수가 꼼짝도 못 하고 당합니다.] [저건 정말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풀카운트가 아닌 이상 저 공은 칠 수가 없어요.] [이러면 0-2. 연속 스트라이크 두 개입니다.] [송석현 선수가 잠시 발을 빼네요. 네, 좋아요. 상대에게 말렸다 싶으면 흐름을 끊어 주는 게 좋습니다.]백도어 슬라이더를 생각 안 한 건 아니다.
빈도는 낮아도 종종 한 경기에 백도어 슬라이더는 꼭 나온다.
알지만 빈도가 낮아 선택지에서 제외해 뒀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왼손 투수 김영훈의 투구 80%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타자들의 초점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에 맞춰져 있다.
나머지 20%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게 확률적으로는 올바른 판단이지만 이렇게 하나씩 뒤통수를 맞다 보면 바보가 된 기분이다.
백도어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싱커, 커터, 스플리터.
생각지 못한 공으로 카운트를 뺏기다 보면 머릿속 잔상은 더 깊어진다.
다음 공은 높은 확률로 빠른 공 아니면 슬라이더겠지만, 혹시 여기서 커브? 서클 체인지업? 스플리터?
“타자, 이제 들어오지.”
“네, 죄송합니다.”
심판의 채근에 생각이 끊겼다.
송석현이 도리질했다.
생각을 비운다.
보고, 친다.
여태 자신이 해 왔던 대로.
[투수, 제3구.]김영훈의 3구는 바깥쪽 빠른 공.
송석현이 배트를 휘둘렀다.
탕!
[우측 담장~ 넘어갔습니다. 파울, 파울.] [방금은 빠진 공이었는데 저걸 건드렸네요.] [카운트가 불리해서 어쩔 수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송석현이 손을 털었다.
알아도 배트가 나갈 수밖에 없다.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오는 빠른 공.
존에서 벗어났지만 몸이 먼저 반응한다.
송석현은 김영훈을 바라봤다.
무심하게 마운드에 서 있는 남자.
마운드에 동상 하나를 세워 둔 거 같다.
고개를 한참이나 들어 쳐다봐야 할 거 같다.
방심하지 않는 김영훈은…… 자신의 상대가 아니다.
4구는 슬라이더.
파울.
5구는 몸 쪽 빠른 공.
파울.
6구는 바깥쪽 빠른 공.
볼.
7구는 바깥쪽 커브.
볼.
송석현은 무릎이 휘청거리면서도 스윙을 참아 냈다.
[2-2. 승부가 길어집니다.] [송석현 선수가 커트를 잘 해내고 있어요.] [아시안게임 배터리의 승부,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와 투수의 대결이라 그런지 정말 수준이 높습니다. 수 싸움도 치열하고 전개도 짜릿합니다.]송석현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등줄기가 땀에 젖었다.
어떻게 공을 쳐 내고, 고르는지 모를 지경이다.
공도 잘 보이지 않는 데다 빠르고 변화무쌍하다.
그새 장갑이 헐거워졌다.
“잠시만요. 타임.”
송석현이 타석에서 물러나 장갑을 고쳐 꼈다.
숨을 고르고 있자니 마운드 위 김영훈이 더, 더 커 보인다.
“벽이라고 생각하면 더 벽처럼 느껴져.”
순간 김인환의 말이 떠올랐다.
벽.
벽은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생각해 보면 살다 보면 언제나 앞길엔 장애물투성이었다.
대단찮은 장애물은 뇌리에 조차 남지 않아 몰랐을 뿐.
한 경기를 이기고 지기 위해서 한 타석, 공 하나에서도 얼마나 많이 이기고 져야 하는가.
누군가는 져야 하고, 누군가는 이기는 게 야구다.
무조건 내가 이기고, 상대가 지는 일 따위는 없다.
모사재인 성사재천.
운이 모든 게 아니지만 마지막을 결정짓는 건 운이다.
송석현이 배트를 꽉 쥐었다.
운이 따르지 않아도 그만, 따라도 그만.
타석에서 고민하는 건 자기 스타일이 아니다.
고민은 타석 밖에서.
타석에선 오로지 반응한다.
삼진을 먹더라도 몸이 따르는 대로 마음도, 생각도 맡겨 둔다.
“짜식이 애를 먹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