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83
김영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팔이 나가떨어질 거 같다.
지든 이기든 빨리 결정짓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빨리 승부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송석현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시간이 좀 길었죠?] [수세에 몰리다 보니 생각이 길어지는 거 같습니다.]송석현이 타석에 서자 김영훈은 바로 던지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구질은 이미 결정해 뒀다.
서클 체인지업.
우타자 바깥쪽으로 날아가다 바깥쪽으로 더 도망치는 체인지업.
잘 써먹진 않지만 먹힐 땐 정말 잘 먹히는 구종이다.
[김영훈, 던집니다.]손을 떠난 공이 원하는 코스로 날아간다.
송석현의 몸도 반응한다.
바깥쪽에서 더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
송석현의 배트 끝이 공을 건드렸다.
공은 빠르게 날아갔지만 1루수를 향해 날아간다.
높게 뜨지도 않은 땅볼.
경수인이 몸을 숙여 공을 잡을 준비를 마쳤다.
탁!
[어? 공이 떴어요! 떴습니다!] [베이스에 맞았어요!]공은 얄궂게 베이스에 맞더니 높이 떠올랐다.
경수인이 팔을 뻗어 봤으나 공은 이미 경수인을 넘어갔다.
1루수와 우익수가 파울라인 밖으로 빠져나가는 공을 잡기 위해 달렸다.
송석현도 1루를 밟고 2루까지 달렸다.
[1루수! 1루수! 1루수가 잡아서 2루로!]1루수 경수인이 공을 잡자마자 베이스를 쳐다봤다.
어느새 송석현이 2루까지 달리고 있다.
빠르다.
잊고 있었지만 송석현이 도루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주루도 빠른 편이다.
경수인이 급하게 2루를 향해 송구했다.
[유격수 잡…… 놓쳤습니다! 글러브 맞고 공이 튕겼어요! 2루수가 달려갑니다! 2루수가 잡아서 3루! 3루! 3루에서 세입! 세입입니다! 송석현 선수가 3루까지 달립니다! 행운의 안타가 3루타까지, 3루타까지 이어졌습니다! 고트에게 행운의 여신이 웃어 주나요?] [수비가 정말 아쉽네요. 너무 아쉽습니다. 1루수 송구만 좋았어도 2루에서 아웃 타이밍도 가능했거든요. 송구도 부정확했고 유격수도 마음이 너무 급했어요.] [행운의 안타로 3루까지. 고트는 플라이 하나만 나와도 역전입니다.]김영훈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화가 안 나는 건 옛날 일이다.
이젠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짜증 내고 슬퍼할 여유도 없다.
자신의 눈치를 보는 야수들을 보며 자기 가슴을 탕탕 두 번 쳤다.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3루에 도착한 송석현이 숨을 몰아쉬었다.
운.
운이 좋았다.
단타로 3루까지 온 건 처음 아닌가.
이제 플라이 하나면 역전…….
두 손을 모으고 기대했으나 김욱은 삼진, 설진일과 최재완은 범타.
이닝 종료.
송석현의 3루타가 빛바래지는 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
송석현이 넋 나간 표정으로 벤치에 돌아왔다.
12회 말 피닉스의 공격.
김영훈은 어깨에 아이싱을 하고 있었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
이기든 지든, 이젠 자신의 손을 떠났다.
타순은 썩 좋지 못하다.
선두 타자가 유격수 김현우.
고트에서도 투수를 오영식으로 바꿨다.
최근 컨디션이 내려왔지만 빠른 공과 슬라이더가 좋은 투수.
빠른 공에 약한 피닉스 타자들에겐 쉽지 않은 선수다.
예상대로 김현우는 초구 플라이로 아웃.
피닉스 벤치는 침묵에 휩싸였다.
쉽지 않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다음 타자는 장세완.
좋게 말해 배드볼 히터, 속된 말론 장봉사.
피닉스는 오늘 홈런이 있는 김진필까지 연결시키기 위해 사인을 보냈다.
타격보단 출루를 염두에 두고 공을 지켜봐라.
벤치의 사인이 나오자마자 초구.
장세완이 크게 휘둘렀다.
탕!
순간, 대전 구장이 조용해졌다.
높지도 낮지도 않게 날아간 공은 좌중간을 향했다.
중견수가 콜을 하면서 뛰었다.
뒤로, 뒤로, 더 뒤로 날아가는 공.
공은 담장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어라?”
홈런을 친 본인조차 어리둥절한 홈런.
자기도 모르게 툭 친 공이었기에 기대도 없던 홈런.
잠시 멍했지만, 이내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달았다.
끝내기 홈런.
“으아아아아!”
“와아아아!”
동시에 피닉스 선수들이 쏟아졌다.
피닉스 팬들도 만세를 불렀다.
고트 선수들은 넋 나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3위.
1위에서 3위로.
한숨도 나오지 않는다.
목이 턱턱 막혔다.
고트 선수들은 하나둘 그라운드를 떠났다.
힘없이 짐을 챙기던 그때, 피닉스 선수들의 환호가 잦아들었다.
곧 탄식과 절규로 바뀌었다.
“뭐야? 왜 저래?”
고트 선수들마저 이상하다 여긴 그때 캐스터와 해설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스콜피언이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연장 무승부. 이건 예상하지 못한 결관데요.] [이러면 스콜피언이 4위로 확정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오늘 경기와 상관없이 스콜피언이 4위를 지켜 냅니다. 올 시즌 무승부에 대해 시즌 전부터 왈가왈부가 조금 있었는데 마지막에 일이 이렇게 돼 버렸네요.] [피닉스가 분투했지만 아쉽게도 운이 따르지 않았네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가을야구 진출이 확정됐다고 봤는데…….] [이러면 포스트 시즌 아스트로 보이즈가 1위, 불스가 2위, 고트가 3위, 스콜피언이 4위로 치르게 됩니다. 피닉스의 분투는 5위에서 멈추네요.] [오늘은 양 팀 모두 패자가 됐네요. 그라운드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일도 다 있나요. 이런 일은 처음 보는 거 같은데요.] [이것도 야구 아니겠습니까.]고트와 피닉스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세상에 윈윈 게임만 있는 게 아니다.
루즈, 루즈 게임도 있는 법이다.
송석현도 텅 빈 눈동자로 벤치를 떠나지 못했다.
그때, 김영훈이 송석현 앞으로 걸어왔다.
“수고했다.”
김영훈이 손을 내밀었다.
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영훈은 송석현의 손을 잡고 그대로 끌어당겼다.
“석현아.”
포수로 승승장구
떠나는 사람, 남은 사람
“형은 간다.”
김영훈의 한마디.
송석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네.”
“앞으로 네가 프로야구 얼굴이야. 잘해. 형이 응원할게.”
“감사합니다.”
김영훈이 송석현과의 포옹을 풀었다.
“세상 넓어. 네가 평생 여기서 뛸 마음이라고 해도 눈은 멀리 둬야 돼. 무슨 말인지 알지?”
“메이저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단순히 경기 보고, 분석하고, 공부하는 건 큰 도움이 안 돼. 네가 이겨 먹을 생각을 해야지.”
김영훈이 자기 팔을 가리켰다.
“야구 선수라면 승부욕이 있어야 돼. 죽어도 지기 싫은 승부욕. 하지만 나처럼 과하면 독이 된다. 네 몸 갈아 먹지 않는 선에서 항상 승부욕에 사로잡혀야 롱런한다. 위를 보지 않으면 사람이 권태에 빠지거든.”
“아…… 명심하겠습니다.”
“나야 환경이 이래서 권태에 빠지고 싶어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지만 너는 또 다르잖아. 고트 충분히 좋은 팀이고 너도 잘하고 있고……. 고트가 리그 3연패, 5연패 해도 이상하지 않지. 너는 다른 의미에서 나보다 더 힘들 거야. 팀도 잘하고 너도 잘하면 권태에 빠지기 쉽거든.”
김영훈이 송석현 눈 위에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높게. 더 높게 목표를 둬. 메이저리그를 씹어 먹어 버리겠다, 이 정도는 둬야 할 거다.”
“제가……요?”
김영훈은 송석현의 어깨를 두드리곤 등을 돌렸다.
“잘 있어라. 안녕.”
김영훈은 그대로 그라운드를 가로질렀다.
송석현은 김영훈의 등을 한참 쳐다봤다.
23번이라는 숫자가 눈에서 아른거려 떠나지 않았다.
* * *
며칠 후 충남대 병원.
김영훈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 앞에 커다란 텔레비전에는 야구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탕!
[넘어갑니다! 넘어갔습니다! 송석현! 스리런! 또 스리런이 터졌습니다. 오늘 경기 두 번째 스리런!] [아, 불스. 이렇게 무너지나요. 벌써 12-2. 이러면 오늘 경기도 어렵습니다.] [1위에서 3위로 내려앉은 후유증이 클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다릅니다. 고트는 달라요. 오히려 왜 리그 1위를 달성했는지 방망이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1차전 8-4, 2차전은 12-2. 지금 상황으로 봐선 고트가 4~5점 더 내는 건 일도 아닌 거 같습니다.] [고트의 약점이 불펜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방망이로 상대 마운드를 초토화시키면 약점이라는 불펜이 등판할 일조차 없어 보여요.] [역대 최강의 타선이라는 건 빈말이 아닙니다. 정말 강력해요. 믿을 수 없이 강력합니다.] [최고의 콤비 KS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거둔 타점만 11타점입니다. 누가 이 콤비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 김영훈 선수가 포스트 시즌에 등판하지 않은 이상 어렵죠.] [고트 입장에선 천만다행이네요. 피닉스가 4위로 올라오지 않은 거 말이죠.]김영훈은 벤치로 돌아오는 송석현을 바라봤다.
홈런을 쳤지만 기쁘거나 들뜬 표정은 없다.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덤덤하다.
“최종 병기 송석현이 돼 버렸네. 올해 가을은 싱겁겠어.”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면서 식사가 들어왔다.
김영훈은 몸을 일으키다 식판을 든 사람을 보곤 멈칫했다.
“네가 그걸 왜 들고 와?”
“여기 오는 밥이라길래.”
김시윤은 식판을 들고 김영훈 옆에 섰다.
“자, 먹어.”
“그래. 땡큐.”
김영훈은 식판을 올려놓곤 수저를 들었다.
“너 바쁘다며. 웬일로 여기까지 왔데?”
“친구잖아. 한 번은 봐야 할 거 같아서.”
“참 빨리도 오시네. 내일이 퇴원인데.”
“그래서 퇴원 전에 왔잖아.”
“그래. 네 말도 맞다. 일단 앉아.”
김영훈이 자리를 권하자 김시윤이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았다.
“그런데 선물은 없어?”
“……깜박했네. 바빠서 말이야.”
“……됐다.”
김영훈이 신음을 내면서 수저를 들었다.
김시윤이 김영훈을 힐끔 쳐다봤다.
“힘들어?”
“그 정돈 아니야.”
“내가 도와줘?”
“됐어. 그럼 진짜 무슨 환자 같잖아.”
“너 환자잖아.”
“……중환자는 아니야.”
김영훈이 다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수저를 들자 김시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줘, 줘.”
“아니,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