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284
“줘.”
김시윤은 강제로 수저를 뺏다시피 한 후에 김영훈 입에 밥을 밀어 넣었다.
김영훈은 김시윤과 수저를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슬쩍 밥을 입에 넣었다.
“야구 보고 있었어?”
“어. 플레이오프잖아.”
“올해는 싱거울 거 같아. 고트가 세긴 정말 세네.”
“세지. 객관적으로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네가 보기에도 고트가 우승할 거 같아?”
“한 60~70%?”
“아스트로 보이즈도 세잖아.”
“거기도 좋지. 공수 밸런스 괜찮고, 공격력도 역대 최고고.”
“고트는 여전히 불펜이라는 약점이 있고.”
“하지만 스포츠는 산수가 아니야. 전력도 중요하지만 상황이나 기세도 중요해. 지금은 고트 타자들을 막을 투수가 없어. 그리고 고트는 선발도 좋고, 정률이 형 같은 최고의 마무리도 있어. 불펜이 약해도 마무리만 확실하면 괜찮지. 저렇게 계속 뻥뻥 쳐 대면서 이기면 마무리가 등판할 일도 적을 테고, 체력에 문제만 없다면 정률이 형은 리그 최고의 마무리니까.”
“결국 너 말곤 고트를 막을 투수가 없단 얘기네.”
김영훈이 국물을 홀짝였다.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김영훈이 혀로 입술을 닦았다.
“그래도 이제 다 과거지. 나야 이제 잊힐 사람이고, 쟤들은 앞으로 기록이란 기록은 다 세울 애들이고.”
“안 아쉬워?”
“뭐? 은퇴?”
김영훈이 제 팔을 들어 보였다.
“올해까지 재활했으면 앞으로 몇 년은 더 뛰고도 남았겠지. 피지컬적으로 말이야.”
“너무 무리했어, 올해 복귀하는 건.”
“그런데 올해 복귀 안 했으면 내년에도 복귀 못했을 거야. 내 멘탈이 못 버텼을 테니까.”
“……그렇게 힘들었어?”
김영훈이 제 가슴을 가리켰다.
“텅 비어 버리니까 못 참겠더라. 뭐든 여길 채울 게 필요했어.”
“그래도 너무 무모했어.”
“알아, 무모한 거. 그래서 여기서 끝내는 거야. 무모한 짓은 더는 안 하려고.”
TV 속 경기는 어느덧 7회를 넘어가고 있었다.
점수는 14-2.
그새 고트는 2점을 더 뽑아냈다.
“앞으로 재활 얼마나 해야 된데?”
“뭐…… 내가 열심히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많이 다르겠지만 6개월에서 1년 정도?”
“너 집에서 여기 멀잖아. 왔다 갔다 하기 힘들겠네.”
“당분간 여기다 원룸 같은 거 하나 잡으려고.”
“집은?”
“집은 그대로 둬야지. 비우기도 그렇고.”
“그래…….”
“너는? 이제 단장 다 그만두는 거야?”
“바로 그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할 게 많네. 그래서 넉넉하게 다음 달까진 일 다 마무리 짓고 가려고. 이왕이면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딱 네 성격답다, 깔끔한 거.”
“그래……?”
“응. 아, 나 나물 좀.”
김영훈은 나물을 씹으며 물었다.
“넌 이제 야구 질렸어?”
“……잘 모르겠어, 이젠.”
“커리어가 아쉽긴 하지만 네가 여기에 있는 게 더 아쉬울 수 있지.”
“너는 야구 질려서 은퇴하는 거야?”
“음……나도 뭐라 딱 잘라 말하기 힘들어. 현실적으로도 어렵고, 멘탈적으로도 어렵고.”
“하지만 하고 싶어?”
“모르겠다. 야구는 좋은데…… 억지로 꾸역꾸역하고 싶진 않고.”
“너나 나나 똑같네.”
“그래. 친구라고 그건 똑같은가 보다.”
김영훈은 남은 밥을 다 먹은 후 식판을 한쪽으로 치웠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경기만 지켜봤다.
“넌 안 가도 돼?”
김영훈의 말에 김시윤이 고개를 저었다.
“왜? 누구 와?”
“아니. 한창 바쁠 사람이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어서.”
“바빠도 지금은 이럴 시간 있어.”
“그렇구만…….”
경기는 18-5로 고트가 이겼다.
한 번 넘어간 기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무섭네, 송석현. 혼자 한 경기 8타점 실환가.”
“저런 포수만 있었어도 너도 경기하기 훨씬 수월했을 텐데. 그치?”
“욕심이지 뭐. 송석현이랑 나랑 같은 팀이면 그게 사기 아닙니까?”
“하여간 자랑은.”
“왜? 아니야?”
“누가 아니래?”
두 사람은 서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너 어쩔 거야? 이제 집에 가나? 아님 회사?”
“집에 가야지.”
김시윤은 팔짱을 낀 채 입술을 물었다.
“아, 너 목마르지? 우리 커피 한 잔씩 할까?”
“저기 냉장고 열어 봐. 난 물 줘.”
“응, 응.”
김영훈은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입술을 닦았다.
김시윤도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고개를 숙였다.
“부럽다, 석현이.”
“그러게 누가 그렇게 빨리 복귀하래?”
“어쩔 수 없었어. 그래야 내 마음이 정리됐을 테니까.”
“적어도 몇 년은 네가 톱이 됐을 텐데. 너무 빨리 은퇴했어.”
“그래도 새옹지마라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는 법 아니겠냐.”
“네가 좋은 일이 뭐가 있어?”
“마음이 가벼워진 거. 이젠 다 훌훌 털어 버렸어. 야구도 혜린이도 전부.”
“……전부?”
“그래. 전부. 날 쥐어짤 만큼 쥐어짜니까 슬픔도 기쁨도 다 사라졌어. 이제야 마음이 가벼워. 야구는 못하겠지만 이제야 뭘 하든 다시 할 수 있을 거 같아.”
“다행이네.”
TV에선 송석현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아나운서는 긴 인터뷰 끝에 마지막 질문을 남겼다.
[앞으로 송석현의 시대가 시작될 거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말씀은 감사하지만 좀 부끄럽습니다. 누군가의 시대라는 말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팬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야구를 하도록 힘쓰겠습니다. 방심하지 않고, 언제나 매번, 매 타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영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큰일이야. 완전 도인이 다 됐네.”
“저 나이에 저 실력에 결혼까지 했고 마인드까지 저 정도면 단장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겠어.”
김영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 이제 가야지. 내가 바래다 줄게.”
“그냥 있어. 뭐하러.”
“그 정도는 충분해. 걱정하지 마.”
김영훈이 앞장서서 나가자 김시윤도 뒤따라갔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병원인 만큼 한 층, 한 층 설 때마다 사람이 탔다.
어느덧 두 사람은 한쪽 구석으로 몰렸다.
5층…… 3층, 2층, 1층.
마지막 층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구석엔 얼굴이 붉어진 김시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가자.”
김영훈은 김시윤의 손을 잡고 있었다.
김시윤은 김영훈을 뒤따라가며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이 보는데…….”
“의외로 사람들 다른 사람한테 관심 없어. 특히 병원 같은 데선.”
“이거…… 손…….”
김영훈은 김시윤의 손에 깍지를 꼈다.
“여태까지 들이대 놓고 뭐 이런 걸로 놀라냐?”
김영훈이 이어 말했다.
“가자. 너 차 타고 가는 거 보고 들어갈게.”
* * *
11월 11일.
누군가에게는 빼빼로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경사였다.
고트는 김인환, 송석현의 연타석 홈런으로 대역전극을 장식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마쳤다.
포스트 시즌 최종 전적 10승 2패.
언론은 KS 시대가 도래했다며 지면을 도배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후 송석현은 김영훈을 찾아왔다.
김영훈이 원한 건 하나, 사인볼.
아버지 영전에 바칠 사인볼 하나를 부탁했다.
“부담스럽게 아버님한테 바친다고 하니까 팔이 덜덜 떨리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희 아빠가 피닉스의 팬이어서요. 살아계셨다면 반드시 선배님 사인볼 가지고 싶어 하셨을 겁니다.”
“죄송하긴. 리그 최고의 스타에게 사인을 해 주는데 내가 영광이지.”
김영훈은 정성들여 사인한 공을 송석현에게 건넸다.
“리그 2연패 축하한다. 3연패, 5연패도 해야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야구라는 게 쉬운 게 아니라서요.”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왠지 좀 기만하는 거 같은 거 알지?”
“아, 아. 그게 아니라요.”
“농담이야, 농담. 정색은.”
“죄송합니다. 제가 선배님 앞에서 서면 긴장이 돼서요.”
“아, 맞다. 이거.”
김영훈이 쇼핑백 하나를 송석현에게 건넸다.
“축하해. 연타석 홈런을 이렇게 칠 줄 몰랐네. 누군 애도 없는데 넌 벌써 둘째야?”
“아, 감사합니다.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받아, 빨리.”
송석현이 쇼핑백을 받았다.
“그런데 선배님은 요새 뭐 하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합니다.”
“퇴물할 거 궁금할 게 있나. 그냥 하는 소리지.”
“오늘 선배님 만나러 간다니까 다들 궁금해하던데요.”
“나야 뭐 재활 중이지.”
“다른 건 안 하십니까?”
“다른 거? 야구?”
“네. 혹시 코치라든가…….”
“놉. 코치나 감독은 내 자리가 아니야. 그냥 당분간 좀 쉬려고. 나도 요새 좀 바쁘다. 재활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아, 예.”
그때 김영훈의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한 김영훈이 나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 잠깐 누구 좀 만나고 있거든? 이따 내가 갈게. 응, 응. 이따 보자.”
김영훈이 전화를 끊자 송석현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사생활이야, 사생활.”
“아, 넵.”
“나 이제 일어서야 할 거 같아. 스타를 앞에 두고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나도 좀 바빠요.”
“아닙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물도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앞으로 둘째, 셋째 순풍순풍 낳아라.”
“예. 하하. 노력해야죠.”
김영훈이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기대할게.”
송석현이 김영훈의 손을 잡았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김영훈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송석현은 김영훈이 건넨 야구공을 손으로 꽉 쥐었다.
몇 걸음 앞서가던 김영훈이 몸을 휙 돌렸다.
“아, 그런데 석현아.”
“네?”
“야구, 재밌냐?”
송석현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재밌습니다.”
김영훈도 따라 웃었다.
“다행이네. 잘 있어! 나 간다!”
“안녕히 가세요.”
송석현이 허리를 숙였다.
김영훈은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휘파람을 불며 사라졌다.
송석현이 고개를 들자 송석현을 알아본 팬들이 하나둘 송석현에게 다가왔다.
“송석현. 송석현 맞죠? 사인 좀 해 주세요. 제가 팬이에요.”
“송석현 선수! 사인 좀 해 주세요.”
“저도요! 사인 좀.”
송석현은 익숙한 듯 자기 백팩을 열었다.
“야구공은 없는데 사인지도 괜찮죠?”
“네, 네! 감사합니다.”
송석현은 팬들의 이름을 물은 뒤 하나하나 사인을 해 나갔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승승장구하시기 바랍니다. 포수 송석현.
《포수로 승승장구》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