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50
“그러면 콜. 김인환이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인다. 쉽지 않을걸.”
정용욱이 픽 웃었다.
“나 정용욱이야. 나를 뭘로 보고.”
벤치의 송석현은 미트를 쥐고 혼자 이리저리 손을 움직였다.
정용욱의 캐칭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따라 했다.
김인환은 땀을 닦으며 송석현 옆에 앉았다.
“혼자 뭐 해?”
“아, 정용욱 선배님은 어떤 자세로 잡는지 해 보고 있어요.”
“그게 차이가 있어? 다 같은 거 아니야?”
“다르죠. 정용욱 선배님은 몸은 안 움직이고 팔만 움직여서 미트질 하잖아요. 이게 엄청 어렵다니까요. 특히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 대각선으로 잡아서 쳐 올리는 건 고급 기술이에요.”
“그래? 음, 난 잘 모르니까.”
“아직 전 그 정도까진 아니라서. 떨어지는 공을 덮지 않는 것도 쉽지 않아요.”
“네가 못한다고 하니까 뭔가 신선하다. 뭐든 다 잘할 거 같은데.”
“에헤이, 형. 그런 장난 하지 마요. 얼마나 부담되는데.”
김인환이 음료수를 단숨에 비웠다.
“하, 가벼운 배트로 하니까 진짜 뭔가 휙휙 배트가 넘어가는 게 기분 좋네. 확실히 잘돼. 다 네 덕이다.”
“형이 잘하니까 그런 거죠, 내 덕은 무슨. 대한민국의 어떤 타자를 세워 놔도 그 배트로 몸 쪽에 붙은 공을 홈런으로 못 쳐 내요. 그냥 형이라서 하는 거예요.”
“아이고, 송 코치님, 그렇습니까? 그래도 송 코치님 지분이 반은 아니겠습니까?”
“코치님들 들어요. 그런 얘기 좀 하지 마요.”
“아, 미안. 조심할게.”
송석현은 미트를 낀 채 경기에 집중했다.
정용욱은 1회 홈런 이후 안타는 없었지만 볼넷을 얻어 냈다.
송석현은 정용욱이 스트라이크 콜을 잡아낼 때마다 펜을 들었다.
몸 쪽 공을 잡을 때 어깨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평소 때와 캐칭 때 발뒤꿈치를 얼마나 드는지,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프레이밍으로 끌어당기는지 기록했다.
“하.”
기록을 본 송석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김정률이 물었다.
“왜? 왜 또 그래?”
“투수가 빠지는 공 열 개를 던지면 정용욱 선배님은 최소 두세 개는 스트라이크로 만들어요. 공 한 개 이상 빠지는 거 아니면 스트라이크를 만드는 거 같아요.”
“용욱이 형 미트질이야 유명하지. 국제 대회에 나가서도 미트질로 삼진 만든다니까.”
“아, 선배님도 같이 국대 나가서 뛰셨겠네요.”
“형도 국대였어. 지금은 좀 많이 멀어졌지만.”
김정률이 송석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포수에 대해 잘 모르지만 투수로서 용욱이 형에 대해 얘기할 순 있지. 용욱이 형의 몸 기울기를 봐. 그게 키포인트일 거다. 살짝 오른쪽으로 몸을 틀 때가 있고, 왼쪽으로 틀 때가 있어. 송구하기 좋은 각을 만들려는 이유가 첫 번째지만 그렇게 몸을 틀면 심판도 스트라이크존을 헷갈리거든. 포수가 몸을 3루 쪽으로 틀었는데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꽉 찬 공이 들어왔다고 쳐 봐.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와도 심판 눈에는 뭔가 좀 벗어난 거 같거든. 용욱이 형이 이걸 잘해. 도사지, 도사.”
“와, 그건 생각을 못 했는데.”
“이런 건 책에 안 나올걸. 노하우니까.”
“오, 적어야겠다. 몸을 좌우로 틀어서 스트라이크존을 흔들어라.”
“그리고 또 하나 얘기하자면, 형은 공 받기 전에 잔동작이 많은 편이야. 얌전하게 사인 내고 공 받지 않아. 이러면 공 받을 때 몸이 살짝 움직여도 티가 잘 안 나. 미트질 때문에 그런 건지, 자연스러운 동작의 일환인지. 그런 것도 노하우가 될 수 있겠지. 물론 용욱이 형은 여기에 더해서 공 받기 전에는 잔발 치다가 공을 받을 땐 딱 몸을 고정시키고 팔만 움직여서 받지. 그럼 심판은 더 헷갈린다니까.”
“와, 선배님도 정말 많이 아시네요.”
“뭐, 한때 영혼의 파트너였으니까. 지금은 내가 나가리 됐지만.”
송석현이 수첩에 열심히 적었다.
“아무리 봐도 전 포수로서 너무 부족하네요. 정용욱 선배님이랑 비교하면, 하…….”
“국대 넘버원 포수랑 비교하면 누구나 다 그럴 거다. 어린 놈이 오바는. 하여튼 눈이 저 머리 꼭대기에 있다니까.”
송석현이 수첩을 덮었다.
“그래도 한번 해 보고 싶어요. 코치님한테 부탁해서 내일은 꼭 포수로 뛰게 해 달라고 부탁드릴 거예요.”
“용욱이 형이랑 일기토를 하겠다? 그거 재밌기는 하겠네. 현 국대 넘버원 포수 대 차기 국대 넘버원 포수.”
“그런 얘기 하시면 제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니까요.”
“하하, 이따가 나 용욱이 형에게 찾아가서도 얘기할 거야. 차기 국대 넘버원 포수가 형이랑 맞다이 뜨고 싶어 한다고.”
“……장난이죠?”
“과연…… 그럴까?”
포수로 승승장구
줄탁동시 (8)
“와, 돌겠네.”
6회까지 김인환의 성적은 3타수 3안타 2홈런.
정용욱의 얼굴엔 푸근한 미소가 사라졌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홈 플레이트를 향해 뛰어오는 김인환을 볼 뿐이다.
“……약이라도 먹은 건가?”
정용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날 경기는 고트의 9-5 승리.
MVP는 혼자 5타점을 뽑아낸 김인환에게 돌아갔다.
“이제 군말 없이 하는 거다. 어?”
정용욱은 코치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누가 뭐래?”
정용욱이 짐을 싸는데 누가 옆에 와 툭 어깨를 쳤다.
“형.”
“어, 정률. 오랜만이네. 너도 여기 있었어?”
“뭐, 나야 이제 여기가 내 고향이지. 형은? 몸 괜찮아? 그 나이에 홈에 충돌하면 뼈 나가.”
“짜식이 오랜만에 보는 형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아깐 인사 안 오고 뭐 했어?”
“아까 형 없던데?”
“아, 나 화장실 갔었구나. 요새 어때? 넌 팔 괜찮고?”
김정률이 팔을 빙빙 돌렸다.
“아직까진. 쓸 만해.”
“아깝다, 아까워. 네가 고트가 아니라 우리 팀에 있었으면 우승 반지 몇 개 끼고 관리도 작살나게 받았을 텐데.”
“에헤이. 지나간 얘기는 뭐 하러 해. 지금도 나쁘지 않아. 나 요새 공 잘 던지거든.”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오늘 어때? 식사라도 할까?”
“그럴까?”
그날 저녁.
김정률과 정용욱은 단골 식당에서 근황을 안줏거리 삼아 수다를 떨었다.
“인환이 걔는 왜 이렇게 잘하냐? 요새 잘하는 사이클인가? 걔가 원래 좀 기복이 심하잖아.”
“인환이가 은인을 만났지, 송 코치님이라고. 요새 자주 붙어 다니더니 뭔가 달라진 거 같아.”
“송 코치? 누구야? 누군데? 내가 모르는 사람인가?”
“있어, 이번에 새로 들어온 코치가.”
“너희 타코 안 바뀐 거 같던데.”
김정률이 파하하 웃었다.
“우리 막내 포수야. 송석현이라고, 아주 머리에 든 게 어마무시한 놈이야. 똑똑하고 야구도 잘하고 기특한 놈이지. 앞으로 차기 국대 넘버원이 될 인재랄까?”
정용욱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 인마? 형이 앞에 있는데 어디 국대를 꺼내 들어?”
“두고 보슈. 형도 보면 깜짝 놀랄걸. 지금 당장 1군에서 뛰어도 괜찮을 정도야. 엄청 스마트한 놈이라니까.”
“야, 걔 뭔데? 언제 들어온 놈이야? 드래프트 1픽인가?”
“아니, 신고. 신고 고졸 포수.”
“신고 고졸 포수?”
정용욱이 파 웃었다.
“장난하나. 신고 고졸 포수를 형 앞에 들이밀어? 짜쉭이 죽을라고.”
“만만하게 보면 큰일 난다, 형. 걔는 진퉁이야.”
“진퉁이고 유퉁이고. 오죽하면 신고 고졸 포수냐. 포수는 웬만하면 못 가는 데가 없는데.”
“사정이 그렇게 됐어. 실력은 진짜배기야.”
“됐다, 인마. 관심 없어. 무슨 송 코치야, 송 코치는.”
“석현이가 내일 나올지도 모르는데…… 형도 한번 데여 봐야겠네, 흐흐.”
“오버하지 마, 인마. 그런 놈 한 트럭이 와 봐라. 내 발끝에나 미치나.”
* * *
그날 밤 송석현은 수첩을 펴 놓고 A4 용지에 무언가를 적었다.
작은 글씨로 한 줄, 한 줄 적힌 종이는 어느새 활자로 가득 찼다.
송석현은 펜을 놓곤 종이를 내려다봤다.
“하, 내가 앞서는 건 어깨 정도……. 타격은 이쪽도 잘하니까 내가 장타력이 앞선다고 꼭 낫다고 할 수는 없고.”
송석현은 어깨라고 쓰인 단어에 연신 동그라미를 쳤다.
“그 많은 것 중에서 어깨라도 하나 이겨야지. 암.”
송석현은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달렸다.
땀을 쫙 뺀 후 온수로 몸을 씻었다.
오전 훈련엔 김태우 배터리코치가 와 송석현에게 선발임을 귀띔했다.
“어디 한번 해 봐. 안 그래도 다들 비교된다고 나가기 싫어하는데 네 용기가 가상해서 내가 더 적극적으로 밀었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현역 넘버원 포수이자 역대 최고의 포수 중 세 손가락에 드는 정용욱.
지금 당장 뛰어넘네 마네 하기에는 까마득한 산이다.
처음부터 정상을 밟는 사람이 있으랴.
송석현은 정용욱이란 큰 산에 자신이 얼마만큼 올라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고트의 선발투수는 정천운이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사이드암 투수.
그에 반해 페가수스 선발은 정제성.
작년 드래프트 1라운더 선수였다.
투 피치 좌완 파이어볼러.
선발의 무게감으로 따지면 페가수스 쪽이 한발 앞섰다.
-플레이볼!
경기가 시작됐다.
송석현은 홈 플레이트 뒤에 앉아 타석의 타자를 살폈다.
1번 타자는 외야수 손영석.
페가수스에선 1군과 2군을 오가고 있으나 객관적인 실력으로 보면 어느 팀에 가든 주전이나 1군 백업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 실력이었다.
최근 5년간 세 번의 우승을 일군 페가수스가 자기 팀이라는 게 손영석의 불행이었다.
‘몸 쪽 슬라이더.’
송석현이 미트를 한가운데로 내밀었다.
투수는 고민도 없이 공을 던졌다.
송석현의 볼 배합을 익히 봐 왔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아!”
타자는 몸을 빼면서 뒤로 물러섰다.
-스트라이크!
몸 쪽으로 들어오는 스트라이크.
타자는 심판을 봤지만 심판은 요지부동이었다.
“초구부터 빡세네. 살살 가자, 살살.”
손영석은 27세의 8년 차 타자였다.
1년 차 신입 포수에겐 까마득한 선배기도 했다.
“네, 알겠습니다.”
송석현은 다음 공으로 또 몸 쪽 슬라이더를 요구했다.
이번에는 몸 쪽으로 조금 더 붙은 공.
타자는 참지 못하고 공을 쳤다.
“아씨.”
유격수 앞 땅볼.
타자는 1루로 조금 뛰다가 벤치로 들어갔다.
“아나, 진짜.”
벤치로 온 타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정용욱이 물었다.
“저런 공은 왜 치는 거야?”
“아, 열 받잖아요, 몸 쪽 공 계속 던지는 게.”
“저런 공은 누가 쳐도 좋은 공이 안 나와. 알잖아?”
“알죠. 그래도 설마 몸 쪽으로 연속 두 번 던지겠냐고 생각했어요.”
“음.”
정용욱이 팔짱을 낀 채 송석현을 바라봤다.
“저기 볼 배합, 벤치가 아니라 포수가 하는 거 맞지?”
“그런 거 같은데요? 벤치 사인이 따로 안 보여요.”
“그럼 포수가 사이드암 투수한테 우타자 몸 쪽 슬라이더를 두 개 연속 요구한 건데……. 배짱은 대단하긴 하네. 제정신인가?”
고트의 벤치에서도 감독과 배터리코치가 얘기를 주고받았다.
“사인이 과감하네.”
“……아무래도 성향이라 단숨에 고치긴 힘들 거 같습니다.”
“뭐, 이왕 선발을 맡겼으니 우리도 믿어 줘야지. 페가수스 상대로도 석현이가 통하면 스타일이고 뭐고 제 실력이니까 우리도 입 다물어야 하고.”
“용욱이가 있는데 그게 되겠습니까?”
“용욱이는 사람 아니야?”
“그래도 용욱이는 석현이가 날고뛰어도 벅차죠.”
“뭐, 안 통하면 어때? 이미 내가 1군에 강력하게 주장해 놨어, 포수로 안 쓸 거면 대타로라도 쓰라고. 후반기에 올라가더라도 전반기에 1군 공기라도 좀 맡는 거랑 안 맡는 건 차이가 크지 않겠어?”
“그럼 석현이 곧 1군에 가는 겁니까?”
“지금 우리 팀이 연패 중이라 여유가 없긴 하지만 반대로 쇄신하는 차원에서 2군 멤버를 올릴 수도 있잖아. 잘하면 1~2주 안에 올라가고, 늦어도 전반기 전에는 올라갈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석현이는 경험치를 먹는 만큼 클 놈입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감독과 코치가 얘기를 나누는 사이 고트의 배터리는 2번 타자를 하이 패스트볼로 삼진을 만들었다.
타자는 기회를 놓친 게 분해 배트를 잡고 연신 씩씩거렸다.
“오늘 저기 왜 저래? 볼 배합이 이상한데?”
“직구 140으로 하이볼을 던져?”
정용욱은 안경을 위로 올렸다.
배터리코치가 와서 정용욱에게 말했다.
“어때? 네가 보기에도 저 볼 배합, 벤치에서 나온 건 아니지?”
“응, 김태우 코치 성향을 아는데 절대 저런 사인 안 내. 미친 거지. 2스트라이크 잡아 놓고 하이볼로 삼진.”
“송석현…… 갑자기 저런 놈이 튀어나오나? 뭐지, 이제 스무 살인데.”
정용욱이 혀를 찼다.
“우리 후배님이 과감하시네. 아주 과감하셔.”
고트의 투수 정천운은 바깥쪽 떨어지는 공으로 땅볼 아웃을 만들었다.
공수 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