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7
송석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국에선 아무래도 야구 하기 힘들 거 같다. 일본에서 커리어 좀 쌓고 돌아오는 거 말곤 답이 없어.”
“……후, 너 일본에 연고도 없잖아.”
“있어야 가냐?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일본 쪽에서 날 쓰겠어? 일단 거기 가서 알바라도 하면서 기다려야지.”
“독한 놈. 너 가면 최소 2~3년 각 아니냐?”
“야구단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 거고, 가더라도 커리어 쌓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적어도 1년 이상은 걸리겠지, 뭐.”
“그래 봐야 신고 선순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냐?”
“그게 몇 년이라고.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언제 하겠어? 너 이번에 피닉스 김영훈 인터뷰 못 봤어? 자기가 어릴 때 야구 포기해서 시간 붕 뜬 게 세상 아쉽다잖아. 포기하는 것보단 늦는 게 훨씬 낫다.”
“어머니한테는 말씀드렸냐?”
“……아직. 지금 준비해서 내년에 갈 거니까, 아직 시간은 있어.”
“어머니가 허락하실까?”
“몰라. 하든 안 하든 난 갈 거야.”
“네가?”
정미남은 놀란 눈으로 송석현을 쳐다봤다.
“너희 어머니 말씀을 무시하겠다고?”
“이번만큼은 그럴 거야. 엄마가 말리든 응원하든 상관없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송석현은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봤다.
“빗소리 좋다. 우리 정미남 사장님한테는 미안하지만 오늘 한가해서 더 좋네.”
“나도 한가해서 좋아, 인마. 그리고 아직 사장도 아니고.”
“어차피 곧 사장 될 놈이 무슨. 미리 축하한다, 정 사장. 아, 그러면 너희 아버님이 회장님 되시는 거야?”
두 사람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너 일본에 가기 전까진 열심히 놀아 놔야 하는데 이렇게 만날 여기에 붙어 있으면 놀 시간이나 있겠어? 너도 일본에 가기 전에 할 거 있으면 다 해 놔. 애들한테도 말해야 할 거 아냐.”
“영석이나 나영이나 수능 때문에 정신 있겠냐? 수능 끝나면 걔들도 걔들대로 또 놀아야지. 괜히 나 위로해 준답시고 걔들이 내 눈치 보는 거 싫다. 일본에 가기 전에 며칠만 딱 놀다가 갈 거야. 나도 일본에 가기 전에 일본어 공부하려면 시간 빠듯하기도 하고.”
“서운하겠네, 영석이랑 나영이.”
“서운하라지. 캠퍼스 라이프 시작하면 내 생각할 틈이 있겠어? 노느라 금방 잊을걸.”
“야, 서운하게 그렇게 말하냐?”
“내가 이번에 일 겪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참 냉정하고 계산적이구나. 손해 볼 거 같으면 가차 없잖아. 누구 하나 내 편 들어 주는 사람 없었어. 처음엔 억울했는데 이제는 받아들여지더라. 어른이 되면 계산적이여야 하는구나. 냉정해야 하는구나.”
송석현이 말했다.
“나도 어른이 되는 연습 중이야. 나영이나 영석이는 명문대 가는 거 확정이잖아. 너는 젊은 사장이고. 나랑 인생이 달라. 너희들한테 뒤처지지 않으려면 나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겠냐?”
“송석현, 너 여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송석현은 피식 웃었다.
“똥폼은. 인상 쓰지 마.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우리 집에 돈이 있냐, 백이 있냐. 지금 나는 배운 기술도 없고 대학도 못 가는 운동부 출신의 고졸이야. 솔직히 이 루트의 태반은 딱 건달 아니냐? 남들이 건달로 빠질 때 내가 내 몸 하나 건사하려면 열심히 살아야지. 존나 열심히 살아야지. 일본에 가는 게 뭐가 대수야. 일본이 아니라 달나라를 가라고 해도 가서 해야지.”
“꼭 야구여야 하는 거냐? 다른 길도 있을 거 아냐.”
“지금은 야구 말고 더 없잖아. 그리고 너한테 계속 신세질 수도 없고.”
“신세는. 친구끼리 그런 말을 하냐, 서운하게.”
“서운할 것도 많다. 너한텐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그래도 고마운 거랑 내 일 알아서 하는 거랑은 다른 거지.”
띠링.
그때 문이 열리면서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알바가 손님을 받는 사이, 송석현이 몸을 일으켰다.
“괜히 마음 쓰지 마. 뭘 그렇게 안타까워하냐? 다들 열심히 살아. 나도 열심히 사는 거고.”
“너 일본에 가면 자주 못 볼 거 아니냐. 아쉬워서 그러지.”
“아쉽긴. 친구라며? 일본에 간다고 영영 못 볼 것도 아닌데.”
“후, 그건 그렇긴 한데……. 평생 같이 붙어 있다가 떨어질 생각 하니 존나 아쉽네.”
“아, 오바. 우리가 부부야? 닭살 돋네.”
“나 네 배터리였어. 네 마누라였다고. 마누라 버리고 가니까 좋냐?”
“꺼져. 흐흐. 어우, 소름. 너 여기에 있을 거야? 손님 안 받아?”
“그래, 가자. 일하자, 일!”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자 손님은 더 오지 않았다.
송석현은 한쪽 구석에서 배팅볼을 쳤다.
쾅! 쾅! 쾅!
마치 망치를 치듯 공을 칠 때마다 홈런이 터졌다.
송석현은 배트를 내려놓곤 잠시 숨을 골랐다.
짝짝짝.
“오우, 자세가 퍼펙트한데?”
송석현이 자기 뒤에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까 손님으로 왔던 아저씨였다.
“알바가 무슨 자세가 이렇게 좋아요? 야구 좀 했어요?”
“아…… 예, 예. 곧 졸업반인데 야구부였습니다.”
“오오, 그래요? 그런데 여기서 알바를 해요? 시간이 되나?”
송석현은 입맛을 다셨다.
“제가 뽑힌 데가 없어 가지고…….”
“뽑힌 데가 없어요? 폼이 아주 좋던데? 힘도 좋고.”
“칭찬 감사합니다.”
“아니, 아니에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 좋은데. 혹시 이름 물어봐도 돼요?”
송석현은 잠시 머뭇거렸다.
“송석현입니다. 우진고의 송석현.”
“우진고 송석현, 우진고 송석현……. 왜 낯이 익지? 좀 들어 본 거 같은데. 우진고면 요새 핫한 고등학굔데. 아아, 우진고 송석현! 기억났다. 맞네. 그 본헤드…….”
남자는 활짝 웃다가 굳었다.
송석현은 말없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남자는 멋쩍게 웃다가 품속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속에서 나온 건 명함 하나였다.
“아, 나는 다른 게 아니라 이런 사람이에요. 나도 야구를 했던 사람이라 석현 군 폼이 예사롭지 않아서 물어본 거예요.”
송석현은 명함을 받아 들었다.
명함에는 일신중학교 코치 이기성이라고 쓰여 있었다.
포수로 승승장구
귀인
“내가 여기 일신중학교 코치예요.”
“아, 안녕하십니까.”
송석현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얼마 전에 코치를 맡게 돼서 실은 학생 야구에 대해서 잘 몰라요. 내가 석현 학생한테 미안하게 됐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딱 봐도 폼도 좋고 몸도 다부져 보이는데 아무 데도 연락이 없었어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혹시 뭐 어디 아픈가?”
“아니요. 그렇진 않습니다.”
“우진고에서 주전 포수 아니었어요?”
“예, 맞습니다.”
“우진고 주전인데 왜 연락이 없었을까. 허허, 참. 신기하네.”
“……제가 부족한 탓이죠.”
“그러면 여기서 알바하고 있는 거예요? 대학을 가거나 다른 데 가는 것도 아니고?”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
“음, 그래요…….”
이기성은 턱을 매만졌다.
궁금한 게 있는 눈치였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아무튼 만나서 반가웠어요.”
“예, 들어가십쇼.”
이기성은 송석현과 얘기를 마친 후 다시 일행에게 돌아왔다. 일행은 이기성을 보자 얼른 배트를 쥐여 줬다.
“화장실 갔다 온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려? 얼른 쳐.”
“매형, 제가 치면 이거 밸런스 붕괴라니까요.”
“일단 치고 말해. 지금 우리가 밀리고 있다니까.”
“저 올해까지 프로였어요. 이건 반칙인데.”
“어허, 얼른 좀 쳐. 시간 없어. 우리가 지고 있다니까.”
이기성의 일행은 30분가량 더 있다가 가게를 나섰다.
이기성은 계산을 하면서 카운터에 있는 정미남에게 물었다.
“아까 슬쩍 보니까 저기 알바생이랑 친한 거 같아 보이던데, 친구예요?”
“누구요? 석현이요?”
“예, 친해 보이던데. 아닌가?”
“맞아요. 친구예요.”
“친구가 선출이던데. 아, 아직 현역인가.”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아까 잠깐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아무 데서도 연락이 안 왔다던데. 우진고 주전 포수면 실력에 문제가 있을 거 같지 않던데, 무슨 일 있어요?”
정미남은 이기성을 슬쩍 바라봤다.
이기성은 웃으면서 지갑 안의 명함을 꺼냈다.
“내가 일신중학교 야구부 코치라.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또 야구 후배기도 하니까.”
“아, 코치님이시구나.”
정미남은 명함을 받아 들곤 카운터에 내려놨다.
“석현이 잘해요. 시합에 많이 못 뛰어서 그렇지, 잘해요. 그런데 쟤가 포수로 시합한 경기가 너무 짧아서…….”
“왜 짧아요? 다쳤나?”
“아뇨. 그게…… 시합 때 큰 미스를 해서 이후에 완전 찍혔거든요. 석현이가 고 2 때부터 포변해서 고 3 때 정식 경기 뛴 거라 공식 경기가 몇 전 안 돼요. 포수로서 경력도 짧고, 소문도 안 좋게 나서 어디서도 제안이 안 왔어요.”
“허, 나도 기사는 봤지만 실수 한번 했다고 기용을 안 했어요? 감독이 이거 너무하네.”
“감독님도 처음에는 반대하셨는데 교장도 그렇고 이사회까지 난리를 쳐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데 실수를 할 수도 있지, 그걸로 애를 저렇게 방치한 건, 허. 쯧. 참 나, 이거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리네. 유치해 가지곤.”
“제 말이요. 애초에 그거 석현이 잘못도 아니에요. 투수가 잘못 던진 건데, 그때 투수가 장대희였거든요. 대희 아버님이 유명하신 분이라 다들 찍소리도 못 하고 석현이한테만 화풀이했어요. 석현이가 잘못했어도 너무한 건데, 석현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그랬어요. 쟤가 보살이죠. 저 같으면 못 참았을걸요.”
“하.”
이기성은 고개를 돌려 송석현이 있는 케이지를 바라봤다.
송석현은 미트를 들고 공을 잡고 있었다.
“저기서 저렇게 훈련하는 거예요?”
“……네.”
“저걸로 훈련이 되나…….”
“안 할 수도 없으니까 뭐라도 해야죠.”
“후.”
이기성이 고개를 내저었다.
“야구 할 생각은 있는 거예요? 저 친구 계속할 마음은 있는 거죠?”
“예, 있어요. 그래서 신고 선수도 지원했는데 서류에서 다 광탈했어요.”
“신고 선수도?”
“네.”
“요새 신고가 대졸 위주로 뽑는다지만 서류 광탈은 너무한데.”
“테스트라도 좀 받아 봤으면 덜 억울할 텐데……. 그래서 석현이 일본 독립야구단까지 갈 생각하고 있어요. 국내에서 안 받아 주니까 별수 없죠.”
“어린 학생이 일본까지? 의지는 기특한데 독립야구단이라고 쉽게 들어갈 수 있진 않을 텐데.”
“일단 가 보겠대요. 한국은 갈 데가 없잖아요.”
“흠.”
이기성은 뒷짐을 졌다.
한참 송석현을 바라보던 이기성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정말 신고 선수라도 뛸 마음 있는 거예요?”
“예, 쟤는 제발 기회라도 달라는 입장이에요. 열심히 훈련하면 뭐 해요, 테스트도 못 받는데.”
“허, 그건 좀 너무하지. 테스트는 받아 봐야 하는데.”
이기성은 다시 한번 송석현을 바라보더니 가게를 나섰다.
손님들마저 다 가 버린 가게에는 송석현 홀로 공을 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 * *
“축하, 축하. 고생했다.”
“고생했어, 얘들아!”
송석현이 방황의 시간을 보내는 사이 수능이 끝났다.
송석현과 정미남, 김나영, 김영석은 시내 돈가스집에서 콜라로 축배를 들었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은 식당이지만 오늘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식당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나영이 너는 시험 잘 봤어?”
“그럭저럭. 영석이 너는?”
“나는 괜찮게 본 거 같아.”
정미남이 김나영과 김영석에게 물었다.
“니들은 채점 안 해? 다들 가채점을 먼저 한다는데.”
“이미 끝난 거 채점해서 뭐 해. 잘 봤겠지.”
“역시 나영쓰. 자신만만해. 영석이 너도?”
“난 뭐……. 아무 대학이든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공댄데.”
“야, 대학 중요하지.”
“공대는 다 똑같아. 어차피 인서울 가능한 점수는 나왔겠지.”
“와, 재수 없어. 다른 애들이 그 얘기 들으면 니들 때릴 듯?”
“여기 아저씨 둘이 있는데 누가 우릴 건드냐?”
송석현이 돈가스를 썰다 말고 인상을 찌푸렸다.
“왜 나까지 아저씨야? 나는 누가 봐도 파릇파릇한 고딩이야. 영석이 네가 존나 어려 보이는 거지.”
정미남이 발끈했다.
“야, 송석현. 이럴 때 나랑 거리 두기 하는 거냐?”
“미남아, 친구끼리 솔직히 말해야지. 네 얼굴이랑 내 얼굴은 티어가 달라. 난 최소 골플이야. 너는 브론즈. 브실골도 아니고. 브론즈다, 브론즈.”
“그래 봐야 도찐개찐인데 되게 유세 떠네.”
김나영이 중얼거렸다.
“도찐개찐 아닌데.”
정미남이 황당하다는 듯 김나영을 바라봤다.
김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도긴개긴이야, 도찐개찐이 아니라.”
“넌 뭐 아나운서야? 뭘 그걸 지적하냐?”
“그렇다고.”
송석현이 돈가스 세 개를 집어 한입에 넣었다.
몇 번 우물거리자 돈가스가 금세 사라졌다.
“어쨌든 축하한다. 나영이랑 영석이 너희 둘 다 이제 놀기만 하면 되잖아. 그치?”
김영석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