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ise as a catcher RAW novel - chapter 89
송석현은 아, 하고 웃었다.
“다는 말해 주지 못하지만 이건 말해 줄 수 있어.”
어린 선수들이 눈을 빛냈다.
“배트. 나는 남들보다 1인치 이상 길고, 10% 이상 무거운 배트를 써. 그러면 배트 컨트롤이 더 어려워지지만 그만큼 더 힘을 실을 수 있거든.”
아마추어 야구에서도 나무 배트를 쓰면서 최근 고교 리그에서 장타가 실종됐다.
알루미늄 배트보다 반발 계수가 턱없이 적은 나무 배트로 장타를 노리기보단 철저히 스몰 볼로 나가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송석현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스몰 볼은 장타가 부족한 팀이 택하는 차선일 뿐이다.
어디까지나 장타가 최우선이고 단타와 작전은 옵션이다.
학생 때는 삼진을 먹더라도 온 힘을 실어 스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릴 땐 힘이 부족해 나무 배트로 풀스윙을 해도 홈런은커녕 담장 근처로 보내기도 힘들겠지만 힘은 프로에 와서 키우면 그만이다.
어릴 때 몸에 밴 스윙은 좀체 고치기 어렵다.
스윙이 큰 타자가 스윙을 줄이는 건 쉽지만, 애초에 스윙이 작은 타자가 스윙을 키우는 건 어렵다.
풀스윙은 배트에 온몸의 힘을 싣는 과정이니만큼 어릴 때부터 풀스윙으로 온몸의 힘을 싣는 감각을 익혀야 한다.
중학교 때까진 알루미늄 배트를 쓰지만 고등학교 때는 나무 배트를 잡아야 한다.
많은 어린 선수들이 줄어든 반발력에 아예 장타를 포기한다.
더 가벼운 배트로 바꾸고 더 배트를 짧게 잡는다.
스윙 폭도 줄인다.
스윙을 제대로 끝마치기 전에 1루로 달릴 준비를 한다.
그러니 어린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선 오히려 역으로 배트를 더 길게 잡고, 배트를 더 무겁게 쓰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게 송석현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배트가 다루기 어려우면 배트를 내는 데 더 신중해진다.
아무 공이나 쳐서 1루로 빨리 달릴 생각을 할 수 없다면 제대로 치겠다는 선택지만 남는다.
이기성 코치나 어린 학생들은 송석현의 고민까진 이해하진 못했지만 특별한 배트를 쓴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꽤 그럴듯한 이유 아닌가?
“그러니까 너희들도 너무 가벼운 배트를 쓰거나 짧게 잡지 마. 무거운 배트를 쓰는 것도 훈련의 일환이니까.”
송석현에게 질문한 밤톨머리 소년이 다시 손을 들었다.
“그럼 저도 홈런을 칠 수 있나요?”
다른 친구들이 파하하 웃었다.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작은 친구였다.
송석현이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이기성 코치가 옆으로 와 소곤거렸다.
“황근성이라고 중 3인데 애가 키가 작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웬만하면 좋은 말 해 줘.”
송석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름이 뭐야?”
“황근성입니다.”
“그래, 근성아. 내가 너한테 하나만 물어도 될까?”
“네.”
“넌 1루타가 좋아, 2루타가 좋아, 3루타가 좋아, 홈런이 좋아?”
황근성은 눈을 깜박였다.
무슨 뜻인지 유추하는 눈치였다.
“홈런?”
“그래, 이왕이면 공을 멀리 보낼수록 좋은 거지?”
“네.”
“1루타보단 2루타가 좋고, 2루타보단 3루타가, 3루타보단 홈런이 좋잖아. 그치?”
“네.”
“그럼 고민할 게 있을까? 홈런을 치든 안 치든, 너는 최대한 공을 멀리 보내면 되잖아. 그치?”
황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홈런에 연연해하지 마. 힘껏, 힘껏 휘둘러.”
“저는 홈런 치고 싶은데 감독님은 그러지 말라는데 어떡해요?”
송석현이 이기성을 바라봤다.
이기성은 어색하게 웃었다.
송석현이 말했다.
“음…… 감독님 말씀도 존중해야겠지만 네가 공을 맞힐 수 있다는 전제하에 최대한 공을 멀리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아예 공을 못 맞힌다면 공을 맞히는 게 우선이겠지만, 공을 맞힐 수만 있다면 멀리 보내는 데 집중해 봐.”
황근성은 입술을 앙 모았다.
송석현은 자기보다 네 살밖에 어리지 않은 소년임에도 귀여워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네, 감사합니다!”
황근성은 고사리손을 불끈 쥐었다.
송석현은 황근성에게 다가가 밤톨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잘해 낼 거야. 열심히 해 봐.”
그러자 황근성이 물었다.
“그럼 저도 프로로 갈 수 있어요?”
프로라는 말에 다른 친구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송석현은 무릎을 굽혀 황근성과 눈을 맞췄다.
“아니.”
황근성의 눈동자가 떨렸다.
송석현은 씨익 웃었다.
“넌 메이저도 갈 수 있어. 메이저로 직행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 홈런을 칠 마음으로 스윙하면 장타가 나오는데, 메이저로 간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면 프로가 문제겠어?”
“제가 메이저리그요……?”
“그래, 메이저리그.”
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녁엔 정미남과의 저녁 약속이 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정미남 가게에 가서 사인도 하고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다.
이기성 코치도 송석현을 불렀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우리 송석현 선수가 너희들한테 사인해 줄 거야. 사인받고 너희들도 열심히 해서 꼭 프로로 가자. 알았지?”
“네!”
송석현은 선수 하나하나에게 사인을 하고 이기성이 가져온 무더기 공에도 사인을 해 줬다.
황근성은 자기 유니폼을 내밀더니 사인을 해 달라 졸랐다.
“여기에? 안 돼. 너희 학교 유니폼이잖아.”
“해 주세요. 네?”
송석현이 이기성을 바라봤다.
이기성은 어깨를 으쓱했다.
“애가 고집이 세. 이름만 근성이 아니라니까.”
송석현이 펜을 들어 유니폼을 잡아당겼다.
“메이저리거 황근성이라고 써 주세요.”
송석현은 하하, 웃으면서 등번호 7번이라 쓰인 쪽에 사인했다.
[메이저리거 황근성]황근성이 그제야 만족한 듯 헤헤 웃었다.
“감사합니다!”
황근성은 다다다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송석현은 통통 튀는 황근성의 달음질에 또 한 번 웃었다.
“애가 참 귀여운데요?”
“착하긴 한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서 그런가 좀 응석받이야. 고집도 세고.”
“아…… 그래요?”
“못 먹어서 그런가, 키가 안 커서 속상하네. 애가 센스는 있거든.”
이기성 코치가 송석현 등을 두드렸다.
“어쨌든 고마워, 이렇게 찾아와 줘서.”
“아닙니다. 저야말로 늦게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하하, 오늘 정말 고마웠어. 애들도 힘 많이 될 거야. 시간 많이 뺏었지? 오늘 휴일이라 약속도 많을 텐데 얼른 가 봐. 나도 총각 땐 월요일이 제일 바빴거든.”
“그럼 다음에 또 시간 날 때 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고.”
이기성은 다시 선수들을 가르치러 돌아갔다.
송석현은 교문을 나서기 전 고개를 돌렸다.
유난히 작아 더 눈에 띄는 소년, 황근성이 몸을 날려 수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격수네. 운동 신경은 좋은가 본데.”
송석현은 교문을 벗어나자 택시를 탔다.
좌석에 머리를 기댄 채 혀를 내둘렀다.
아직도 약속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아이고, 휴일이 아니라 혹사일이네.”
포수로 승승장구
친구
“된 거야?”
“오케이. 딱 좋아. 이걸로 플래카드 뽑으면 되겠네.”
“무슨 플래카드를 뽑아, 미친놈아. 쪽팔리게.”
“에헤이, 초상권 때문에 그래?”
“아니, 초상권이 문제가 아니라…….”
“어허, 이럴 때 뽕을 뽑아야지.”
중학교에 들른 후 송석현은 정미남의 가게로 향했다.
정미남의 가게에서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고, 작은 사인회까지 열었다.
정미남의 아버지는 두툼한 봉투를 송석현에게 건넸다.
“아이고, 아니에요. 아버지. 괜찮아요.”
“어허, 받아. 어른이 주는 건 거절하는 거 아니야. 빨리.”
“그래도 이거 너무 많아요. 제가 이걸 어떻게 받아요?”
“받아, 받아.”
정미남의 아버지는 송석현의 손에 기어이 봉투를 쥐여 줬다.
“내가 한 건 없지만 이렇게 바르게 커 줘서 고맙다. 내가 다 뿌듯해. 기특해서 주는 거니까 맛있는 거 먹고 보약도 챙겨 먹고 해. 프로가 얼마나 힘들겠니?”
“정말 괜찮은데…….”
“쓸데없는 데 쓰지 말고 꼭 몸보신하는 데 써야 한다. 벌써 다른 길로 빠지면 안 돼.”
“제가 뭘 어디로 빠지겠어요.”
“그래그래, 얼른 미남이랑 맛있는 것도 먹고 놀아라. 놀 땐 또 놀아야지. 안 그러냐?”
송석현은 정미남의 가게에서 나와 봉투를 정미남에게 건넸다.
정미남은 봉투를 다시 송석현에게 밀었다.
“받아, 인마. 아빠가 너한테 주는 거잖아.”
“너무 크잖아, 액수가. 네가 받아서 돌려드려, 꿀꺽하지 말고.”
“됐거든? 줄 때 받아라. 오늘 홍보비라고 생각해.”
“무슨 홍보비야, 홍보비는.”
“네 얼굴을 박아 놓는 것만으로 이 돈의 몇 배는 더 뽑아먹을 수 있어. 그러니까 순순히 받아.”
“아이, 진짜…….”
“그럼 오늘 맛있는 거나 사 줘라. 나 한우 사 줘. 어때?”
“후, 그래. 그거 말고 또?”
“먹으면서 생각하자. 뭘 일일이 생각하고 먹냐?”
“하기야. 멧돼지가 생각이 많은 것도 웃기지.”
두 사람은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정미남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길가에선 너 알아보는 사람이 없네.”
“내가 뭐 대단한 스타라고 날 알아봐?”
“서울의 스타, 잠실의 스타 아니냐. 알아봐야지.”
“오바 좀 작작 싸라.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나 진짜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사망해 버릴 듯.”
“그런데 영석이랑 나영이는 안 만나냐? 걔들은 바쁘대?”
송석현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었다.
“영석이는 오늘 과에서 행사 있다던가 그랬어. 나영이한테는 따로 안 물었고.”
“나영이랑은 요새 냉전?”
“뭔 냉전이야? 바쁘니까 서로 못 보는 거지.”
“안 그래도 나영이가 바쁘긴 바쁜가 보더라. 요새 우리랑도 잘 안 보니까.”
“고시 준비한다면서. 그러면 바쁘겠지.”
“너희 어머니 아플 땐 자주 찾아가던데.”
“……뭐, 뭐! 뭐, 인마?”
“하, 뭐 나도 무슨 할 말이 있겠냐, 둘 사이 문젠데. 그렇다고 너무 정색 빨지는 마. 친구잖냐. 적당히 거리 벌리라고.”
“알았어. 아, 잔소리는.”
두 사람이 식당에 도착해 막 들어가려는 찰나 정미남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아빠. 왜? 5번에? 아, 또 5번이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전화를 끊은 정미남이 입맛을 다셨다.
“5번 방 기계가 또 말썽이네. 내가 가 봐야 할 거 같다.”
“나도 갈까?”
“됐어. 너는 여기서 고기 시켜 놓고 기다려. 오래 안 걸리니까.”
“나 혼자 고기 먹으라고? 그럴 거면 같이 가지, 뭐.”
“고기 구워 놓고 있어. 나 와서 바로 먹게.”
“그래도 쪽팔리게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냐, 그것도 한우집에서?”
정미남이 눈을 깜박였다.
“하긴, 너 혼자 고기 먹는 것도 웃기네. 어디 사진 찍혀서 돌아다니면 더 웃기겠네.”
“그냥 같이 가자니까.”
그때 송석현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김영석이었다.
“어, 왜? 나? 나 지금 미남이랑 있지. 미남이네 가게 근처야. 그건 왜 묻는데? 지금? 지금 와 달라고?”
정미남이 입 모양으로 물었다.
‘왜?’
‘영석이 선배들이 나 보자고 부른대. 어칼까?’
‘한번 가 줘, 영석이 기도 살려 줄 겸.’
‘그럴까?’
“그래, 알았어. 좌표 찍어. 내가 찾아갈게.”
송석현은 전화를 끊었다.
“과 행사 한다더니 또 나를 부르는 건 뭐래?”
“친구가 요새 핫한 스탄데 자랑하고 싶었나 보지. 이럴 때 얼굴 좀 팔려 줘라. 영석이 과 생활에 기름칠 좀 해 줘. 너도 걔 성격 알잖아? 학교 다닐 때도 우리 아니면 완전 아싸였는데 대학이면 더하겠지. 영석이한테 받은 게 있는데 이럴 때 도와줘.”
“스읍. 아아, 가서 무슨 얘기를 하냐, 나도 막 치대는 성격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