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1404
1411화 뒷거래 (6)
아무리 대천사라고 하더라도 에센시아 제국의 재산을 자기들 마음대로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직접 관리하는 대륙 최대 규모의 헤르마늄 광산이라면 더 그렇고.
거기다 헤르마늄 광석은 전략 물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걸 반대로 말하자면.
이 전략 물자라는 건 대천사들의 천사군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오히려 헤르마늄 광석을 더 잘 쓸 수 있는 쪽은 천사군이지.
지금 성마대전의 전선에서 더 이상의 추가 광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엄청난 규모의 헤르마늄 광산은 당연히 탐이 날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그런 그들에게 최고의 호재가 될 정보가 들어왔다.
마왕 헤르게니아의 해방.
사실 그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대천사들에게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출저가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저 저들에게는 명분이 필요한 것이다.
헤르마늄 광산을 자신들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권한을 얻기 위한.
명분 말이지.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기운을 발하며 극대노한 표정을 짓자 대천사들 중 전면에 있던 녀석이 나섰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여. 설마 천사군과의 연합 협정서에 있는 방위 약정을 잊은 건 아닐 테지?”
응?
협정서?
처음 듣는 건데?
혹시 재중이 형이 알까 싶어 쳐다봤으나 재중이 형은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어보였다.
성마대전의 역사에 없는 내용인데?
네. 저도 기억에 없어요.
그렇다면 기록이 안 된 역사겠네.
천사군과 에센시아 제국 사이에 이루어진 연합 협정서.
이건 아마도 황제와 대천사끼리 따로 만든 협정서일 확률이 높았다.
겉으로는 공표가 안 된.
성마대전 기록에 없는 내용들.
대천사 녀석이 연합 협정서를 들먹이자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
저 반응을 보면 황제는 지금 대천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다.
“네 이놈…….”
팔을 부들거리면서도 차마 다음 말을 내뱉지 못하는 걸 보면.
아마도 지금 상황에서 꽤나 황제에게 불리한 사항인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천사 녀석이 연합 협정서의 내용을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상기시켜주었다.
“천사군의 기술 중 일부를 넘겨주는 대가로 대륙에서 활동하는 모든 마왕의 행적에 대한 조사를 우리 대천사에게 최우선적으로 일임한다는 조건과 정보 제공 의무. 잊지 않았겠지?”
이건 어떻게 보면 불공정 조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에센시아 제국이 아닌.
대천사들에게 불리한.
천사군은 자신들의 기술만 제공할 뿐.
실질적으로 얻는 이득은 그다지 없으니까.
어차피 마왕에 대한 견제는 대천사들이 하는 일 중 하나다.
그런 대천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굳이 자신들의 기술까지 줘가면서 얻으려 한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재중이 형이 말했다.
대륙에서 활동하는 마왕에 대한 정보를 제국이 제대로 넘겨주지 않으면 자신들도 곤란하니 저런 조항을 넣은 모양인데?
흐음.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네요.
그 의도가 어떻든 천사군은 대륙에서 다른 국가들의 협조를 얻어야 하니까. 그리고 이건 성마대전의 전선에서도 마찬가지겠지. 마왕에 대한 정보는 항상 자신들이 쥐고 있어야 밀리지 않을 테니.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조항은 당연한 요구일 수도 있었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각 국가들이 마왕들의 이동 경로나 행적 등을 천사군에 알려주는 것 정도로 끝났겠지만.
지금은 그 조항이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발목을 제대로 붙잡고 말았다.
마왕 헤르게니아에 대한 정보 제공과 더불어.
그녀의 행적에 대한 조사권까지.
특히 헤르마늄 광산에 봉인되어 있던 마왕 헤르게니아의 탈출은.
대천사들에게 완벽한 명분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원래라면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헤르마늄 광산에 대한 우선권을 쥐고 있겠지만.
이젠 상황이 뒤집힌 셈이다.
연합 협정서라는 게 얼마만큼의 강제력을 발휘하는지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황제의 일그러진 저 표정만 보면.
아주 제대로 발목을 잡은 모양이었다.
거기다 대천사들은 한술 더 떠서 다른 사실도 이야기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결계에서 탈출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도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텐가?”
천사의 결계를 들먹이자 곧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이를 갈았다.
흐음?
설마 황제도 이미 알고 있었나?
뭐 헤르마늄 광산을 조사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 테니.
반대로 생각해보면 황제는 오히려 더 좋아했을 수도 있었다.
꺼림칙한 마왕이란 적이 알아서 사라진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황제의 입장에서는 굳이 대천사들에게 이를 알려서 헤르마늄 광산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황제가 알고서도 그 사실을 숨겼다는 말이 나오는 거겠지.
만약 이것까지 인정하게 되면.
황제는 더욱더 저 대천사들을 말릴 수 없게 된다.
“흠. 전혀 모르는 일이로군. 우리가 헤르마늄 광산을 찾았을 때 마왕이란 존재는 애초에 없었으니까.”
일단은 발뺌한다 이건데…….
뭐 할 말이 없을 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헤르마늄 광산에 아예 마왕이 없었다고 해버리면.
저 연합 협정서는 바로 힘을 잃게 된다.
마왕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게 아니게 되니까.
“지금 대천사인 우리에게 거짓을 말하려는 것이냐?”
“하! 네놈들이야 말로 감히 에센시아 제국 황제인 내 앞에서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헤르마늄 광산을 노리고서 말이지.”
“무슨! 우린 마왕에 대한 조사만 하면 된다.”
“마왕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조사할 필요는 없겠군.”
“황제! 지금 그게 말이라고!”
“그럼 네놈들이 하는 건 말이냐?!”
서로의 말이 거짓이라고 외치며 황제와 대천사가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버렸다.
이거 참. 무슨 애들도 아니고. 서로 우기는 것만 배웠나.
하하. 그러게요.
대천사는 자신들이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헤르마늄 광산을 장악하고자 했고.
반대로 황제는 모른다는 말로 연합 협정서를 무마시키려고 했다.
둘의 입장에 확연히 갈라지게 되면.
이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거다.
아니면 좀 더 막 나가는 놈이 이기는 거지.
그렇다고 여기서 서로 무력을 쓰게 되는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밖에서 대기 중인 마왕군에게 에센시아 제국과 헤르마늄 광산을 전부 넘겨줘야 할 테니까.
황제나 대천사나 서로 마지막 이성을 붙잡고 있는 게.
지금 저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거 참. 잘못하면 하루종일 여기서 붙잡혀 있을 수도 있겠는데?
아무래도 여기서는 결론이 안 날 것 같죠?
그렇지. 대천사들이 헤르마늄 광산에 들어가려면 마왕 헤르게니아가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데. 어차피 광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상은 불가능해.
당장 마왕 헤르게니아가 나타나서 자신이 헤르마늄 광산 안에 있었다고 선포하지 않는 이상에야…….
그리고 그 맹점을 지금 황제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어차피 달리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까.
뭐 일단은 효과적이기도 했고.
만약 여기서 대천사들이 막무가내로 출전하면 바로 무력 충돌이다.
지금도 서로 쌍욕을 하고 있을 뿐.
아무리 기다려도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자 슬쩍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슬슬 나설까요?
좋을 대로. 애들 싸움도 지겨워지려고 하네.
그럼 교통정리 좀 해주고 올게요.
사실 에센시아 제국군과 천사군이 당장 이곳에서 치고 받아주면 고맙겠지만.
둘 다 머리에 총을 맞지 않는 이상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안다.
원하는 게 많은 만큼.
지켜야 할 것도 많은 녀석들이니까.
“흠흠.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서로 원수 보는 것 마냥 노려보면서 기를 세우던 황제와 대천사가 동시에 내 쪽을 돌아보았다.
저 대천사 녀석은 좀 웃기네.
좀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곳에 없는 것처럼 무시하던 녀석이었는데.
대천사가 황제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듯 물었다.
“저건 누구지?”
아무래도 저 대천사 녀석은 머리가 좀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황제의 대전에 들어와 독대하고 있을 정도면 보통 직위는 아닐 텐데.
아니다.
어차피 대천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의 직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에센시아 제국 황제 앞에서도 저렇게 막 나가는데 말이야.
“타란 제국의 대공이다.”
“흠…….”
날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전에 내가 목을 날린 천사 녀석과 똑같은 표정이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너무 약한데? 저게 그 타란 제국의 대공이라고?”
그러자 옆에서 다른 대천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예 무표정에 가까운 녀석이라.
앞에서 황제와 드잡이 하던 대천사 녀석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저 녀석은 카샤스 대공이 아니다.”
“알고 있나?”
“전에 전선에서 한 번 스치듯 본적이 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또 다른 대천사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카샤스 대공은 훨씬 강하지. 우리도 어려운 상대다.”
저 자존심 빼고는 시체인 대천사 녀석의 입에서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
카샤스 황제가 성마대전 전선에서 얼마나 맹위를 떨치고 다녔는지 잘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보기에 난 너무 약해 보일 터.
하.
이거 또 귀찮게 꺼내야 하네.
전에 그랬듯 용신검 아스카론을 꺼내 들자 대전이 황금빛으로 환하게 물들었다.
그 순간 모든 대천사들이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채가 섞인 놀랍다는 눈빛으로.
에센시아 제국 황제 역시 비슷한 눈빛을 보냈다.
“흠. 용신검인가.”
“카샤스 황제께서 밖에 나가서 일 보기 편하라고 쥐어 주셨습니다만.”
“그런가. 카샤스가 그대를 많이 신뢰하는 모양이군.”
용신검 아스카론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상위의 무구였다.
이 무구를 들고 있는 이상.
대천사들 역시도 절대 날 쉽게 보지 못 한다.
무구의 힘 자체도 있지만.
이건 타란 제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무구이기도 하니까.
곧 대천사들에게 말했다.
“이제 좀 내가 대공 같아 보이나?”
“……흠.”
뭐 어차피 저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꺼낸 건 아니다.
좀 더 말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려고 꺼낸 거지.
세 대천사들을 한 번 흘깃 쳐다본 후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조언했다.
“이대로라면 마왕군과 전쟁을 하기도 전에 천사군과 전쟁을 할 판이군요. 서로 뜻을 굽힐 생각이 없으니까요.”
“흠.”
마왕군을 언급하자 황제와 대천사 모두 인상을 구겼다.
솔직히 당장 서로를 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마왕군일 테니까.
뭐 천사군 입장에서는 에센시아 제국 지역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일 수 있겠지만.
그 경우 헤르마늄 광산도 날아가 버리는 문제도 있으니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양측에 제안 하나 드리죠.”
일단 황제가 관심을 보이고 대천사들도 지금의 상황이 답답했는지 내게 귀를 기울였다.
“황제께선 천사군을 헤르마늄 광산으로 보내주시죠.”
“뭐?”
순간 황제가 자신이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눈을 부릅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천사군의 손만 들어준 셈이라.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지.
바로 대천사들을 보면서 말을 꺼냈다.
“대신. 딱 1주일. 그 안에 천사군이 증거를 찾아오지 못하면. 천사군은 헤르마늄 광산에서 영원히 철수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