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1407
1414화 뒷거래 (9)
대천사의 언령.
이건 성마대전 시대의 기록에 간간이 등장하는 단어였다.
계약 이행에 그들의 성력을 걸고 언령을 맺는.
어떻게 보면 대천사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족쇄나 마찬가지인 계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대천사의 언령은 성마대전 전체를 통틀어 몇 번밖에 시행되지 않았다.
그만큼 대천사들에게 강한 제약이 걸리는 계약이기도 했지만…….
전에 전사 형이 성마대전 역사를 살펴보다가 대천사의 언령을 발견하면서 어이없다는 듯 내게 해준 말이 있었다.
‘대천사 새끼들이 얼마나 약속을 안 지키면 이런 게 있냐…….’
맞다.
전사 형 말대로 이건 대천사들이 애초에 약속을 잘 지켰다면 애초에 있을 필요가 없는 제약이지.
존재 이유가 있어야 제약이 의미가 있지.
그런데 우리가 그간 지켜본 대천사들은.
하나 같이 약속 이행은커녕 뒤통수치기 바쁜 녀석들이라…….
그래서 나 역시 잘 기억하고 있었다.
대천사의 언령.
실제로 이걸 언급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나도 몰랐지만.
다른 말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저 대천사 세트들은.
분명히 우리를 포함한 에센시아 제국과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거다.
아니.
거의 백 프로 확률로 뒤통수 칠 게 확실했다.
내 생각에는 마왕들이 오히려 약속을 더 잘 지킨다.
마왕 벨라, 마왕 헤르게니아 모두 그렇고.
심지어 적대 관계에 있던 마왕 녀석들도 대놓고 약속을 엎어버리는 녀석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있어 대천사는.
하나 같이 거짓말을 할 궁리만 하는 놈들이라는 거지.
대천사의 언령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대천사 앙겔스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마치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이랄까.
하긴 이 대천사의 언령이라는 건.
실제 몇 번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데다가.
대다수 천사군 진영 내에서 이루어진 경우였다.
아마 인간들과 대천사의 언령으로 계약을 맺은 게 딱 한 번뿐이었던가?
심지어 이 대천사의 언령이 처음 쓰였을 때는.
마왕군이 대륙 지도를 거의 대부분 삼키고 난 뒤였다.
계속 밀리다 못해 할 수 없으니 여기저기 대천사의 언령을 남발했다고 봐야 한다.
한 마디로 어지간히 불리한.
아니지.
정말 죽을 만큼 불리한 때가 아니라면.
이 대천사들은 절대 대천사의 언령으로 계약을 맺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런 대천사의 언령을 말한 것이다.
“왜? 대천사의 언령은 걸 수 없어?”
“아니…… 그보다 어떻게……?”
“너네들 밖에 모르는 걸 알았냐고?”
옆에 있는 에센시아 제국 황제도 처음 들어보는 듯 다소 놀란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아마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대천사의 언령을 미리 알았다면.
그들과의 모든 계약에 쓰려 했을 것이다.
뭐 대천사들이 어지간해선 절대 해주지 않았을 테지만.
“내가 대천사의 언령을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가?”
사실 알고 모르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걸 지금 쓰려고 하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거지.
“그냥 너네 대천사들 중 하나와 끈이 있다고 말해주면 되려나?”
그 말에 대천사 앙겔스와 대천사 레미넌스 모두 어깨를 움찔했다.
아마 저들 모두 지금 머리가 팽팽히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느 대천사가 대천사의 언령을 알려줄 만큼 나와 연줄이 있을지 떠올린다고.
하지만 아무리 파헤쳐봐야 알 수 없다.
그런 녀석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자 곧 대천사 앙겔스가 인상을 확 구기면서 내게 외쳤다.
“대체 어떤 자식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니네들이 찾아내야지. 그리고 찾아내면 뭐 그 대천사를 죽이기라도 하게?”
“……흠.”
지금 반응을 보니 아주 그럴 생각이 없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자신들의 일에 방해가 된다면 아군이고 뭐고 신경을 안 쓴다는 태도라…….
흡사 마왕들의 생태계를 보는 것 같아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천사 껍데기를 썼다뿐이지.
하는 짓은 영락없는 마왕이나 마찬가지다.
아마 이번 일을 해결하고 나면 다른 대천사들의 뒷조사를 한다고 정신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결국 다시 패는 내 손에 들려졌다.
그리고 지금 저들이 할 수 있는 건.
대천사의 언령으로 계약을 하느냐 마느냐일 뿐.
애초에 선택지 자체는 그 두 개밖에 없었다.
“잠시. 이야기 좀 하겠다.”
“뭐 좋을 대로.”
그러더니 대천사 앙겔스가 대천사 레미넌스와 다른 대천사 녀석을 데리고 우리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그대로 대천사의 결계를 쳐서 그들의 대화를 우리가 엿듣지 못하게 만들었다.
쟤들도 저걸 쓰네요.
그러게.
재중이 형도 신기하다는 듯 잠시 쳐다봤다가 이내 흥미를 잃은 듯 내게 말했다.
어때? 할 것 같아?
음. 아마도 반반?
꽤 높게 쳐줬는데?
대천사의 언령 자체가 리스크가 크잖아요. 쉽게 해줄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린 게 크다면…….
과연 저 고양이들이 생선 가게를 그냥 지나칠까?
대륙 최대 규모의 헤르마늄 광산.
이걸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데.
재중이 형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먹을 게 커 보이면 어쩔 수 없이 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대천사의 결계가 풀리면서 셋이 걸어 나왔다.
그러더니 대천사 앙겔스가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좋다. 하도록 하지.”
“좋을 대로.”
“다만. 몇 가지 조건은 조정해야겠다.”
그런 대천사 앙겔스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하! 그런 건 아니다. 계약이 너무 불리하니까…….”
“이 계약의 어디가 불리한데? 오히려 너네가 무조건 이득 아냐?”
내 당당한 말투에 대천사 앙겔스의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꽉 깨물었다.
그래.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이건 대천사들에게 굉장히 유리한 조건의 계약이다.
조금만 잘 풀리면 헤르마늄 광산을 그냥 점유할 수 있는.
반대로 안 풀리더라도 저들이 우기기 시작하면 절대적으로 우리가 불리한 계약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천사의 언령으로 계약한다는 걸 꺼려한다라…….
저 새끼들. 애초에 지킬 생각도 없었네.
네. 그러니까 저렇게 유리한 계약도 계속 바꾸려고 하죠.
결국 내가 팔을 휘저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 조건으로 하려면 하고. 아니면 때려치워.”
“아니. 잠깐……!”
그러더니 다시 저들끼리 회의에 들어갔다.
어지간히 마음이 급한지 이번에는 대천사의 결계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좋다. 대신 조금만 기다려라. 대천사의 언령은 다른 녀석이 와서 할 거다.”
응?
다른 녀석?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 없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분명 에센시아 제국에는 네 명의 대천사가 왔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는 셋밖에 없지.
그렇다는 건.
다른 한 녀석은…….
슬쩍 재중이 형에게 눈짓하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쪽은 접촉해봐야겠는데?
네. 아무래도 이 녀석들하고 같은 줄은 아닌 것 같아요.
대천사의 언령은.
제약이 크다.
만약 계약을 어겼을 경우.
대천사는 그 힘을 잃고 대천사의 직위를 박탈당한다.
그리고 대천사에게 힘이 없다는 건.
목숨을 잃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본인은 하기 싫은데.
다른 녀석을 내세워서 한다라.
대천사 앙겔스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
바로 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네가 해.”
“뭐?”
“네가 대표잖아. 당연히 네가 해야지. 내가 다른 녀석을 어떻게 믿고.”
그러자 대천사 앙겔스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대천사 레미넌스를 쳐다보았다.
마치 도와달라는 듯.
하지만 대천사 레미넌스는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바로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이 자리에서 타란 대공이 원하는 대상은 너다.”
“이 새끼가……!”
오. 대천사도 욕을 하는데?
네. 재밌네요.
곧 대천사 레미넌스가 날 보면서 시치미 떼듯 물었다.
“안 그런가? 타란 대공?”
참 이럴 땐 쿵짝이 잘 맞는단 말이야?
결국은 이 녀석도 자기 일은 아니라는 거다.
조금 장난을 쳐줄까?
“난 딱히 이 녀석이라도 상관없는데?”
그 순간.
대천사 앙겔스가 신난다는 듯 외쳤다.
“그럼. 네가 해라.”
그 말을 들은 대천사 레미넌스의 표정이 싸하게 굳었다.
“타란 대공. 지금 나와 장난하나?”
“아니. 어차피 너나 쟤나. 나한테는 똑같거든. 사실 이 자리에 있는 대천사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어.”
대놓고 너네들끼리 치고 받아보라는 뜻을 보이자.
두 대천사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렇다면…….”
“아. 그 밖에 있는 녀석은 안 돼.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잖아. 내가 뭘 믿고.”
그 순간 대천사 앙겔스와 대천사 레미넌스의 시선이 다른 한 곳으로 돌아갔다.
밖에 있는 녀석이 안 된다.
반면 이 자리에 처음부터 같이 있던 녀석은 하나 더 있으니까.
“대천사 베이넌. 네가 나서줘야겠다.”
그 말에 그동안 가만히 지켜만 봤던 대천사 베이넌이 인상을 구겼다.
싫다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지만.
잠시 침묵을 지키던 대천사 베이넌이 대천사 앙겔스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다.”
그리고는 대천사 베이넌이 입 모양만으로 간단한 단어로 뭔가를 말하자 대천사 앙겔스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떻게든 들어주겠다.”
“확답이 필요해.”
“끄응. 알았다.”
그러더니 대천사 앙겔스와 대천사 베이넌이 두 손을 맞잡았다.
동시에 처음 듣는 언어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순간.
둘을 감싸듯 처음 보는 새하얀 빛의 마법진이 수십 개가 형성되어 돌더니 두 대천사의 심장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실제로 쓰는 건 처음 봐서 그런지 약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대천사의 언령으로 저들끼리 뭔가 거래를 했군.
네. 그런가 봐요.
분명 대천사 베이넌도 꺼려하는 눈치였는데.
뭔가를 조건으로 잡고 대신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저들끼리도 어지간히 못 믿는가 본데?
그러니 대천사의 언령을 썼겠죠.
같은 대천사들조차 서로를 못 믿어서 저렇게 계약을 하는데.
대천사의 언령이 없었다면 아마 대놓고 후려치려고 했을 게 뻔했다.
곧 대천사 베이넌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래서 본인이?”
“그렇다.”
“뭐 나야 상관없지.”
그리고는 일전의 계약을 적은 계약서를 사이에 두고 대천사 베이넌과 손을 맞잡았다.
《 대천사 베이넌이 유저 주호와 대천사의 언령을 계약하려고 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
그러자 내 눈앞에 퀘스트 형식으로 계약서와 함께 관련 정보가 쭉 나열되었다.
특별히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허락을 하자 이전 때와 마찬가지로 나와 대천사 베이넌 사이에 계약이 완료되었다.
“깔끔하네?”
뭔가 장난을 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확실하게 계약이 맺어졌다.
다소 기분이 나쁘다는 듯 대천사 베이넌이 말했다.
“대천사의 언령을 의심하지 마라.”
“아. 계약은 의심하지 않지.”
너네는 의심하지만.
뭐 어쨌든 확실한 족쇄가 걸렸으니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그리고 이 계약은 아주 심각한 허점이 존재했다.
아마 저들은 끝까지 모르겠지만.
재중이 형도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 허점을 아는 건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라.
큭. 노예 확정이네.
네. 원하는 노예는 아니지만. 이 녀석도 나쁘지 않죠.
말 드럽게 안 들을 것 같은 녀석과 의심스러운 녀석들보다야 뭐…….
곧 대천사 베이넌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넌 지금 악마의 계약을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