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1408
1415화 뒷거래 (10)
일단 대천사의 언령 효과는 절대적이다.
이걸 확신할 수 있는 건.
내 옆으로 퀘스트 형식의 계약서가 떴기 때문이지.
특히 내 시선에 들어오는 건.
대천사의 언령을 어겼을 때의 패널티였다.
《 대천사의 언령 패널티. 》
– 대천사의 언령에 적힌 조항을 이행하지 않을 시 대천사의 모든 스탯이 50% 하락합니다.
– 대천사의 직위가 해제됩니다.
대천사 입장에서는 이건 그냥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사군에서 그들의 직위를 유지 시켜 줄 수 있는, 근간이 되는 힘 자체를 뺏어버리는 거니까.
뭐 스탯 자체가 50%나 깎인다고 해도 절대 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최상급 천사 정도야 씹어 먹을 정도는 될 테니.
하지만 다른 대천사들과 비교해 버리면.
압도적으로 약해지게 된다.
이건 마왕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
대천사라는 자리 자체가 마왕을 상대하기 위한 천사군의 힘인데.
애초에 마왕을 상대로 싸울 수조차 없는 대천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혹시라도 대천사의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마왕에게 썰려 나가는 수모를 겪게 되겠지.
그런 대천사를 가만히 둘 녀석들도 없을 테고.
그만큼 대천사의 언령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계약인 것이다.
대천사의 언령으로 계약을 맺자 에센시아 제국 황제도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보였다.
물론 그 와중에 다소 불만이 있는 듯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천사 앙겔스를 넌지시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런 계약이 있다는 걸 미리 알려주었으면 좋았지 않겠나.”
마치 그동안 자신에게 한 번도 대천사의 언령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랄까.
뭐 지금까지 대천사와 에센시아 제국 황제 사이에 이루어진 계약이 적지 않을 테니.
아마 그중에 중요하지 않은 계약은 한 건도 없었을 것이다.
전부 굵직한 계약들만 있었을 텐데.
그런 계약을 하는 동안에도 대천사들은 입을 꾹 닫고 대천사의 언령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흠.
이건 언령의 패널티만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려나?
굳이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자신들의 약점을 드러낼 이유는 없을 테니.
그리고 이건 언제라도 수가 틀어지면 계약을 엎을 생각이었다는 거다.
대천사의 언령으로 이루어진 계약은 절대적이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스스로 나서 자신의 목에 방울을 달 필요가 없었다.
황제의 말에 대천사 앙겔스가 살짝 짜증이 난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다음 계약부터는 황제가 대천사의 언령을 걸고 계약을 해 달라 할 게 뻔했다.
“대천사의 언령은 아무 때에나 남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흠.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그리고는 마치 놀리듯이 대천사 앙겔스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간 이루어진 계약들도 한 번 재검토 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나.”
“하……!”
아예 대놓고 기존에 해놓은 계약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황제가 말하자 다시 한 번 대천사 앙겔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 모습을 보고는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황제 저거 생각 이상으로 뒤끝 있는데?
정말요. 저 앙겔스를 상대로 제대로 엿 먹이네요.
그동안 계속 자신을 속인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겠지.
황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껏 해온 계약들도 대천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파토낼 수 있다는 걸 잘 알게 되었으니.
물론 대천사들도 대놓고 계약을 엎거나 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지금처럼 헤르마늄 광산 같은 이득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
황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거다.
당장 대천사들이 자신의 앞마당에서 깽판을 치고 있는 것도 그렇고.
곧 대천사 앙겔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를 갈면서 발을 박차고 돌아서더니 그대로 대전을 나가버렸다.
그러자 대천사 레미넌스가 내 쪽을 보면서 말했다.
“타란 대공. 대천사의 언령으로 계약했으니 반드시 이행될 거다.”
“그렇다면야.”
내 쪽에선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하자 대천사 레미넌스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번엔 그대에게 한 방 먹었군.”
그런 대천사 레미넌스의 말을 듣자마자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들 역시 계약 따윈 안중에도 없었네.
네. 만약 대천사의 언령이 없었다면 무조건 자기들 뜻대로 해버렸을 거예요.
하지만 이젠 그게 쉽지 않을 거다.
행동의 제약이 걸리니까.
그리고는 대천사 레미넌스가 내게 말을 이었다.
“다음에 볼 때는 네게 정보를 준 그 대천사를 한번 보고 싶은데. 자리를 만들어주면 안 되겠나?”
그런 대천사 레미넌스의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녀석의 속셈이 눈에 뻔히 보이니까.
곧 대천사 레미넌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왜? 두들겨 패기라도 하게?”
“……흠.”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약점을 내가 대놓고 공개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천사 입장에서만 보면 내가 죽일 놈이라는 거지.
그리고 그 약점을 알려준 대천사는 더 그렇고.
다시 웃으면서 대천사 레미넌스에게 말했다.
“이름을 알고 싶다면. 그만한 대가를 가지고 와.”
어디서 공짜로 낼름 먹으려고 하냐는 뜻을 확실하게 전달하자 대천사 레미넌스도 잘 알아들었는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대에게서 이름을 듣긴 어렵겠군.”
“대가만 충분하다면야. 못할 것도 없어.”
“그 말. 기억해두도록 하지.”
이건 거래다.
천사군 내부의 배신자에 대한 정보.
만약 이 정보를 들으려면.
대천사 레미넌스는 내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속으로 웃음 지었다.
과연 대천사 레미넌스는 내 입에서 어떤 이름이 나오기를 원할까?
만약 대놓고 마왕 헤르게니아가 싫어하는 대천사 아그네스 같은 이름을 말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굳이 가만히 있는 벌집을 들쑤셨다가 후폭풍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여기서 대천사 아그네스까지 개입하면 일이 너무 복잡해진다.
적어도 이곳에서의 일을 확실히 매듭지어놓은 다음…….
그땐 뭐 천사군을 한 번 흔들어놓을 겸 한 번 질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 대천사 레미넌스 역시도 대전을 나가자 지금까지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대천사 베이넌도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 대천사 베이넌에게 손을 흔들어주면서 외쳤다.
“다음에 또 보자고? 대천사 베이넌!”
마치 오래된 친구를 부르듯 너무 자연스러운 말투에 대천사 베이넌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보면서 웃어버렸다.
“재밌는 놈이군.”
응?
이건 내 예상과 완전 다른 반응인데?
분명히 분노한 표정 같은 걸 지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 우리와 대천사의 언령을 맺은 건 대천사 베이넌이었다.
그것도 반강제적으로.
물론 그 와중에 대천사 베이넌도 대천사 앙겔스에게 뭔가의 대가를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움직였다는 건.
대천사 정도 되는 녀석에게는 꽤 굴욕적인 상황이지 않았을까.
기분이 좋지 않아야 정상 아닌가?
하지만 지금 보이는 태도는 그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자 재중이 형 역시 재밌다는 듯 내게 말했다.
흠. 성격 좋은 노예인가?
나쁘지 않네요.
원래는 대천사 앙겔스의 목에 방울을 채울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이 녀석이 오히려 더 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왕이면 보다 협조적인 녀석이 낫지 않겠는가 싶기도 하고.
뭐 건방진 대천사 앙겔스를 놀려주는 것도 재미는 있긴 하겠지만.
“그래. 다음에 보도록 하지.”
곧 대천사 베이넌도 대답을 해 주고는 그대로 대전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대천사들 중 누구도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예를 표하지 않았다.
슬쩍 황제를 쳐다보자 그도 짜증난 걸 감추지 않았다.
“건방진 자식들 같으니라고.”
“마음에 들지 않나 봅니다.”
그리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들의 목에 목줄을 채웠지 않습니까.”
“흠. 그것 하나는 썩 마음에 드는군.”
만족한 듯한 에센시아 제국 황제를 보면서 나 역시 웃었다.
지금 이 계약을 맺은 건 다름 아닌 나다.
눈앞의 황제가 아니고.
황제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분명히 그걸 알 텐데?
잠시 나를 쳐다보던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곧 속에 담긴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대천사의 언령에는 큰 허점이 있군.”
“허점…… 입니까?”
“그렇다.”
슬쩍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흠. 황제도 아나 본데?
네. 그런가 봐요. 굳이 계약 주체에 대해서 따지지 않는 걸 보면요.
하긴 이 녀석도 한 나라를 황제니까. 그 정도의 머리는 돌아가겠지.
답을 기다리고 있자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눈을 번뜩이면서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천사군의 우두머리라면. 대천사 베이넌을 버리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빙고.
대천사의 언령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빠져나갈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언령의 범위를 벗어나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말하는 건.
딱 그 범위를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만약 계약을 파토내고 싶다면.
계약 주체인 대천사 베이넌 자체를 없애버리면 된다.
“황제께선 깨어질 계약이라 여겼습니까?”
내 물음에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센시아 제국에서의 내 위치와 달리. 대천사 베이넌은 많은 대천사들 중에 하나일 뿐이니까. 언제라도 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대체할 자원이 많다는 거군요.”
“어차피 천사군 전체로 보면 부속품 중 하나일 뿐이야. 헤르마늄 광산의 가치와 대천사 하나의 가치를 저울질 해보면서 답이 나오지 않는가.”
생각 이상의 명석함과 냉정함.
그동안 황제를 다소 무시했던 생각을 지금 싹 지워버렸다.
그 상황에서도 황제는 이해득실을 확실히 따지고 있었다.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황제에게 물어보았다.
어쩌면 이건 황제의 숨겨진 부분을 건드리는 질문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절대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기도 했고.
“그건 황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까?”
그러자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가 이내 마음에 든다는 듯 크게 웃어버렸다.
“하하. 그것참. 흥미로운 질문이군.”
곧 황제가 언제 웃었냐는 듯 싸늘한 미소와 함께 내게 말했다.
“의외로 대공과 난 통하는 곳이 많은 듯 하군.”
“과찬입니다.”
그러더니 곧 황제가 굉장히 아쉽다는 듯 내게 말을 꺼냈다.
“주호 대공. 그대가 내 자식들 중 하나였다면 좋았을 뻔했는데 말이지.”
《 에센시아 제국 황제 카이사르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에센시아 제국 황제 카이사르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에센시아 제국 황제 카이사르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응?
갑자기 여기서?
내가 뭘 건든 거지?
아까 전 대천사의 언령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을 때도 뜨지 않았는데?
심지어 대천사들과의 계약을 맺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설마 자식들의 이야기를 해서?
아님 지금까지의 것들이 중첩되어 적용된 거려나?
“그래. 내 자식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대체품들 중 하나일 뿐이지. 아무리 황위 계승권이 높다라고 한들.”
순간 머릿속에 빠르게 정보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건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건. 1황자를 말한 거군.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흐음. 그렇다면 이미 황제는 1황자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