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1411
1418화 뒷거래 (13)
그간 만나 봤던 대천사들은 하나 같이 예의를 밥 말아먹은 녀석들 밖에 없었는데.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대천사를 보니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중이 형 역시도 신기한 녀석을 본다는 듯 말했다.
얘가 정상이야? 아님 다른 녀석들이 정상이야?
그런 재중이 형의 반응에 웃으면서 답했다.
이 녀석이 정상이면 좋겠네요.
솔직히 안하무인인 대천사들보다 오히려 마왕들이 더 낫다는 생각도 몇 번 했을 정도라.
그런 의미에서 지금 눈앞의 대천사 유니티는 내게 상당한 점수를 딴 상태였다.
아마 친밀도 표시가 있었다면 상당히 올라가지 않았을까.
대천사 유니티와 함께 우리 팀이 있는 숙소로 들어가자 다들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 얘기 좀 하자고 불렀어요.”
그리고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 앉았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대천사 유니티가 무뚝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건 감정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 무채색의 눈빛이랄까.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나요.”
딱 부러지게 용건만 물어보는 모습이라.
어떻게 보면 거의 군인에 가까운 느낌이려나?
잠시 이야기 했을 뿐이지만.
잘 버려진 칼과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연스럽게 규율이 몸에 베어 있는 딱 그런 모습.
“일단은 호기심이라고 할까요.”
“단순히 호기심뿐이라면…… 시간 낭비를 한 것 같습니다. 주호 대공.”
약간의 실망감이 대천사 유니티의 눈빛에 스치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이런 유형의 대천사에게는 굳이 돌아가면서 대답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음.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으니.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혹시 대천사 앙겔스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대놓고 대천사 앙겔스와의 관계를 묻자 대천사 유니티의 눈가에 이채가 띄었다.
하지만 곧 그런 눈빛을 감추고는 기계적인 대답을 했다.
“천사군은 외부인에게 해당 정보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딱 떨어지는 군인의 대답이라……
그러자 재중이 형이 정말 신기하다는 듯 감탄했다.
이제야 좀 대천사 같아 보이는 녀석을 만났는데?
하긴.
그동안 만났던 대천사 녀석들이 워낙 개차반이라.
말을 돌려가면서 후려치는 녀석들만 보다가 대천사 유니티 같은 대천사를 만나니 오히려 더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질문이 잘못 되었나 보네요. 그렇다면 왜 혼자만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의 회담에 나오지 않으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 질문 역시도 아웃인 듯 했다.
“관련 정보 역시 대천사들의 비밀 정보에 해당됩니다. 답변 드릴 수 없습니다.”
와. 이 녀석에게는 대답 한 번 듣기 힘든데?
그러게요. 정말 칼 같네요.
지금껏 이만큼 입이 무거운 녀석은 대천사와 마왕.
전체를 통틀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이게 대천사의 정석인가 싶을 정도로.
그리고 이런 유형은 정보를 캐기 정말 어려운 유형 중에 하나였다.
본인이 아예 대답 자체를 안 해주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공법에서 약간은 노선을 비틀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흠. 대답해주실 수 없는 부분이 많군요.”
“주호 대공도 타란 제국의 대공의 자리에 앉아있는 만큼 천사군의 내부 규율을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마치 대천사 유니티가 말하길.
너도 제국의 군인인데다가 그들을 통제하는 자리니 이 정도는 이해하라고 말하는 듯 했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고.
여기서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내가 유저라는 점이랄까.
“뭐 좋습니다. 대답할 수 없는 정보라면. 파고들지 않도록 하죠. 다만……”
내가 말을 끌자 대천사 유니티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 아무런 소득도 없이 일어나면 서로에게 이득이 되진 않을 것 같은데요.”
만약 타란 제국의 대공인 나와 대화하기를 거부했다면.
아까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했어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천사 유니티는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그렇다는 건.
이 대천사도 내게 뭔가 바라는 게 있을 지도 모른다는 뜻이 된다.
그걸 알아내는 건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하는 일일 테고.
내 말을 모두 들은 대천사 유니티가 짧게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협조하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돌려 말하지 않는다.
되는 건 되는 거고.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래서 더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진짜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건 아쉽지만.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 쪽에서 정보를 하나 풀어주고 그 정보가 마음에 든다면……”
“제 쪽에서도 정보를 달라는 건가요?”
“네. 딱 원하는 만큼만 서로 정보를 나눠보죠.”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대천사 유니티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규율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는.”
대천사의 규율이라.
과연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기회에 알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흠. 그럼 일단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의 회담 이야기부터 해드릴까요?”
대천사 유니티는 어떤 이유 때문에 그 회담에 참여하지 못 했다.
그러니 궁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확실히 흥미를 보이는 듯 했다.
“우선. 에센시아 제국 황제와 대천사들이 대천사의 언령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순간 대처사 유니티의 눈이 화들짝 커지면서 놀란 눈빛을 보였다.
무뚝뚝한 듯 했는데 저렇게 놀란 눈빛도 보일 줄 아나?
아니다.
그만큼 지금의 정보에 놀란 것이다.
대천사의 언령.
이게 내 입에서 언급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테니.
“그럴 리가…… 정말 대천사 앙겔스가 대천사의 언령을 맺었다고요?”
“아. 대천사 앙겔스는 아닙니다만. 대천사…… 베이넌이랬던가? 아무튼 그런 이름이었죠.”
잠시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가 곧 평정을 되찾고는 나를 노려보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주호 대공이 대천사의 언령은 대체 어떻게 안 거죠?”
“왜 제가 안다고 생각했습니까?”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대천사 유니티가 대답했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대천사의 언령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대천사들이 일부러 관련 정보를 막았으니까요.”
오호라.
그랬다 이거지?
순간 아차 싶었는지 대천사 유니티의 얼굴이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대놓고 정보를 숨겼다고 자인한 셈이라.
“아. 저도 딱히 에센시아 제국 황제에게 말하진 않을 겁니다. 이미 카이사르 황제가 대천사의 언령에 대해 알아버렸으니 의미도 없고요.”
“네……”
“그리고 대천사의 언령을 제가 아는 이유가 궁금하죠?”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몰랐다면 결국 그 정보를 알고 있는 건 나 밖에 없게 된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결국 대천사 유니티가 손을 들었다.
“궁금합니다.”
“그렇다면 이걸 대답해드리는 대신. 제게도 적절한 정보가 왔으면 좋겠습니다만.”
잠시 고민을 하던 대천사 유니티가 내게 물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나요?”
“음. 당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 정도면 될까요?”
대천사 앙겔스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묻지 말라고 했는데다가 회담에 참가하지 못한 이유도 묻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물을만한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저 대천사 유니티의 포커 페이스에 균열을 내야 한다.
어차피 대천사 앙겔스는 내가 어떻게 해서 대천사의 언령을 알고 있는지 이미 들었었다.
대천사 유니티가 대천사 앙겔스에게 물어보기만 하면 궁금증을 해결하는 건 쉽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런 가능성을 일축하는 듯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마치 서로 전혀 정보 교류를 하지 않는 것마냥.
그러니 지금 내게서 정보를 알아내려고 저렇게 고민을 하는 거지.
이걸 재중이 형도 이상하게 여겼는지 내게 말했다.
저 대천사 유니티. 다른 대천사들하고 결이 다른데?
네. 좀 겉도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같이 이곳 에센시아 제국에 왔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의 역할이 다를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웠다.
곧 대천사 유니티가 졌다는 듯 말을 꺼냈다.
“사실 전 이곳에 파견된 다른 대천사들과 역할이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다는 거죠?”
말을 할까 말까 잠시 머뭇거리던 대천사 유니티가 결국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전 다른 대천사들의 감시 역으로 이곳 에센시아 제국에 파견된 겁니다.”
감시 역?
순간 재중이 형과 눈빛이 마주쳤다.
호오. 이거 봐라?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데?
네. 생각도 못 했는데.
그때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였는지 내게 말했고.
혹시 저 대천사 유니티가 중앙 천사군 감찰원 소속 아냐?
아. 그럴 수도 있겠어요.
같은 대천사들을 감시한다는 건.
그만한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기에 그런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곳은.
천사군 내부에서도 딱 한 곳밖에 없었다.
중앙 천사군 감찰원.
이전에 내가 타란 제국에서 천사들을 상대로 뻥을 칠 때 써먹은 곳이기도 하고.
살짝 놀랍다는 듯 대천사 유니티에게 물었다.
“중앙 천사군 감찰원에서 나온 겁니까?”
내 입에서 중앙 천사군 감찰원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대천사 유니티가 화들짝 놀라면서 등 뒤로 네 장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폭발적인 하얀 빛과 기세가 사방으로 터져나오면서.
“대체 그걸 어떻게……?!”
숙소가 통째로 날아갈 것마냥 흔들리자 일단 대천사 유니티를 진정시키기로 했다.
“이건 전에 말해주기로 했던 그 정보와도 통하겠군요.”
“무슨?”
“사실 좀 아는 대천사가 있습니다만.”
“하…… 지금 그걸 믿으라고……!”
“아니면 외부인인 제가 대천사의 언령과 감찰원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감찰원에 대해서 알려지는 건 지금보다 훨씬 이후의 이야기다.
시기는 다르지만 결국은 알려진다는 거지.
아무리 천사군 내부의 비밀이라고 해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내가 하는 말도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대천사 유니티도 같은 생각인지 내게 물었다.
“그 대천사의 이름을 알려주셔야겠습니다.”
외부로 정보를 발설하는 대천사를 벌하기라도 하겠다는 거려나?
여기서부터는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된다.
거기다 대천사 유니티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도 있었고.
“제가 이 자리에서 정체를 말해주면. 감히 당신이 그를 벌할 수 있긴 합니까?”
순간.
대천사 유니티의 포커 페이스가 확 깨져버렸다.
“말도 안 되는……!”
그녀는 지금 생각할 것이다.
감찰원이 그녀가 감히 벌할 수 없는 존재.
아마 꽤나 그 범위가 좁혀지긴 하겠지만.
자신의 직위로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그런 위치의 대천사들.
“그럼 나중에 돌아가서 확인 해보시죠?”
대천사 유니티가 들쑤실 수 없는 존재들이라면.
앞으로도 대천사 유니티는 관련 정보를 캘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의심은 계속 하겠지.
파고들진 못하지만 적당한 의심.
지금은 딱 이 정도가 좋다.
대천사 유니티가 살짝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천사군이 타란 제국과 손을 잡았다는 걸 믿으라는 건가요?”
“정확하게는 타란 제국이 아니라 저와 손을 잡은 거겠죠.”
“말장난은 그만두시죠.”
뭐 말장난이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
타란 제국의 대공은 타란 제국을 대표하는 무력이기도 하니까.
흠.
이쯤에서 다른 패도 한 번 던져볼까?
“사실 그분은 대천사 앙겔스. 그를 의심하고 있습니다만.”
대천사 유니티가 왜 굳이 감찰을 하러 이곳에 왔을까.
그 답은 뻔하다.
내가 대천사 앙겔스를 언급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확연히 굳어버렸다.
확실하다고 여겨지자 입가에 웃음을 보이면서 말을 꺼냈다.
“그럼 어떻게. 제대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대천사 유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