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1422
1429화 대천사 사냥 (8)
현재 에센시아 제국 안으로 들어온 물자 수송선 안에는 마왕군들이 숨을 죽이고 대기하는 중이었다.
신호가 떨어지면 언제라도 물자 수송선 밖으로 나와서 성벽을 비롯한 군사 시설을 장악하기 위해.
지금이야 갑판 쪽에 헤르마늄 광석들을 잔뜩 선적해 시선을 돌리고 마왕 헤르게니아의 마법으로 마왕군의 기운을 숨겨 들키진 않겠지만.
그런 물자 수송선을 조사하는 대상이.
마왕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진 대천사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일단 마왕군을 숨겨놓은 마왕 헤르게니아의 위장 마법이 간파당할 확률이 높았고.
거기다 그런 위장 마법보다도 마왕 헤르게니아의 정체를 파악 당하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에센시아 제국 안에 마왕이 갑자기 나타난다?
이건 바로 비상이 걸리고 에센시아 제국의 모든 군대가 투입될 것이다.
그러면 외부 수로를 통해 추가로 더 들여와야 할 백여 대가 넘는 물자 수송선들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아예 막혀버리게 될 터.
반대로 이미 관문을 넘어와 에센시아 제국에 들어온 물자 수송선들은 그대로 고립이 되어버린다.
빠져나가지도.
그렇다고 정면으로 싸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병력 숫자.
이렇게 고립되는 순간.
아무리 마왕이 끼어있다고 하더라도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뭐 마왕 헤르게니아가 포위를 당한다고 해서 그녀가 죽을 리는 없겠지만.
어차피 다른 마왕 넷이 더 대기 중이니.
순수한 무력 면에서는 절대 에센시아 제국에 밀리지 않는다.
다만.
너무 많은 피해와.
굳이 입지 않아도 될 피해까지 산정해 보면.
작전은 거의 실패나 다름없었다.
우리 목적은.
에센시아 제국 수도에 무혈입성하는 거니까.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입성 상황에 너무 많은 피해를 보게 된다면.
결국 시간이 흘러 다른 방향으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내가 잠시 대답이 없자 답답했는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시 연락을 넣었다.
왜 대답이 없어? 그냥 들이받아?
아. 잠시 생각 좀 해본다고. 만약 이대로 들이받으면 피해는?
으응.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저 대천사 유니티라는 년은 내가 막는다고 치면 시간을 벌 수 있긴 해. 그 사이에 마왕 하킨하고 다른 마왕 녀석들이 성벽만 넘어온다면 어떻게든 될 듯도 한데…….
다른 마왕들은 아직 수도 안으로 못 들어온 거야?
응. 천사로 위장할 수 있는 건 현재 나뿐이라서. 그리고 동시에 마왕 정도의 존재를 감추기는 힘들어.
결국 마왕 헤르게니아가 대천사 유니티와 정면으로 붙고.
그 사이 성벽 안쪽의 마왕군들이 어떻게든 성벽을 장악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성벽 바깥보다는 안쪽이 유효한 타격을 주기에 더 좋을 테니.
성벽 바깥에는 아무리 많은 병력이 있더라도 성벽 자체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라.
뚫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겠지.
슬쩍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감찰원 소속이면 꽤 강하겠죠?”
“대천사 유니티 말이야?”
“네. 마왕 헤르게니아하고 비교해보면 어떨 것 같아요?”
내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재중이 형이 어림도 없다는 듯 바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전에 헤르게니아가 자기 입으로 직접 말했잖아. 자기는 전투형 마왕이 아니라고. 그런데 감찰원은 다른 대천사들까지 감찰할 수 있는, 전투에 특화된 녀석들이야. 답이 돼?”
재중이 형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천사 유니티의 전투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직접 보지 못해서 확신할 수 없지만.
감찰원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이미 그녀의 강함은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반대로 마왕 헤르게니아는 전투에 특화되진 않았으니.
지금 같이 정면으로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피해야겠네요.”
“어, 잘못하다가 마왕 헤르게니아가 죽을 수도 있다. 짧은 시간이라고 해도 전력차가 명확하다면.”
“그건 절대 안 되죠.”
만약 미리 전투에 준비가 된 상태의 마왕 헤르게니아라면.
다수의 대천사들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그녀가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들만 해도 엄청난 위력을 내니까.
하지만 물자 수송선 안에 그런 물건들을 가지고 탈 수 있을 리도 없고.
결국 마왕 헤르게니아는 대천사 유니티를 상대로 차, 포 다 떼고 붙어야 한다는 건데.
심지어 성벽 안쪽은 에센시아 제국군이 계속해서 몰려들면서 증원되겠지만.
성벽이 함락되기 전까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추가적인 병력 지원은 없다고 봐야 한다.
누가 봐도 이건 전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휴, 할 수 없네요. 이걸 쓸 수밖에.”
혹시라도 여기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심각한 피해를 입거나 죽게 된다면.
그동안 준비해온 모든 계획들 중 대부분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만큼 그녀가 우리의 계획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거니.
절대 이런 곳에서 싸워선 안 된다.
재중이 형도 내가 꺼낸 물건을 보더니 피식 웃어버렸다.
“크큭. 대천사 유니티가 그걸 이런데 쓰라고 준 건 아닐 텐데?”
“뭐 어때요. 쓰라고 준 물건. 안 쓰고 아끼는 게 삽질이죠.”
“하긴 그런가.”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에게서 좀 의외의 연락이 왔다.
지금 대천사 유니티가 에센시아 제국 관문 병사들하고 실랑이 중인데?
에센시아 제국군이 오히려 그녀를 막는다고?
아, 나도 몰라. 왜 저러는지.
혹시 손 안 대고 코 푸나 싶었는데 이어진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기대는 버렸다.
여기다 꿀이라도 발라놨는지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네. 이젠 못 막아.
휴. 알았어. 내 쪽에서 처리할게.
응? 방법이 있어?
어, 당장 대천사 유니티만 치워주면 아무 문제 없는 거 아냐?
으응. 아마도? 쟤가 방해만 안 하면 모든 물자 수송선이 들어올 거니까.
좋아. 그럼 치워줄게.
곧 손에 들린 대천사의 휘장을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러라고 준 게 아닌 건 나도 아는데…… 이번만 좀 예외로 치자.”
【 대천사 소환! 】
대천사의 휘장을 이용해 대천사 소환을 쓰자마자 바로 내 옆으로 거대한 소환 마법진이 생겨나며 강렬한 빛무리가 휘몰아쳤다.
그렇게 한동안 빛기둥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더니 빛이 사그라질 때쯤.
마법진 안에서 누군가가 자세를 확 낮추면서 뛰쳐나왔다.
동시에 네 장의 새하얀 대천사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전신에 무장을 소환해 장착했다.
소환된 마법진을 빠져나오는 그 순간부터.
대천사 유티니의 두 눈가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바로 주변을 살피며 적이 있는지부터 경계했다.
그녀가 저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아마.
타란 제국의 대공인 내가.
자기가 비상시에 쓰라고 준 대천사의 휘장을 썼다는 게.
그만큼 위험한 상황이라는 뜻이니까.
그녀에게 있어 최소한 마왕에게 포위되는 상황 정도는 되어야 대천사를 불러낼 위기 상황이라고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천사 유니티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마왕은커녕.
적 비슷한 무언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두 눈이 당황함에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환되자마자 격한 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을 예상했을 텐데.
아무리 봐도 지금 이곳은.
너무 편안하다.
심지어 따뜻하고 아늑하게 타오르는 장작이 있는 화로는.
그 분위기를 더욱 잘 느끼게 해주었다.
곧 시선을 돌린 대천사 유니티가 날 발견했는지.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함께 내게 물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다소 떨리는 느낌도 들었다.
“……이게 뭐죠?”
그녀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어쩌면 화가 났을 수도 있고.
그러자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다소 난감하다는 듯.
정말 천진난만한 표정을 곁들이며.
대천사의 휘장을 들어 올려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정말 되네요.”
내 넉살 있는 말투에 대천사 유니티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자신의 무기를 들고 있는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천사 날개도 떨리고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 흥분한 듯 했다.
“지금. 고작 잘 되는지 확인해 보려고 절 불렀다는 건가요?”
두 눈이 화르륵 타오르는 걸 보니.
아마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
오히려 대천사 유니티가 내 목에 무기를 들이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러면 안 되지.
“으음. 꼭 위기 상황에서만 당신을 불러야 하는 거였나요?”
“당연히……!”
“그렇다면. 제가 잘 부른 거네요.”
다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을 하자 이번엔 대천사 유니티의 표정이 당황으로 크게 흔들렸다.
“예……?”
“타란 제국의 대공인 제가 바보도 아니고. 고작 이 휘장이 잘 작동되는지 확인해 보려고 대천사인 당신을 여기로 불렀겠습니까.”
“아마도. 아니…… 겠죠.”
아니.
네 말이 맞아.
잘 되는지 불러 본 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유를 잘 끼워 넣어야 했다.
뭔가 페이스가 말린 듯한 표정의 대천사 유니티가 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사실 당신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죠?”
대공쯤 되는 인물이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절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 여겼는지 대천사 유니티도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했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 에센시아 제국 수도에서 물자 수송선을 조사하려고 했던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듯 했다.
뭐 그녀가 속으로 신경 쓰고 있다 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현재 그녀는 여기 에인세 공작성에 있고.
다시 에센시아 제국 수도로 돌아가는 데는.
우리가 이곳으로 비공정을 타고 온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리고 뭔가를 눈치챈 대천사 유니티가 돌아갈 때쯤 되면.
에센시아 제국 수도의 상황은 이미 끝나있을 테고.
혹시라도 나중에 우리가 그녀를 이곳으로 불러낸 일 때문에 우리를 의심하려고 하더라도.
너무 연관성이 없지.
어떻게 딱 마왕군이 에센시아 제국 수도를 공격하려고 할 때 맞춰서 그녀를 불러들일 수 있다고 생각할까.
뭐 억지로 상황을 끼워 맞추려고 한다면.
어떻게든 맞출 순 있겠지만.
그걸 확신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여기서는.
조금 정보를 풀 필요가 있었다.
대천사인 그녀조차도 충분히 위협을 느낄만한.
딱 그런 패를 풀어줘야 의심이 빗겨간다.
더불어 대천사를 굳이 이곳에.
이 시점에 불러낸 이유까지 설명이 가능할 테고.
“우리가 에인세 공작령으로 오면서 정보를 좀 모았는데. 좀 큰 문제가 있더군요.”
“어떤 문제인가요?”
궁금한 가득한 표정의 대천사 유니티에게 손가락을 네 개 펼쳐 보이면서 물었다.
“이게 몇 개죠?”
“네?”
황당함 가득한 그녀의 눈빛을 애써 무시하고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이번에는 다른 손을 들어 손가락 네 개를 펼치며.
그러자 결국 대천사 유니티도 졌다는 듯 답했다.
“네 개씩이네요.”
“그렇죠?”
“지금 저와 장난하실 생각이라면…….”
바로 그녀의 말을 끊으면서 말했다.
“이건 대천사, 마왕의 숫자입니다. 현재 에센시아 제국에 들어와 있는.”
대천사의 숫자는 이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왕의 숫자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이곳에 넘어온 마왕의 숫자에 맞춰서 자신들이 파견된 거니까.
산술적으로 보면 마왕 넷에 대천사 넷.
딱히 여러 추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붙는다면.
엇비슷한 전력은 된다.
눈 감고 싸우지 않으면 지지는 않는.
하지만.
이후에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대천사 유니티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현재 양손에 펼친 손가락은 여덟.
그런 손가락들을 눈앞에 흔들어 보이면서 그녀에게 질문했다.
“만약 이 손가락들이 전부. 마왕이라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