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1423
1430화 대천사 사냥 (9)
마왕.
굳이 인간들의 대륙에 비교해보자면.
그들은 일국의 왕이자.
한 영토의 절대자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말살해버릴 수도 있는.
하나 같이 괴물 같은 녀석들이라는 거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 옆에서 까칠 거리며 따라다니지만.
그녀 역시도 그런 괴물들 중에 하나였다.
손짓 한 번으로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마왕.
그만한 무력을 지닌 마왕이.
넷도 아닌.
무려 여덟.
이 마왕의 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던 대천사 유니티에게도 강렬한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숫자였다.
그녀가 크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게 다시 물었다.
“마왕이…… 여덟이라고요?”
대천사 유니티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마왕의 수를 되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녀가 에센시아 제국으로 오기 전에 파악한 정보와는 아예 다르니까.
그것도 그냥 마왕의 숫자가 한둘 정도 차이 나는 것도 아니고.
무려 두 배다.
도시가 네 개 날아갈 일이.
한 번에 여덟 개가 날아간다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마왕의 숫자는 단순히 그 숫자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
마왕이라는 존재는.
천사군의 무력을 대표하는 대천사.
이들과 정면에서 맞붙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니까.
그 말은 곧.
내가 알려준 마왕의 숫자가.
대천사들의 목숨과 바로 직결되는 정보라는 거다.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대천사 유니티에게 미묘한 미소를 담아 물었다.
“꽤 비싼 정보죠?”
과연 이 정보의 값어치는 대천사인 그녀에게 얼마만큼의 값어치를 할까.
그리고 이걸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다.
만약 그녀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넘기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
다음에 대천사 유니티라는 패를 걸러낼 수 있으니까.
반대로.
이 정보의 값어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고, 그 값어치를 적절하게 매겨줄 수 있는 존재라면?
앞으로도 충분히 잡을만한 패라는 거지.
어떻게 보면.
방금 내가 준 정보는.
대천사 유니티라는 존재의 값어치를 시험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재중이 형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과연 이 대천사는 어떻게 나오려나?
글쎄요. 좋은 쪽이면 좋겠는데.
이제와 다른 대천사를 구하는 것도 어렵긴 매한가지라.
지금은 그저 우리가 뽑은 패가 꽤 좋은 패이길 바랄 수밖에 없다.
잠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대천사 유니티가 곧 평정을 찾더니 내게 물었다.
그것도 꽤나 정중한 예를 표하면서.
“대천사 유니티가 천사군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타란 제국 대공께 큰 빚을 졌군요.”
천사군을 대신한다라.
뭐 대천사 정도쯤 되는 자리라면.
그것도 감찰원의 일원이라면.
방금의 발언은 절대 무례한 일이 아니었다.
그만한 무력과 세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감사가 단순히 빈말이 아님을.
시스템 메시지가 바로 확인시켜주었다.
《 천사군 대천사 유니티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천사군 대천사 유니티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천사군 대천사 유니티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
연이서 계속 올라오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전에 에센시아 제국에서 봤을 때는 이렇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우호적이긴 했어도.
어쨌든 계약으로 묶인 관계에 가까웠지만.
친밀도가 이만큼이나 오르게 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앞으로 대천사 유니티가 내 언행이 이상해도 한 번쯤은 더 고민해보는 정도는 될 테니까.
재중이 형이 부럽다는 듯 말했다.
마왕과 대천사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니. 부러운데?
하하. 그만큼 목이 간당간당하잖아요.
크큭. 그렇긴 하지. 어디 줄타기 잘 해 봐. 마왕과 대천사 중간에서.
양쪽 모두에 친밀도가 있다지만.
둘 다 한 자리에 모아놓고 친목을 도모하기에는.
역시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철저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절대 상대방이 서로를 알 수 없게끔.
“공식적인 빚인가요?”
일단 그녀와의 친밀도는 친밀도고.
받을 건 확실하게 챙겨야겠다.
그저 말 한마디로 때우고 넘어가려는 게 아니라면야.
이만한 정보를 맨입으로 넘어가는 건.
선을 세게 넘는 거다.
그러니까 그만큼 보상은 내놓아야지.
곧 대천사 유니티가 내 의문을 바로 불식시켜버렸다.
“대천사의 이름을 걸고. 타란 제국의 대공께서 원하는 소원을 제가 감당 가능한 선에서 하나 들어드리도록 하죠.”
소원?
이건 너무 광범위한데?
재중이 형 역시도 미묘하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좋게 보면 최곤데. 나쁘게 보면 또 안 좋겠네.
네. 소원의 주체가 그녀라는 것도 있고요.
만약 내 소원이 대천사 유니티가 감당 불가능한 소원이라면 어떨까.
그렇다고 너무 어설픈 보상을 소원이랍시고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 여기서 딜을 한 번 쳐볼까.
“하나는 좀 그렇지 않나요? 무려 대천사 목숨이 넷인데요.”
이건 내 입장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딜이었다.
마왕 여덟과 대천사 넷이 붙으면.
대천사 넷은 무조건 죽는다.
꼭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죽을 위기까지는 몰고 갈 수 있다.
이 정도면 거래할 패로는 나쁘지 않을 터.
하지만 그때 꽤 외의의 답을 대천사 유니티가 꺼내놓았다.
눈가에 냉정한 기운을 흘리며.
“다른 대천사들의 목숨까지 제가 책임질 필요가 있을까요?”
순간 나와 재중이 형 모두 머리에 해머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곧 감탄한 듯 재중이 형이 말했다.
이야. 얘 완전 걸작인데?
하하. 정말 그러네요.
이로써 확실해졌다.
대천사 유니티는.
에센시아 제국과 마왕군의 전쟁 같은 것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든.
전혀 관심이 없다.
심지어 다른 대천사들의 목숨까지도 그녀에게는 의미가 없다.
지금 그녀가 내 정보에 값어치를 매긴 건.
아마도.
그녀의 목숨을 건졌다는 것 하나.
딱 그것만이 그녀에게 값어치가 있었다.
곧 두 손을 들면서 졌다는 듯 말했다.
“이건 제가 손을 들 수밖에 없군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공.”
그리고는 바로 날카로운 질문을 날렸다.
“그렇다면 대천사 앙겔스와 다른 대천사들의 목숨은 당신의 관심 밖이라 이거군요. 마왕들에게 죽어 나간다 해도 말이죠.”
천사군 전체로 봤을 때 지금의 발언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미 마왕들의 숫자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뜻이 되기도 할 테니.
내 생각이 맞는지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대천사 유니티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대천사 앙겔스에게 방금 대공께 들은 정보를 넘겨주지 않는 건. 문제가 될까요?”
흐음.
이것 봐라?
대놓고 정보를 은폐하겠다?
그것도 그 정보를 준 나를 대상으로?
“흠. 저야 문제될 게 전혀 없겠죠.”
사실 내 입장도 대천사 유니티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에센시아 제국과 마왕군의 전쟁 상황도 그렇고.
대천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대천사 같은 경우는.
우리가 잡아야 하는 녀석들이지.
“대공께서 말하지 않는다면. 제 입에서 해당 정보가 나갈 일은 없을 거예요.”
방금.
대천사 유니티와 난.
암묵적으로 손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천사 셋을 골로 보내는 계약을.
대천사 유니티. 얘. 무서운 녀석이었잖아?
그러게요. 역시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라요.
괜히 감찰원 소속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아군도 내칠 수 있는.
그런 냉정함과 판단력이 있었다.
아니.
다르게 생각해보면.
대천사 앙겔스는.
천사군 내에서 그녀와는 다른 파벌이니.
이번 일은.
그녀에게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걸 눈치챈 재중이 형도 내게 말했다.
마왕의 손을 빌러 정적을 친다라…… 나쁘지 않네.
그렇죠. 결국 자기 손은 전혀 쓰지 않는 거니까. 흔적도 없을 테고요.
대천사만한 무력을 가진 녀석들을 잡으려면.
어지간히 일을 크게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자신이 직접 나선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을 테니 지금까지 에센시아 제국에서 지켜만 봤을 테지.
다른 말로.
지금의 상황은.
대천사 유니티에게 최고의 환경이라는 거다.
다른 대천사들을 잡기에.
그때 궁금한 것이 생겨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대천사들이 죽으면 천사군에도 병력 공백이 크지 않을까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파벌 싸움이지만.
그 후폭풍은 작지 않다.
대천사가 죽어 나가는 거라.
하지만 대천사 유니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당장 대천사 몇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는 곧 다른 천사들로 채워질 거예요. 지금도 그들을 자리를 노리는 천사들은 수도 발에 차일 만큼 많으니까요.”
“흠. 그건 마왕군하고 크게 다르지 않네요.”
“네. 그들과는 이름만 다를 뿐. 속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에요. 보다 강력한 권력을 위해서만 움직이죠.”
그런 대천사 유니티의 말에 의외라는 듯이 물어보았다.
“대천사가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겁니까?”
“사실이니까요.”
음.
아무리 봐도 얘도 평범한 대천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보통의 대천사들은 이런 대답을 하진 않을 테니.
뭐 그리고 딱히 그녀의 대답이 틀린 것도 아니지.
겉만 번지르르 하게 위선을 떠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직관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때 궁금한 게 있었던지 대천사 유니티가 바로 내게 물어보았다.
“혹시 절 여기로 소환한 게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겠죠?”
그러자 재중이 형이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오. 질문이 꽤 날카로운데?
대답해주기 힘든 질문이기도 하죠.
이럴 때는 그냥 넘어가는 게 최선이다.
대천사인 그녀의 존재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방해가 되어 여기로 불러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럴 리가요.”
딱히 말은 하지 않았고.
그녀는 절대 모르겠지만.
대천사 유니티가 내게 목숨 빚을 진 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지금부터 에센시아 제국 수도가 불타오를 예정이니까.
현재 그곳에 가 있는 마왕만 마왕 헤르게니아와 마왕 하킨을 포함해 무려 다섯이다.
대천사 혼자서 그들을 감당한다?
아무리 감찰원 소속의 전투원이라 그녀가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마왕 다섯을 상대로는 답도 없다.
그러니까 난 그녀를 정말 살려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곧 에센시아 제국 수도가 마왕군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이 그녀의 귀에 들어가게 되는 순간.
아주 잘 알게 될 것이다.
***
대천사 유니티가 물자 수송선을 조사하지 못하도록 소환해버리자 더이상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걸릴 것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대체 어떻게 대천사를 치운 거야? 갑자기 사라지던데?
아, 내가 좀 알고 지내는 대천사라. 자리 좀 비켜달라고 했어.
뭐래?
마왕 헤르게니아도 내 말이 황당했는지 꽤 이상한 대답을 하긴 했다.
아마도 농담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실제 내 옆에 그 대천사 유니티가 날아와 있으니.
암튼. 덕분에 물자 수송선이 거의 다 수도 내부로 들어왔어.
그럼 준비 끝인가?
응. 이제 시작한다?
어, 확 뒤엎어버려.
오케이! 이제 에센시아 제국 수도는 우리 거다.
마지막 대화가 끝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옆에서 전사 형이 유저들의 방송을 몇 개 띄워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모든 화면 속에는.
곳곳이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에센시아 제국 수도의 전경을 가득 담고 있었다.
동시에 게시판도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 에센시아 제국 수도. 마왕군에게 함락 일보 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