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1430
1437화 대천사 사냥(16)
현재의 성마대전이 일어난 이후.
마왕들이 대천사를 이렇게 몰아놓고 잡을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단언하건데.
아마 단 한 건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대천사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각종 NPC들과 유저들의 입을 타고 곳곳에 전해졌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소식은 전혀 들은 적이 없었다.
한 마디로.
마왕과 대천사들이 서로 전투를 벌이기는 하지만.
서로 죽일 정도의 급박한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애초에 마왕들은 하위급 마왕군과 타 종족.
대천사들은 천사군과 연합군, 유저들을 내세워서 대리전을 하는 마당에.
그들이 직접 전투에 나서는 상황 자체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토끼몰이는.
마왕이나 대천사들이나.
근래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건이라는 거고.
내 제안을 들은 마왕 케만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전혀 감추지 못한 채 내게 물었다.
“하! 실수를 위장해 대천사를 놓치라고?”
“네. 실행하는 데 혹시 문제가 있을까요?”
“문제라······ 대천사를 저렇게까지 몰아놓고 죽이지 말고 멀쩡히 살려 보내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 의사 전달에 문제가 있었나 보네요.”
그리고 내 이어지는 말에 마왕 케만의 표정이 다소 풀려버렸다.
“전 대천사를 살려 보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만.”
“흠.”
“거기다 좀 전에 말했듯이. 반쯤 죽여서 풀어주라고요. 멀쩡한 상태로 말고요.”
반쯤 죽이라는 말에 특히나.
어조를 강조해서 크게 말하자 마왕 케만도 이번에는 잘 알아들었는지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그럼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는지 내게 물었다.
“물론 네 뜻대로 움직여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아무리 구석으로 몰았다 하더라도 대천사는 대천사다. 조금만 틈을 열어 주면 어떤 식으로는 도망칠거다.”
“네. 그렇게 절박하게 도망가주면 더 고맙죠.”
우리 입장에선.
대천사 앙겔스가 죽을 만큼 절박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
본인 스스로가 이 포위망을 빠져나갈 만큼 여유가 넘친다면.
이 작전은 실패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반쯤 죽여 달라는 겁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요.”
“흐음······ 대체 네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리고는 곧 알겠다는 듯 허락했다.
“대천사를 살려 보내진 않는다니. 네 말을 더 믿어보도록 하겠다. 어차피 이 자리도 네가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자리니까.”
마왕 케만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대천사들의 동선과 정보를 전부 파악하고.
그들의 움직임까지 완벽하게 예측해서.
헤르마늄 광산에 그들을 몰아넣었다는 것을.
그것도 마왕들이 요리하기 딱 좋은 상태로.
네 명의 대천사들 중 절반만 남겨놓았다.
만약 마왕 케만이나 다른 마왕들이 주도했다면.
절대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미 이 세상은 마왕들의 천하였겠지.
“높게 평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대를 네게 붙여준 이유가 이것이겠지.”
내 작전을 믿는 것도 있지만.
그 배후에는 마왕 헤르게니아에 대한 믿음도 동시에 존재하는 듯 했다.
그러니 내가 몇 번은 자신의 뜻에 반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들어는 본다 이건가?
그리고 이런 상황들이 많이 쌓이게 되면.
굳이 마왕 헤르게니아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내 말을 따르게 될 것이다.
혹 다른 유저들이 보게 된다면.
기겁할만한 장면이긴 했다.
마왕을 상대로 거래를 하는 것도 모자라.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내리고 있는 셈이니까.
“그래도 대천사니까 반항이 거셀 겁니다.”
“하하. 반항해준다면 더 고맙지. 파닥거리는 고기가 더 잡기 재밌지 않겠느냐.”
마왕 케만은 이미 다 잡은 고기를.
어떻게 맛있게 요리할지 고민하는 듯.
기꺼운 웃음을 보였다.
그때 마왕 케만이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다른 대천사 녀석은 왜 아무런 말이 없지?”
“대천사 레미넌스 말인가요?”
“그래. 그 녀석. 대천사 앙겔스처럼 죽이라던가, 살리라던가. 말을 할 법도 한데. 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군.”
“글쎄요.”
대천사 레미넌스라······.
솔직히 마왕 케만의 말대로 관심이 없긴 했다.
애초에 대천사 유니티가 요청한 녀석은 대천사 앙겔스뿐이었고.
그 녀석이 어떻게 되든 내 계획에는 전혀 연관이 없으니까.
딱히 대천사 레미넌스를 살려둔다고 뭔가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에센시아 제국성에서 얼핏 봤을 때.
대천사 앙겔스처럼 뭔가 숨기는 게 있어 보이긴 했는데.
당장 그 녀석을 대상으로 알아내야 할 정보가 있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대천사 앙겔스에 앞서 따로 빼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웃으면서 마왕 케만에게 확답을 주었다.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제겐 관심 없는 놈이라서요.”
“알았다.”
어떤 대천사들을 죽이냐 살리냐를 한마디 말로 결정하는 입장이라······.
정말 다른 유저들이 보면 기겁하지 않을까.
“그럼, 대천사 앙겔스를 적당히 요리해서 앞에 데려다주지.”
“감사할 따름입니다.”
거기까지 이야기가 되자 마왕 케만이 다시 마왕군들 사이로 되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이후에.
그동안 포위만 하고 정체되어 있던 마왕군의 진형이 급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뭐 여기 가까이서 더 구경하고 싶긴 했지만.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준비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괜히 근처에 있다가 대천사 앙겔스나 대천사 레미넌스의 눈에 띄기라고 하면 골치 아파진다.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녀석들이 눈치챌만한 정보가 굉장히 많아지니까.
“그럼, 잠시 퇴장해줄까.”
그리고는 그대로 발을 박차서 마왕군의 진형을 이탈하자.
마치 마왕이 지나가는 것처럼.
마왕군의 몬스터들이 일제히 길을 터주었다.
몇몇 녀석들은 아예 허리를 숙이기까지 했고.
이거 참······.
어쩌다 보니 마왕군의 수뇌부라도 된 거려나.
적어도 저들이 보기에는.
내가 그런 존재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저런 식으로 우대를 해줄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게 환대 아닌 환대를 받고 빠져나와 챠밍과 대천사 유니티가 숨어 있는 좌표까지 되돌아 왔다.
어디쯤이지?
슬쩍 시선을 돌리자 한 공간이 일렁이더니 마법으로 만들어진 결계가 해제되며 챠밍과 대천사 유니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일 없었지?”
“네. 오빠는요? 갔던 일은 잘 됐어요?”
“뭐 그럭저럭? 말귀는 잘 알아듣더라고.”
“다행이다.”
챠밍은 혹시나 마왕 케만이 다른 생각을 품고.
나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의심을 했었던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도 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일도 배제하지 못했을 테고.
실제로 마왕 케만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운 듯 반응했으니까.
옆에서 대천사 유니티는 우리 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 채 멀뚱멀뚱 나와 챠밍을 쳐다보았다.
하긴.
그동안 귓속말로만 대화했으니.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뭐 우리 계획을 알아챈다고 하더라도 문제다.
대천사 앙겔스를 반쯤 패서 내보내라는 작전을 과연 그녀가 어떻게 생각할까.
아무리 다른 대천사들의 생사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같은 천사군이 마왕들에게 당하는 걸 보고도 그냥 넘길 수 있을까?
잠시 대천사 유니티를 보다가 챠밍에게 눈짓하자 챠밍도 알았다는 듯 뒤로 빠져주었다.
지금부터는 그녀를 설득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야기 좀 할까요?”
그러면서 시선을 돌려 저 멀리 헤르마늄 광산 쪽을 쳐다보았다.
자연스럽게 대천사 유니티도 내 시선을 따라 헤르마늄 광산을 바라보았고.
마치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간 궁금했던 점을 내게 물어보았다.
그것도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눈을 찡그리면서.
“4군단. 마왕은 넷이네요.”
역시.
대천사는 대천사인가.
이 거리에서 다른 마왕들을 포착할 정도라.
“네. 적진 않죠. 미리 말했듯이 마왕 넷이 헤르마늄 광산 지대에 와 있습니다.”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저 마왕들에게 발견되면.
대천사 유니티도 결코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감찰원의 소속된 전투형 대천사라고 하더라도.
마왕 넷은 상대하기 버겁다.
먼 거리에서 발견되자마자 바로 도망가면 또 모를까.
이만한 근거리에서 마왕 넷과 한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에게는 어마어마한 부담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4군단과 마왕들이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경계심 이상의 것을 보이진 않았다.
이쯤에서 슬쩍 그녀를 떠보았다.
“말했다시피 대천사 앙겔스와 대천사 레미넌스, 그들이 이끄는 천사군은 마왕군 4군단에 완전히 포위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대천사들과 천사군은······.”
내가 말을 흐리자 대천사 유니티가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대답했다.
“전멸하겠죠.”
그래.
아무리 그녀가 다른 천사들의 생사에 관심 없다고 하더라도.
눈앞에서 아군이 포위당해 모조리 죽어버리는 걸 지켜보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 여기서.
과연 대천사 유니티가.
대천사들과 천사군의 목숨과.
자심의 임무 중.
어느 쪽을 우선하는가인데······.
다시 한 번 그녀를 떠봤다.
“그래도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습니다. 감찰원의 대천사인 당신이 외부에서 가세해 준다면. 마왕군의 포위망에 균열을 낼 수도 있을 겁니다.”
한 마디로 대천사 유니티.
자신을 희생해서.
마왕군의 시선을 끌어 대천사들과 천사군을 살릴 것인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단순히 미끼 역할 정도로는.
저 마왕군의 포위를 뚫지 못한다.
아마 심각한 부상을 각오하고 목숨을 걸어야 겨우 가능하지 않을까.
거기다 상대는 마왕이 무려 넷이나 포진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녀라고 하더라도 저 포위망을 단독으로 뚫는 건.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천사 날개 몇 개는 내어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만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세할 것인가를 물어보자 잠시 고민을 하던 대천사 유니티가 크게 한숨을 쉬면서 내 시선을 피했다.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군요.”
역시 그녀라고 하더라도 이런 선택지는 가혹했나 보다.
악연이 있는 대천사들이야 죽든 말든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 휘하의 천사군이 전멸하는 모습이 보기 좋진 않을 터.
“아, 괜찮습니다. 굳이 결정하지 않아도. 어차피 간다고 해도 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랬으면 제가 억지로 말렸을 겁니다.”
“네?”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지금 이 상황에서 대천사 유니티가 저 포위망을 뚫는다고 삽질을 하면.
계획한 일이 완전히 망한다.
그건 대천사 유니티도 죽고.
나도 망하는.
그야말로 삽질 중 삽질이 된다.
그러라고 널 여기까지 힘들게 데려온 게 아니니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마왕군의 포위망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드디어 마왕군이 움직이는군요.”
헤르마늄 광산을 뒤덮고 있던 마왕군이 포위망을 점점 좁히면서 압박해 들어갔고.
그에 대항하듯 광산 안쪽에서는 거세고 거대한 빛무리들이 마왕군에게 대항하기 위해 번쩍이기 시작했다.
꼭 해가 지며 어둠에 점점 먹혀가는 빛무리를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대천사 유니티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 듯.
그저 두 손을 불끈 쥐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전에 말한 것 있죠?”
“네?”
“대천사 앙겔스.”
“하지만 저래서는······ 절대 못 빠져나올 거예요.”
그녀도 알고.
나도 안다.
저만한 포위망을 뚫고 대천사 앙겔스가 무사히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사실 제가 장치를 하나 해놨습니다. 대천사 앙겔스를 빼낼 장치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