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1443
1450화 혼란의 제안 (9)
챠밍은 다시 은신 상태로 변해 모습을 숨겼고 나만 따로 헤르마늄 임시 보관소로 되돌아갔다.
물론 대천사의 휘장은 품에 숨겼다.
만약 이걸 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대천사 앙겔스가 알게 된다면 그렇게 좋은 그림은 안 나올 테니까.
대천사의 휘장을 어디서 났는지,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해질 테고.
결국 대천사 유니티까지 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꼭 그게 아니라고 해도.
마왕군 소속으로 알고 있는 내가 대천사의 휘장을 가지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크게 문제가 된다.
대천사 앙겔스 뿐만 아니라 마왕 케만까지 궁금해할 테니.
쓰긴 좋으나.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되는.
딱 그런 물건이다.
다시 헤르마늄 임시 보관소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모든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마왕 케만이 궁금한지 먼저 다가와 물었다.
“확인해본다는 일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성과를 얻었습니다만.”
“당연히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겠지?”
“결과적으로는.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딱히 마왕 케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인가 잠시 생각해봤다가 어찌 됐든 천사군의 전력을 줄이는 일이니까.
만약 초고순도 헤르마늄을 내가 얻어낼 수 있다면.
그만큼 천사군의 전체 전력이 깎이게 된다.
대천사를 그만큼 지원할 수 없게 될 테니.
거기다 새로운 대천사를 뽑는 일에도 큰 지장이 생기게 될 것이다.
능력이 있어서 뽑아놔도.
대천사의 무구를 지급할 수 없다면.
그 대천사는 반쪽짜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초고순도 헤르마늄 광석의 소유는 중요했다.
곧 대천사 앙겔스에게로 걸어가자 세 마왕들이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 마왕들도 어디 가서는 왕이랍시고 고개가 빳빳할 텐데.
지금은 고작 감시병 역할이나 하고 있으니.
뭐 감시해야 하는 존재가 대천사 쯤 되면 그것도 충분히 용납되는 일이려나…….
“그럼 지금부터 다시 협상을 시작해볼까요?”
바로 협상부터 언급하자 대천사 앙겔스의 눈썹이 치켜세워졌다.
아마 자신감에 가득한 내 눈빛에서 뭔가를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자신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잠시 제 정보원들에게 확인해보니. 이전에 했던 우리의 협상에 문제가 많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보원?”
“아, 미리 말을 안 했군요. 천사군을 감시하는 녀석들이 따로 있습니다만. 어차피 이건 천사군인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마왕군을 따로 정찰하는 부대가 있을 테니까요.”
딱히 내 말에 대해서 대천사 앙겔스가 대답을 하진 않았다.
당연히 그런 부대가 있을 테니까.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런 뻔한 사실이지.
하지만 그런 뻔한 사실조차 지금의 대천사 앙겔스에게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할 것이다.
굳이 내가 따로 나가서 확인해본다더니.
지금은 자신 앞에서 마치 좋은 일이라도 있듯이 생글생글 웃고 있으니까.
“아까 저와 내기 하나 했죠?”
“내기?”
음.
이 녀석.
머리를 다치기라도 했나.
좀 전에 했던 말들을 기억 못 하다니.
피식 웃으면서 다시 내기에 대해 상기시켜주었다.
“제 쪽에서 제시한 양만큼. 당신이 내게 초고순도 헤르마늄 광석을 지급하기로요.”
“흠. 그랬던가.”
“뭐 내기를 무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만. 아마 다른 조건으로 넘어가게 되면 더 피곤해지실 겁니다. 이를테면. 공화정의 대천사 몇을 마왕군에 넘긴다는 조건 정도도 괜찮을 테고요.”
“크흠.”
여기서 내가 요구할만한 대천사들은.
결코 그 순위가 낮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대천사 앙겔스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언제 내기를 잊었다고 했나.”
“기억력이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비꼬듯이 이야기했지만.
대천사 앙겔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까닥 잘못하다가는 자기 목숨값으로 다른 대천사 몇을 넘겨줘야 할지도 모르니.
전에 대천사 레미넌스야 자신과 그다지 연관이 없으니 쉽게 던져줬겠지만.
“자, 그럼 먼저 대천사의 언령으로 계약부터 맺어야겠군요.”
“크흠. 어떤 조건으로 말인가? 만약 허용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자동적으로 언령이 깨지도록…….”
“아, 문제없을 겁니다.”
대천사의 언령도 절대적이라고 할 순 없었다.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집어넣으면.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어버리니.
그럼 귀중한 기회를 날려버리는 셈이 된다.
“제일 먼저 기간을 정하고 싶습니다만.”
“기간?”
의외로 다른 사항들보다 기간을 먼저 말하니 대천사 앙겔스가 의아한 듯 나를 쳐다봤다.
아마도 궁금하겠지.
왜 기간을 먼저 언급했는지.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대천사 앙겔스에게 제공하려는 정보는.
유통기한이 존재하니까.
일단 대천사 유니티가 먼저 초고순도 헤르마늄 광석을 수거해버리는 경우.
이때는 계약이고 나발이고 아무런 이득을 취할 수 없었다.
없는 초고순도 헤르마늄을 어디서 구해올 수 있을까.
이때는 자연스럽게 대천사 앙겔스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대가로 죽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문제는.
알려준 위치가 이미 공개된 경우다.
물론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을 테니 여유가 있긴 해도.
대천사 앙겔스가 계약 위반이라고 여길 정도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럼 대천사의 언령이 깨질 테고.
역시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할 터.
그러니까.
우린 최대한 빨리 초고순도 헤르마늄 광석을 빼돌릴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딱 열흘 드리죠. 초고순도 헤르마늄 광석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시간요.”
“뭐라고?”
이건 나뿐만 아니라 마왕 케만을 비롯해 다른 마왕 셋도 깜짝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아마 대천사 앙겔스가 본진으로 되돌아가는 시간만 해도 삼사일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것도 입에 거품 물 정도로 빠르게 이동한다 해도 말이지.
그런데 여기서 다시 초고순도 헤르마늄 광석들을 한데 모아서 그걸 또 이곳으로 다시 이동까지 시켜야 한다.
광석들을 한곳에 모으는 시간도 꽤 걸릴 테고.
무엇보다 갈 때야 혼자니 그렇다 치더라도.
돌아올 땐 상당한 양의 광석들까지 함께 운반해야 한다.
운송 시간이 몇 배나 더 걸려도 부족할 터.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걸 너무 잘 아는지 대천사 앙겔스가 바로 태클을 걸었다.
“지금 불가능한 조건을 걸어서 일부러 대천사의 언령을 포기하겠다는 소린가?”
“음. 그렇다면 당신에게 더 좋은 기회 아닙니까? 아예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언령이 날아갈 테니까요.”
“어떻게 그걸…….”
내 쪽에서 대천사의 언령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대천사 앙겔스도 놀란 듯 했다.
“아, 따로 조사를 좀 했죠.”
사실 이전에 대천사 베이넌과 직접 계약을 맺었으니까.
거기다 대천사 유니티에게 들은 것도 있었고.
대천사 앙겔스는 이미 내가 대천사의 언령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냈는지 딱히 여기에 대해서 따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더 잘 알 텐데? 그 조건은 내가 불가능하게 여긴다는 것조차도. 갈 때야 혼자니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봐도. 돌아올 때는 아니다. 절대 운반 시간이 나오지 않아.”
심지어 옆에 있는 마왕들조차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중이었다.
마왕 케만이 슬쩍 내 옆으로 오더니 말을 걸었다.
“자네 지금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리려는 건가?”
“흠. 그럴 리가요.”
“아니. 그렇다면 왜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말이 안 된다고 여길수록 더 좋은 보상이 올 테니까요?”
“으음…… 난 모르겠군.”
워낙 상식과 벗어나니 이미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린 모습이었다.
속으로 웃으면서 마왕 케만을 쳐다봤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
그럼 콩고물이 떨어질 테니까.
“일단 맡겨두시죠. 저 못 믿겠습니까?”
“흠.”
이런 상황 자체를 만들어준 게 나였다.
그러니 마왕 케만도 아쉬울 뿐.
따지지는 못 한다.
“좋은 결과가 나오길 한 번 믿어보지.”
“감사합니다.”
다시 대천사 앙겔스를 보면서 말했다.
“일단 당신이 불가능하다고 여길만한 조건을 걸어주었으니. 물량에 대한 것도 한 번 말해볼까요?”
대천사 앙겔스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지만.
아마 속으로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살아나면서 대천사의 언령을 지키지 않아도 될 테니.
그런 녀석에게 초고순도 헤르마늄 광석에 대해 말을 꺼냈다.
“생각보다 많이 해 드셨더군요.”
“뭐?”
“정말 능력도 좋으셔라. 이만큼 해 먹고도 그동안 안 들킨 것도 용합니다.”
“대체 무슨 말을…….”
“공화정에서 모아둔 광석의 양이 대략…… 대천사 열 명이 전신 무장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나요?”
내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대천사 앙겔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아무래도 표정 관리가 안 되나 보네.
설마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물량을 찍어낼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물량은 애초에 대천사 앙겔스의 기억을 토대로 나온 물량이니까.
본인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수가 없을 것이다.
옆에서 듣던 마왕들은 정말 놀란 듯 대천사 앙겔스를 쳐다보았다.
마왕들로 치면.
초고순도 베르탈륨 광석을 그만큼 빼돌렸다는 소리니.
당장 피부로 와닿을 것이다.
이건 다른 말로 하면 마왕을 당장 열 명이나 추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도 풀 무장한 상태로.
아마 내가 알기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 무장한 마왕은.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초고순도 베르탈륨이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니까.
다들 초고순도 베르탈륨을 적당히 섞어서 만든 장비들을 걸치고 있을 거다.
이건 당연히 대천사들에게도 적용되는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왕이나 대천사나.
그렇게 초고순도 광석에 목을 매는 거다.
얼마나 높은 비율로 초고순도 광석이 들어가는가가.
그 장비의 성능을 말해준다.
성마전쟁의 라인이 광산들에 쭉 걸쳐져 그어져 있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고.
마왕 케만이 슬쩍 대천사 앙겔스의 장비들을 쳐다보더니 이제야 알겠다는 듯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우리를 상대로 꽤 오래 버티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
그러자 다른 마왕 셋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마왕 넷이 작정하고 포위를 해 두들겼다.
그것도 한 마왕은 서열이 한 자리대 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대천사가 목숨을 부지했었다.
뭐 중간에 죽이지 말아 달라고 해서 좀 봐준 것도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중간에 장비가 부서져서 못 움직일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 말은 최소한 대천사 앙겔스가 걸친 장비들이.
마왕들의 장비 성능을 상회한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자세히 보니 마왕들의 무구는 몇 곳이 이가 나 있었는데.
유독 대천사 앙겔스의 장비는 멀쩡해 보였다.
“초고순도 헤르마늄으로 아예 도배를 하셨구만.”
저건 부럽다는 눈빛이려나.
중간에 그만큼 해 먹었으니.
자신의 장비에 투자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으음.
아까 대천사 레미넌스가 입고 있던 장비도 그랬던가?
이럴 줄 알았다면 갑옷까지 싹 벗겨서 가져오는 건데.
나중에 마왕 케만에게 다시 물어봐야겠다.
다시 대천사 앙겔스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이 조건들도 불가능한 겁니까?”
“……그렇다.”
“그럼 이대로 계약을 맺으면 분명히 깨지겠군요. 당신에겐 좋은 일일 테고.”
그리고는 그대로 대천사 앙겔스에게 가서 녀석의 손을 붙잡았다.
“시작하시죠.”
당연히 대천사 앙겔스 입장에서는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둘 중 하나만 어긋나도 언령은 충분히 깨질 테니까.
곧 대천사 앙겔스가 전에 그랬듯 대천사의 언령을 내게 시도했다.
이로써 두 번째 대천사와 계약인가.
《 대천사 앙겔스가 유저 주호와 대천사의 언령을 계약하려고 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
마지막으로 한마디 말을 남겼다.
“아, 그리고 기한 말인데. 이건 내가 직접 받으러 갈 거니까. 어때? 불가능하지 않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대천사 앙겔스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려버렸다.
“아…… 안 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