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In-Seven-Billion Irregular RAW novel - Chapter 215
216화 일찍 나는 새가 많이 주워 먹는다. (3)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공격하는 거?”
“네. 우리가 먼저 공격한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챠밍이 약간 불안한 눈빛을 하면서 내게 말했다.
지금은 개인 세팅을 마치고 팀마다 떨어져서 원하는 지점을 타격하기 위해 페르타에서 준비를 했다.
모든 길드가 우르르 모이면 한 지점이야 반드시 이기겠지만, 일단 비밀이 전부 새어 나가 버린다.
딱 한 곳만 이기고 나머지를 대비하기 시작하면 그만큼 앞으로가 불편해진다.
적절한 장소에 적절한 인원이라던가?
재중이 형이 이야기한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 한다.
전투에 이기더라도 전쟁에서 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사장님이 확인한 결과, 준비하는 데 오래 걸려서 그렇지 돌아가는 정황상 100%라고 하시더라. 막상 알고 나서 확인하니까 확실하게 보인다고. 그럼, 어차피 싸울 건데 나 먼저 치라고 뺨을 내밀고 있을 수는 없잖아.”
“……확실히 이상하네요.”
“그치? 선빵이 진리라고 하네.”
“누가요?”
“있어, 이 작전 만드신 분.”
“불멸 오빠요?”
이거 말해도 되는 건가?
뭐, 상관없겠지.
“아, 그 불멸 오빠의 여친 님.”
“……우리 언니네요.”
“그래, 많이 배우고 왔지.”
“어제 같이 식사하셨다고 했죠?”
“모델 일도 있고, 겸사겸사. 너도 나오지 그랬어?”
“……VRS 나오자마자 기절했어요. 깨고 나서 보니까 전화가 와 있는 것을 봐서 너무 늦어버렸어요.”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나라 잃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얘도 체력이 안 좋은가?
나처럼 나오자마자 기절하네.
언제 유혜선 팀장에게 데려가 봐야 할 텐데…….
내가 먹는 것으로 고생을 해봐서 안다.
“먹는 건 잘 먹고?”
“으음, 전 활동 중이 아니어서 평소보다 좀 더 챙겨 먹긴 하는데 그렇게 많이 먹진 않아요.”
언제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경악할 만큼 엄청나게 적게 먹는 식단을.
진짠가 싶어서 호기심 반, 걱정 반을 담아 물어봤다.
“혹시 여자 연예인 식단?”
“다 그렇게 먹지는 않아요. 화보 찍기 전이나 활동 전에 준비할 때 하고 막상 활동에 들어가면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는 다들 먹어요. 그렇게 먹으면 저희 다 쓰러질걸요? 야식도 먹는걸요? 저희 뭐 먹는지 알면 깜짝 놀라실 것 같은데.”
그러면서 재밌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옅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쳐도 유혜선 팀장이 말해준 식단하고는 거리가 꽤 먼데…….
뭐, 사람이 다 과몰입이 아니니 괜찮겠지?
이번 일만 끝나면 정말 한 번 데리고 가봐야겠다.
선두에 방패전사와 재중이 형, 나와 챠밍, 그 뒤로 이쁜소녀, 나르샤가 줄이어 이동했다.
그 뒤로 사장님, 수호, 최종병기, 아이꿍, 해신, 슬이아빠, 체리, 천둥, 현역여대생, 발키리, 수아를 포함한 길드원 전원이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다른 말로 이번엔 총력전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길드 네 곳이 굳이 뭉쳐서 한곳을 치느니 따로 떨어져서 한 지역씩 맡기로 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지휘 체계가 엉망이 되기도 하고, 한곳에 뭉치면 전투에서는 이겨도 전쟁에서는 진다.
그러다 불리해지는 쪽을 지원 가는 것으로 하고.
우리가 맡을 곳은 당연하게도 가장 레벨 대가 높은 안개 협곡이었겠지만…….
화련 연합이 삼각 봉우리에서 대패하면서 주력 사냥터를 바꿨다고 한다.
페르타.
페르타를 맡아달라고 이야기가 나왔을 때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가 곧장 고개를 세차게 돌리며 절대적인 반대를 했지만, 우리와 달 길드에게 결국 페르타가 떨어졌다.
페르타 쪽의 전력이 더 강해서 우리가 가지 않으면 비율이 맞지가 않는다고 하던가.
벌레들 사이에서 전투라니.
끔찍하겠네.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의 얼굴이 벌써 푸르죽죽하게 죽어 있었다.
이거 제대로 싸움은 되려나?
레벨은 많이 올라 내가 현재 63.
그리고 재중이 형이 62,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 나르샤가 59가 됐다.
* * *
1위 63 주호 / 신화 –
2위 62 불멸 / 피닉스 –
3위 59 챠밍 / 신화 –
4위 59 나르샤 / 신화 –
5위 59 이쁜소녀 / 신화 –
6위 59 방패전사 / 신화 –
7위 53 아로하 / 달 ▲ 625
8위 53 독사 / 지배자 ▲ 15
9위 53 전설 / 전설 ▲ 12
10위 53 해신 / 최강 ▲ 295
* * *
1위부터 6위까지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부동의 순위다.
재중이 형이 피닉스로 길드를 바꾼 것을 빼고는 신화 길드가 매번 1~6위까지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밑으로는 순위가 매번 엎치락뒤치락했었다.
이번에 버그로 인해 적립 받지 못했던 5렙이 순식간에 올라서 더 그렇기도 하고.
오버된 네임드의 경험치가 정말 크긴 큰 모양이다.
웬만하면 오버된 네임드만 찾아다니고 싶을 정도로.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다면 순위권에서 7위 밑으로만 보면 된다.
아로하?
해신?
순위를 확인하던 내 눈에 아는 사람들이 모처럼 순위권에 들어왔다.
아로하는 저번부터 스칼렛이 밀어주는지 혼자 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순위가 수직 상승하는 중이다.
누가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맘먹고 렙을 올리기 시작하니까 무시무시하게 따라오네.
그리고 해신.
사장님 말로는 딱히 밀어주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순위가 올라왔다.
“뭐, 우리 쪽 스킬과 템 남는 것이 그쪽으로 물리듯이 내려가고 있으니까. 그래도 이건 대단한데? 아무리 템과 스킬이 많이 쌓여도 정작 본인이 못하면 이 정도 성적이 안 나오거든.”
재중이 형조차 감탄하는 표정이다.
“이거 우리가 네임드 못 먹어치웠으면 턱 밑까지 쫓아왔겠는데?”
“다시 허리를 바싹 조여야겠네요.”
요즘 네임드를 잡으면서 좀 설렁설렁하게 했더니 이렇게 바로 쫓아올 줄은 몰랐다.
특히 전설도 무섭게 치고 올라왔고, 화련의 지배자 길드에서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이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린 장비도 좋은데 왜 이렇게 금방 따라잡혀요?”
단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
지금 우리 장비면 정말 사냥 속도는 최고에 달한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따라오나?
“으음, 예전에 사장님이 노 네임드 무기로 어느 정도 사냥을 따라왔던 것 기억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우리가 1서버에 처음 왔을 때, 그랬던 것 같다.
재중이 형은 네임드를 들고 있었고, 사장님은 노 네임드였는데 강화가 좀 됐었지?
“지금 안개 협곡 무기가 풀리면서 돈을 싸질러 들고 강화를 하고 있거든. 우리야 네임드 무기가 깨질까 봐 4강 이상은 잘 시도도 안 하지만. 지금 노강 무기 몇 강까지 나온 지 알아?”
“글쎄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어느 순간부터 네임드가 아니면 쳐다도 안 보게 됐다.
“9강.”
뭐……? 9강?
“……정말요?”
“내가 너 데리고 장난치겠냐. 안개 협곡 블레이드 노강 9강이면 수치가 얼만지 알아?”
재중이 형이 방패전사를 쳐다보자 앞서가던 방패전사가 다가와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다.
『 +9 안개 협곡 블레이드 / 출혈 20 (11+9) 타격 12 (3+9) 』
『 +4 윙 블레이드 / 출혈 16 (12+4) 타격 8 (4+4) 』
『 +4 라이덴 블레이드 / 출혈 17 (13+4) 타격 9 (5+4) 』
이런…….
기본 대미지에서 너무 밀린다.
노말템 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스탯과 스킬이 더 붙어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사냥만 할 때는 오히려 9강 템이 더 좋을 거다.
뇌격도 한발이 강하지, 그걸로 두세 마리를 잡을 순 없고 쿨 타임도 있으니까.
무기 안개화도 마찬가지.
일반 몬스터 상대로 무기를 투명하게 없애봐야 크게 상관이 있을까?
일반 몬스터를 많이 잡는 상황으로 국한하면 오히려 저쪽이 나을 수도 있다.
“강화가 같다면 비교 대상도 안 되겠지. 다만.”
“저쪽은 깨질 것을 염두에 두고 막지를 수 있고…….”
“이쪽은 그게 안 되지. 깨지면 대신할 템이 없으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건에 뒤통수 맞은 기분인가?
“막 질러 볼까요?”
“아서라. 다 날려 먹어.”
음, 이쁜소녀에게 맡겨볼까…….
예전 같으면 네임드 템 하나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겠지만, 지금은 워낙 많이 들고 있기도 하고.
하나둘 날린다고 별로 실망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번 일이 끝나면 이것도 생각해봐야겠네.
일단은 눈앞에 닥친 일부터.
“네임드 템은 대인전이 되어야 진짜 위력을 발휘하지.”
재중이 형이 그런 말을 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곤충과 파충류가 득실거리는 곳이라…….
그나마 네임드를 잡을 때는 주변에 잡몹이 없어서 좋았는데 지금은 거대 거미가 주변 나무를 타면서 지나가고 나방인지 벌레인지 모를 것들이 근처를 날아다녔다.
거기다 거대 모기와 파리가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까지…….
“으앙! 벌레야!”
“꺄악! 저리 가!”
“이씨! 죽어!”
이쁜소녀, 챠밍, 나르샤가 주변 벌레들에 기겁하면서 무차별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 어스 퀘이크! 】
【 라이트닝 노바! 】
【 멀티 샷! 】
각자 가장 넓게 퍼뜨릴 수 있는 스킬을 써가면서 일반 몹을 죽이기에는 너무 과도한 스킬들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터지고, 전기에 지져지고 화살에 꽤 뚫리는 벌레의 모습에 스킬을 써놓고도 안색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거기다 아이꿍도 스킬을 써가면서 주변을 초토화 중이고, 현역 여대생, 발키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모두 한숨을 쉬었다.
“싸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반은 저 모양이니…….”
“벌써 걱정입니다.”
나와 재중이 형, 방패전사도 똑같은 심정이다.
화련 연합은 애초에 왜 여기로 온 거야.
좀 밀리더라도 안개 협곡에서 싸웠으면 얼마나 좋아.
정말 지금이라도 안개 협곡으로 바꾸자고 하면 좀 봐줄 용의도 있다.
“내가 이놈들 팬티까지 다 털어버린다.”
“어머? 그거 성적 발언 아냐? 여자애들도 있는데?”
“아, 실수.”
사탕 커플이 그러면서 지나갔다.
제법 많이 끌어올렸네.
둘이서만 사냥한다더니 지금은 여자 쪽의 레벨이 상당히 올라왔다.
“차라리 같이 날아서 가면 안 될까요? 저 라이덴 한 번 타보고 시퍼요! 뒤에 타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
현역 여대생이 오랜만에 같이 동행을 하자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면서 내게 바싹 다가왔다.
그러자 방패전사가 라지 쉴드로 앞을 턱 막아버렸다.
“아! 왜요!”
“이놈 전력의 핵심이니까 괜히 지금 건들지 않는 게 좋아. 무시무시한 분들이 뒤에서 째려보고 계시거든.”
현역 여대생이 불길함을 느끼면서 뒤를 바라보자 챠밍과 이쁜소녀가 눈에 불을 켜고 현역 여대생과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난감하기도 하지.
오늘은 그냥 전투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는데.
상황이 여러 가지로 좋지가 않다.
도망가듯 재중이 형 옆으로 가서 상황을 물어봤다.
“쫓겨 왔냐?”
그 물음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힘드네요. 상황은요?”
“정찰조 가서 확인해 보니 수십 명이 모여서 자리 잡고 그냥 사냥만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더라.”
“모처럼 재밌겠네요.”
주위에서 사냥하던 여러 파티를 거쳐 목표했던 음습한 구덩이 근처로 가자 수많은 사람이 자리를 잡고 사냥을 하고 있었다.
구덩이에서 올라오는 새끼 지네를 잡고 있는데 이름만 새끼지 절대 그 크기가 아니다.
어지간한 소 한 마리 크기라고 해야 하나.
길드가…….
무적과 질주 길드라.
“형, 쟤들 전에 걔들 아닌가요?”
“으음, 맞는 것 같네. 공성전 때 떨어지더니 다시 붙었나? 참, 어이없는 녀석들이네.”
분명히 공성전에 폭군을 필두로 해서 죽어버린 화련을 버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 모양이다.
“상관있나요? 어차피 밟으면 다 똑같은데.”
“너 그런 말도 할 줄 알게 되고 꽤 건방져졌다?”
“누구한테 배운 거죠 뭐. 들어가요?”
“여기까지 왔는데도 경계도 없고, 너무 허술하긴 한데. 특별히 문제는 없는 것 같고, 가자.”
재중이 형이 신호하자 사방을 감싸고 있던 우리 길드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편은 거의 100명쯤.
기습하면 못 이길 숫자는 아니다.
“시작은 챠밍, 아이꿍.”
“네!”
먼저 챠밍이 마법을 준비했다.
【 라미아 하트! 】
【 마나 리커버리! 】
【 소녀 라미아 소환! 】
귀엽고 이쁘장한 소녀 라미아가 나와서 챠밍을 바라보자 챠밍에게 마력 회복 버프가 걸리면서 이중으로 마력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거기다 심장과 소녀 라미아의 지력 버프까지 합쳐지면 챠밍의 지력이 총합 40이 넘어가게 된다.
레벨로 치면 80렙을 지력만 찍어야 가능한 수치이기도 하고.
정말 행성 파괴급 위력이 나올지도 모르겠네…….
“저 차징에 시간이 좀 걸려요. 먼저 가요.”
“네, 이쪽 먼저.”
기다리던 아이꿍이 먼저 마법을 시전했다.
【 독의 가시! 】
전에 경매에서 얻은 스킬이구나.
챠밍에게 없는 유일한 스킬이기도 하고.
물의 가시와 다르게 독 가시로 된 넝쿨이 꽤 넓은 범위에 올라오면서 십여 명을 바로 가뒀다.
“뭐야?!”
“습격이다!”
“야! 막아! 막으라고!”
그와 함께 챠밍도 스킬을 시전했다.
【 라이트닝 플레어! 】
이건 라이덴이 죽기 전 마지막에 입으로 쏘아내던 현 로스트 스카이 최강의 마법이다.
그만큼 시전시간도 오래 걸리고 챠징 시간도 오래 걸렸다.
거대한 청색의 마법진.
그 속에 고고한 각종 문자가 휘돌다가 챠밍의 손짓 한 번에 멈추고는 그대로 마법진이 유리잔이 깨지듯 깨어졌다.
동시에 주변이 울리는 찢어지는 천둥소리와 새하얀 뇌전들이 쏘아져 나가며 정면의 구덩이들을 거칠게 뒤집어 버렸다.
마치 신의 벌이라도 내린 것처럼 정면에 걸리는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으면서.
그리고 그 범위 안에 있던 이십여 명의 적이 단 한방에 녹아내리듯 사라져 버렸다.
압살.
이게 한 사람이 낼 수 있는 마법이 맞나?
내가 블랙 아쿠아 캐논을 쏠 때보다 훨씬 강력한 것은 수치를 안 봐도 알겠다.
“이게 대체 무슨……?”
“한 방에 녹았어?”
“말이 돼?”
거칠게 할퀴고 간 자리를 간발의 차로 벗어나 살아남은 사람들과 주변에 서 있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라이트닝 플레어를 뽑아낸 챠밍에게 가서 고정되듯 멈췄다.
마치 시간이 멈춤 것 같은 고요함.
전쟁터에 오직 홀로 챠밍만 서 있는 것 같다.
잘 키운 마법사 백 격수 부럽지 않다더니.
완전한 기선 제압에 상대방이 완전히 얼어버렸다.
“가자! 첫 전투를 승리로!”
주변을 울리는 사장님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사방에서 모든 길드원이 쏘아져 나갔다.
“챠밍, 잘했어!”
내 칭찬에 챠밍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바로 윙 블레이드들을 들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챠밍이 만들어준 이 기세를 타고.
이번 첫 전투.
우리가 확실히 받아간다!
x 217
x217 일찍 나는 새가 많이 주워 먹는다. (4)
챠밍의 라이트닝 플레어가 길게 쭉 밀고 나간 자리가 원래라면 단단한 방어 라인이 있어야 하는 곳이지만, 지금은 한 명도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싹 녹여 버렸으니까.
그 덕분에 적들의 라인이 혼란스럽게 헝클어져 기습의 효과가 더욱 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젠장, 사방에서!”
“파티 별로 빨리 자리 잡아!”
“이쪽 지원 좀 와!”
“여기도 부족하다니까!”
“이 새…….”
온통 적들이 외치는 소리들.
우리의 급습으로 대처할 장소도, 시간도 없었다.
그저 무방비하게 구덩이에서 나와 서로 진형을 짤 뿐.
하지만 라인 한 곳이 완전히 내려앉아 버리니 그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구덩이에서 올라오지 못하게 틀어막아!
여기 지형이 움푹움푹 패인 구덩이라는 것.
새끼 지네가 돌아다니기 좋은 환경이지 사람들이 돌아다니기 좋은 환경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새끼 지네를 잡기 위해 구덩이 사이로 내려갔던 사람들에게는 여기가 지옥이다.
우리가 훨씬 좋은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궁수, 법사들 전부 쏟아부어!
사장님의 오더가 떨어지자 나르샤를 비롯한 길드의 궁수들이 전부 활을 들어 올렸다.
【 멀티 샷! 】
【 멀티 샷! 】
【 멀티 샷! 】
【 파이어 월! 】
【 아이스 월! 】
그와 함께 수백 발의 화살이 형형색색 각종 무기 인챈트들로 치장하고 구덩이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끄악!”
“방패 들어서 막아!”
“너무 많잖아!”
“젠장, 도망갈 곳이…….”
“일단 구덩이 속으로 피해!”
그러자 사람들이 구덩이의 구석으로 몸을 숨기면서 화살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흐음, 구덩이가 참호 역할도 하는 건가?
하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병력이 있다.
지금은 모든 마법사의 대표적인 광역기라 할 수 있는 파이어 월과 아이스 월.
우리가 처음 얻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이 퍼졌다.
물론, 챠밍이 쓰는 것보다 훨씬 약하겠지만 사용하는 장소가 협소하고 피하기 힘든 곳이라면?
그런 곳에 파이어 월과 아이스 월이 잔뜩 깔리면?
마법사들이 스킬을 사용하자 구덩이에 가까스로 숨어서 한숨을 돌리던 적들에게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피할 수도 없잖아!”
“힐! 빨리! 힐러들 뭐해?”
“힐러가 죽었어!”
“어떻게 좀 해봐!”
개활지야 피할 곳이 많으니 어떻게든 돌아서 나가면 되지만 지금은 딱 반대다.
땅을 파고 들어간다면 또 모르겠는데 워낙 구덩이가 협소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뭉쳐서 사냥하고 있었던 터라 우리에게는 딱 좋은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빵이 진리라…….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처음에 속절없이 당하던 적들도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정신을 차린 듯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야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화살이고 마법 공격이고 빗나가기 일쑤였다.
“기습이 제대로 통했네요.”
내가 딱히 전진해서 길을 뚫어주지 않아도 이미 지형 하나만으로 싸움이 반은 끝나 버렸다.
재중이 형이 이곳을 고집한 이유가 있구나.
달 길드와 두 곳을 나눠서 진행하기로 했는데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이곳을 선택했다.
사방에서 포위를 하고 공격을 하면 구덩이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지형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구덩이를 빠져나온 사람이 있었다.
방패를 든 사람이었는데, 뒷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앞에서 대미지를 받으며 집중포화를 버티고 섰다.
저렇게 버티고 있으면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
그저 발악에 불과한 행동이지만 그래도…….
“전사 형.”
“그래.”
방패전사가 앞으로 나서더니 바로 그 방패를 든 사람에게 뛰어들었다.
【 라이트 쉴드! 】
【 대쉬! 】
방패전사의 방패가 하얀빛으로 빛나더니 대쉬 효과와 함께 빛의 잔상을 남기며 앞으로 쭉 쇄도했다.
그리고 달려드는 가속과 파워 글러브의 힘, 대쉬의 돌진력이 더해진 방패를 강력하게 휘둘렀다.
폭죽이 터지는 효과음과 함께 앞에서 나와서 버티던 사람이 방패전사의 방패에 얻어맞아 그대로 다시 구덩이로 처박혀 굴러갔다.
들소가 전진해서 들이받는 것 같은 묵직한 돌격.
그 돌격 한 번에 튀어나오려던 사람들의 표정이 바로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오! 전사 쩌는데?”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더니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올라오려는 자들과 다시 처넣으려는 자들의 싸움이 시작됐다.
아무래도 화살과 광역 마법만으로는 모든 장소를 커버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인 HP와 물약이 있으니까.
얻어맞으면서 어떻게든 치고 나와 버리면 그다음은 우리가 나서야 한다.
근딜러들 포위망 좁히면서 밀어붙여!
압도적인 인원 차이 였다면 그냥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서 쓸어버리면 되는데 아직 숫자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 것이 아니니 사장님도 무리는 하지 않을 모양이다.
“우리 쪽만 잘 커버해. 다른 쪽은 알아서 잘할 거다. 다른 쪽에 너무 신경 쓰지 마.”
내가 계속 멀리 있는 다른 쪽도 한 번씩 흘깃흘깃 쳐다보자 재중이 형이 내게 말했다.
“그냥 전체적으로 시야가 잡혀서요. 뭐라고 해야 하나요.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그런 감각이라고 하면 이상할까요.”
“으음? 그러냐?”
재중이 형이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앞을 가리켰다.
그래, 일단은 이쪽만 신경 쓰자.
우리 파티가 포위하는 곳은 6시 방향.
나르샤와 챠밍의 공격에 이어 사장님의 신호가 떨어지자 이쁜소녀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저 다녀올게요!”
지상에서 이렇게 전투를 하는 것은 오랜만인가?
매번 수줍게 이야기하는 이쁜소녀도 전투 상황만 오면 사람이 변한다.
억누르고 있던 본성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려나?
지금 저 상황이면 누구도 못 말리지.
【 헤이스트! 】
손잡이부터 거대한 양쪽 날까지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윙 배틀 액스를 들고 헤이스트를 시전하더니 그대로 인벤에 넣어버렸다.
그러고는 이번엔 녹색 넝쿨이 잔뜩 감긴 포이즌 해머를 바로 꺼내 들었다.
재중이 형이 알려줬던 방법이네.
윙 배틀 액스 없이도 헤이스트를 쓰는.
【 포이즌 웨폰! 】
거기다 포이즌 웨폰을 시전하자 녹색 기운이 포이즌 해머에 계속 쌓여갔다.
【 대쉬! 】
방패전사가 보여주었던 그 모습이다.
가속에 가속을 붙이는.
거기다 이쁜소녀는 헤이스트까지 사용해 훨씬 빠른 상태이기도 하고.
헤이스트와 대쉬 효과까지 가속이 한 번에 급격하게 붙자 이쁜소녀가 악을 쓰더니 무거운 해머를 들고 있던 두 팔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리고 묵직한 해머를 억지로 들어 올려 앞에서 버티고 있던 또 다른 탱커의 방패 위로 묵직하게 내려찍었다.
가속과 포이즌 해머의 무게를 더한 파워 글러브의 힘이 한곳에 집중되어 터지자 무시무시한 충격파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쿠앙!
마치 포탄이 날아가 터지듯 엄청난 충격파를 일으키면서 방패를 든 적의 두 무릎을 그 자리에서 꿇려 버렸다.
그 공격에 온몸이 경직이 되었는지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들고 있던 방패까지 손에서 놓쳐서 옆으로 축 처졌다.
단 한 방에?
나 같이 급소를 치는 것도 아닌데 방패 위로 저런 공격이 가능한 건가?
거기다 포이즌 해머의 옵션으로 사방으로 독이 퍼지면서 주변에 있던 모든 적에게 독을 전이시키기 시작했다.
포이즌 웨폰의 영향을 받아서 세배나 강해진 상태로.
“악! 이게 뭐야?”
“큐어 빨리!”
“젠장, 또 마법이야?”
누군가가 포이즌 큐어로 바로 치료를 했는데 이쁜소녀가 포이즌 해머로 다시 내려치자 다시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물들어 버렸다.
“말도 안 돼.”
“큐어 빨리!”
“방금 치료해 줬잖아! 쿨타임 안 돼!”
“대체 뭐야, 저 기술은.”
이쁜소녀가 단독으로 나섰는데도 불구하고 구덩이 속이 난리가 났다.
지형과 관계없이 독성이 주변 사람들에게 전이 되는 스킬이라 숨어 있다고 해서 공격이 안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주변에 있으면 마구잡이로 독이 퍼진다.
거기다 포이즌 해머로 내려칠 때마다 사방으로 독이 퍼지니까 포이즌 큐어로 어떻게 치료할 방법도 없어 보였다.
치료를 해주면 뭐하는가.
다시 때리면 또 걸리는데.
미쳤네. 저건.
걸어 다니는 무한 광역기라고 해야 표현이 맞는 걸까?
한방 한방이 모두 광역으로 들어가는데다가 해머의 공격력도 결코 적지 않다.
“와, 저거 개사기네.”
오죽하면 재중이 형이 이런 말을 할까.
“소녀 혼자서도 다 쓸어버리겠네……. 이거 늦게 가면 할 게 없겠는데? 해머 자체도 출혈보단 타격 쪽에 집중되어 있어서 갑옷이나 방패 위로 그냥 쳐도 크리티컬 대미지가 펑펑 터져. 그럼 독뎀이 사방으로 퍼지는 거고.”
“아, 그래서 방패 위로 내려쳤는데도…….”
“헤이스트와 대쉬에 파워 글러브면 뭐, 그냥 쳐도 꿇려 버렸겠지만 해머도 한몫했지. 그리고 저건 PVP뿐만 아니라 사냥에서도 넘사벽이겠는데? 앞으로 중형 몬스터 상대할 때 볼만하겠어.”
네임드 무기도 용도나 상황에 따라서 차이가 극심하네.
저런 것은 노멀 무기가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차이다.
포이즌 해머가 윙 배틀 액스와 겹친다고 경매 참가를 안 했었는데 진작 얻었으면 저 광경을 더 빨리 봤을지도.
“자! 우리도 가자. 소녀만 부자 되겠네. 나 차 할부금 아직 남았어!”
“인생은 한방이라면서요?”
“때론 휘어질 때도 있는 법.”
재중이 형 말대로 물약으로 가까스로 버티던 독으로 인해 적들이 하나둘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져 갔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중 일부가 아이템을 토해놓고 죽기도 했고, 이건 전부 이쁜소녀의 몫이다.
“시간을 더 끌면 지원 올지도 모르니 가자.”
“아이템 먹으러 가는 것은 아니고요?”
“겸사겸사?”
재중이 형의 신호에 그동안 포위망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챠밍, 나르샤, 이쁜소녀가 이미 방진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둔 상태라 굳이 시간을 끌면서 기다릴 필요도 없어 보였다.
전투가 시작된 뒤 전투 상태를 풀려면 여기서 일정 거리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포위를 하고 광역기를 쏟아부었다.
전처럼 한 명을 친다고 전부 공격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까.
다른 말로 이제 저 사람들은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소리다.
탈출기나 이동기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네.
우리 팀 사람들이었으면 불리했으면 어떻게든 탈출해서 벗어나 버렸을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아니면 운영자가 다시 패치를 하든지.
중간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마도 로그아웃을 해버린 모양이다.
“저러면 그냥 죽여달라는 거지.”
저건 로그아웃이 된다고 해봤는데 망한 경우네.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우리 길드 사람들이 죽이니 그 자리에 템이 툭 떨어졌다.
아이템 밭인가?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사람을 잡는 편이 더 짭짤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안 되는데…….
이쪽이 파이가 훨씬 크긴 하네.
우리가 접근하는데도 구덩이 속에서 아직도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음? 혈검이라…….
진하고 검붉은 머리카락이 산발이 될 정도로 정말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우리 길드 사람이 다수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저 사람은 꽤 하네요?”
“혈검? 뭐, 한때 랭킹 10위권 안에 들었으니까. 10위권 안이면 전부 한 가닥 한다고 보면 돼. 돈으로 완전 떡칠해도 안 되는 영역이다.”
“흐음, 그런가요.”
확실히 잘 싸운다.
어쩔 수 없이 줄 건 주더라도 큰 것은 전부 직격을 피하거나 쳐내는 듯, 그간 봐온 사람들과는 꽤 실력 차이가 있었다.
“너무 오래 끌면 이쪽도 귀찮아지는데.”
이곳은 화련 연합의 텃밭이라 여차하면 지원이 온다고 했던가?
이미 사방으로 지원요청을 했을 것이다.
포위를 한다고 귓말이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이게 현실과 다른 점이다.
언제든지 공간을 무시하고 연락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재중이 형이 혈검을 잡으러 나서려고 하자 내가 재중이 형을 잡았다.
“왜? 네가 하게?”
“시간 없다면서요. 빨리 해치우죠.”
“으음, 너 안목이 제법이구나? 저거 9강인 거 어떻게 알았어?”
“하하, 왠지 그럴 것 같아서요.”
죽인다고 바로 떨어지진 않겠지만 일단 확률이 있다.
“나오면 나도 알지?”
“네네, 양보한 것 잊지 않을게요.”
나오면이다.
나오면.
윙 블레이드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우리 길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치다가 혈검이 너무 잘 버티니까 흩어져서 다른 사람을 처리하는 쪽을 택했다.
같은 수고면 빨리 하나라도 더 잡고 템을 얻고 싶을 테니까.
내가 나서자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람들도 다 혈검을 두고 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붙들고 있었나 보네.
이 사람도 PK를 어지간히 많이 한 모양이다.
적대관계를 떠나 그냥 기본적으로 아이디가 시뻘건 색이니까.
혈검이 날 보더니 피식 웃었다.
“랭킹 1위라…… 이거, 거물이 오셨구만.”
“서로 긴 이야기는 필요 없겠지?”
“크, 잔챙이들하고 싸우다 죽으면 쪽팔릴 뻔했는데 널 잡고 가면 그나마 체면치레는 하겠군.”
날 잡는다라…….
“한 번 해봐. 날 잡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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