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17
1017화 너무 약하군!
엽현은 오히려 천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한 손에 검을 쥐고 걸음을 떼는 그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이 모습을 본 천자가 웃으며 소리쳤다.
“엽현, 아직도 싸워 볼 마음이 남아 있는 게냐?”
대답 없이 천천히 두 눈을 감는 엽현.
천도?
순간 엽현의 입가가 길게 늘어졌다. 미소라고 보기엔 너무나 살기 어린 표정이었다.
“흐흐흐… 뭐가 천도고 뭐가 천자란 말이냐. 하늘이 날 죽이려 한다면 내가 먼저 그 하늘을 없애버릴 것이다!”
음성이 떨어진 순간, 엽현의 등 뒤로 악마의 날개가 펼쳐졌다. 이와 거의 동시에 장내에 한 줄기 검광이 번뜩였다.
이를 본 천자가 냉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천도필을 앞으로 내밀었다.
쾅-!
순간 한 줄기 강력한 기운이 천도필로부터 흘러 나와 검광을 향해 날아갔다.
콰쾅-!
하늘을 뒤흔들며 흩어져버린 검광.
바로 이때, 천자의 눈동자가 쪼그라들었다. 그가 느끼지 못한 사이에 날카로운 검 끝이 그의 목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護)!”
천자가 다급히 외친 순간, 검 끝이 그의 목을 찔렀다.
쾅-!
천도의 의지가 발현된 순간, 엽현이 또다시 검을 든 채로 수백 장 뒤로 날아갔다. 물론 천주검은 이번에도 천자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 엽현.
천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매우 무거웠다.
정녕 저 천자의 의지를 뚫을 방법은 없는 걸까?
“하하하! 오랜만에 즐겁구나, 엽현! 어디 또 덤벼 보거라!”
“…….”
엽현은 제자리에 선 채로 아무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당장 어떻게 공격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도의 의지, 정말 무적이란 말인가?
“하하하, 엽현! 조금 전까지는 팔딱팔딱 뛰더니, 벌써 지쳐버린 게냐? 그래서야 여인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겠느냐?”
이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엽현. 찰나의 순간, 그의 몸 안의 선혈이 천천히 끓기 시작했다.
혈맥지력!
가장 강력하지만 가장 쓰고 싶지 않았던 한 수.
스스로의 힘으로는 타계할 수 없는 이 상황을 혈맥을 이용해 극복해 보려는 것이었다.
물론 혈맥의 힘이 천도의 의지를 꺾을 수 있을지는 해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쾅-!
엽현의 몸 안에서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오면서 그의 손안의 천주검이 핏빛으로 변했다.
천자의 얼굴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혈맥의 힘을 끌어다가 쓰겠다? 하하하! 설령 네가 진룡(真龍)의 혈맥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때 엽현이 고개를 들어 천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이미 혈해를 이루고 있었으나, 그 사이에 여전히 한 줄기 맑은 기운이 존재했다.
그는 혈맥지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진 않았다. 우선 이 방법이 통할지 가늠하는 것이 먼저였다.
바로 이때,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천자의 정면에 불쑥 나타났다. 이에 천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엽현이 하는 모습을 여유롭게 지켜보기만 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순간, 천주검이 빛처럼 날아들자 천자의 주변에 신비한 기운이 재차 발동됐다.
다시 한번 나타난 천도의 의지!
검끝이 다시 천도의 의지에 닿은 이때, 천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찰나의 순간, 천도의 의지가 갈라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쾅-!
천도의 의지가 뚫림과 동시에 천자의 목이 날카롭게 잘려 나갔다. 바로 이 순간, 어디선가 신비한 기운이 불어와 천자의 영혼을 낚아채 갔다.
엽현이 고개를 돌려 임평생을 바라보았다.
방금 출수한 것은 바로 임평생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엽현을 응시하고 있던 임평생.
그의 안색은 이미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네 놈의 혈맥은 도대체 무엇이냐!”
“끼어들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엽현이 웃으며 되묻자 임평생과 천자의 안색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이에 엽현은 영혼체로 변한 천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게 네가 말한 정정당당한 대결인가? 부끄럽군!”
“엽현!”
엽현은 천자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이때 엽현과 눈이 마주친 무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엽현이 천도의 의지를 깨뜨린 장면은 확실히 경악할만한 것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혈맥 중 가장 강대한 혈맥 두 개를 꼽자면 바로 범인혈맥과 진룡혈맥이었다.
하지만 엽현의 혈맥은 이 둘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엽현의 혈맥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무희 족장, 이만 갑시다!”
엽현은 검을 거둬들였다. 무희와 엽현이 같이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천자를 죽이는 것은 어려웠다.
무희 역시 고개를 끄덕여 이 생각에 동의했다.
“가자!”
두 사람이 막 돌아서려는 이때였다.
“잠깐!”
뒤에서 들려온 임평생의 목소리에 엽현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네 혈맥은 도대체 무슨 혈맥인 것이냐!”
“하하,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하지?”
“…엽현, 잘 생각하거라. 너는 정말로 천마족이 널 보호해 줄 거라 생각하느냐?”
이 말에 엽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왜 자꾸 쓸데없는 소릴 하는 거지? 자신 있으면 와서 내 목을 가져가면 그만 아닌가?”
“…….”
임평생이 침묵하자 이번에는 천자가 나섰다.
“엽현… 마지막으로 나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나는 육신이 사라졌으니, 서로가 영혼체인 상태에서 말이다. 대신 이번에는 정말로 아무 외물도 없이 정정당당하게 붙어보자. 어떠냐?”
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엽현은 이미 고개를 젓고 있었다.
“또 무슨 음모가 있는 줄 알고? 더 이상 너와 싸우지 않는다!”
“왜, 겁먹었느냐?”
천자의 이 말에 돌아서려던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겁먹었을 것 같나?”
“그런데 왜 싸우지 않겠다는 거냐?”
“하하,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은 너를 더 이상 신뢰하긴 어렵다. 또 무슨 꿍꿍이를 숨겨 놨을지 모르는데 뭐 하러 위험을 자초한단 말이냐? 이 싸움은 이렇게 마무리하겠다.”
이때 천자의 눈에서 살기가 일었다.
“만약 승부를 피한다면 지금 당장 호도자들을 파견해 만유서원과 부문종을 치게 할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반드시 전멸시킬 것이다!”
“이제 보니 비열한 자였군. 우리 둘 사이의 싸움에 다른 자들을 인질로 끌어들이다니.”
엽현이 두 주먹을 불끈 쥐자 그의 목에 핏대가 섰다. 말은 차분하게 했지만 이미 그는 화가 난 상태였다.
“엽현, 대답해라. 결투를 발아 들이겠느냐?”
“이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승리해 봐야 무엇이 남는 거지? 무인의 긍지는 원래부터 없던 것인가?”
이에 천자가 고개를 저었다.
“오직 결과가 중요할 뿐, 과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후…….”
크게 심호흡을 한 엽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다. 대결을 받아들이지. 다만 내가 이기면 다시는 만유서원과 부문종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약속한다.”
“그렇게 성의 없이 대답하지 말고, 맹세해라. 천도의 이름을 걸고!”
엽현이 소리치자, 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도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만약 약속을 어길 시 자결하겠다.”
엽현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좋다. 마지막으로 영혼끼리 붙어보자!”
이 외침과 함께 엽현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허공에 떠올랐다.
한 손에 천주검을 쥐고 있는 엽현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달리 사뭇 진지했다. 육신에 강점이 있는 그가 영혼 상태로 싸우는 것은 다소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때 그의 곁에 있던 무희가 소리쳤다.
“엽현, 지금이라도 거절해라. 내가 있는 한 임평생도 널 건들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천자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천마족장, 방금 전 내가 한 말을 못 들었소? 그리하면 부문종이 날아간다고 하지 않았소?”
“…….”
“끙…….”
무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엽현 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부문종과 만유서원 전체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임평생이 직접 나선다면 두 세력이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천마족이 두 종문을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 아니오 였다.
천자가 웃으며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엽현, 그런 눈으로 바라볼 것 없다. 이번 전투는 분명 공평하게 진행될 테니까.”
“…….”
“엽현, 잘 생각해 보거라. 이건 함정일 수 있다!”
무희의 말에 엽현이 그를 고개를 저어 보였다.
“천자가 저렇게 비열하게 나오니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구려.”
“하지만 살아남기만 한다면, 앞으로 너의 성취는 분명 천자를 뛰어넘을 것이다. 굳이 도박을 할 필요가 있느냐?”
천자를 뛰어넘을 재능!
엽현에 대한 이 평가는 극찬에 가까운 것이었다.
말 그대로 천선지인을 능가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이에 엽현이 웃으며 반문했다.
“누군가 그대에게 천마족을 버릴 수 있냐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하겠소?”
“흠… 알겠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무희는 이미 엽현이 결심을 굳혔음을 깨달았다.
대화를 마친 엽현은 천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시작하지.”
엽현이 천주검을 쥔 손에 힘을 주자, 그의 전신에서 강대한 검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상보다 그 강도가 다소 약해져 있었다.
천자는 여유 있게 웃으며 출수를 준비했다.
“조심하거라.”
임평생의 말에 천자가 미소로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사부. 제게 다 생각이 있습니다.”
천자가 엽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뗐다.
“엽현, 과연 방패와 갑옷 없이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
“쓸데없는 소리 말고 목숨이나 내놓으시지!”
천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엽현이 천주검을 쥔 채로 천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천자의 영혼이 돌연 희미하게 변했다.
쾅-!
찰나의 순간, 엽현이 영문도 모른 채 신비한 힘에 타격을 받아 날아갔다.
무려 수백 장이나 되는 거리였다!
이때 자리에 멈춰 선 엽현의 영혼은 한층 더 희미하게 변한 상태였다.
엽현이 고개를 들어 천자를 바라보는 순간, 무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건 대혼지술(大魂之術)이다! 호도자 초대 도주인 임랑(林琅)이 창안한 것이지. 지금 천자는 천지와 융합한 상태로 네 영혼과 검은 결코 그에게 타격을 입힐 수 없다!”
타격을 입힐 수 없다고?!
이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때 천자가 엽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진정한 강자라면 육신과 영혼이 고루 강해야 한다. 헌데 엽현 너는……”
천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엽현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광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갔다.
“쯧쯧… 육신 상태일 땐 봐줄 만했지만, 영혼으로 변하고 나니 형편없군.”
경시의 시선으로 엽현을 바라보던 천자가 가볍게 소매를 펄럭였다. 순간 그의 손에서 강대한 기운이 방출되어, 날아오던 검광과 엽현을 동시에 멀리 튕겨냈다.
재빨리 자세를 바로 잡은 엽현.
하지만 그의 표정엔 이미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반면 천자의 미소는 점점 더 짙어져 갔다.
“엽현, 너는…”
“전투 중에 웬 잔말이 이리 많은 게냐!”
엽현이 천자의 말을 끊으며 재차 몸을 날렸다.
이때 그의 움직임은 조금 전보다 더욱 빨라져 있었다.
하지만 천자의 눈에 비친 엽현의 검은 아직도 너무나 약해 보였다.
천자가 여유롭게 손을 뻗어 출수하려는 순간, 엽현이 들고 있던 검이 진혼검으로 교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