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19
1019화 그를 죽여라
엽현의 물음에 구층 존재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엄밀히 말해 이 세상은 천도의 법칙 아래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혹자에 따르면 이 법칙을 벗어나 존재하는 유일한 경지가 있다고 하니, 이것 바로 둔일경이다. 다만 이 경지는 전설 속에서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천도의 눈을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 자는 극소수, 아니, 내가 아는 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천도의 눈을 벗어나 존재한다라… 그게 가능한 일이오?”
[그렇게 때문에 전설 속에 존재한다고 말한 것이다. 아라나 호도 도주 같은 강자들조차 이 경지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천녀라면 어떨 것 같소?”
[모른다.]“어째서 말이오?”
[후… 네가 생각해 보거라. 어디 실력을 눈으로 보아야 경지를 짐작할 것 아니냐? 그런데 그 여자는 단칼에 모든 상황을 종료시켜 버리니 어찌 경지를 가늠할 수 있겠느냐?]“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인과경에서 윤회경으로 가는 것 역시 충분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윤회경에서 주재경으로 넘어가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다. 아주 절망적일 정도지.]“그게 그렇게나 어려울 일인가?”
엽현의 이 한 마디에 구층 존재가 탑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건 어디로 들은 게냐? 생각해 보거라. 자고로 지금까지 주재경에 이른 자가 몇이나 될 것 같으냐? 채 열 명도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가늠이 가지 않느냐? 그래도 모르겠다면 다음에 아라를 만났을 때 한 번 물어보거라. 과연 주재경이 쉬웠는지를.]“하하, 주재경까지는 생각지도 않소. 일단 당장은 윤회경부터 뚫는 것이 급선무니까 말이오.”
[그러려면 쓸 만한 검과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그럼 그대의 경지는 어디쯤에 있소?”
[하하하! 그건 네 상상에 맡기겠다!]엽현은 고개를 한 번 내젓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가 말한 대로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윤회경에 진입하는 것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검이 필요하다.
검!
검을 구할 생각을 하자 엽현은 갑자기 두통이 밀려왔다.
현재 그가 흡수할 수 있는 검은 이미 매우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평범한 검은 기별도 가지 않는 상황에서 쓸 만한 검을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에휴… 내 팔자야.’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절망에 빠져 있는 이때,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오!”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남자.
다름 아닌 임마였다.
“하하, 엽 형, 사부께서 불편한 건 없는지 살펴보라 하여 왔소. 뭐 달리 필요한 거라도 있소?”
필요한 거?
엽현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혹시 그대 남는 검이 있소? 보통 검은 안 되고, 쓸 만한 검이라야 하오.”
“검이라… 엄청난 신검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몇 자루 구해 줄 순 있을 것이오. 다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소.”
임마의 말에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소도 낭자에게 가 보는 수밖에 없겠군.”
엽현이 필요한 것은 그저 그런 평범한 검이 아니었다. 소도라면 그가 원하는 검을 구해다 줄 수 있었다.
“임 형, 혹시 안부 말고 달리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오?”
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천도성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 것이오. 나와 사부가 자리를 비운 동안 호도자가 그대를 암살하려 들지 모르니 단단히 경계해야 하오.”
“천도성을 친다고?”
“그렇소. 그대가 천자를 죽여 준 덕분에 우리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왔소.”
“임 형,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시오?”
엽현의 물음에 임마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부께선 이에 대해 언급하진 않으셨소. 그러니 우리와 함께 할 것인지는 그대가 결정하도록 하시오.”
“음… 알겠소.”
“그럼 할 말을 전했으니 가보도록 하겠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시중을 드는 자들에게 부탁하시오.”
말을 마친 임마는 곧바로 장원을 떠났다.
홀로 남은 엽현이 문득 고개를 들자, 천마족 무인들이 어디론가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걸 보면 정말로 총력전을 펼치려는 것 같았다.
“그대가 보기에 천마족이 호도자들을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쉽진 않을 것이다. 다만 저리 기세가 등등한 걸 보니 뭔가 믿고 있는 구석이 있는 것 같구나. 아주 흥미진진한 싸움이 되겠군.]“하하, 나 역시 호도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몹시 궁금하오.”
[이번 전투에 참여할 생각이 있느냐?]이 질문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이건 내게 있어 천재일우의 기회나 다름없소.”
[흠… 그냥 둘이서 양패구상하도록 내버려 두는 쪽도 괜찮지 않겠느냐?]“물론 그것도 좋긴 하지만, 나는 아직 무희의 도움이 필요하오. 게다가 만에 하나 천마족이 패해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땐 내가 위험해질 게 아니겠소?”
[네 말이 맞다. 어찌 됐건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천마족이든 호도자든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은 틀림없으니까.]엽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식간에 공중으로 솟구쳤다.
잠시 후, 엽현은 천마족 무리에 섞여 역외전장에 도착했다. 이때 계허 건너편에는 천도성역에서 온 강자들이 벌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수의 대군이었다.
이 정도라면 천도성역에 있는 웬만한 강자들은 모두 나온 것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장내를 둘러보던 이때, 엽현의 눈에 익숙한 여인 둘이 들어왔다.
바로 천함과 천안 자매였다.
이때 엽현의 시선을 느낀 천안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때의 엽현은 이미 인간의 반역자로 낙인찍힌 상태였다.
천함 자매와 눈을 마주친 엽현이 먼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두 여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악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엽현은 다시 고개를 들어 천도성 측 강자들을 면밀히 주시했다. 확실히 기운과 숫자 면에서 결코 천마족에 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있어 이 전투는 생사가 달린 중대한 일전인 것이다.
두 종족의 명운을 건 한판 승부!
바로 이때, 임평생이 공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임평생의 시선을 느낀 엽현이 그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순간 임평생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임평생! 보아하니 날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로구나! 하하하!”
엽현의 한 마디에 장내 모든 무인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이 천도성역에서 엽현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손에 천자의 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엽현과 천자의 일전은 바람을 타고 이미 천도성역 전역에 퍼진 상태였다.
임평생은 엽현의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정면의 무희를 바라보았다.
“무희! 잘 알다시피 오유계는 더 이상 우리가 지배하던 그 세상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둘 다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무희가 웃으며 대꾸했다.
“나도 한마디 하겠다. 임평생, 너 역시 천마성역의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영기가 고갈돼 죽으나 양패구상해 죽으나 매한가지. 그렇다면 조금 더 가능성 있는 쪽에 도박을 거는 편이 현명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임평생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너희 천마족이 천도성역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겠다. 그렇게 하면 서로 피를 보지 않고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우리도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건 바로 네 손으로 직접 엽현의 목을 베어 우리에게 넘기는 것이다.”
엽현을 죽여라!
순간, 이 말을 들은 엽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이때, 구층 존재의 다급한 음성이 엽현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뭐해!? 튀어!]‘튀라고?’
구층 존재의 음성을 들은 순간 엽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역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도망치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움직이는 순간 임평생은 물론 무희까지 출수하려 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엽현은 일단 마음을 가라앉힌 후, 무희의 표정을 살폈다.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져 있는 무희. 임평생의 제안은 정말이지 천마족에게는 매우 달콤한 것이었다.
천마족의 최대 난제는 바로 생존.
바로 이것 때문에 목숨을 걸고 천도성에 도전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어떨까? 그땐 굳이 피를 흘리며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엽현을 죽인다는 전제하에!
이때 무희가 문득 엽현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엽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천마족장, 저자의 말을 믿는 것이오? 저자와 천자가 밥 먹듯 말을 바꾸는 걸 보지 않았소?”
무희가 이번에는 임평생을 바라보았다.
“무희! 저놈의 말을 들을 필요 없다! 이런 중대사를 가지고 장난치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 저놈의 목을 취하기만 한다면 천마족과 천도성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이 모두에게 이로운지 잘 생각해 보거라!”
“…….”
다시 장고에 들어간 무희.
엽현은 미소를 띤 채 그런 그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이때 임평생이 다시 소리쳤다.
“무희! 네 뒤를 한 번 돌아보거라. 눈에 보이는 것만 어림잡아 수십 만이다. 거기에 어딘가 대기하고 있을 무인들의 수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이 중 몇이나 살아남을 것 같으냐?”
이 말에 무희가 천마족 강자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그는 이미 많은 희생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그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무희뿐만 아니라, 장내에 있는 수많은 천마족 무인들 역시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들의 시선은 엽현이 도망가지 못하게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들의 시선을 느낀 엽현은 얼굴에 아무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흠… 도망치긴 그른 것 같군.]구층 존재가 말한 이때, 엽현이 돌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하하하! 무희, 정말로 저자가 하는 말을 믿는 것이오?”
대답을 망설이는 무희.
이때 임평생이 호통치듯 소리쳤다.
“놈! 어찌 내가 한 말을 의심한단 말이냐!”
엽현의 시선이 임평생에게로 향했다.
“엽현, 네 놈의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너는 우리가 피를 흘리며 싸우길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천마족과 천도성이 동귀어진을 하면 그때 어부지리를 취할 생각이겠지. 무희, 네가 봐도 그렇지 않느냐?”
무희의 의중을 묻는 임평생.
이에 무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두 세력이 지리멸렬한 후에 이익을 취하려는 것을 잘못됐다고 할 수 있나? 오히려 나는 엽현이 죽으면 천마족에게 큰 화가 닥칠까 두렵구나.”
“그 말은 제안을 거절하겠단 건가?”
임평생의 물음에 무희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한 제안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네가 진정으로 천마족과 공존을 위한다면 엽현을 죽이지 않고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엽현을 죽인다 해도 평화는 얼마 못 가 깨지고 말겠지. 즉, 우리가 공존하는데 엽현이 죽고 살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흠…….”
“대신 내가 제안 하나 하마. 네가 주장한 대로 지금은 우리가 싸울 시기가 아니라 생각한다면, 충분히 화친을 맺을 수도 있다. 아니, 더 나아가 외부세력에 맞서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 다만 엽현을 죽이라는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 대신 우리 천마족은 둘 사이에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 어떤가?“